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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바꾸고 입학… 날 태어나게 한 백범 원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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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시정부 국무위원 동암 차리석의 장남 차영조… 내가 삼일절 기념식 안 간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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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6주년 3·1절을 맞아 차리석 임정 비서장의 아들 차영조(가운데) 선생이 민족문제연구소 과천의왕지부 회원들과 함께 효창공원 임정묘역을 참배하고 있다.
ⓒ 조호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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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행사에 주빈으로 초청받는 것은 가문의 영광이다. 그런데 우리 동네(경기도 의왕시)에 사는 독립 유공자 후손은 초청을 받고도 7년째 참석을 거부하고 있다. 3·1절 정부 기념식 보이콧의 주인공은 대한민국 임시정부(임정) 국무위원과 비서장을 지낸 동암(東巖) 차리석(1881년~1945년)의 장남 차영조(71) 선생이다. 

이명박 정부가 출범한 2008년 3·1절 기념식에 참석했던 그는 “친일 반민족 세력들이 희희낙락거리는 가관(可觀)을 보고 불참을 결심했다”고 밝혔다. 그 후 2009년부터 2015년 올해까지 7년째 3·1절 정부 기념식 참석을 거부하는 대신 효창공원 임정 요인 묘역에 찾아가 참배한다. 효창공원 임정 묘역에는 선친 동암과 백범 김구, 이봉창, 윤봉길, 백정기, 이동녕, 조성환 등 7명의 항일 독립 투사 묘역이 있다. 

그는 3·1절 정부 기념식 참석 거부 이유에 대해 “이명박 정권은 반민족 세력인 뉴라이트를 앞세워 대한민국의 정통성과 법통의 임정을 폄훼했다”면서 “반면 독립 운동을 분열시키고, 독립 운동가에 의해 탄핵되고, 반민 특위를 해체하고, 악질 친일파를 등용하고, 독재와 부정선거로 나라를 망친 이승만을 건국의 아버지로 왜곡하고 미화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박근혜 정부에 대해선 “항일 독립 운동가들을 때려잡던 일본군 장교 출신의 민족 반역자이자 유신 독재자인 박정희의 혈통을 이어받은 박근혜 정권은 아버지의 친일 반민족 세력이 권력 기반”이라면서 “18대 대통령 선거에서 부정 선거로 당선된 박근혜는 대한민국 3·1절 기념식을 거행할 자격이 없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굶주리는 독립운동가 후손, 부유한 친일파 후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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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시정부 비서장인 차리석 선생은 임정의 환국을 준비하던 1945년 8월 9일 과로사로 순국했다. 사진은 1945년 9월 9일 발인 모습으로 맨 앞줄 가운데 여성이 차리석의 아내 홍매영 여사이고, 품에 안긴 아기가 차영조(71) 선생이다.
ⓒ 독립기념관(차영조 선생 기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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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영조 선생은 1944년 1월 중국 중경에서 태어났다. 중경은 상해에서 출발해 항주, 가흥, 진강, 장사, 광주, 유주, 기강을 거쳐 마지막 대한민국 임시 정부 청사가 있던 도시다. 그가 태어났을 당시 부친의 나이는 64세였다. 백범은 “늙은 동암에게 아들이 생긴 것은 하늘의 축복”이라면서 아명을 ‘천복'(天福)이라 지어주었다. 

동암은 상해부터 중경까지 임정 27년을 지켜온 망명 정부의 파수꾼이었다. 동암은 백범 김구 주석이 독립 운동의 대부로 등장하도록 뒷바라지한 독립 운동가였고, 일제가 날조한 105인 사건의 주역으로 붙잡혀 3년간 옥고를 치르기도 했으며, 도산 안창호의 묵묵한 측근이었다. 조국 독립의 외길에서 헌신적 삶을 산 동암에 대해 역사학자들은 독립 운동계의 재상이라고 평가했다. 

백범은 누란에 처한 임정을 이끈 동암에 대해 “탁월한 사무 처리나 병중에서도 최후 일각까지 사명을 완수하신 책임감은 한국 독립 운동의 피가 살이 되었다”고 높이 평가했다. 지도자는 전면에 내세우고 자신은 청렴과 강직으로 소임을 다했던 음지의 독립 운동가 동암은 임정의 환국을 준비하던 1945년 9월 9일 과로사로 순국하면서 조국 땅을 밟지 못했다.  

