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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계 이완용 ‘이회광’ vs 항일 ‘한용운’-‘백용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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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6주년 삼일절 행사에 군산 일본식 사찰 동국사를 찾은 이유….

▲ 군산시 구암동 3·1운동 기념관 광장에서 열린 제96회 삼일절 기념식 장면     조종안

 

[신문고뉴스] 조종안 기자 =  어제(3월 1일)는 제96주년 삼일절이었다. 아침은 먹는 둥 마는 둥, 오전 9시쯤 집을 나섰다. 화사한 봄을 시샘하는 꽃샘바람이 왜놈 헌병의 닛폰도(日本刀) 칼날처럼 예리하다. 집 앞에서 52번 버스를 타고 ‘3·1운동 기념관’이 있는 구암동산 입구에서 내렸다. 구암동산은 한강 이남에서 최초로 일어난 기미 독립만세운동(군산 3.5 만세운동) 발상지로 성역화 사업이 한창이다.


96년 전 독립만세시위를 주도했던 군산 영명학교(제일고 전신)와 멜볼딘여학교(영광여고 전신) 후배들, 극단 ‘둥당애’ 단원들, 구암동 자치위원회 풍물단 등이 펼치는 3·5 만세운동 재현행사가 거의 끝나가고 있었다. 이어 3·1운동 기념관 광장에서 열린 기념식과 ‘한강 이남 최초 3·1운동 발상지’ 상징탑 제막식을 끝으로 이날의 행사를 모두 마쳤다.


우리가 ‘친일 승려’ 몰라보는 것, 교육에도 문제 있어


삼일절 기념행사가 끝나고 군산시 금광동에 있는 동국사(東國寺)로 방향을 잡았다. 동국사(등록문화재 제64호)는 일제강점기인 1913년 이 땅의 농민들을 착취해서 부를 이룬 대농장주(미야자키, 구마모토 등)들의 기부금으로 지어진 일본식 사찰로 식민지 아픔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 동국사 ‘일제침탈 사료관’에 전시된 자료들을 돌아보는 방문객들     조종안

 

삼일절에 일본식 사찰을 찾은 이유는 제5회 기획전(환수 문화재 근·현대 불교사 특별전: 2월 16일~5월 31일)이 열리고 있어서였다. 동국사 대웅전 ‘일제침탈 사료관’에 전시된 불교관련 자료는 400여 점. 그중 항일 승려(한용운, 백용성, 박한영, 오성월, 운허)와 친일 승려(이회광, 강대련, 김태흡, 이종욱, 김동화) 사진을 본 방문객들 소감을 듣고 싶었다.


특히 친일 승려 이회광은 ‘을미사변'(1895년 10월 8일 새벽에 일어난 명성황후 시해사건) 때 허리에 칼을 차고 명성황후 침소까지 침범했던 일본 조동종 승려 다케다 한시(武田範之)를 조선 불교를 총괄하는 원종(圓宗·친일 승려들로 이루어진 한국 최초 불교종단) 고문으로 추대한 인물로, ‘불교계의 이완용’으로 불린다.

  

▲ 항일 승려와 친일 승려들 모습     조종안

 

점심 때여서 그런지 북적대던 사료관이 한산했다. 기자가 1시간 남짓 머물면서 만난 관람객은 학생, 어른 합해서 60여 명. 그중 친일·항일 승려 10명 중 기억하는 승려가 없다거나 이름 자체가 생소하다는 응답이 40%를 넘었다. 놀라웠다. 만해 한용운 한 사람만 알겠다는 사람은 50%. 두 사람을 기억하는 사람은 10%에 미치지 못했다. 세종시에서 왔다는 최지연(41)씨는 프랑스 시민교육을 예로 들면서 안타까워했다.


“한용운 외에 다른 분들은 모르겠는데요. 한용운은 <님의 침묵>을 쓴 시인이자 민족지도자죠. 3·1운동 때 독립선언서에 서명한 33인 중 한사람이고 서울 성북구 성북동에 생가가 있는 것으로 아는데…. (한 사람씩 꼼꼼히 살피다가) 친일승려 김태흡 같은 사람은 이름이 특이해서 역사나 윤리 시간에 한 번이라도 배웠으면 기억할 텐데, 도대체 모르겠네요.


(한참 후 일행을 바라보며) 우리가 친일 승려를 몰라보는 것은 내 탓도 있지만, 교육의 문제야.(웃음) 프랑스는 중·고등학교 교육 과정에도 시민교육이 필수과목으로 지정되는 등 학생 때부터 시민교육을 디테일하게 나선형으로 획획 들어간다는데, 우리는 그런 프로그램이 없잖아. (아쉬워하는 표정을 지으며) 어떻게 해, 승려들 사진이라도 찍어가야지···.”


