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0년 동안 작사자 미상…왜?
애국가의 작곡가는 여러분도 익히 아시는 것처럼 안익태 선생입니다. 애국가 악보 오른쪽 상단에 작곡가 안익태란 이름이 정확하게 적혀 있습니다. 의문의 여지가 없는 역사적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게 끝입니다. 작사자의 자리는 여백으로 텅 비어 있습니다. 당연히 궁금할 수밖에 없습니다. 틀림없이 누군가 노랫말을 썼을 텐데 왜 대한민국의 국가인 애국가는 작사자가 빈 칸으로 존재하는 걸까요?
정확하게 60년 전인 1955년, 국사편찬위원회가 애국가 작사자 조사위원회를 꾸려 애국가 작사자가 누군지 공식 조사를 했습니다. 당시에도 꽤 논란이 많았던 듯 애국가 작사자 후보로 여러 명이 등장했는데요. 그 중에서 최종 후보가 된 인물은 조선 말기와 대한제국 시기의 정치인·외교관·언론인·교육자이자 개혁·민권운동가·기독교운동가였던 좌옹 윤치호(1865~1945)입니다. 당시 국사편찬위원회는 윤치호를 작사자로 확정할 건지 말 건지를 표결에 부쳤는데, 11대 2라는 우세한 결과가 나왔음에도 만장일치가 아니란 이유로 ‘미확정’으로 결론을 내립니다. 바로 이 결정이 기나긴 논란의 발단이 됐습니다.
■ 흥사단이 제기한 안창호 작사설
도산 안창호 선생의 주도로 설립된 흥사단은 2012년 8월 ‘애국가작사자규명발표회’를 열어 애국가 가사를 쓴 사람이 안창호 선생이라고 주장하고 나섰습니다. 그 근거로 독립운동가들을 비롯해 여러 인물들의 증언을 담은 구술과 신문기사, 잡지, 단행본 기록 등을 내세웠습니다. 흥사단이 수집한 증언들은 꽤 다양하고 양도 풍부합니다. 그리고 지난달 31일 흥사단이 주최하는 두 번째 ‘애국가작사자연구발표회’가 국회도서관에서 열렸습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새롭고 획기적인 증거는 나오지 않았습니다. 여전히 안창호 작사설은 구술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안창호가 애국가 가사를 썼다는 직접적이고도 명확한 사료는 아직 나오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안창호 작사설의 현실적인 한계입니다.
전문가들은 지금까지의 연구 결과를 놓고 냉정하게 판단해볼 때 구체적인 사료와 물증이 뒷받침된 윤치호 작사설이 가장 유력하다고 말합니다. 윤치호가 직접 쓴 가사는 물론 윤치호가 애국가의 작사자라는 기록들이 꽤 많이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윤치호 작사설을 오랜 기간 연구해온 김연갑 한겨레아리랑연합회 상임이사는 윤치호가 애국가의 작사자라는 사실에 의문의 여지가 없다고 잘라 말합니다. 구체적인 물증부터 유족들의 증언까지 ‘윤치호 작사’라는 역사적 사실을 명확하게 가리키고 있다는 겁니다. 1955년에 국사편찬위원회가 내린 ‘미확정’은 윤치호가 아니라는 뜻이 아니라 애국가 작사자가 윤치호라는 걸 ‘발표하지 않는다’라는 의미로 해석돼야 한다고 설명합니다. 그런데도 이 문제가 끊임없이 ‘논란’이라는 이름으로 다뤄지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게 김연갑 이사의 말입니다.
■ 친일파가 쓴 애국가 가사, 그 불편한 진실
애국가는 이미 100년이 넘게 불려온 노래입니다. 그럼에도 아직까지 작사자는 물음표로 남아 있습니다. 1955년 국사편찬위원회의 결정을 시작으로 이 문제가 60년 동안 정체된 상태로 논란만 거듭해온 데는 윤치호라는 인물의 친일 전력이 주는 불편함이 존재합니다. 윤치호는 친일인명사전에 친일파로 분류된 친일인사입니다. 이런 사람이 쓴 가사를 100년이 넘도록 불렀다는 게 말이 되느냐, 윤치호가 썼다는 걸 인정하고 차라리 애국가를 바꾸자, 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반면, 안창호 작사설에는 모든 국민에게 의심의 여지없이 존경받는 도산 안창호 선생이 애국가의 작사자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정서적 바람이 담겨 있습니다. 토론회 발제자로 나선 김준혁 한신대 교수는 애국가 작사자 논쟁의 불편한 진실 속에 ▲윤치호 계열의 YMCA와 안창호 계열의 흥사단의 불편한 관계 ▲기독교와 불교 간의 불편한 관계 ▲친일파와 독립운동가들의 불편한 관계 ▲친미세력들과 국내 자주파들의 불편한 관계 등이 복잡하게 얽혀 있다고 지적합니다. 그만큼 애국가 작사자 문제는 오래 정체돼 있습니다.
■ 60년 동안 정부는 뭘 했나?
<애국가 작사자는 윤치호, 김연갑 ‘한판승’> 어제 국회토론회를 정리한 어느 언론보도의 제목입니다. 토론회 발표 내용만을 놓고 보면 학술적 근거와 명확성이라는 측면에서 윤치호 작사설이 보다 더 역사적 사실에 가깝다고 판단할 수밖에 없습니다. 다만, 그럼에도 끊임없이 제기되는 이런저런 논란들의 실타래를 풀어내기 위해서는 본격적인 학술 연구 조사가 시작돼야 한다는 데는 모두 공감하고 있습니다. 특히 일각에서는 미국 에모리대학에 소장된 윤치호 일기의 경우 전면적인 번역과 조사를 해야 한다고 지적합니다. 사실 60년 동안 이 문제에 공전된 데는 정부의 무책임이 큰 몫을 했다는 걸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습니다. 다른 것도 아닌 국가를 대표하는 노래인데도 말입니다. 서로 다른 견해를 가진 사람들조차 이제는 정부가 애국가 작사자 규명에 발 벗고 나서야 한다고 한 결 같이 입을 모으는 이유입니다.
김석기자 (stone21@kbs.co.kr)
<2015-04-01> KBS
☞기사원문: [취재후] 애국가 작사자는 도대체 누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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