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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으로 본 현대사](13) 소설 ‘분지’ 필화사건 (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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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문학에 대한 용공 탄압 제1호… 시국사건 변호의 문을 열다


■ 문학작품 용공 탄압 제1호


1965년 7월10일자 도하 각 일간지에는 ‘중앙정보부가 지난 7일 작가 남정현씨(32)를 반공법 위반 혐의로 구속했다’는 뉴스가 실려 있었다. 1933년 충남 서산에서 태어난 남씨는 1959년(28세)에 작가 안수길 선생의 추천으로 ‘자유문학’을 통해 문단에 나온 소설가로, 1961년 <너는 뭐냐>로 동인문학상을 받는 등 참여문학 내지 저항문학의 기수로 주목을 받고 있었다. 중앙정보부(이하 중정 또는 정보부)에 의하면 남씨는 ‘현대문학’(1965년 3월호)에 실린 단편소설 <분지(糞地)>에서 반미감정과 계급의식을 고취하여 북괴 선전에 동조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는데, 그 소설 전문이 북괴 노동당 기관지 ‘조국통일’(5월8일자)에 전재되었다는 것이다.


8·15 해방 후의 필화는 대개 신문 잡지의 논설, 기사, 칼럼, 시론, 오식 등 언론활동을 문제 삼는 것이 상례였다. 그나마 대개는 음란이나 명예훼손 등으로 한때의 논쟁이나 조사에 그쳤고, 형사문제로 재판까지 받게 된 사례는 경향신문의 칼럼 ‘여적’사건(1958년)이 유일했다.


그런데 5·16 군사쿠데타로 정치군인들이 정권을 찬탈한 뒤로는 사태가 달라졌다. 탄압의 마수는 마침내 문학의 울타리까지 짓밟고 넘어와 ‘용공’의 폭압도 서슴지 않았으니, 작가 남정현의 <분지> 필화는 문학에 대한 용공 탄압 제1호로 기록되는 불상사였다. 이 사건에 뒤이어 김지하의 <오적>(1970년), 양성우의 <겨울공화국>(1977년), 박양호의 <미친 새>, 현기영의 <순이 삼촌>(1979), 한수산의 <욕망의 거리>(1981년) 등의 작품이 정부 기관의 눈에 거슬려 그 작가들이 박해의 대상이 되었던 것이다.


작가가 문학작품의 내용 때문에 반공법 위반으로 구속된 것은 어느 모로 보나 예사로운 일이 아니었다. 그것은 작가 개인의 액운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실로 문학과 예술의 자유를 끌어안는 표현의 자유 내지 국민의 기본권의 위기가 아닐 수 없었다. 남씨의 구속 직후 한국문인협회(이사장 박종화)가 ‘문학의 허구성을 고려해서 각별한 선처를 바란다’는 온건한 진정서를 검찰에 제출한 것과는 달리, 문단 안팎에서는 문학의 위기를 수호하기 위한 각성과 저항이 분출되기 시작했다.


▲일러스트 | 박건웅

■ 대일 굴욕외교 및 월남파병 반대의 저항 속에서


작가 남정현이 영장에 의해 정식으로 구속된 날짜는 7월7일로 알려져 있지만, 실은 그보다 두 달 전인 5월 초에 서울 을지로 3가에 있는 ‘충일기업사’라는 정보부 분실에 연행된 바 있었다. 남씨는 “대명천지라는 서울 한복판에 그렇게도 무지막지하게 사람 취급을 하지 않는 야만적인 공간이 있었는가 생각하니 그저 막막할 뿐이었다”고 당시 자신이 겪은 ‘야만’을 털어놓은 적이 있다.


그때 수사관들은, <분지>는 네가 쓴 것이 아니라 북에서 누가 써가지고 와서 너에게 건네준 것이 틀림없다. 언제 어디서 누구에게 받았다는 이야기만 정직하게 털어놓으면 이곳에서 살아나갈 수가 있으니 어서 대답하라고 다그쳤다. 그러더니 나중에는 너의 작품은 그렇게도 하나같이 북의 대남전략에 편승하여 철저하게 반미·반정부를 선동했느냐고 호통을 쳤다. 소설이란 아기자기한 사랑이야기가 주가 되어야 하는데, 소설마저 일일이 세상일을 꼬집고 나서게 되니 세상이 조용할 리가 있느냐고 큰소리치기도 했다. (남정현 ‘민족자주의 문학적 열망’-<분단시대의 피고인>)


수사관들의 입에서 문득 나온 ‘세상이 조용할 리가 있느냐?’라는 바로 이 말 속에 ‘분지’사건의 시대적 배경이 담겨 있었다.


