[아시아경제 양낙규 기자]12월의 호국인물과 독립운동가에 해군 최용남 소장과 오면직 선생이 각각 선정됐다.
28일 전쟁기념관은 6ㆍ25전쟁 당시 북한 무장수송선을 격침한 ‘백두산함’의 함장 최용남 소장(1923.10~1998.11)을 ’12월의 호국인물’로선정했다고 밝혔다. 평안남도 용성군에서 태어난 최 소장은 연희전문학교를 졸업, 1946년 5월 1일 해군 참위로 임관했다. 이후 진해 기지교육대 교관, 함정부 부관 등을 역임하고 1950년 4월에 제2함대 PC함장으로 부임했다.
1950년 6ㆍ25전쟁 중 부산 해역으로 침투하던 북한 무장수송선(1천t급ㆍ무장병력 600여명 탑승)을 발견하고 당시 해군의 유일한 전투함인 백두산함 함장으로서 적함을 추격해 격침했다. 별다른 사격연습과 교전경험도 없이 야간과 악천후라는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당시 ‘대한해협해전’을 승리로 이끈 것이다.
최 소장은 이 밖에도 서ㆍ남해안 봉쇄작전, 여수 철수작전 등에서 북한군의 해상침투를 저지하는데 큰 공적을 세웠고, 인천상륙작전에도 참여해 작전 성공에 기여했다. 1953년부터는 해병 학교장으로 부임해 해병양성에 힘썼고, 이후 해병대사령부에서 작전국장, 참모부장 겸 군수국장, 부사령관 등을 역임했다. 1965년 해병 소장으로 예편했다.
12월의 독립운동가에 선정된 오면직 선생(사진)은 친일세력 처단과 독립운동 자금 확보를 위해 의열투쟁을 전개한 인물이다. 오 선생은 황해도 안악 출신으로 양산학교와 평양 대성중학교에서 수학했으며, 1919년 3ㆍ1운동에 참여했다.
1920년 조선일보 및 동아일보 안악지국 기자로 활동하다 임시정부의 군자금 모집 활동을 지원했다. 1922년 스승인 김구 선생의 권유로 한국노병회에 가입한 후 한국노병회 파견원 신분으로 중국 허난(河南)성 군관학교에 입학했다. 1931년에는 재중국무정부주의자연맹 상해부 및 남화한인청년연맹에서 활동했다.
1932년 홍커우공원 폭탄 투척 모의에 참여했고, 1933년 아리요시(有吉) 주중일본공사 암살을 시도했으며, 1934년에는 비밀결사대인 한국독립군특무대에서 김구 선생의 비서로 활동했다. 1936년 한국맹혈단을 조직해 친일파 처단 및 독립운동 자금을 모집하다 일제에 체포돼 1938년 사형이 집행됐다.
양낙규 기자 if@asiae.co.kr
<2014-11-28> 아시아경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