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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헌영 소장] “건국절과 국부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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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절대권력자도 역사를 정복하지는 못했다.


시민사회 원로모임 새날희망연대 67차 포럼이 2월6일 오후 3시 국가인권위원회 8층 배움터에서 열렸다.

이날 포럼 발제자 민족문제연구소 임헌영 소장은 <건국절과 국부론>을 주제로 한 강연에서 “이승만을 국부로 내세우는 건국절이 제정된다면 그 참담한 역사를 미래까지 예측 할 수 있다”며 강연을 시작 하였다.

임 소장은 “이명박 기업가 독재정권이 4대강으로 헌법이 보호해야 할 국토를 유린했다면 박근혜 유신승계 독재정권은 헌법이 정한 국가관과 민주주의 원칙을 말살하려는 역사전쟁을 전개하고 있다. 그것은 바로 역사교과서를 통한 건국절 정신의 탈환작전이다”고 주장했다.

임소장은 “건국절 개칭으로 이승만-박정희 우상화 시도가 좌절당하자 역사교과서로 그 고지를 애둘러 점령하려 시도했던 게 교학사 역사교과서 파동이었다. 그것조차 쉽지 않게 되자 국정교과서로 몰아가려 하며, 그 전초작업으로 민족문제연구소의 백년전쟁을 법정으로 몰아가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아무리 권력을 휘둘러도 사슴은 결코 말이 될 수 없듯이 역사를 지배할 수는 없을 것이다. 어떤 절대권력자도 역사를 정복하지는 못했다. 아니, 절대권력이 끝내는 역사 앞에 굴복 당했다”고 단언했다.


아래는 임헌영 소장의 발제 전문이다.

건국절과 국부론

임 헌 영 민족문제연구소장

1. 잃어버린 해방절

1945년 8월 15일은 그 절차와 연유야 어쨌든 한국인에게 ‘해방’으로 다가왔다. 그러나 ‘해방의 날’은 오래지 않아 ‘광복절'(1949년 10월 1일 공식적인 기념일로 지정)로 둔갑, 분단 고착화와 친일파들이 지배하는 역사로 변질되고 말았다. 허울이야 ‘광복’이라지만 ‘해방’도 ‘광복’도 다 분단독재 체제 아래서 만신창이가 되고 말았다.

그 8월의 이상과 열정이 싸늘한 재로 변해버린 21세기의 한국은 ‘건국절’ 운운하는 역사의 쿠데타란 유령이 배회하게 되었다. 파시즘이라는 청산하지 못한 역사의 묘지 속의 낡은 관에서 빠져나온 ‘건국절’이란 낮도깨비는 민주주의와 민족통일의 국민적인 여망을 할퀴려고 날카로운 이빨과 손톱을 갈고 있다.

‘건국절’의 논리는 이승만을 ‘건국의 아버지’로 우상화하기 때문에 당연히 그 우상이 저지른 모든 역사적인 죄악을 미화시키거나 침묵시키려 시도한다. 이런 역사인식은 해방공간 3년을 ‘건국’ 지지와 그 방해 세력(좌익)의 흑백 대결 구도로만 농단한다. 오늘(박근혜 정권)이 바로 그때와 똑 같은 혼란기라고 우겨대며, 그 해결책으로 서북청년단의 부활 같은 ‘파시즘적인 극우주의’ 주술을 퍼트리며 모든 비판의식을 ‘종북좌빨’로 몰아가고 있다. 이승만 독재부터 전두환 군부독재까지 어떤 혹독한 탄압 아래서도 제1야당을 향하여 ‘종북좌빨’이라고 한 적은 없었다. 이승만 이후 박정희-전두환 군부독재 아래서도 결단코 서북청년단 재건 같은 황당한 시도는 없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박근혜 정권의 본질이 무엇이며 그 국가관이 어떤 것인지를 되묻게 만든다. 이게 바로 ‘건국절’의 실체다.

여기서 한 발짝 더 나아가 ‘건국의 아버지 이승만’에 이어 ‘경제 건국 박정희’의 이미지를 연결고리로 삼으려 한다. 두 인물을 연결시키는 건 아무리 역사의 맹인이라도 무리인 것이 이승만 집권에 대하여 박정희는 적어도 두 번이나 큼직한 ‘반란’을 시도했다.

