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로비로 진실에 장막치는 일본…긴 싸움의 시작
뉴욕에 주재하는 한국 고위 외교관과 만난 자리에서 들은 얘기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 진출을 노리는 일본이 세계에서 온 외교관들을 상대로 물밑 설득과 부탁을 하고 있다는 소문과 함께 일본이 이른바 ‘기금’이라는 형식으로 각종 국제단체와 기구, 개발도상국들에 대해 상당한 경제적 지원을 한다고 그는 말했다.
“솔직히 가끔이지만 대처하기가 힘들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어요. 일본은 아직도 막강한 경제대국이고 외교적 실익을 위해 경제력을 적극 활용하고 있습니다. 한국은 명분과 정의, 원칙에 호소하며 외교적 대처를 해왔지만 힘이 부칠 때가 있어요. 맨손과 책임감으로 막아내는거죠. 이른바 제3국들은 결과적으로 국가적 이익에 따라 움직이지 결코 정의의 손만 들어주지 않습니다. 그게 외교판의 냉정한 현실이에요.”
미 의회에서 일본군 위안부 결의안을 통과시킨 주역인 마이크 혼다 의원은 “일본이 정부차원에서 5억 달러를 투입해 미국 역사교과서 내용의 수정에 나섰다”고 한인들에게 전한 바 있다. 이 돈은 미국내 일본인 우익세력의 활동비 지원에도 쓰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더 착잡한 것은 이제 미국 학계의 뿌리를 겨냥하는 일본의 최근 움직임이다.
지난 12일 로이터는 “일본 정부가 1천500만 달러의 예산을 편성해 미국 대학에 지원하기로 했다”고 전했다. 미국내 일본과 중국 연구의 중심인 컬럼비아대도 지난해 500만 달러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고, 워싱턴의 조지타운 대학과 보스턴의 MIT 공대도 이 자금을 받게 된다고 한다. 일본의 국제교류재단인 ‘재팬 파운데이션’의 활동도 적극적이다. 이른바 ‘스마트파워’ 외교전략이다.
공공외교의 명분을 달고 있지만 강제 위안부와 난징 학살 등 일본의 불편한 과거사에 대한 미국내 각종 기술을 수정하려는 의도가 엿보임은 아는 사람은 다 알고 있다. 일본의 과거사는 그토록 염원하는 유엔 상임이사국 진출과도 맞물려있다. 그 가해의 역사에 손을 봐야만 유엔 논의과정에서 정당성의 논란을 최소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격분을 참을 수 없는 日우익의 주장
1편에 이어 다시 일본 우익단체의 자료를 살펴보자. 자신들의 반박 논리를 보충하기 위한 추가적 주장들은 한국인들이 보면 격분을 참을 길이 없게 만든다.
“어떤 조직이 20만 명의 젊은 여성들을 납치해서 성노예로 만들었는데 당시 20세기처럼 ‘비주얼 기술’이 발전된 세상에서 물질적 증거가 없을 수 있는가? 그렇게 납치됐다는 여성들의 가족과 친척들이 그후 50~60년이 되도록 정부에 피해를 호소하고 나서지 않았다는 게 가능한가? 유교사상 때문인가 아니면 수치심 때문인가? 납치됐다는 여성들을 욕되게 하기 때문인가? 만약 그런 일이 실제로 있었다면 왜 한국 남성들은 자신의 가족, 누이, 여자친구와 애인을 구하기 위해 싸우지 않았었나? 그랬다면 영웅이 되었을 것인데…”
마치 그동안의 한국내 피해자들의 대응과 폭로, 그리고 수많은 증거들이 하나도 공식적인 것이 아니고, 없었던 일인 듯 대담하게, 지난 경과를 한마디로 덮어서 왜곡하고 있다. 위안부 문제에 대한 사전 지식이 부족한 미국인들을 겨냥한 자료이기 때문이다. 짐작컨데 한.일 역사학자들이 제시해 온 증거들을 인정하지 않는 일본 정부의 마음 속에 있는 인식이 바로 이런 것일 가능성이 높다.
기림비에 대한 공세와 황당한 한국모욕
일본 우익단체들은 한인사회의 역사 알리기의 상징이 되고 있는 위안부 기림비에 대한 정치적 공세에도 적극적이다. 자료에는 미 뉴욕주 낫소 카운티에 있는 위안부 기림비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언급하며 사실이 아니라는 주장을 펴고 있다. “’20만 명 피해 여성’은 사실이 아니며 ‘성노예’는 증거가 없으며 컴포트 워먼(Comfort Women)이라는 그런 개념 자체가 없다”는 식이다. 오히려 적반하장의 반문이 이어진다. “위안부는 누구이고 어디서 왔는가? 왜 미국에 기림비를 세우는가? 일본의 혐의는 사실에 근거하지 않고 있다”는 주장을 계속한다.
아울러 이들은 일본내에서 반대 여론이 커지는 오키나와 미군기지 문제를 거론하며 미-일 연대를 강조하는 논리도 펴고 있다. 황당한 것은 “오키나와 기지를 반대하는 세력은 미-일 관계를 훼손시키려는 세력이다. 그들은 자신들이 동남 아시아의 패권을 차지하는데 미군 주둔이 장애물이 된다고 보고있다.”는 내용이다. 그들은 다름아닌 중국과 한국을 말하는 것이다.
황당하게도 “오키나와 기지 반대 시위에 중국 깃발이 등장하고 한글 구호가 등장했으며 한복을 입은 것 같은 여성이 눈에 띈다”고 쓰고 있다. 여기에 더해 한국을 직접적으로 음해하고 있다. “1960년대 한국은 유엔군과 미군 주둔을 위해 자국 여성들을 동원했다”는 주장까지 나온다. 자료의 결론부에는 핵폭탄 투하로 일본인들이 입은 피해를 언급하며 “우리는 전쟁의 참혹함을 잊지 않고있다. 그러나 지금까지 잘 극복해왔고 건설적으로(Constructively) 살아왔다”는 내용이 나온다. 이들이 말하는 ‘건설적’의 의미는 과거를 들춰내지 말라는 뜻인가?
현실이 된 아베의 미 의회연설…실리찾는 미국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미 의회 상·하원 합동연설이 기정사실화했다. 터무니없는 일본 우익의 주장이 그토록 전략적으로 느껴지는 것은 과거사에 대한 부정 속에도 곳곳에서 미-일 연대를 강조한다는 점에 있다. 한국에겐 그토록 뻔뻔한 일본이, 과거 미국에 준 상처에는 자세가 다르다. 미국 내에는 태평양전쟁 당시 일본군 포로로 극한의 고통과 절망을 체험한 베테랑(참전용사)들의 모임이 있다. 지금까지 일본 총리가 한번도 미 의회 연설 기회를 갖지 못한 것은 태평양전쟁의 원죄 때문이다.
아베의 이번 연설에는 미국인들의 상처에 대한 사과나 유감의 뜻이 담길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것은 단순히 연설 한번이 아니라 미국 정부가 일본의 과거사에 대한 일종의 ‘공식적 정리 의식’를 갖는 셈이 된다. 한국에는 외교적으로나 정서적으로나 난감한 일이다. 일본 우익의 역사 호도 전략이 이제 시작이 아니라 그 효과를 발휘하고 있는 느낌이 든다. 먼 미국땅 곳곳에 위안부 기림비를 세우고 일본의 역사왜곡에 맞서온 한국인들에게 더 길고 힘든 싸움이 기다리고 있다.
<2015-03-22> SBS
입력 : 2015.03.22 13:32|수정 : 2015.03.22 13:32 박진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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