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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청 옆 법원’… 재판·수사 같은 위상으로 만들려는 ‘일제의 악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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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상적인 검찰권력의 상징 중 하나가 법원과 검찰청을 나란히 한 울타리에 들어서게 한 건물배치다(사진). 일반시민들에게 낯익은 풍경이지만 그 속에는 재판과 수사를 비슷한 작용으로 오해하게 만들기 위한 권력의 의도가 숨겨 있다. 일제강점기에 비롯된 악습으로 이제는 일본에서조차 사라져가고 있다.


일본 오사카 지방검찰청은 오사카 지방재판소와 다른 곳에 있다. 검찰은 후쿠시마(福島)구에 법원은 기타(北)구에 있다. 양쪽은 걸어서 20분 정도 걸리고 택시를 타도 10분이다. 일본 변호사법인 오르비스의 이정규 변호사는 “재판소 옆에는 시민들이 자주 찾는 변호사 회관이 자리하고 있고 도보로 30초 거리”라며 “일본의 또 다른 대형청사인 교토지방검찰청과 교토지방재판소도 다른 구에 있다”고 설명했다.



반면 우리나라 64개 모든 검찰청은 법원 바로 옆에 있다. 대부분 건물의 모양과 높이마저 똑같아 왼쪽이 검찰인지 오른쪽이 검찰인지 인근에 사는 주민도 헷갈린다. 많은 시민들은 검찰과 법원이 같이 있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지만 이 역시 일제강점기 시작된 것이다.


조선총독부는 재판소에 검찰청을 ‘병치’(倂置·나란히 설치)하도록 했다. 당시 일본은 1890년 시행된 메이지헌법에서 삼권분립을 표방했지만 실제로는 행정기관인 사법성 아래 재판소와 검찰국을 두었다. 이 때문에 재판소와 검찰국이 같은 건물에 있게 됐다.


일본은 패전 이후 검찰청과 재판소가 한동안 비슷한 위치에 있었지만 기회가 있을 때마다 떨어지기 시작했다. 같은 장소에 있는 검찰청과 재판소라고 해도 방향이나 건물 모양은 완전히 다르다. 도쿄에서 7년간 활동한 김앤장 법률사무소 박인동 변호사는 “가령 도쿄지방검찰청과 도쿄지방재판소가 같은 부지에 있지만 방향이 틀어져 있고 크기와 모양도 완전히 다르다”고 말했다. 일본 최고재판소 재판관 출신인 TMI종합법률사무소 이즈지 도쿠지 변호사는 저서에서 1961년 사법연수 시절을 회고하며 “오른쪽 반이 오사카재판소, 왼쪽 반이 오사카검사국이었지만 현재 이런 청사는 없다”며 “나고야와 삿포로에 (비슷한 배치의 건물이) 시정자료관으로 보존돼 있을 뿐”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법원과 검찰청이 외관상 조금이라도 차이가 나면 큰일 날 것처럼 식민잔재를 답습하고 있다. 검찰 출신의 한 변호사는 “지방 근무 시절 청사를 이전하게 됐는데 땅이 좁아서 청사를 약간 틀어서 세웠다”며 “당시 지청장이 ‘내 잘못이 아니라는 것을 반드시 기록하라’고 지시했다”고 말했다. 최근에는 2019년 개원 예정인 수원고법 청사를 영통동에 독립건물로 세우기로 했다가 계획이 백지화됐다. 청사부지는 법원청사 하나 들어갈 크기였지만 검찰에서 ‘법원과 연이어 검찰청사를 지어야 한다’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법원행정처 간부 출신의 한 원로변호사는 “법원을 이전할 때마다 검찰이 바로 옆에 똑같은 높이로 청사를 짓고 있다”며 “검찰은 업무 편리를 내세우고 있지만 시민들은 검찰과 법원의 역할을 혼동할 위험성이 커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2015-01-09> 경향신문

☞기사원문: [광복 70주년 기획 – 우리는 과연 해방됐는가]‘검찰청 옆 법원’… 재판·수사 같은 위상으로 만들려는 ‘일제의 악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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