첫째가 ‘여순반란’이고 둘째가 쿠데타를 해야겠다는 결심을 굳힌 사실이다. 이승만을 ‘건국의 아버지’로 우상화하면 박정희를 어떻게 평가해야 할까? 그리고 사월혁명은 어떻게 자리매김해야 될까? 한법전문에서 삭제해야 될까? 사월혁명 관련 단체와 기관들은 반국가 사범으로 처벌당해야 될까? 이보다 더 큰 문제가 있다. 독립운동 단체나 기관, 그 후손들은 어떻게 되어야 하는가?

이치로 따진다면 8.15가 ‘해방절’이면 해방을 실천해야 되고, ‘광복절’이면 다시 찾은 나라니까 결단코 ‘건국절’로는 될 수 없다는 것이 역사적인 귀결이다. 그런데도 굳이 ‘건국절’을 주장하는 배경에는 친일파 비호를 위한 독립투쟁 세력의 무력화(無力化), 이를 바탕삼아 세계화라는 깃발로 국가나 민족의 이익보다는 강대국의 힘에 의존하려는 신사대주의의 합리화, 이를 위한 분단 고착화, 군사독재든 민간독재든 독재체제를 철옹성화 하여 민주화를 근절시키려는 저의, 국가 발전과 경제 성장을 빌미로 재벌 비호 정책을 멋대로 펼쳐보려는 잇속 차리기, 국민복지는 국가발전에 저해된다는 논리의 정당성 주입시키기, 부정부패와 특권 향유가 당연한 인간 세상의 생태임을 어릴 때부터 교육시키려는 염치없는 세상 만들기 작전, 어떤 불의와 비인간적인 현상에도 결코 비판의식을 가질 수 없는 인간으로 개조하기 등등의 원대한 반인륜적이며 반역사적인 고도의 통치술이 작용하고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이 프로젝트의 의도를 한 바디로 요약하면 악에 항거하는 모든 사람은 ‘종북좌빨’이라는 독재통치의 만고불변의 황금법칙이다.

8.15, 해방은커녕 진정 광복이라도 되었는가?


2. ‘건국절’의 불씨

건국절의 첫 불씨는 <<조선일보>>가 1995년 1월부터 연재한 <거대한 생애 이승만> 기사부터였다. 연재 65회째 마지막(1995년 12월 28일자)에서 건국기념일을 정부에서조차 제대로 기념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2003년 북핵저지시민연대, 민주참여네티즌연대, 자유시민연대 등은 ‘건국 55주년 반핵·반김 8·15 국민대회’를 열며 ‘건국절’ 행사 개최했다.

2003년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김용학 의원 등 13명이 ‘건국절 개칭 법안’을 발의.

대표 발의는 김용학 전 의원을 비롯해, 김동욱, 박시균, 박재욱, 엄호성, 이방호, 이연숙, 임인배, 주진우. 기타 발의자로는 안영근, 김부겸, 김광원, 권기술 의원.

2004년 국정감사장에서 고등학교 ‘한국 근·현대사’ 교과서에 대한 색깔공세를 폈다.

2005년 1월 25일, 교과서포럼 창립. 준비위원회 주요 인물들은 박효종(서울대 국민윤리교육과, 위원장), 김일영(성균관대 정치외교학과), 신지호(자유주의연대 대표), 유석춘(연세대 사회학과), 전상인(한림대 사회학).

참여 후원 단체 ; 교육공동체시민연합, 기독교사회책임, 바른사회를 위한 시민회의, 북한민주화 네트워크, 북한민주화 포럼, 자유주의연대, 초/중/고 교장협의회, 학교를 사랑하는 학부모 모임,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한국사학법인연합회, 교과서포럼 후원회 등.

2006년 이영훈, <우리도 건국절을 만들자>( 동아일보 2006.7.31), <건국의 의미( 조선일보 2006.8.14.). 그럼에도 불구하고 2006년 8월 한 인터넷 포털사이트가 광복절을 건국절로 변경하는 것에 대한 여론조사. 결과는 반대가 61.7%. 그러나 한국갤럽(당시 회장 최시중)의 여론조사는 78.4%가 건국절 지지였다고 공개했다.

