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물관이 살아 있다> 시리즈에 나오는 캐릭터 중 하나인 콧수염 난 ‘테디’를 기억하지? 그 ‘테디’는 미국의 26대 대통령 시어도어 루스벨트이고, 테디는 그의 애칭이야. 영화 속의 천진한 모습과는 별개로 그는 한국과 상당한 악연을 가진 사람이지. 필리핀은 미국이, 한국은 일본이 먹는다는 내용을 골자로 한 ‘가쓰라·태프트 밀약'(1905)을 승인한 사람이 바로 그였거든.
루스벨트는 대한제국을 두고 이런 말을 하기도 해. ‘우정이란 자신을 지킬 힘을 지닌 상대끼리 가능한 것이다. 한국은 자신을 지키기 위해 주먹 한번 휘두르지 못했다.’ 그는 전쟁에 참전해 큰 공을 세웠고 무력이라는 현실적 힘을 숭상하는 사람이었어. ‘말은 부드럽게 하되 큼직한 몽둥이를 항상 갖고 다녀라.’ 그가 입버릇처럼 하던 말이지. 그런 그에게 ‘우리 독립을 지켜주세요’라며 울먹이기는 잘하지만 도무지 자신을 위해 ‘주먹 한번 휘두를’ 줄 모르는 한국은 경멸스러울 수밖에 없었을 거야.
대한제국은 왜 그렇게 무기력했을까. 루스벨트의 핀잔처럼 왜 ‘주먹 한번’ 제대로 휘둘러보지 못했을까. 분명한 건 대한제국 황제와 그 많았던 대소 신하들이 부국강병(富國强兵)을 포기해서였던 건 아니라는 사실이야. 특히 ‘강병(强兵)’을 갖고 싶었던 마음은 오히려 누구 못지않았을 거야. 1902년 무렵의 통계를 보면 대한제국은 예산의 근 40%를 국방비로 쓰고 있단 말이지. 오늘날 국방비 많이 쓰기로 유명한 북한도 15% 정도이니 대한제국의 ‘강병’에 대한 집착(?)을 짐작할 수 있지 않겠니? 아무리 가난한 나라였다고 해도 이 정도면 웬만한 ‘몽둥이’를 갖출 수준은 충분히 되었을 거야.
하지만 문제는 거기에 들인 비용의 크고 작음이 아니라 그 비용을 결정한 사람들의 지혜와 안목과 이해관계였어. 기본 무기라 할 총만 해도 그래. 정부는 체계적인 준비나 신중한 논의를 생략하고 그때그때 자신들이 줄을 선 나라의 제품을 받아들였어. 청나라의 영향력이 강할 때는 청나라로부터 영국제 소총을 샀고, 일본의 입김이 세지면 일본으로부터, 러시아가 고종을 자기네 공사관에 두고 설치던 시절에는 러시아 무기가 대량으로 들어왔지. 1898년에는 독일제 무기를 대량으로 사들이는가 하면 급기야 프랑스까지 끼어들어 무기를 팔아먹으려 드는데 중간에 일본이 친일 관료들을 구워삶아 주문을 자기 쪽으로 돌리면서 계약이 파기되는 바람에 한국 정부가 프랑스 측에 배상을 하는 일까지 벌어졌어. 이렇듯 대한제국은 국제 무기 상인들의 완벽한 ‘봉’이었고 대한제국 군대는 같은 부대원들끼리도 각각 다른 나라의 무기를 든 무기 백화점의 종업원들 같았단다.
이 속빈 강정의 절정은 대한제국 최초의 군함이라 할 양무호(揚武號·아래 사진)일 거야. 1903년은 고종 황제의 즉위 40주년이 되는 해였어. 이를 맞아 세계 각국 군함들이 인천항에서 축포를 쏜다는데 우리도 축포를 쏠 배 하나쯤은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하는 논의가 있었고 우여곡절 끝에 1903년 4월15일 일본의 미쓰이 사가 납품한 ‘군함’이 인천항에 모습을 드러낸다. 고종 황제는 이 배에 ‘양무(揚武)’라는 이름을 붙였어. 양무호. ‘무(武)를 떨쳐라(揚)’는 뜻이니 황제 폐하의 속내가 생생하게 들리지 않니? 그러나 그 배는 떨친 게 아무것도 없는 양무(揚無)호가 되고 말았어.
원래 그 배는 군함이 아니었단다. 팔라스 호라는 이름의 영국 상선이었던 것을 일본이 인수해 석탄 운반선으로 사용하던 배였지. 일본은 이 배를 25만원 주고 샀어. 그런데 이 배가 성능은 생쥐인데 석탄은 하마처럼 먹는 고물 배라는 걸 곧 깨닫게 돼. 이 처치 곤란한 물건을 어찌하나 고심하던 중에 찾아온 국제적 호구가 대한제국이었던 거야. 일본은 이 석탄 운반선에 대포 몇 대 두들겨 맞춘 후 55만원을 불렀어. 당시 대한제국 국방 예산의 30%를 이 고물 배에 들이붓게 돼. 하지만 그건 뱃값일 뿐, 그 배를 움직일 석탄도, 수병들도 없었어. 그 상황에서 무작정 배를 수입한 거야. ‘부국강병’의 표상으로 말이지.