첫돌 지나 아버지를 잃은 그는 어머니(홍매영) 품에 안겨 1946년 귀국선을 타고 조국에 돌아왔다. 중경에 묻혔던 동암의 유해는 백범의 특별지시로 1948년 8월 석오(石吾) 이동녕의 유해와 함께 봉환됐다가 그 해 9월 22일 사회장으로 장례가 치러졌다. 장례에는 이시영 부통령과 이범석 국무총리, 신익희 국회의장 등의 정부 요인이 참석했다. 

그는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없다. 처자식보다는 조국 독립을 품은 아버지였기 때문이다. 그의 어린 시절은 지독한 가난과 굶주림, 못 배운 설움과 독립 운동 혈통을 숨기며 살았던 고달픈 기억만이 또렷하다. 그는 “일제의 식민 통치는 1945년 8월 15일에 끝났지만 친일 반민족 세력의 통치는 계속되고 있다”면서 “친일 공화국 대한민국에서 독립 운동가 후손의 삶은 가난과 치욕으로 얼룩진 삶”이라고 탄식을 쏟아냈다.

그는 탄식만 쏟아내진 않았다. 가족 부양을 위해 한전 검침원과 해외 건설 노동자로 생계를 잇던 그는 귀국 이후에는 박정희 기념관 건립 반대 운동과 한국 방송의 이승만 특집 방송 반대 시위 등에 참여하면서 민족 정기 살리기에 앞장섰다. 그는 1977년부터 ‘차리석 기념사업회’를 혼자 맡아 하고 있다. 왜 혼자 하느냐고 물었더니 “주변에 폐 끼치는 게 싫어서”라고 했다. 민족문제연구소 서울 남부지부와 경기 중부지부 고문을 지낸 그는 지난 2월 창립한 과천 의왕지부 고문을 맡았다.

“독립운동 후손 2~3대 아닌 4~5대가 망하는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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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영조 선생은 이명박-박근혜 정부의 삼일절과 광복절 등의 행사초청을 7년째 거부하고 있다.
ⓒ 조호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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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지난달 24일 연안 차씨 종친회 사무실과 1일 효창공원 임정 묘역 동행 취재 등 두 차례에 걸쳐 선생과 진행한 일문일답이다. 차영조 선생은 민족문제연구소 과천 의왕지부장 홍석경씨 등과 함께 선친 동암과 백범 등 7명의 독립 투사 묘역을 참배했다. 

– 건강이 좋지 않은 것 같다. 
“자녀의 학비 걱정과 살림 걱정에 노심초사하고, 친일파가 득세하는 나라 꼴에 울분이 쌓이다 보니 암에 걸린 것 같다. 2007년 3월 위암 수술을 받으면서 위 전부를 잘라냈다. 몸무게가 54kg이다. 의사들은 스트레스를 받지 않도록 하라고 주의를 주지만 사방천지 엉망으로 돌아가는 나라 꼴을 보면 화가 치민다.”

– 독립 운동가 후손으로 어떻게 살아왔나. 
“어렸을 때는 문전걸식으로 허기를 채웠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어머니가 중풍으로 쓰러지면서 학업을 중단하고 아이스케키 장사, 여관 보이, 국밥집 배달원 등 밑바닥 생활을 전전했다. 보훈정책이 생긴 뒤로는 한전 검침원으로 일하다 중동 리비아와 아프리카 나이지리아까지 가서 건설 노동자로 일했다. 

“부친, 친일파 아니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
부친을 둘러싼 친일 논란에 대해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지난 2013년 6월 28일자 한겨레 <백년 전쟁은 계속되는가> 칼럼에 대한 언론중재위원회 반론 및 정정보도에서 “부친은 사재를 털어 조선인 한글교육 야학을 개설하고 일본 자본에 맞서 조선상인회를 설립하는 등 애국자적 삶을 살았고, 친일인명사전에도 없으므로 친일파가 아니다”라고 밝힌 바 있습니다.

딸(33)은 대학 시간 강사로 입에 겨우 풀칠하고 산다. 그런데 친일파 후손인 여당 대표의 딸은 비슷한 나이인데 대학의 정교수가 됐다. 독립 운동가의 후손이 열사의 나라에서 일할 때, 친일파 후손은 정계의 거물이 됐다. 임정 요인인 우리 집안과 친일파 후손인 여당 대표 집안의 모습이 건국 70주년의 현실이다. 예전에는 독립 운동을 하면 2~3대가 망한다고 했는데 지금은 그보다 더 심해져서 4~5대까지 망하는 것 같다.”