2007년 ‘한나라당 주요당직자회의 비공개 부분 브리핑'(7월 31일과 8월 6일)에서 박계동 당시 전략기획본부장이 이 문제 거론,

“’8·15’는 1945년 8월 15일 해방의 뜻도 있고, 1948년 8월 15일 건국의 뜻도 있다. 저는 건국이 더욱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고 생각하는데 건국에 대한 용어사용을 그동안 우리는 너무 많이 회피해왔다고 생각한다.” “지금까지 ‘8.15’는 해방을 기념하는 의미가 컸지만 앞으로는 대한민국 건국을 기념하는 뜻을 더 부각시켜야 한다는 여론이 78.4%이다. 올해 59주년을 맞고, 내년에 60주년이 되는 당당한 대한민국의 건국절을 잘못된 역사를 다시 펼치는 원년으로 삼아 나라가 발전하는 원년으로 삼아야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한나라당도 또 다른 건국의 의미를 갖는 8.15 건국절, 광복절 행사가 되도록 노력하겠다.”

그 두 달 뒤인 2007. 9.28.한나라당 정갑윤 의원 등 10여명이 광복절을 건국절로 바꾸자는 명칭 변경안을 제안했지만 반대여론은 만만치 않자 예상대로 지지 옹호세력이 부상했다.

2007년 11월 이명박 대통령부호의 당선이 유력시된 시점에서 ‘건국 60주년기념사업추진위원회’가 등장했는데 그 구성원은 아래와 같다.

고문 ; 김준곤(한국대학생선교협회 총재), 노재봉, 손진(건국회 회장), 송월주, 이철승, 이대용(전 주월공사), 정범모, 조용기(한국사학법인 연합회 회장).


추진위원장 ; 강영훈, 이인호(현 KBS 이사장), 박효종(현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위원장).


집행위원장 ; 김영호(성신여대).


추진위원 ; 안병훈, 이각범, 이석연, 류근일, 박세일, 복거일 등.


3. 이명박 정권의 역사 파괴

이런 가운데 정부수립 60주년인 2008년에는 2월 25일 이명박의 대통령 취임으로 건국절 주장에는 날개가 달렸다.

교과서포럼은《대안교과서 한국 근·현대사》(도서출판 기파랑, 2008. 3.24)를 출간했는데, 그 편찬 참여자 명단은 아래와 같다.

이영훈(서울대 경제학과), 김용직(성신여대 정외과), 김영호(성신여대 정치외학과), 김재호( 전남대 경제학과), 김세중(연세대 국제관계학과), 김종석(홍익대 경영학과), 전상인(서울대 환경대학원), 주익종(낙성대경제연구소), 김광동(나라정책연구원 원장), 김영환(시대정신 편집위원).

이 책은 한국사 전공자가 전혀 참여하지 않은 역사서, 기술의 오류(대한제국 고종 즉위년과 카이로 회담일, 한자 표기, 사진 설명 등) 등 기초적인 문제부터 사관의 문제(식민지 근대화론, 항일 운동을 이승만과 우파 위주로 접근하며 나머지는 폄훼, 재벌, 기독교 등 부각)까지 내포. 일본 극우 단체(새로운 역사 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의 사관과 닮은 꼴.

이 책에 대하여 박근혜(당시 한나라당 대표)는 “우리 청소년들이 왜곡된 역사 평가를 배우고 있다고 생각하면 정말 전율하지 않을 수 없다”, “뜻 있는 이들이 현행 교과서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청소년들이 잘못된 역사관을 키우는 것을 크게 걱정했는데 이제 걱정을 덜게 됐다.”(2008. 5.26,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대안교과서 출판 기념회 축사).