아쉬움 속에서도 방문객들 반응 다양해


10대와 20대 역시 하나같이 한용운 스님만 안다고 답했다. 안타까운 점은 무슨 일을 했는지 행적은 아는 게 없고, 이름만 희미하게 기억한다는 것. 서울에서 가족과 함께 왔다는 이명숙(58)씨는 불교 신도는 아니지만, 두 번째 사진 백용성 스님도 안다며 손으로 가리켰다. 이씨는 십년지기를 다시 만난 듯 반가워하며 설명을 덧붙였다.


“만해 한용운은 학교 다닐 때 교과서를 통해 배웠던 분이고요. 백용성 스님도 불교계에서 굉장히 큰 역할을 했던 분이라고 들었어요. 옛날 스님들은 대부분 식량을 얻어서 생활했잖아요. 그 속에서도 백용성 스님은 출가한 사람도 자급자족해야 한다며 농사도 짓고 교육도 하는 등 불교계를 혁신하면서 사회참여를 이끌어 냈던 분으로 알고 있어요.


3년 전인가, 우연한 기회에 대각사(大覺寺) 창건 100주년 법회에 참석한 적이 있는데요. 백용성 스님은 불교도 일반 시민들과 친하게, 대중화해야 된다며 최초로 시내에 사찰(대각사)을 창건한 분이라고 합니다. 3·1운동 때도 33인을 모집하는 일에 앞장섰고, 우리가 일본 경찰에 끌려가야 전국으로 널리 알려진다고 말씀하시는 등 독립만세운동을 기획하셨던 분이라고 들었어요.”

  

▲ 1960~1970년대를 떠오르게 하는 다양한 표어들     조종안

 

다양한 표어를 가리키며 추억을 떠올리는 방문객도 있었다. 최지연씨와 함께 왔다는 40대 여성은 ‘앞에 가는 저 등산객, 간첩인가 다시 보자’ 표어를 가리키며 실소를 터뜨리기도. 학보사 출신으로 <오마이뉴스>에도 자주 기웃거린다는 그는 학창시절 외웠던 ‘의심나면 다시 보고 수상하면 신고하자’를 되뇌면서 “반공 표어 외우면서 웃으면 이것도 ‘종북’으로 몰리는 것 아니야”라며 쓴웃음을 지었다.


사라진 명산대찰 모습들… 사진으로나마 볼 수 있어

  

▲ 금강산 표훈사 전경     조종안

 

동국사 주지 종걸 스님은 “조선의 불교는 경술국치를 전후해 일본 불교의 침투로 정통성을 잃어버렸고, 이에 대항하여 사부대중의 처절한 몸부림이 전국 곳곳에서 분출되었다”며 “그 처절했던 근·현대 불교 자료들을 모아 제5회 기획전시를 마련했다”고 말했다.


승려들 사진 외에 일본 최대종파 조동종 김천 포교소 봉안 불화를 비롯해 백용성 스님 한글 대장경, 귀원정종(용성스님 저서), 김옥균 유묵, 조선 전기 <쌍림 열반도>, <금오계첩>, <조선 개교 50년지>, <소치 허련 수묵화> 전등사본 말사지, 1900년 초기 신도증, 불교 잡지 <조선 불교>, 도자 채색 조선 인형 등이 눈길을 끈다. 
  
문화재의 소중함을 확인케 하는 사진도 있다. 남북분단, 화재, 중건 등으로 사라진 고찰들 모습이다. 남산 각성사, 정토종 부산 포교소(대각사), 통영 용화사, 1920년대 금산사, 1930년대 금산사 대적광전, 금강산 표훈사, 중건 전 금강산 마하연사, 금강산 부도군, 강화도 정수사, 일제강점기 초 황폐해진 불국사, 1930년대 동국사, 일제강점기 법회 모습 등이다. 그 중 몇 장을 소개한다.

 

▲ 금강산 표훈사 일부     조종안
▲ 금강산 표훈사 반야보전     조종안
▲ 중건 전 금강산 마하연사(일본지리대계)      조종안
▲ 1942년 강화도 정수사 청석교 기념(뒤편 큰 건물이 극락전)     조종안
▲ 보수 전 불국사 모습(일제강점기 초기)      조종안
▲ 1935년 군산 금강사(동국사) 모습     조종안
▲ 1937년 군산 금강사(동국사) 법회 모습     조종안


<2015-03-02> 신문고

☞기사원문: 불교계 이완용 ‘이회광’ vs 항일 ‘한용운’-‘백용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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