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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폐간 탄압 사건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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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언론의 숨통을 끊는 선고 공판, 단 1분도 걸리지 않았다


법원의 가처분으로 잠시 소생한 ‘경향’


행정소송이나 민사소송에서는 분쟁의 실체를 다투는 본안소송과 그 결론(판결)을 기다리다가는 원고 측에 회복할 수 없는 손해가 발생할 염려가 있을 때 이를 막기 위한 임시적인 가처분소송이 있다. 그러므로 시급성을 요하는 가처분신청에 대한 판단이 본안소송보다 먼저 나오는 것이 통례다. 앞서 경향신문사(이하 때로는 경향)가 제기한 소송의 경우에도 가처분 신청에 대한 판단이 먼저 나왔다.

1959년 6월26일 서울고법은 경향의 신청대로 신문발행허가 취소처분의 집행을 정지한다는 결정을 내렸다. 법원이 경향에 대한 정부 여당의 총공세를 ‘일단정지’시킨 쾌거였다. 결정 이유의 요지는 이러했다. (정부의) 공보실장은 경향신문의 형사법 위반 등을 발행허가 취소사유로 삼았으나 법원의 확정판결을 거치지 않고 단순히 형사법 위반 등의 혐의만 가지고 그런 행정처분을 한 것은 잘못이라고 했다. 정부 측의 발행허가 취소사유가 일부 인정되기는 하지만, 경향신문사가 사과 정정기사를 게재하였고, 피해자가 처벌을 희망하지 않으며, 자유진영의 일익으로 공산당과 싸워온 13년간의 공적을 종합할 때 발행허가 정지처분의 단계도 밟지 않고 취소처분을 한 것은 너무나 과중한 처사로서 재량권을 남용한 위법이 있다. ‘여적’란의 기사가 선거제도를 부정하고 폭동을 선동한 것으로 보기도 어렵다.(<법원사>, 법원행정처, 1995)


원의 판단을 요약한 이런 법적인 설명이 복잡하다고 느낀 독자도 있겠지만, 요컨대 경향은 강제 폐간 57일 만에 응급처치로 소생하여 윤전기를 다시 돌릴 수 있는 감격을 맞게 되었다.

 


▲일러스트 | 박건웅


‘발행인 바꾸지 않으면 폐간’이라는 협박


지금까지는 정부와 경향 사이의 겉으로 드러난 법적 공방만 조명해왔는데, 실인즉 정권의 탄압 국면에도 물밑이 있고 막후가 있게 마련이다. 이 사건의 경우에도 폐간처분이 있기 전부터 정부 여당 측과 경향의 재단(가톨릭) 측 사이에 이면 접촉이 있었다. 즉 같은 해 2월28일 가톨릭의 김철규 신부가 노기남 대주교를 대리하여 전성천 공보실장을 만나 막후조정을 시도했던 것이다. 그 자리에서 김 신부는 편집국장과 정치부장을 바꾸고 당적을 가진 논설위원을 그만두게 하는 안을 내놓았다. 그러나 전 실장은 발행인을 바꾸고 정부에 대하여 사과각서를 내라는 등의 요구를 하면서 불응하면 반드시 폐간조치를 하겠다고 위협했다. 다음날인 3월1일 그 두 사람 외에 노기남 대주교까지 나선 자리에서 노 대주교가 발행인을 바꾸겠다고 했다. 그러자 전 실장은 정부 측에서 보증하는 사람이 새 발행인이 되어야 한다느니, 노 대주교는 재단 측에서 추천하는 사람을 승인해 달라거니 하는 선에서 타협이 되어가는 듯했다.


그런데 김 신부가 위와 같은 협상 경위를 법정에서 증언한 뒤인 그해 6월26일 서울고법의 재판부는 앞서 본 대로 발행허가취소처분의 효력정지 가처분결정을 했던 것이다. 신문사의 임원과 사원들이 환성을 올리는 가운데 경향은 강제 폐간 57일 만에 다시 신문을 발행할 수 있게 되었다. 정부 여당은 낭패하여 침묵한 반면 많은 시민, 언론계와 야당은 환호했다.

정부, 폐간 대신 정간처분으로 기습


나중에 알려진 일이지만 재판장인 홍일원 부장판사는 엄청난 홍역을 치렀다. 오 아무개 고등법원장으로부터 경향 측의 가처분 신청 기각을 여러 번 종용당했는가 하면, 이기붕 국회의장이 홍진기 법무장관을 통하여 압력을 가해오기도 했다. 홍 부장판사는 오 고법원장에게 차라리 좌천 발령을 내달라고까지 했다. 그러면서 자신이 희생되더라도 소신껏 판단하여 사법권의 독립을 지키기로 굳게 다짐했다.(홍일원, <창가에 서서>)


그러나 법원의 효력(집행)정지 결정으로 소생한 경향 가족들의 기쁨은 한나절도 가지 못했다. 정부는 법원의 결정에 잠시 당황했으나 곧 긴급 국무회의를 열고 오랜 시간 논의한 끝에 경향신문의 발행허가 취소처분을 철회하는 대신 새로 발행허가 정지처분을 하기로 결정했다. 정부의 기습적인 발행정지처분이 발표된 시점은 앞서 고법에서 가처분이 떨어진 지 불과 7시간 만이었다. 경향의 사원들뿐 아니라 정계를 비롯한 각계에서 분노와 비난에 찬 민심이 들끓었다. 민주당의 조병옥 대표최고위원도 ‘정부의 독재 근성을 여실히 드러낸 것’이라고 격렬하게 공박했다. ‘참으로 야비한 수법, 단말마적인 행위’라는 비난이 야당가에서 나왔다.