일본 다쿠쇼쿠 대학(拓殖大) 시모조 마사오(下條正男, 국제학부. 다케시마 문제 연구회 좌장)교수는 2011년 7월 자민당 보수우파 의원 3명의 울릉도 기획방문을 기획, 인천공항에서 강제출국 당한 인물이다. 그는 2008년 월간 <<세이론(政論)>>(産經新聞 발행, 7월호)과, <>(讀賣新聞 발행, 12.25일자)등에다 이 책을 찬양하는 글을 실었는데, 그 요지는

“일본의 식민통치를 한국의 근대화에 도움을 주었다고 일정한 평가를 부여하는 등 지금까지 감정적인 기술과는 대조적이다.”, “다케시마 문제에는 직접 언급하지 않았지만 전후 한국이 ‘이승만 라인’을 설정해 한-일 관계가 악화된 사실을 언급함으로써 문제의 배경을 설명했다.”고 평가. 1952년 1월 18일 선포된 평화선을 이토록 평가한 배경에는 한국 의 역사교과서라면 당연히 “러-일전쟁이 한창일 때 다케시마를 일방적으로 일본의 영토로 편입했다”고 서술해왔기 때문에 일본의 침략 야욕을 일깨워준 것이었던 것과는 대조적이기 때문이라고 시모조는 주장했다. 또한 그는 박정희의 새마을운동을 높게 평가한 점도 거론하며, 기실 “새마을 운동은 일본 식민통치의 농촌진흥을 참고로 1970년대 박 정권이 실시한 것” 이라고 친절하게 풀이해주고 있다.

이 해(2008) 대통령 훈령에 따라 국무총리 산하에 ‘대한민국 건국60주년 기념사업위원회’가 5월 22일 발족, 부질없는 논의로 국론을 분열시켜 오다가 2013년 1월 훈령은 폐지되었다. 이 기념사업회의 주요 임원은 아래와 같다.

위원장 ; 한승수 국무총리, 현승종 고려중앙학원 이사장, 김남조 숙명여대 명예교수.

고문 ; 백선엽, 정진경(신촌성결교회 목사), 이철승, 남덕우, 채명신, 윤주영, 송월주, 강영훈, 김국주(광복회장), 정의채(서강대 교수), 박태준, 이윤구(결핵제로운동본부 총재), 이인호.

이명박 정부는 홍보책자 ‘건국60년’을 발간, 건국절의 의의를 이렇게 주장했다.

임시정부는 자국의 영토를 확정하고 국민을 확보한 가운데 국제적 승인을 바탕을 둔 독립국가를 대표한 것은 아니다. 실효적 지배를 통해 국가를 운영한 적도 없다. 이런 점에서 민주주의의 실제 출발은 1948년 8월 대한민국 건국이라고 보아야 한다.

대한민국을 건국한 공로는 1948년 8월 정부수립에 참여했던 인물들의 공으로 돌리는 것이 마땅하다.

위원회 참여 민간위원은 (1) 건국·호국·산업화·민주화 등 시기별로 대한민국 발전에 크게 기여한 인물, (2) 국민통합과 선진사회로 나아가는데 기여할 수 있는 인물을 기준 삼아 경제, 외교 통일, 교육 과학, 문화 체육, 사회 통합 등 분야별 대표성과 사업추진의 효율성을 고려하여 원로, 중진 및 전문가 등을 고루 선정했다고 공개했다. 정부위원으로는 기획재정부·행정안전부·문화체육관광부·교육과학기술부장관, 국무총리실장 등 국무위원 15명이 참여한 엄청난 조직이었다. 효율적인 업무 추진을 위해 국무총리실에 관계부처 공무원으로 구성된 건국 60년 기념사업추진기획단까지 설치했다.

여기에다 건국 60주년을 구실로 선진한국을 위해 대통령 국제자문단(Global Advisory Group)을 구성했다고 밝혔는데(6.26), 여기에는 도미니크 바턴(맥킨지컨설팅 아시아 태평양 회장)위원장을 비롯해 기 소르망(파리정치대학 교수), 빌 게이츠(마이크로소프트 회장), 클라우스 슈바프 (세계경제포럼 회장), 고촉통(吳作棟, 싱가포르 선임장관), 조셉 나이(하버드대 교수), 다케나카 헤이조(竹中平藏, 게이오대 교수) 등 11개국의 15명이었다.

청년층을 겨냥한 조직이 빠질 수 없다. ‘대학생 사이버 건국내각‘을 조직(7월), 위원회의 선전기구로 삼았다. 핸드프린팅으로 대형 태극기를 제작한 학생들은 선서식을 통해 사이버건국내각의 발족을 알리면서 “대학생들이 건국 당시 출범한 주요 부처의 블로그를 직접 운영하게 된다”고 한국정책방송(KTV)을 통해 알렸다.