5·16쿠데타로 헌정을 파괴한 박정희 군사정권은 한일회담을 둘러싼 대일 굴욕외교를 반대하는 국민적 저항을 무자비한 국가폭력으로 강압했다. 1964년 3월, 재야세력이 망라된 대일굴욕외교반대 범국민투쟁위원회가 결성되고 학생 데모가 전국화되자 정부는 시민·학생들에 대한 대량 구속을 서슴지 않았고, 이 과정에서 무장군인이 밤중에 법원에 침입하여 시위 학생들에 대한 구속영장 발부를 강요하는 사건까지 일어났다. 사태가 심각해지자 박 정권은 6월3일, 서울 일원에 비상계엄령을 선포하는가 하면, 8월에는 언론 통제를 위한 언론위원회법을 날치기 통과시킨다. 그리고 얼마 뒤 조선일보의 선우휘 편집국장과 이영희 기자가 구속되었다. 그뿐인가, 해가 바뀌어 1965년이 되자 곧 월남파병을 결정해서 야당과 다수 국민의 맹렬한 반대에 봉착한다. 이처럼 ‘세상이 조용할 리가 없으니’ 그 원인과 책임을 당시 저항세력에 참여한 학자·문인 등 지식인들에게 돌리고, 그 표적을 하나쯤 잡아낼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이 나라에서 가장 평판 높은 문학지에 발표한 소설을 넉 달이 지난 뒤에 문제 삼은 것도 그런 의혹을 사기에 족했다.



<분지> 필화사건의 법정을 나오면서(1967년 5월). 왼쪽에서 한 사람 건너부터 남정현, 안수길, 한승헌.


■ 미군 만행 묘사가 ‘반미, 용공, 이적’?


남정현의 이 필화사건은 그해 7월14일에 서울지검에 구속 송치되어 공안부 김태현 검사가 담당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달 23일, 남씨는 법원의 구속적부심사를 거쳐 석방된다. 그런데 김 검사는 이런저런 핑계로 시일을 끌어가며 남씨를 1년 동안이나 괴롭히다가 1966년 7월11일, 반공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기소한다. 끝내 법원의 심판을 받게 된 <분지>라는 작품은 정말로 반공법에 걸릴 만한 소설이었던가? 잠시 그 줄거리를 더듬어 보기로 한다.


이 작품의 주인공 홍만수는 활빈당의 수령으로 부패한 조정의 무리들을 혼비백산케 하고 비천한 대중들을 구제한 홍길동의 10대손이었다. 그는 어머니와 여동생 분이와 함께 8·15해방을 맞는다. 그러나 독립투사인 아버지는 돌아오지 않았고, 어머니는 미군에게 강간을 당하여 충격을 받은 끝에 미쳐서 죽는다. 외가에 가서 자라던 만수는 6·25를 맞아 군복무를 마치고 제대했으나 여전히 생활은 암담하였다. 거리를 방황하던 중에 누이동생 분이가 미군 상사 스피드와 동거생활을 하고 있음을 알고 만수는 통곡을 했지만, 오히려 스피드 상사에게 의탁하여 미군 물품 장사를 하면서 살아간다.


