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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리저리 떠도는 ‘반민특위’ 표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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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 명동은 백화점 본점들이 자리 잡고 있을 뿐만 아니라 소상공인들의 역사도 어느 곳보다 오래됐을 정도로 상업의 역사가 깊은 곳이다. 동시에 한국의 정치사회사에서도 의미있는 곳 가운데 하나다. 해방 뒤 친일부역의 ‘흑역사’를 청산하기 위한 노력의 중심지도 바로 명동이었다.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 즉 ‘반민특위’는 제헌국회가 대한민국 정부 수립 직후인 1948년 설치한 기구로, 일제의 통치에 적극 협력했거나 독립운동가 및 그 가족을 죽이거나 박해한 자들을 처벌하기 위해 제정한 반민족행위처벌법을 실현하기 위한 특별위원회였다.

그러나 반민특위는 오래 가지 못했다. ‘정의실현’보다는 ‘질서유지’를 우선시했던 미군정에 의해 친일부역자들이 다시금 권력을 쥔 현실에서 친일 청산은 쉽지 않았다. 친일부역자들의 경제적.물리적 힘에 기대어 1인 장기 독재를 꿈꾸던 이승만 입장에서도 반민특위의 존재가 달가울 리 없었다. 급기야 경찰을 동원해 완력으로 방해하는 것도 서슴지 않았다. 결국 반민특위는 1년을 채 버티지 못하고 강제 해산되어버렸다.

친일 청산을 위해 노력하던 이들이 거꾸로 친일부역자들에 의해 ‘역청산’되어 버린 쓰라린 역사…. 친일부역자들은 이후 반공주의자로 둔갑해 시민사회를 억압하고 민주화 요구를 묵살하며 독재정권의 전위대이자 몸통 그 자체가 되니, 미완의 역사 청산이 남긴 후과치고는 참으로 고약한 결말이다.


다행히 지난 역사를 모두가 잊고만 있는 건 아니었나 보다. 반민특위가 해산된 지 50년만인 1999년, 민간단체인 민족문제연구소가 반민특위 본부가 있던 KB국민은행 명동영업부 빌딩 밑에 그 역사적 사실을 알리는 표석을 세웠다.

그리고 최근 우연히 그곳을 지나다 반민특위 표석이 원래 자리에서 지하주차장 입구로 옮겨진 것을 발견했다. 너무 구석진 곳이어서 표석의 옆뒷면 내용은 읽을 수조차 없었다.

변화하는 시대의 또다른 징표일까? 장소는 기억을 지배하고, 기억은 의식을 지배한다고 했다. 그러나 다시 있어서는 안 될 그 씁쓸한 기억을 잊지 않으려 설치하는 표석마저 정부나 지자체가 아닌 민간단체가 나서서 세우고, 그마저도 이리저리 수난을 당하는 현실이 해방 70주년을 앞둔 우리 사회의 민낯이다.


/’다시,서울을 걷다’ 저자

<2014-12-04> 메트로신문

☞기사원문: [권기봉의 도시산책]이리저리 떠도는 ‘반민특위’ 표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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