이런 막강한 조직으로 위원회는 (1) 대한민국의 성공의 역사에 대한 국민의 자부심을 고취, (2) 8·15 건국 기념행사를 온 국민이 참여하는 국민 축제의 장으로 마련, (3) 선진일류국가 도약을 위해 국민역량을 결집하는데 중점을 두고 기념사업을 추진해 나간다고 선전했다.

이를 위하여 기념사업위원회는 8·15 경축행사, 각종 학술행사, 문화축전 등 중점 추진 사업을 논의하며 추진해 왔다.

조선, 동아 등 일부 언론은 정부보다 한발 앞섰다. 이 문제에 대해서만 본다면 이 두 신문은 당대권력의 시녀의 신분에서 격상하여 친일의 추악한 관록까지 축적된 연륜을 바탕삼아 수렴청정하는 대비(大妃)의 옹고집으로 둔갑한 듯 했다.

2008년 7월 3일, 마침내 국회가 나섰다. 정갑윤 의원 등 13명의 의원이 <국경일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광복절을 건국절로 개명하자는 요지였다. “대한민국은 1948년 8월 15일 건국되었고 초대대통령은 이승만 박사였다.”는 이 법률 개정안의 취지는 “60주년 건국절을 맞이하여 친북좌파들은 그들의 존재가 멸망하게 될 위기에 처하자 대한민국 건국절을 없애기 위하여 갖은 위선과 선동선전술 및 역사왜곡으로 대한민국을 파괴하기 위한 반(反)대한민국 총공세를 펴고 있다.”면서, “좌익들의 특성이자 주무기인 역사 왜곡, 선동, 허위사실을 유포함으로서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부인하려고 포플리즘을 극대화 시켜 최후발악”을 하고 있다면서, “이승만 건국 대통령은 오히려 미국에 의하여 정치 공작과 강한 견제 속에서도 대한민국을 꿋꿋하게 지켜 온 건국 영웅임은 역사가 이를 이미 증명하고 있는 것이다.”라고 하면서 아래와 같이 썼다.

오는 8월 15일 건국 60주년 ‘건국절’을 대대적인 국정쇄신의 계기로 삼아 새로운 각오로 대한민국을 혼란지경으로 내 몰고 있는 친북좌익들을 철저하게 척결하고 그들과 연계되어 있는 부패 세력 및 반국가 인사들을 대한민국 국법에 따라 엄중히 처리하기를 이명박정부에 권고하고 싶다. 오는 8월 15일 건국절을 계기로 우리의 대한민국이 강력한 민주 법치국가로 다시 태어나지 않으면 안 된다. 60주년 건국절을, 반(反)대한민국 요소를 척결하는 애국심 함양의 지렛대로 삼아야 할 것이다. 60주년 건국절을 이명박 정부의 도약기로 승화시켜야 한다.

이 서슬퍼런 건국절 개칭안은 2008년 9월 12일 형식적으로는 철회했는데 그 이유를 “국민 분열과 갈등이 초래되고 이로 인해 이명박 정부의 개혁추진이 발목 잡혀서는 안 된다”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언제든지 다시 제기할 의원들이 줄을 서있다는 엄연한 현실이다.


4. ‘건국 60주년’ 그들의 잔치

2008년 8.15는 세 가지로 양식 있는 국민들을 괴롭혔다. 첫째는 건국절 기념행사였고, 둘째는 유명 일간지들의 건국절 사설이나 칼럼들, 그리고 세 번째는《대한민국 건국 60년의 재인식》(기파랑) 출간이었다.

건국절 기념행사는 그들만의 잔치에 그쳤지만 일부 언론의 건국타령은 도를 넘었다. <<조선일보>>는 <광복과 건국의 의미를 같이 새기고 함께 음미해야>란 사설에서 아래와 같이 주장했다.

우리의 후세들에게 대한민국을 비방하고 역사를 거꾸로 뒤집도록 가르치는 교육이 버젓이 행해지고 있고 엉뚱하게도 본고장에서 다 망해버린 좌파의 이념이 방방곡곡의 서점을 뒤덮고 있다. 우리가 오늘 민족 광복과 함께 대한민국 건국의 의미를 동시에 새기고 음미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동아일보>>는 <‘정부수립 63주년 광복 63년 대한민국의 길>이란 사설에서 “우리는 남쪽에서만이라도 유엔 감독 하에 총선을 치르고 정부를 수립해 자유민주주의 씨앗을 뿌린 건국 주역들의 공로를 인정해야만 한다.”고 했다.

