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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향기] 남산 통감관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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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910년 8월22일 서울 남산 조선통감관저에서 ‘한일병합조약’이 조인됐다. 조선통감 데라우치 마사다케와 대한제국 총리대신 이완용이 서명했다. 데라우치는 일기에 이렇게 적었다. “오후4시 한국병합조약을 통감저에서 조인하고 종결했다. 이완용·조중응과 부통감이 열석했다. 29일 발표한다는 대의를 통지했다.

합병 문제는 이렇게 쉽게 끝냈다. 껄껄(呵呵).” 이완용의 일대기인 ‘일당기사(1927)’의 기록이다. “8월22일 황제폐하의 소명을 받들기 위해 흥복헌에서 예알하고 칙어를 받드사 전권 위임장을 받아 곧장 통감부(‘통감관저’가 맞다)로 가서 데라우치 통감과 회견하여 일한합병조약에 상호조인하고 동 위임장을 궁내부에 환납하다.” 이완용의 사무적 태도가 오히려 기이하다.

나라가 망하는데 어떤 절박함도 느껴지지 않는다. 사진은 경술국치의 현장인 통감관저 위치를 알려주는 표석이다.

지금의 서울유스호스텔 아래에 있다. 표석 뒷면에는 ‘민족문제연구소가 2010년 8월29일 세웠다’고 적혀 있다. 행정관청인 서울시는 당초 ‘치욕’의 현장이라고 표석 세우는 것 자체를 반대했다고 한다.

<2015-01-28> 서울경제

☞기사원문: [역사의 향기] <89> 남산 통감관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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