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取중眞담] 한국전쟁시기 민간인 학살… 유해 수습 거부하는 국가와 지자체
[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상근기자들이 취재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 에피소드 등을 자유로운 방식으로 돌아가면서 쓰는 코너입니다. [편집자말] |
▲ 발굴된 유해 옆에 유족이 가져놓은 국화가 놓여 있다. 유해 옆에는 함께 발굴된 탄피가 놓여 있다. | |
ⓒ 임재근 |
한국 현대사의 어둠 속이 궁금하신가요? 전쟁이 사람을 얼마나 망가뜨릴 수 있는지 보고 싶은가요?
대전 산내 골령골의 감춰진 이야기에 귀 기울여 보십시오. 최근 파헤친 7×5미터 작은 구덩이 안을 들여다 보십시오. 15~20명(추정)의 유해가 뒤엉켜 있었습니다. 2~3미터 깊이 구덩이에 켜켜이 장작더미처럼 쌓여 있었습니다.
거꾸로 쑤셔 박힌 듯한 유해, 큰 돌에 눌려 부서진 유해도 보입니다. 비명을 지르는 듯 턱뼈를 한껏 벌리고 있는 유해도 보입니다. 머리뼈에는 총알에 뚫린 구멍이 있습니다. 뚫린 머리뼈 위에 M1소총과 카빈 소총 탄피가 있습니다. 채 닳지 않은 치아가 우수수 흩어져 있습니다.
1950년 한국전쟁이 일어나자 남한 정부는 군인과 경찰을 동원해 보도연맹원과 대전형무소 수감 정치범 등 최대 7000명을 이곳으로 끌고 와 학살했습니다. 구덩이 앞에 줄지어 세워놓고 하얗게 질린 얼굴에 총알을 박았습니다. 확인 사살을 위해 뒷머리에도 총알을 박았습니다.
대전 시민과 전국의 여러 시민사회단체, 유가족들이 땅 속 진실을 밝히고자 십시일반 힘을 모아 유해발굴에 나선 결과, 이 같은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헛헛한 쓴웃음을 짓고 있습니다. 참혹한 광경 때문만은 아닙니다.
시간과 재정 문제로 눈에 보이는 유해마저 채 수습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구덩이 절단 면마다 유해가 박혀 있습니다. 유해가 묻힌 구덩이가 사방으로 뻗어 있다는 얘기입니다. 마치 네거리 한복판에 서 있는 느낌입니다.
“명백한 불법행위, 국가 책임이라더니…”
▲ 유골이 층층이에 걸쳐 발견되었다. 또한 절단면에서 계속 나오고 있어 더 많은 유해가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 |
ⓒ 임재근 |
자신의 부모 형제일지도 모를 유해를 수습조차 하지 못하고 되묻어야 하는 유가족들은 가슴을 칩니다. 쓰리다 못해 꽉 막힌다고 합니다. 서러운 눈물을 줄줄 쏟아냅니다.
박근혜 대통령에게 수습하지 못한 유해에 대해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골령골에 남아 있는 수천 여구의 유해, 전국 100여 곳에 구제역 걸린 소 돼지처럼 도살돼 묻혀 있는 민간인 희생자 유해를 언제까지 덮고만 있을지 궁금합니다.
잊어 버린 것 같아 되짚어 드리자면 정부기구인 ‘진실 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2005년 12월부터 2010년 12월까지 활동한 독립국가기관)는 수년 간의 조사를 통해 대전 골령골을 비롯 전국의 크고 작은 민간인 살해사건에 대해 “전시였지만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해야 하는 국가가 수감된 재소자들을 좌익 전력이 있거나 인민군에 동조할 것이 우려된다는 이유만으로 적법한 절차 없이 사살한 것은 명백한 불법행위”라고 밝혔습니다. 이어 “이에 대한 책임은 당시 이승만 대통령과 국가에 귀속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삭아 없어지는 유해… 시간이 없다
▲ 1일 오후 대전 산내유가족들이 유해를 수습하기 전 추모제를 지내고 이다. 앞쪽에 보이는 것이 희생자의 유해다. | |
ⓒ 모소영 |
하지만 말뿐입니다. 유해발굴은 고사하고 위령제 비용마저 유가족에게 떠넘기고 있습니다. 관할 자치단체인 대전시와 대전동구청은 유해 훼손을 막기 위한 응급처치 방안으로 현장에 유해매장지임을 알리는 안내판을 설치하는 일마저 땅값 하락을 이유로 거부하고 있습니다.