두 사설의 취지는 분단의 당위성과 독재정치의 긍정적인 평가로 요약할 수 있다.

세 번째 사건인《대한민국 건국 60년의 재인식》출간은 원래 김영호 성신여대 교수가 “이 나라를 세우고자 어떤 노력을 기울이고 희생을 치렀는지, 자신이 누리는 풍요를 누가 어떻게 만든 것인지 전혀 모르고 있다는 것은 집단적 기억상실증이 아닌가는 생각마저 든다”면서 2008년 3월부터 6월까지 매주 한 차레 <건국 60년 기념 강의>를 기획, 3학점 수강과목으로 1학기 동안 강의한 것을 엮어 낸 것으로 총 목차는 아래와 같다.

1강 대한민국 건국의 세계사적 의의(노재봉)


2강 대한민국 건국의 역사적 과정(김일영, 성균관대학교 정치외교학과)


3강 건국사관과 분단사관(김영호)


4강 이승만 박사와 대한민국의 건국(유영익)


5강 대한민국 건국헌법의 제정과 내용(강경근, 숭실대 법학과)


6강 대한민국 건국의 경제사적 의의(안병직)


7강 해방 공간과 보통사람의 일상생활(전상인,서울대 환경대학원)

8강 대한민국의 건국과 압축민주화(김세중, 연세대 국제관계학과)


9강 대한민국의 경제발전(이영훈)


10강 대한민국과 기업인의 역할(김광석, 참존 대표이사 회장)


11강 한미관계의 형성과 발전(버시바우, 주한 미국대사)


12강 대한민국의 세계적 위상과 역할(이인호)

여기에 담긴 주장이 무엇인가를 구태여 설명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김영호는 “지난 10년간(김대중 노무현 대통령 시기) 국가 정체성에 커다란 혼란이 일어났기 때문“에 건국절 문제가 제기 되었다면서 미국은 독립선언서가 발표된 7월 4일을, 프랑스는 처음 프랑스공화국을 세운 혁명기념일인 7월 14일을, 중국은 마오쩌둥이 천안문에 올라가 중화인민공화국의 탄생을 공식 선포한 10월 1일을 각각 건국절로 지정하여 대대적으로 기념하고 국민통합의 계기로 삼는다고 주장했다(위의 책).

그러나 7월 4일은 미국의 독립기념일이지 건국절이 아니다. 미합중국의 건국은 1787년 제헌헌법에 기초하여 조지 워싱턴이 초대 대통령으로 취임한 1789년 4월 30일에 이루어졌다. 이렇게 말하면 이승만이 초대 대통령으로 취임한 사실을 들어 반박할 소지가 있는데, 건국의 아버지란 독립투쟁의 명실상부한 지도자여야만 한다는 게 세계사의 교훈임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더욱 중요한 사실은 미국은 없던 나라, 원래 식민지였다가 새로운 국가가 세운 나라였다는 점이다. 이치로 따지면 미국이야말로 건국절로 부를 만하지만 독립을 강조한다. 흔히들 ‘미국 건국의 아버지 조지 워싱턴’이라고들 하지만 그의 탁월한 투쟁에 경의를 나타낸 것이지 그걸 우상화하지는 않아 온갖 부정적인 평가도 공존한다. 거기에다 미국은 통상 ‘건국의 창시자들 중 하나(one of the Founding Fathers of the United States)’라고 서술한다. 독립투사들은 미국 초기 5대까지 대통령직을 이어갔고, 친영파나 이를 비호한 세력은 독립전쟁 중 자연도태 되었다고 볼 수 있다.

프랑스는 1789년 7월 14일이 바스티유감옥을 파옥한 대혁명 기념일(세계 혁명사에서 그 앞에 ‘대’자가 붙는 유일한 사건)로 1880년에야 국경일로 제정되었다.

중국은 어떤가. 10월1일을 중국에서는 “國慶節(慶節)、國慶日、中國慶”이라고 한다.