– 어릴 적엔 차씨가 아닌 신씨로 살았다고 들었다. 
“이승만과 박정희 친일 정권이 들어서면서 독립 운동가와 후손들은 탄압을 피해 외국으로 달아나거나 숨죽이고 살아야만 했다. 나는 동암의 아들이란 사실을 숨기고 살았다. 어머니는 차(車)씨 성에서 두 획을 지워 신(申)씨로 바꿔 초등학교에 입학시켰다. 차씨가 아닌 신씨로 살아야만 했던 비극적인 삶은 19세에 겨우 끝났다. 

선친과 모친의 결혼은 백범의 중매로 성사됐다. 나는 백범 때문에 태어난 셈이다. 백범은 내가 태어나자 ‘천복'(天福)이란 아명을 지어주셨다. 효창공원 임정 묘역에는 세 분의 아버지가 계신다. 혈통의 아버지인 동암, 정신적 아버지인 백범, 자식없이 순국한 임정 국무위원 조성환 선생 등 임정 묘역에 계신 세 분을 아버지로 모시고 있다. 지금은 독립 운동가의 후손이란 사실이 자랑스럽지만 굶주림에 시달리고, 죄인처럼 숨어살 때는 나를 태어나게 한 백범이 원망스럽기도 했다.”

– 선친과 백범 선생께 어떤 인사를 드렸는가. 
“동암과 백범 등의 애국 선열 묘역을 참배할 때마다 ‘친일파 세상을 바로잡지 못해 죄송합니다’하고 사죄한다. 오늘도 사죄하며 참배했다. 선친은 일제에게 빼앗긴 주권을 되찾기 위해 목숨을 걸었는데 나는 무엇을 했나. 독립 운동가의 혈통을 이어 받았으면 뭔가를 해야 했는데… 아버지가 자식을 잘못 둔 결과다. 친일 세력을 욕만 할 게 아니라 선친처럼 불의에 적극 항거했어야 했는데 그렇게 하지 못했다. 애국 선열 앞에서 나는 못난이다.” 

“박근혜, 광복 70주년 기념 사업 추진 자격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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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41. 9. 23. 우천 조완구 동암 차리석 선생 회갑기념(앞줄 왼편부터 조성환 김구 이시영 선생, 뒷줄 왼편부터 송병조 차리석 조완구 선생) 중경 우리촌에서.
ⓒ 역사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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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근혜 정부가 광복 70주년 기념 사업을 대대적으로 준비하고 있다.
“박근혜 정권은 광복 70주년 기념 사업을 추진할 자격이 없다. 18대 대통령 선거는 국정원 등의 정부 기관이 개입한 부정 선거라는 사실이 재판을 통해 밝혀졌다. 민주 공화국의 정통성이 결여된 데다 친일 반민족 세력이 주도하는 광복 70주년 사업을 아버님과 백범 김구 주석 등 애국 선열들이 인정하겠는가. 이명박 정권이 건국 60주년 사업으로 독립 운동 역사를 지우면서 친일 세력을 미화한 것처럼 박근혜 정권 또한 광복 70주년 사업을 정권 유지에 악용하려고 할 것이다.”

– 부정 선거가 밝혀졌지만 여론의 동요는 크지 않다.
“4·19 혁명 당시, 어린 학생부터 지식인까지 목숨을 걸고 이승만 정권의 부정 선거에 항거했다. 그런데 박근혜 대통령이 부정 선거로 당선된 사실이 밝혀졌는데도 어떻게 된 건지 조용하다. 국민 세금으로 운영되는 정부 기관이 선거 조작에 동원됐는데도 가만히들 있다. 정치, 경제, 언론, 문화 등의 권력을 1%의 친일 반민족 세력이 장악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들에겐 콩을 팥이라고 해도 철석같이 믿는 30%대의 콘크리트 지지층이 있다. 이들에게 대한민국은 자자손손 부와 권력을 세습할 수 있는 천국이다.”

– 행정자치부가 ‘태극기 달기’를 강제하는 법안을 준비하는 등 태극기 달기 운동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 
“정부는 애국심을 고취하기 위해 태극기 달기 운동을 한다고 하는데 애국심은 그렇게 해서 생기는 게 아니다. 애국심을 정말 고취하고 싶으면 친일 잔재를 청산해야 한다. 태극기 달기 운동 소식을 듣고 박정희 군사 독재 시절의 국기 하강식이 떠올랐다. 박정희 정권은 애국심이란 미명 하에 충성을 강요했다. 박정희와 전두환은 스포츠와 애국심을 이용해 국민들의 눈을 멀게 한 것처럼 박근혜 정부 또한 난국을 돌파하기 위해 애국심이란 전통적 꼼수를 동원하고 있다.”

