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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시도 중단 및 역사교육 정상화 촉구” (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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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사 관련 학회 성명서]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시도 중단 및 역사교육 정상화 촉구”


한국서양사학회를 비롯한 국내 서양사 분야 10개 학회는 현재 박근혜 정부와 교육부가 추진하고 있는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시도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표명하지 않을 수 없다. 위 학회의 회원들은 역사학자로서 역사교과서의 국정화가 역사교육에 대한 국가의 통제를 초래하기에 이에 대한 반대 의견을 명확히 밝히며 하루 빨리 이 같은 몰학문적 시도를 전면 철회할 것을 요구한다.


우리 서양사학자들은 이미 국내 다수의 역사학계와 역사교육계가 밝힌 정부의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시도에 대한 비판에 동참하며 역사교육의 정상화를 거듭 촉구한다. 특히 우리는 서양사학자로서 정부의 역사교육에 대한 개입 계획과 전횡이 20세기 전체주의적 독재 국가들에서나 상상할 수 있는 일이며, 민주주의 국가와 민주적인 사회와는 결코 어울리지 않는 시대착오적인 시도임을 강조하고자 한다.


19세기의 위대한 자유주의 사상가 존 스튜어트 밀은 “국가가 나서서 교육을 일괄 통제하는 것은 사람들을 똑같은 하나의 틀에 맞추어 길러내려는 방편에 불과하다. 국가가 교육을 통해 효과적으로 그리고 성공적으로 국민을 자신의 틀 속에서 집어넣으려 할수록 국가 최고 권력자들의 기쁨도 커진다. 그 결과 권력이 사람들의 정신을 장악하고 그 자연스러운 귀결로서 육체까지 지배하게 된다.”고 지적했다. 그의 지적처럼, 국가가 교육을 통제함으로써 사람들의 생각을 특정 방향으로 유도하는 일은 결코 일어나서는 안 될 것이다.


정부에 의한 역사교과서 통제 시도는 불가능하다는 사실은 이미 역사적으로 검증되었다. 정부가 어떠한 명분을 내세운다 해도, 역사교과서의 국정화는 결국 특정 정치 집단이나 소수 이익 집단의 편협한 요구와 이해관계만을 반영할 뿐, 결코 민주주의 공동체의 올바른 교육 목표를 달성할 수 없다. 그것은 우리나라보다 먼저 국민국가 건설과 발전의 지난한 과정을 경험한 서구의 역사가 충분히 입증한다. 19세기 배타적이고 공격적인 민족주의에 근거한 국민국가나 20세기 파시즘과 공산주의 및 개발독재 국가의 권력자들은 역사교육을 자신들의 정치 지배의 수단이나 국가 정체성을 억압적으로 주조하려는 도구로 활용했다. 서구에서 역사교과서가 국정화 된 것은 그와 같은 독재 체제의 확립과 유지에 역사교육이 악용된 과정과 맥락에서였을 뿐이다. 그렇기에 인류 역사의 경험은 역사교육에 대한 국가권력의 개입이 얼마나 위험한 결과를 초래했는지 충분한 경험과 사례를 보여주었다. 오늘날 서양의 어떤 국가에서도 국정 역사교과서가 존재하지 않을 뿐 만 아니라 누구도 그런 시도를 하지 않는 것은 바로 이러한 역사적 경험 때문이다. 결국, 민주주의 국가와 사회에서 역사교육은 국가 통제로부터 벗어난 학계의 전문성이 반영되어야 하고, 동시에 민주주의적 다원주의와 공생의 가치에 근거해야 한다.
더욱이 21세기의 역사적 현실은 정부 주도의 교과서 제도가 지식과 정보의 흐름이 급변하는 다원화된 현대 민주주의 사회와 더 이상 어울리기 힘들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교과서 발행에 대한 정부의 개입 시도는 교과서 편찬의 자율성과 다양성을 해칠 뿐 아니라, 해방 이후 우리나라가 이룩해온 시민적 성숙과 학문적 역량을 무시하는 처사라고 볼 수밖에 없다.


정부에서 주장하는 국정교과서 도입의 논거, 즉 국정교과서를 도입해야 “국론 분열을 방지한다”, 교과서 “서술 내용의 오류를 줄인다”는 등의 이유는 모두 억압적 통제를 위한 변명에 불과하다. 이미 현행 검정제하에서도 교육부는 교과서의 설계도에 해당하는 ‘교육과정’을 집필자와 출판사에 정해주었으며, 더 나아가 ‘집필기준’까지 제시하고 있으며, 이를 무시할 경우 교과서는 검정을 통과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이와 같이 이미 교육부의 지침을 통해 역사 교육 내용의 근간은 충분히 마련되어 있다고 판단된다.


그러므로 정부가 국정교과서를 만들어 ‘국론통일’이라는 이름으로 역사의식과 기억을 획일화하고자하는 하는 것은 전체주의적 횡포에 다름 아니다. 역사교과서에 대한 정부의 통제와 개입은 역사학 전반에 학문적 자유와 교육의 독립성을 심각히 침해할 것이며 역사학자들을 위축시킬 것임이 자명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역사교과서 국정화가 역사교육에 대한 권력의 통제를 넘어 결국에는 역사연구와 교육 전체에 대한 압박으로 향하는 전주가 될 수 있음을 심각히 경고한다. 아울러 ‘서술 내용의 오류’ 문제는 교과서를 만드는 사람들의 전문성 제고와 충분한 시간 확보와 엄격한 검토 과정과 절차의 강화로 풀어야 할 과제이지 국가권력이 개입해서 해결할 문제가 전혀 아니다.


이에 우리 서양사학자들은 역사교과서를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자의적으로 재편하려는 모든 형태의 개입 시도에 반대하며, 역사교과서는 학문적 엄밀성과 타당성을 토대로 학계 전문가들의 자율적인 학문적 토론과 합의에 따라 집필되어야 할 것임을 엄중히 선언하는 바이다. 우리 서양사학자들은 정부가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시도를 철회하고 역사교육을 정상화 할 때까지 국내외의 역사학자들, 역사교사들 그리고 시민사회와 함께 연대할 것이다.


1. 역사학계·역사교육계의 중론과 국민적 공감대를 존중하여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시도를 즉각 중단하라.

1. 역사교과서 집필의 자율성과 현 역사교육의 정상화를 방해하는 정부와 특정집단의 간섭과 개입을 즉각 중지하라.


2014년 12월 6일


한국서양사학회 및 서양사 관련 9개 학회

한국서양사학회, 독일사학회, 프랑스사학회, 영국사학회, 러시아사학회,
미국사학회, 한국서양문화사학회, 문화사학회, 서양고대역사문화학회, 중세사학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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