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
한국사교과서 ‘국정화’를 위한 포석, 김정배 국편위원장 취임 우려스럽다
1. 지난 달 30일 국사편찬위원회(국편) 새 위원장에 김정배 전 고려대총장이 취임했다. 국편은 해방 직후 1946년에 창설된 한국사 사료수집ㆍ편찬을 담당하는 국가기관이다. 그리고 2008년 기존의 사료 수집법을 전면 개정한 ‘사료의 수집·편찬 및 한국사의 보급 등에 관한 법률’이 제정, 공포됨에 따라, 사료의 수집·연구·편찬뿐만 아니라, 역사대중화에 역점을 두어 한국사 교육 및 보급 활동을 강화하고 있다. 게다가『한국근현대사』파동을 겪으면서 역사 교과서 교육과정 개발 및 교과서 검정에 관한 업무 역시 국편으로 넘겨졌다. 교육과학기술부가 교과서 검정의 공정성과 전문성을 확보한다는 명목으로 검정 업무를 국편에 이관한 것이다. 교과서 집필의 준거를 제시하는 ‘교과서 집필 기준과 편찬상의 유의점에 대한 개발’ 업무 또한 국편이 맡고 있다. 교육과정과 교과서 편찬과 관련된 대부분의 업무를 국편이 주관하고 있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국편은 대한민국의 역사를 공식적으로 관장하는 기관이다. 국편이 이처럼 중차대한 기관이므로, 위원장은 업무 수행에서 공정성을 견지해야 하고, 학문적 전문성과 정치적 중립성을 갖추어야 한다.
2. 김 신임위원장의 공정성 문제에 관해서는 이명박 정권 때 그가 원장으로 재직하고 있었던 한국학중앙연구원(한중연)의 교수협의회에서 평가를 내린 바 있다. 교수협의회는 한중연 원장 임기 만료 2개월 앞두고 김정배 원장에 대한 입장을 발표하면서 ▲겸직으로 인한 직무 소홀 ▲독선적인 인사행정 ▲지원단체로부터의 명예학위 등으로 인한 공정성과 도덕성 위배 행위 등을 지적한 바 있다(2011.2.25.). 성명서에서 교수협의회는 “재임 기간 동안 보여준 김정배 원장의 독단적이고 파행적인 운영은 본원 구성원들 사이에 불신과 반목을 조장하였”기에, 연임에 반대한다고 하였다. 김정배 원장은 한중연 구성원들로부터 ‘공정성’과 ‘도덕성’에 흠결이 있는 인물이라는 평가를 받은 것이다. 이처럼 과거 기관장 재임시절 ‘불신임’을 받은 전력으로 볼 때, 그가 과연 국편위원장으로서 중차대한 직무를 공정하게 수행할런 지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다.
3. 무엇보다도 우려되는 것은 학문적 전문성과 정치적 중립성이다. 2013년 친일·독재를 미화하는 교학사『한국사』교과서에 대한 사회적 비판여론이 한참 고조될 때, 김정배 신임 국편위원장은 ‘역사교육을 걱정하는 사람들’의 이름으로 교학사교과서 살리기 운동에 참여하였다(2013.9.10.). 이들은 교학사교과서 파동이, “(교학사) 필자들의 역사관이 지난 10여 년 간 우리 역사 교과서 집필을 거의 독점하다시피 해온 사람들과 다르다는 것을 문제 삼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임이 분명하다.”하다며, 이는 “잘못된 것으로 왜곡 보도되었던 내용이 전혀 사실이 아닌 것으로 판명된 지금도 사과와 반성은 없이 공격이 가열되고 있는 데서 드러난다.”고 주장하였다. 교학사『한국사』가 ‘사관’이나 ‘사실’ 면에서 아무런 문제가 없는데 애꿎게 “정쟁의 도구화”가 되었다며 비호하고 나선 것이다.
