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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의 원로’ 증언록…“부끄러운 시대 기록해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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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BS 시사자키 정관용입니다: 집중 인터뷰 듣기 (2015.02.17)

▲잊히지 않는 것과 잊을 수 없는 것>을 쓴 이만열 숙명여대 명예교수는 “이 시대가 부끄러워, 잊지 않기 위해서 책을 썼다”고 했다. 옷깃에 단 리본 배지가 눈에 띈다. 이정용 선임기자 lee312@hani.co.kr

이만열 교수, 5년 만에 산문집 펴내

4대강 사업·세월호 참사 등 다룬

2010년 이후 50여편 포함 62편 묶어

2003년 퇴직뒤 거침없는 현실 발언

“젊은이들, 정의 실행부터 고민해야

제 이득 위해 신앙·직위 이용한 MB

속죄해야 할 이가 자서전 내다니”

이 책에는 1993년부터 2015년 1월까지 20여년 동안 쓴 글 가운데 62편을 묶었다. 이 중 50여편이 2010년 이후 이명박·박근혜 정부 시대에 쓴 글들로 4대강 사업, 미네르바 사건, 세월호 참사, 통합진보당 해산 판결 등을 다뤘다. 한국 사회와 교회에 “분노하라”, “고백하라”며 준엄하게 꾸짖는 글이 대부분이다.

지난 6일, 한겨레신문사를 방문한 그의 옷자락에는 세월호 참사를 기리는 노란 리본 배지가 여전히 붙어있었다. “주위에서 떼라고 야단이지만 아직 배지를 다는 건 ‘속죄하자’는 뜻이 있다. 이런 세태 속에서 글을 쓴다는 것이 여간 괴롭지 않다. 하지만 증언해야만 했다.”

세월호 유족의 단식농성장 옆에서 태연히 통닭을 뜯는 “일베류의 ‘패륜과 야만’” 행위에 더해 “십자가를 내세워 단식농성자들을 ‘종북’으로 몰아가는 듯한 행태”를 보며 그는 “십자가가 남을 저주하는 데에 사용되듯 이렇게 남용되어도 괜찮은 것인지 ‘종북’을 소리높여 외치는 그리스도인들에게 묻고 싶다”고 책에 썼다.

이 교수는 2003년 대학에서 정년 퇴임하고 국사편찬위원장을 역임했다. 이주노동자를 위한 희년선교회 대표, 북한이탈주민들이 모이는 교회에 출석하며 봉사했고 ‘거리의 원로’가 되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다. 역사교과서 국정화 문제, 2012년 대선 국정원 선거개입과 개표 부정 논란, 대형교회 목회자의 논문 표절 공방까지 목소리를 내왔다.

그의 증언은 성실한 기록에서 나온다. 1980년 유신과 군부세력에 맞서다 숙명여대에서 해직당하고, 미국에 있던 지난 1982년부터 30년 넘게 하루도 빠짐없이 일기를 써왔다. 여든에 가까운 나이지만 지금도 매일 컴퓨터로 일기를 쓰며 신문의 사설과 칼럼도 함께 저장해둔다. 개인사이자 그 자체가 한국 현대사다. 5000명 ‘페이스북 친구’들을 보유하고 있을 정도로 인터넷에 능하고, 젊은이들 앞에서 강연하는 일도 잦다.

“성경 말씀에 ‘너희는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는 구절이 있다. 오늘날 젊은이들에게 주는 굉장히 중요한 메시지다. 경제적 문제, 스펙 때문에 고민하는 한 길이 보이지 않는다. 정의가 어떻게 실행되어야 하는가를 생각할 때 투쟁이 나오고, 경제적 문제도 해결된다.”

이 책과 거의 동시에 서점에 깔린 이명박 전 대통령의 자서전에 대해 이 교수는 “아직 낼 때가 아니다”라며 신랄하게 비판했다. 이명박 정권에 대해 “정치적 수사가 아닌 종교적 언어로 표현하자면 ‘사악한 정권’”이라고 평가했다. 4대강 사업으로 누천대 이어온 국토를 파괴하고, 통일·남북 문제를 악화시켰으며, 방산비리와 자원외교에 국고를 탕진한 것 등을 예로 들었다.

“속죄해야 할 인물이 자서전을 내고 있으니 한탄할 뿐이다. 시민단체들로부터 ‘선거 부정’에 대한 강한 의혹을 받고 있지 않은가. 자기 정치적 목적이나 경제적 이득을 위해 신앙과 직위를 이용한 대표적 인물이 아닐까 한다.”

이 교수는 2008년 2월 취임한 이명박 정권이 느닷없이 그해를 ‘건국 60년’이라 선포하고 광복절을 ‘건국절’이라 하며 불러일으킨 논란도 거론했다. “1948년 제헌헌법 전문에서도, 1987년 개정된 현행헌법에도 우리는 3·1운동으로 건립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다는 점을 분명히 한다. 이승만도 인정한 바다. 건국절은 잘못하면 식민지근대화론과 연관된다. 일제근대화의 시혜로 건국을 했다는 말이 되는 것이다.” 올

해는 선교사 아펜젤러와 언더우드가 우리나라에 온 지 130주년이 되는 해다. 평생 한국기독교사를 연구해온 그는 한국 기독교계를 향해 “고난받는 자에 대한 연민 대신 기득권을 옹호하면서 게토화하고 있다”고 꾸짖었다. “그동안 한국 기독교가 이 땅에 과연 얼마나 선한 영향력을 미쳐왔는가. 시장의 원리가 휩쓸어버린 교회의 맨살은 삼손의 신세와 다를 바 없다.”

오는 25일 오후 7시, ‘난잎으로 칼을 얻다-우당 이회영과 6형제’ 전시회가 열리고 있는 서울 덕수궁 중명전에서 이 교수는 이회영 선생의 삶과 이 책의 내용을 설명하는 ‘역사 토크’ 행사에 나선다. 역사학자 한홍구, 작가 서해성이 함께 할 예정이다.

유진 기자 frog@hani.co.kr

<2015-02-10> 한겨레

☞기사원문: ‘거리의 원로’ 증언록…“부끄러운 시대 기록해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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