다시 행정소송으로 맞선 ‘경향’


경향신문사는 이번에도 체념의 굴복 대신 힘겨운 법적 투쟁을 서슴지 않았다. 아니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전에 했듯이 서울고법에 발행정지처분의 취소를 구하는 본안소송과 아울러 정부 측 처분의 효력(집행)정지를 구하는 가처분 신청을 제기했다.

이번 사건은 서울고법 특별2부(재판장 김치걸 부장판사)에 배당되었다. 관례대로 본안사건과 신청사건을 같은 재판부에서 맡게 되었다. 양측의 신청에 따른 증인신문이 끝날 무렵, 경향은 정부가 처분의 근거로 계속 내세우는 군정법령 제88호의 위헌심사를 헌법위원회에 제청해달라는 신청도 냈다. 경향은 아울러 본안소송에서도 군정법령 제88호가 헌법 제100조에 의하여 효력을 상실하였다는 주장을 했다.

경향신문에 대한 폐간, 정간조치에 정부가 계속 군정법령 제88호를 휘두르자 언론계에서도 그 무효를 주장하고 폐기운동에 나서게 되었다. 국회에서도 전성천 공보실장에 대한 파면권고결의안이 상정되었는데 야당의 이철승 의원은 그 제안설명에서 전 공보실장을 법질서를 파괴한 무뢰한이라고 규탄한 다음, “언론을 탄압하는 자는 결국 망하고 만다는 것이 역사적 진실이다”라고 힘주어 말했다. 그 결의안은 비록 부결되기는 했으나 찬반이 비등했으며(찬성 90, 반대 114) 여당인 자유당 의원의 일부도 찬성한 것으로 알려졌다.


‘법률’ 아니라면서 ‘위헌’도 아니라는 모순

그런데 법원은 이 위헌제청신청을 일언지하에 각하했다. 재판부는 ‘헌법위원회에 위헌 여부의 심사를 제청할 수 있는 것은 헌법상 오직 법률에 한정되어 있으며, 여기서 법률이라 함은 대한민국 국회의 의결을 거쳐서 제정 공포한 법률을 말하는 것’이라며, 그런 의미에서 군정법령 제88호는 입법사항을 규정해놓은 것이기는 하지만 대한민국의 법률이 아니기 때문에 위헌제청신청 대상이 아니어서 신청을 각하한다는 것이었다.


언론계나 법조계에서는 이 결정을 환영했다. 국회의 의결을 거치지도 않은 이름만의 법령이라면 당연히 법률로 볼 수 없다고 하였으니, 그처럼 무효인 법령을 근거로 삼은 행정처분 역시 무효임이 자명하고, 따라서 정부의 이번 정간처분도 당연히 취소될 것이라는 전망이 밝아졌다. 법조계의 한 원로 변호사는 “법원이 내린 결론은 당연한 것이다. 법률이 아닌 것을 가지고 법률로서만 제재할 수 있는 언론의 자유를 박탈한 것은 법을 모르는 자들의 경솔한 짓이다”라고까지 했다.


그러나 그런 칭송이나 기대와는 정반대의 결과가 법원에서 나왔다. 8월29일 재판부는 정간처분의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을 각하한다는 결정을 내렸다. 결정문에 나타난 이유는 이러하다. “정부가 경향신문의 발행허가취소처분을 철회하고 다시 정간처분이란 이중의 행정처분을 내린 행정행위가 법령에 위반되지 않고, 군정법령 제88호가 헌법위반이 아니며, 무기정간의 행정처분 자체가 행정재량의 범위를 일탈한 위법이 아니고, 법률위반이 있을 때 법원의 유죄판결을 기다리지 않고 행정처분을 내린 것을 위법이라고 볼 수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언론계와 재야 법조계에서는 의아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1분 안에 끝난 ‘기각’ 판결, 정부 편든 법원


그런 불길한 징후가 있은 뒤 9월8일에는 발행정지처분의 취소를 구하는 본안소송의 판결 선고가 있었다. 법정에는 의외로 사람이 별로 보이지 않았다. 심지어 원고와 피고 측의 소송대리인(변호사)들조차도 나오지 않았다. 이미 위헌제청신청과 가처분 신청이 줄줄이 각하되는 것을 보고, 법원이 정부에 휘둘리지 않고 독립된 입장에서 소신껏 판결해주리라는 기대를 접었기 때문이다. 썰렁한 법정에 들어온 재판부는 자리에 앉자마자 재판장인 김치걸 부장판사가 판결 주문을 낭독했다. ‘원고의 청구를 기각한다’는 단 한마디뿐이었다. 판결 이유도 말하지 않았다. 판결 이유는 소송당사자에게 문서로 송달하겠다고 했다. 한 신문사의 문을 닫고 언론의 숨통을 끊는 엄청난 판결의 선고 공판은 이렇게 단 1분도 걸리지 않아서 끝이 났다.

물론 군정법령 제88호의 무효 주장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 이유인즉 우리나라 헌법은 언론·출판의 자유를 절대적 자유로 규정하지 않고 법률로써 제한할 수 있는 자유로 규정하였으므로 신문 발행의 허가제를 법률로 정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헌법상 언론의 자유가 보장되는 나라에서 신문 발행의 허가제가 용납될 수 있다는 그런 법 해석이 어떻게 판결로까지 포장되어 나올 수 있단 말인가?

<2014-12-21> 경향신문

☞기사원문: [의혹과 진실 – 한승헌의 재판으로 본 현대사](11) 경향신문 폐간 탄압 사건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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