4. 그러나 같은 날 역사4단체(한국역사연구회, 역사문제연구소, 민족문제연구소, 역사학연구소 등)가 교학사 교과서에 대한 공개설명회를 개최하여, “짧은 시간(3일)에 교학사『한국사』를 1차 검토한 결과 확인된 사실 오류만 298건”이라고 하였다. 교과서는 기본적인 ‘사실’을 정확히 서술하여 역사지식을 제대로 학습하도록 해야 하는데, 교학사『한국사』는 “학생들이 시험문제 답을 찾을 수 없을 정도의 저 품질(경악할 수준의 오류들)”의 ‘날림’교과서라는 것이다. 이어 역사4단체는 교학사『한국사』는 “조악한 문장, 국민상식을 벗어나는 비뚤어진 역사관(친일미화, 독재찬양)에 바탕을 둔 왜곡과 편향, 전도된 가치관으로 채워진”‘불량’역사교과서라고 판정하였다.
5. 이에 당황한 교육부는 그 다음날인 11일 “국편에서 검정 심사하여 합격 발표한 고교 ‘한국사’ 교과서 8종 모두를 대상으로, 10월 말까지 수정?보완을 추진할 방침임”을 발표하였다. 이는 교학사 교과서를 비호하기 위해 내놓은 전형적인 ‘물타기’ 꼼수였다. 이처럼 교육부조차 수정?보완의 필요성을 인정한 교학사『한국사』교과서를, 김정배 신임 국편위원장 등은 ‘사실’과 ‘사관’ 면에서 아무런 문제점이 없다고 평가한 것이다. 우리가 김정배 신임 국편위원장의 학문적 전문성과 정치적 중립성에 ‘합리적 의심’을 제기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6. 뿐만 아니라 김정배 신임 국편위원장은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문제가 논란이 되기 시작한 작년 4월 뉴라이트 등 보수적 성향의 인물들이 주로 참여한 한 세미나에서, 한국사 교과서 집필 방향과 관련해 “국가 지도자의 경우 어느 하나의 과오를 내세워 독재자나 악인으로 폄하하는 것은 역사학이 걸어가야 할 길이 아니다”면서, “인물 특히 지도자 품평에 공7, 과3의 상식 기준을 적용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주장한바 있다(2014.4.9.). 여기서 ‘공7, 과3’의 국가 지도자가 누구를 지칭하는지 짐작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이미 공식적으로 역사적인 평가가 내려진 인물을 ‘공과’를 기준으로 한국사 교과서의 서술을 통해 재평가해야 한다는 주장은 시대착오적인 궤변일 수밖에 없다.
7. 언론에 따르면 유영익 전 위원장이 임기를 19개월 남겨둔 상태에서 중도 퇴직한 것은 ‘고령’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나 취임 당시 일부에서 고령을 이유로 반대했음에도 불구하고 박근혜정부가 임명을 강행했다. 또한 신임 국편위원장도 70대 중반의 고령임에 비추어볼 때, 나이 때문에 중도 퇴직했다는 언론보도는 사실 그대로 받아들이기 어렵다. 유영익 전 위원장이 강행한 ‘이승만 살리기’에서 더 나아가 ‘박정희 살리기’와 한국사 교과서의 ‘국정화’ 추진을 위해, 교학사 교과서를 나서서 비호하고 국가지도자 재평가론을 편 인물을 신임 국편위원장으로 임명하였다는 주장이 더 설득력 있어 보인다. 게다가 한중연 원장 시절 보여주었던 일방적인 ‘독주운영’도 불통의 박근혜정부로서는 ‘추진력이 강한’ 것으로 높이 평가했을 것이다.
8. 이번 김정배 국편위원장 임명을 계기로 국편의 정치적 편향은 더욱 심해질 것이며, 나아가 박근혜정부가 오매불망하는 역사쿠데타 곧 한국사교과서의 국정화 또한 박차를 가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미 2013년 교학사『한국사』교과서의 검정승인으로 공정성 시비에 휘말린 국편이 이번에 또다시 한국사 국정화 추진에 앞장설 경우, 존재이유 자체를 부정당하는 나락으로 떨어질 것임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끝>
2015년 4월 6일
친일·독재미화와 교과서개악을 저지하는
역사정의실천연대
상임대표: 한상권(학술단체협의회 공동대표)
공동대표: 변성호(전국교직원노동조합 위원장)
이완기(민주언론시민연합 상임대표)
임헌영(민족문제연구소장)
정동익(사월혁명회의장)
최은순(참교육을 위한 전국학부모회 회장)
한상균(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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