5. 제헌 헌법에 반영된 독립운동

이승만의 내락으로 제정 공포된 1948년 7월 17일의 제헌헌법인 <대한민국헌법> 전문을 다시 살펴보자.

悠久한 歷史와 傳統에 빛나는 우리들 大韓國民은 己未三一運動으로 大韓民國을 建立하여 世界에 宣布한 偉大한 獨立精神을 繼承하여 이제 民主獨立國家를 再建함에 있어서 正義人道와 同胞愛로써 民族의 團結을 鞏固히 하며 모든 社會的 弊害를 打破하고 民主主義 諸制度를 樹立하여 政治, 經濟, 社會, 文化의 모든 領域에 있어서 各人의 機會를 均等히 하고 能力을 最高度로 發揮케 하며 各人의 責任과 義務를 完遂케 하여 안으로는 國民生活의 均等한 向上을 期하고 밖으로는 恒久的인 國際平和의 維持에 努力하여 …

어느 나라의 헌법에 비춰도 손색없는 명문인데, 제1조에서 “大韓民國은 民主共和國이다”라고 국가관을 명백히 했다. 헌법전문과 제1조로 한국의 국가관은 규정되는데, 일부 정치인 중(특히 박근혜가 국가관을 가장 빈번하게 거론)에는 이를 무시 혹은 초탈하여 민주사회에서 당연히 존재하는 비판세력에게 ‘국가관’ 운운하는 건 실로 삼류 코미디이다.

이 전문과 제1조의 정치사상과 국가관은 1910년 국권 침탈 이후 독립운동 세력 사이에 범박하게 말하면 복벽주의(復主義), 보황주의(保皇主義), 공화주의(共和主義)라는 세 사상이 혼재 했으나 1917년 <大同團結의 宣言>(발기인 신규식, 朴殷植, 申采浩, 朴容萬, 尹世復, 趙素昻, 申錫雨, 韓鎭敎 등 14명. 상하이에서 선언) 이후, 1919년 4월 상해 임시정의원, 1919년 9월 통합 임시정부 구성으로 민주공화제를 원리로 하는 <大韓民國臨時憲章> 및 <大韓民國臨時憲法>(임정 헌법은 1925, 1927, 1940, 1944년에 개정되었으나 임시헌장 정신은 그대로 계승)의 원리를 승계한 것이다. 즉 임정을 정통으로 삼는다는 것은 단순한 상징이 아니라 국가관과 국민주권을 그대로 승계했다는 뜻이다.

이뿐이 아니라 통치 전반에 걸친 제반 문제와 경제, 국민복지 등등에서도 구체적인 법률조항이 상당수 승계되고 있음은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8.15 건국절은 천부당만부당해도 굳이 현대 한국의 건국 기점을 헌법정신에 맞게 유추한다면 아래 몇 가지로 압축될 수 있을 것이다.

(1) 1919년 4월 11일 ; 상하이 임정 수립일.


(2) 같은 해 4월 13일 ; 임정 수립을 내외에 선포한 날.


(3) 같은 해 9월 16일 ; 각 임시 정부들이 상해 임시정부를 중심으로 통합된 날.

이런 견해와는 달리 상하이 임정은 국제법적 관점에서 법적 요건(국제법에 입각한 주권 주장, 망명정부 소재지 국가의 승인, 실질적인 국가행위)을 갖추지 못 했다고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경우도 있다. 이에 대한 반론은 임정이 중화민국의 승인을 받았고 교육, 문화, 군사, 외교 활동 등을 시도하였다는 주장이다. 여기서 ‘실질적인 지배’란 이현령비형령으로 논란의 여지가 많다. 엄밀한 의미에서 모든 ‘망명정부’란 사실상의 통치가 불가능한 상태이며, 국제적인 승인 역시 제국주의의 입맛에 따른 판단이기에 독립투쟁의 열기와 투쟁 규모와 실적, 그리고 국민적인 여망이란 잣대로 판단해야 되지 않을까.

어떤 관점이든 결론은 8.15 건국절은 독립투쟁에 대한 모독이자 원천적인 부정임은 부인할 수 없다.


