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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의 영웅’ 안중근 의사 뜻 재조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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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見利思義見危授命(견리사의견위수명)’
 

“이로움을 보았을 때에는 정의를 생각하고 위태로움을 당했을 때에는 목숨을 바치라”
 

이 문구는 안중근 의사가 남긴 20점의 유묵(遺墨) 중 하나다. 의사의 위인적인 풍모와 나라사랑에 대한 정신이 묻어나는 글귀로 잘 알려져 있다.
 

서울시 용산구(구청장 성장현)가 광복 70주년, 안중근의사 순국 105주년을 맞아 항일 독립운동과 세계 평화에 이바지한 안중근 의사를 추모하기 위해 ‘안중근의사 순국 105주년 추모식’ 지원에 나섰다.
 

현재 용산구 효창원 내에는 1946년, 백범 김구 선생 주도로 삼(三)의사의 묘 바로 옆에 조성된 안중근의사의 가묘가 모셔져 있다.
 

추모식은 안중근의사기념사업회, 안중근평화연구원, 민족문제연구소 주최로 21일 효창원 내 안중근의사 묘역에서 진행됐다.
 

안중근의사가 순국한 뤼순형무소 투옥 당시 일본인 간수마저 경외한 그의 기개와 관련한 일화는 유명하다. 당시 일본 간수 지바 도시치는 “일본이 당신 나라의 독립을 방해한 것을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일본인의 한 사람으로 사과드리고 싶습니다.”
 

이에 대해 안중근의사는 “그 말을 정중히 받아드리겠소. 일본인, 더구나 군인인 당신이 그 같은 말을 하리라고는 생각도 못했고 역사의 흐름 개인의 힘으로 어쩔 수 없을지도 모르오. 그러나 나의 이번 거사가 가까운 장래, 아니 먼 장래 일지도 모르지만 대한 동포들의 애국심을 고취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소이다.”
 

안중근의사는 1879년 9월 2일, 황해도 해주에서 출생했다. “나라를 위해 몸을 바칠 것을 오늘 우리 모두 손가락을 끊어 맹세하자”라며 1909년 2월 7일, 결사 동지 11명과 왼손 무명지를 자르고 태극기에 ‘대한독립’ 혈서를 썼다.
 

같은 해 10월 26일, 오전 9시30분 초대 조선통감이었던 이토 히로부미를 암살했으며 1910년 2월 14일 사형 판결을 받는다. 1910년 3월 26일, 뤼순 형무소에서 순국했다.
 

추모식은 특히 초등학생과 고등학생이 직접 참여하는 추모사를 통해 안중근의사를 재조명하는 것은 물론 후손들이 지켜야 할 것은 무엇인지 다시금 생각해보는 시간이 됐다는 평가다. 또한 ‘안중근 어린이 합창단’, ‘안중근 청소년 평화 오케스트라’가 참여하는 안중근 평화 작은 음악회도 눈길을 모았다.
 

성장현 구청장은 “대한민국의 자긍심을 드높인 민족의 영웅 안중근의사 추모식이 열려 기쁘게 생각한다”면서 “자랑스러운 우리의 역사와 위인을 추념할 수 있는 자리였다”고 말했다.
 


서정익기자

<2015-03-23> 전국매일신문

기사원문: ‘민족의 영웅’ 안중근 의사 뜻 재조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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