대전 동구청은 최근 일 주일 동안 유해발굴을 벌이고 있는 자원봉사자들의 임시화장실 설치 요청마저 예산이 없다며 거부했습니다.
시간이 없습니다. 이미 대부분의 유해가 삭아 없어졌습니다. 유해발굴조사단은 “매장지는 습도와 산성도가 높아 보존 상태가 매우 나쁘다”며 “머리뼈는 거의 부서져 조각으로 남아 있고 대부분 사지 뼈의 몸체만 남아 있다”며 “이마저도 습기를 먹고 있어 향후 몇 년 안에는 형체조차 찾아 볼 수 없을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지난 1일 유해발굴 공동조사단은 호소문을 발표했습니다. 추가발굴과 더 이상의 훼손을 막기 위해 우선 지자체에서 유해발굴지를 임대 또는 구입하여 개발이 더 이상 진행되지 않도록 해 달라고 말입니다. 발굴된 유해를 발굴 현장 주변에 적절하게 안치할 수 있는 시설을 마련하고 향후 중·장기적인 계획을 마련해 달라고 말입니다.
정부와 자치단체, 부끄럽기는 한가요?
▲ 총알 구멍이 뚫려 있는 머리뼈 | |
ⓒ 모소영 |
지난 일 주일 동안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를 대신해 유해를 발굴하며 눈물을 쏟아낸 시민들을 한 명 한 명 떠올려봅니다.
방학을 이용 기꺼이 삽을 든 고교생(남대전고, 충남기계공고), 휴가를 내 암매장지로 달려온 직장인, 멀리 강릉(강릉 원주대)에서, 대구(영남대), 청주(충북대), 서울(경희대, 고려대)에서 방학을 반납하고 달려온 대학생들, 아픈 몸을 이끌고 유해발굴 현장을 진두지휘한 박선주 유해발굴단장(충북대 명예교수)과 부인 박데비씨, 민족문제연구소, 민주화운동정신계승국민연대, 포럼 진실과 정의, 4.9통일평화재단 등 전국단위 여러 시민사회단체, 그리고 19개의 대전지역 시민시회단체 회원들.
이들을 보며 정부와 대전시, 대전 동구청은 부끄러워 하기는 할까요?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언제쯤 ‘이제 남아 있는 유해는 우리가 나서서 수습할 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말해 줄까요?
흔적도 없이 몽땅 삭아 없어질 때까지 기다리자는 게 아니라면 더 이상 유해가 훼손되기 전에 원혼들의 억울한 넋을 달래야 합니다. 때마다 인권과 화합, 평화를 말하는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야만과 광기의 아픈 역사를 땅 속에 꽁꽁 감춰 놓지는 않을 것이라 믿고 싶습니다.
대전 산내 골령골은? | ||||||
‘한국전쟁기 민간인학살 유해발굴 공동조사단'(한국전쟁유족회,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민족문제연구소, 민주화운동정신계승국민연대, 4·9통일평화재단, 포럼진실과정의, 장준하특별법제정시민행동)과 ‘한국전쟁기 대전 산내 민간인학살 유해 발굴 공동대책위원회'(대전지역 19개 시민사회단체)는 지난달 23일 3월 1일까지 산내 골령골(대전시 동구 낭월동 산 13-1번지)에서 7일간 일정으로 유해를 발굴했다. 이곳에서는 1950년 6월 28일부터 7월 17일까지 3차에 걸쳐 국민보도연맹원과 재소자를 대상으로 대량 학살(1차 : 6월 28~30일 1400명, 2차 : 7월 3~5일 1800명, 3차 : 7월 6~17일 1700~3700명)이 벌어졌다. 당시 희생자들은 충남지구 CIC, 제2사단 헌병대, 대전지역 경찰 등에 의해 법적 절차 없이 집단 살해됐다. 하지만 유해 대부분이 방치돼 훼손되고 있다. |
<2015-03-02> 오마이뉴스
☞기사원문: 땅 속에 묻힌 7천명… 돈 때문에 그냥 둔다는 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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