6. 박근혜 정권의 역사전쟁

이명박 기업가 독재정권이 4대강으로 헌법이 보호해야 할 국토를 유린했다면 박근혜 유신승계 독재정권은 헌법이 정한 국가관과 민주주의 원칙을 말살하려는 역사전재을 전개하고 있다. 그것은 바로 역사교과서를 통한 건국절 정신의 탈환작전이다.

건국절 개칭으로 이승만-박정희 우상화 시도가 좌절당하자 역사교과서로 그 고지를 애둘러 점령하려 시도했던 게 교학사 역사교과서 파동이었다. 그것조차 쉽지 않게 되자 국정교과서로 몰아가려 하며, 그 전초작업으로 민족문제연구소의 <<백년전쟁>>을 법정으로 몰아가고 있다.

역사다큐 <<백년전쟁>>은 이승만과 박정희를 다룬 김지영 감독 작품인데, RTV(시민방송)가 방영하자 방송통신위원회는 중징계 조치를 내렸는데, 이에 시민방송은 불복, 방통위를 상대로 제재처분 취소 소송을 행정법원에 냈다. 이 사건은 2014년 8월 28일, 서울행정법원이 RTV가 방영한 독립역사다큐 <<백년전쟁>>이 공정성·객관성·명예훼손금지 심의규정을 위반하였다고 인정, 방송통신위원회가 내린 ‘관계자징계 및 경고’ 처분이 정당하다고 판결하였다.

이 사건은 건국절로 이루려던 역사왜곡 시도가 국민들의 저항으로 좌절당하자, 역사교과서를 전위대로 내세웠는데, 이것 역시 신통찮게 되자 권력의 구미에 맞는 법정에다 역사를 꿇어앉히려는 형세다. 아무리 권력을 휘둘러도 사슴은 결코 말이 될 수 없듯이 역사를 지배할 수는 없을 것이다. 어떤 절대권력자도 역사를 정복하지는 못했다. 아니, 절대권력이 끝내는 역사 앞에 굴복 당했다.


편석촌 김기림의 시를 다시 한 번 읽어보고 싶다.

들과 거리, 바다와 기업(企業)도 / 모도다 비치어 새 나라 세워 가리라 – / 한낱 벌거숭이로 돌아가 이 나라 지추돌 고이는 / 다만 조약돌이고저 원하던 / 오 – 우리들의 8월로 돌아가자. //

명예도 지위도 호사스런 살림도 다 버리고 / 구름같이 휘날리는 조국의 깃발 아래 / 다만 헐벗고 정성스런 종이고저 맹세하던 / 오 – 우리들의 8월로 돌아가자. //

어찌 닭 울기 전 세 번 뿐이랴, / 다섯 번 일곱 번 그를 모른다 하던 욕된 그 날이 아파 / 땅에 쓰러져 얼골 부비며 끓는 눈물 / 눈뿌리 태우던 우리들의 8월 – //

먼 나라와 옥중과 총. 칼 사이를 / 뚫고 헤치며 피 흘린 열렬한 이들 맞어 / 한갓 겸손한 심부름꾼이고저 빌던 / 오 – 우리들의 8월로 돌아가자. //

끝없는 노염. 통분 속에서 빚어진 / 우리들의 꿈, 이빨로 물어뜯어 아로새긴 조각, / 아모도 따를 이 없는 아름다운 땅 만들리라, / 하늘 우르러 외오치던 우리들의 8월 – //

부리는 이 부리우는 이 하나 없이 / 지혜와 의리와 착한 마음 꽃처럼 피여 / 천사들 모다 부러워 귀순하는 나라, / 내 8월의 꿈은 영롱한 보석바구니. //

오- 8월로 돌아가자, / 나의 창세기 에워싸던 향기로운 계절로 – / 썩은 연기, 벽돌 데미, 몬지 속에서 / 연꽃처럼 현란히 피어나던 8월 – / 오 – 우리들의 8월로 돌아가자.

김기림 <우리들의 8월로> 전문

(일부 자구는 문맥 상 수정하였음을 밝힙니다. -서울의소리-)

<2014-02-08> 서울의소리


☞기사원문: [임헌영 소장] “건국절과 국부론”

※관련기사

☞한국NGO신문: 친일파 비호 위한 독립투쟁 세력의 무력화

☞이만열칼럼: ‘건국절’ 논란과 역사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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