– 아베 정권의 역사 왜곡이 심각하다. 
“아베 정권에 대한 우리의 분노는 앞뒤가 맞지 않는다. 군국주의 침략 근성을 핏줄로 타고난 아베에겐 침략 전쟁 정당화와 군사 대국화를 통해 야욕을 드러내는 건 어쩌면 당연하다. 아베가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문제다. 극우 학자들은 뉴라이트 교과서(교학사)에서 백범을 테러리스트로 묘사하면서 임정의 적통을 부정하고 있다. 빼앗긴 주권을 되찾기 위해 목숨을 바친 독립운동가와 폭탄 테러를 일삼는 중동의 테러리스트를 동일 선상에 놓고 있다.

대통령, 여당 대표 그리고, 한국방송 이사장을 비롯한 고관대작들이 친일 반민족 세력의 후예다. 독립운동가 김좌진 장군의 손녀라는 사람은 친일 세력에게 빌붙어서 권력을 누리고 있다. 친일 반민족 세력이 정권을 연속 장악하면서 항일 선열들이 계속 수모를 당하고 있다. 이런 나라 대한민국에 대해 아베는 ‘한국은 어리석은 국가'(일본 <주간문춘> 2013년 11월 21일호 보도)라고 우롱했다. 식민의 치욕이 계속되는 나라 꼴을 보면서 독립 운동가의 후예로서 선열을 볼 면목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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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영조 선생은 백범을 정신적 아버지로 여긴다. 백범은 동암의 아들로 태어난 그에게 ‘천복’이란 아명까지 지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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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은 광복 국가 아니다…’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 건립하자”

– 광복(光復)은 빼앗긴 주권을 다시 찾았다는 뜻이다. 대한민국은 광복 국가인가.
“민족 정기 선양 사업 운운하면 나는 반문하곤 한다. ‘우리에게 민족 정기가 과연 있는가?’라고 말이다. 민족 정기가 있어야 선양을 하든 말든 할 것 아닌가. 민족 정기가 사라진 근원은 친일파를 단죄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민족의 제일 큰 죄는 민족 반역죄일진대 대한민국에선 민족 반역자가 처벌은커녕 득세하고 출세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서라도 나와 가족만 잘 살면 된다는 가치관이 우리를 지배하게 된 건 민족 반역자를 청산하지 못한 탓이다. 친일 부역자가 부귀영화를 누리고, 친일 세력이 부정선거로 정권을 잡고, 친일 재벌들이 부정 축재를 해도 처벌은커녕 오히려 떵떵거리는 대한민국은 광복 국가도 자주 독립 국가도 아니다. 각자도생만이 살길인 이런 나라에 희망이 있을까? 절망스러운 생각이 들다가도 애국선열들의 풍찬노숙의 삶을 생각하면 ‘정신을 차려야지’라고 다짐한다.”

– 진정한 광복과 독립을 위해선 무엇을 해야 하나. 
“광복 70주년이 아닌 대한민국 건국 100주년을 준비해야 한다. 이승만 친일 정권도 1948년 정부 수립을 건국이 아닌 정부 재건이라고 했고, 관보 1호의 연호를 대한민국 30년이라고 표기했다. 그건 대한민국의 정통성과 법통이 1919년 수립한 임정에 있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4년 후인 2019년이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이자 대한민국 건국 100주년이 되는 해다. 

대한민국이 진정한 독립국가가 되려면 건국 100주년에 맞춰 ‘대한민국 임시정부기념관’을 건립해야 한다. 그래서 3·1절 기념식과 광복절 기념식, 독립 선열 추모제와 항일 투쟁 및 독립 역사 전시 그리고, 대통령 취임식도 대한민국 임시정부기념관에서 해야 한다. 그렇게 된다면 대한민국의 정통성과 민족 정기가 세워질 수 있다. 그런데 4년밖에 남지 않았다. 지금 준비해도 늦다.”


<2015-03-02> 오마이뉴스

☞기사원문: “성 바꾸고 입학… 날 태어나게 한 백범 원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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