그런데 스피드 상사는 밤마다 분이를 미국에 있는 본처와 비교하면서 폭언과 학대를 일삼는 것이었다. 그 후 스피드 상사의 아내가 한국에 왔을 때 만수는 비취라는 애칭을 가진 그녀를 향미산으로 유인한다. 만수는 비취 부인에게, 얼마나 당신의 몸이 아름답기에 내 누이가 당신의 남편한테 그토록 학대를 받느냐면서 몸을 보여달라고 하다가 거절당하자 강제로 그녀를 누이고 국부와 가슴을 더듬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펜타곤 당국은 정예사단과 미사일을 동원하여 만수가 숨어 있는 향미산을 포위한다. 그리고 만수를 폭살하겠다는 경고에 주변의 주민들은 공포에 떤다. 만수는 자기 출신구 국회의원을 찾아가서 구원을 요청했으나 거절당하고 만다. 그는 눈앞이 캄캄했다. 드디어 만수는 어머니의 영혼을 향하여 자신의 처지를 호소하면서 이 세상이 잘못되어 감을 개탄한다. 그리고 저승에 계신 어느 유공자에게 부탁하여 미래를 창조하는 역사의 대열에 자기를 참여하게 해달라고 애원한다. 그런 가운데서도 홍길동의 정신과 비방을 전수받은 만수는 조금도 겁내지 않는다. 이제 10초밖에 남지 않았다. 만수는 한 폭의 깃발을 만들어 잠시 자기가 차지했던 그 미국 여자의 배꼽 위에 그 깃발을 꽂아 그들의 심령을 뿌리째 흔들어 놓겠다고 어머니에게 다짐한다. 이 소설은 주인공 만수가 저세상에 있는 자기 어머니에게 아뢰고 호소하는 독백 문체로 시종한다. 그러므로 밋밋하게 스토리만 추려놓은 앞의 요약문과는 달리 매우 강한 호소력과 긴장감을 품어내는 작품이다.

■ 공소장, ‘대남 적화전략의 상투적 활동에 동조’

미군의 만행을 좀 신랄하게 묘사했다고 해서 어떻게 ‘북괴 동조’가 될 수 있는가? 이 물음에 대하여 ‘그렇게 보아야 옳다’고 주장한 검사의 소견을 ‘공소사실’에서 인용해 본다.


“…대한민국이 마치 미국의 식민통치에 예속되어 주한미군들은 온갖 야만적인 학살과 난행 등을 자행하고, 우리 국민의 생명 재산을 무한히 위협하며, 몇몇 고관 예속자본가들과 결탁하여 국민 대중을 착취하여 비천한 피해대중은 참담한 기아선상에서 연명만을 하고 있으면서도, 이런 극심한 것을 말할 자유도 없는 이 나라에서는 이런 민중을 버리고 오직 자본가, 정치자금 제공자들의 이익을 위하여 입법 행정을 하고 있으며, 국민 대중들은 물론 국회의원마저 미국에 아부 예속되고, 약탈의 수단인 원조로서 경제의 명맥을 틀어쥐고 미국의 예속 식민지, 군사기지로써 약탈과 착취, 부정과 불의에 항거하는 자들은 미국의 가공할 강압과 보복을 받으면서도 굴복과 사멸함이 없이 최후의 승리를 쟁취한다는 양 남한의 현실을 왜곡 허위 선전하며, 빈민대중에게 계급 및 반정부의식을 부식 조장하고, 북괴의 6·25 남침을 은폐하고 군복무를 모독하여 방공(防共)의식을 해이하는 동시에 반미감정을 조성 격화시켜 반미사상을 고취하여 한·미 유대를 이간함을 표현하는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하여…북괴의 대남 적화전략의 상투적 활동에 동조한 것이다.”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반공법사건 공소장의 틀, 그대로였다.

적용 법조는 반공법 제4조 제1항이었다. 시국사건에 단골처럼 등장하는 그 조문은 널리 알려진 대로 ‘반국가단체나 그 구성원 또는 국외의 공산계열의 활동을 찬양 고무 또는 동조하거나 기타의 방법으로 반국가단체를 이롭게 하는 행위를 한 자는 7년 이하의 징역 및 자격정지에 처한다’고 되어 있다.


나는 소설가 안동림의 권유로 이 사건을 맡게 되었다. 그는 나하고 학연이나 지연이 없으면서도 ‘야, 자’ 하는 문단의 친구였다. 창작과 번역에서 열정이 대단해 자신이 번역한 노먼 메일러의 <나자와 사자>와 <장자>를 나에게 갖다 주기도 했다. 대학에서 영문학 교수로 퇴임한 그가 지난해 7월1일 타계했을 때, 그가 나에게 시국사건 변호의 첫 문을 열어준 50년 전의 그 인연이 떠올랐다.


<2015-01-04> 경향신문

☞기사원문: [의혹과 진실 – 한승헌의 재판으로 본 현대사](13) 소설 ‘분지’ 필화사건 (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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