↑ ⓒ연합뉴스 : 2010년 6월 이상득 의원(오른쪽)이 가르시아 페루 대통령과 에너지 협력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누구를 위한 부국강병이었을까
명분은 한없이 좋지만 명분의 깃발 아래에서 자신의 잇속을 차리려는 사람들 때문에 낭패를 본 예가 우리 역사에 허다한 건 슬픈 일이야. 일제강점기에 ‘민족개조’ 하자던 사람들이 친일파로 넘어갔다거나, ‘자주국방’ 하자던 사람들이 무기 구입 대가로 뇌물을 받아먹었다거나…. 그런데 최근 아빠는 신문을 보면서 ‘자원외교’라는 네 글자에 무척이나 마음이 상하고 있어. 천연자원이 애처로울 만큼 없는 나라에서, 해외의 자원을 개척해 번영하는 자원 강국이 되자는 ‘자원외교’를 마다할 이유는 없겠지. 구한말의 부국강병이라는 구호처럼 말이다. 하지만 여기에도 구한말의 양무호 같은 어처구니 실종 사태가 빚어지고 있단 말이지.
지난 이명박 대통령 시절, 석유공사가 페루 정부에서조차 별로 경제성이 없다고 만류하는 유전 사업에 막무가내로 뛰어든 일이 있었어. 3억 달러 정도면 충분한 사업에 12억 달러(약 1조2000억원)를 퍼부었지만 결국은 하릴없이 ‘회사 매각’을 선언하고 물러서게 됐다고 해. 수익성도 없고 전망도 없고 현지인들은 ‘사기’라고 단정했다지. 대체 왜 이런 일을 막지 못했느냐는 질문에 당시 페루 주재 한국 대사는 이렇게 항변했다는군. ‘대통령이 하겠다고 하는데, 일개 대사가 (거래를) 하지 말자는 의견을 낼 수 없었다.’ 대통령의 위업을 위해, 자원외교의 역사적 새 시대 개막 선언을 위해 9억 달러라는 천문학적 비용이 태평양 바닷물에 흩뿌려진 거야. 고종 황제 즉위 40주년을 기념한 고물 배 양무호에 국방 예산 30% 정도를 날린 조상들보다 낫다고 과연 말할 수 있을까?
외교통상부가 ‘모 기업이 매장량이 최소 4억2000만 캐럿에 달하는 카메룬의 다이아몬드 개발권을 획득했다’는 내용을 언론에 홍보하고, 덕분에 그 기업의 주식이 폭등해 대표와 임원들이 수백억의 이익을 보고, 담당 공무원의 가족들까지 함께 돈잔치를 벌인 일도 있었지. 대한제국 군인들에게 전 세계 각양각색의 무기들이 지급될 때, 서로 열렬히 경쟁하며 무기를 내다팔던 무기 상인들이 대한제국 관료와 황제 폐하에게 엄청난 뒷돈을 갖다 바쳤던 것처럼 말이야.
아까도 얘기했지만 고종 황제와 그 신하들이 부국강병을 원치 않았다고 생각하지는 않아. 하지만 그들에게 부국강병이란 나라와 백성들을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자신들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수단이었어. 고종 황제는 당시의 최신 무기라 할 개틀링 기관포를 외국 군대가 아닌 자기 나라 백성들(동학 농민군)에게 퍼부었으며 자신의 즉위 40년을 즈음해서 터무니없는 투자로 군함을 장만하지 않았겠니.
오늘날도 마찬가지야. 자원외교의 소중함을 모르는 바도 아니고 그 의미를 과소평가할 생각도 없다. 하지만 자원외교의 거창한 깃발이 누군가의 호주머니 채우는 작업을 가리는 커튼으로 사용돼왔다면 이만큼 분통 터지는 일이 또 어디 있을까. 그런 꼬락서니를 과거 대한제국 백성들처럼 눈만 멀뚱멀뚱 뜨고 지켜봐야 하는 처지라면 더더욱 그렇지 않겠니. 아마 <박물관이 살아 있다>의 테디, 시어도어 루스벨트가 이 상황을 보면 또 핀잔을 던질지도 모르겠다. ‘우정이란 기본적인 지혜를 지닌 상대끼리 가능한 것이다. 한국인은 역사에서 도무지 배우는 게 없다.’
김형민 (SBS CNBC 프로듀서) / webmaster@sisain.co.kr
<2015-02-11> 시사IN
☞기사원문: ‘국제적 호구’의 역사는 흐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