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메라고발] 효창공원… 버려진 무덤, 짓밟힌 대한민국 법통
이만열 전 국사편찬위원장은 지난 9일 <경향신문> 시론에서 “‘대한민국’이란 국호는 1919년 4월 11일 공포된 대한민국 임시헌장 1조 ‘대한민국은 민주공화제로 함’이라는 데서 시작하여, 그해 9월 통합임시정부 임시헌법의 ‘대한민국은 대한 인민으로 조직’한다는 조항을 거쳐, 1948년 제헌헌법 제1조의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고 계승되었다”면서 “1948년 대한민국 정부를 세울 때, 새 정부는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고 대한민국 정부 수립 과정을 설명했다.
그래서 박근혜 대통령은 기념식장에 화환을 보냈고 보훈처(처장 박승춘)는 이완구 국무총리와 광복회원, 유족과 시민 등이 참석한 가운데 13일 오전 10시 서울 용산구 백범김구기념관에서 ’96주년 대한민국임시정부수립 기념식’을 거행했다. 박승춘 보훈처장은 광복회가 주관한 추념식에 참석한 뒤 광복회원 등 독립유공자들과 점심을 같이 했다.
그런데 이를 바라보는 시선이 곱지 않다. 1969년부터 올해까지 46년째 효창공원을 찾고 있는 김용삼(66) ‘효창원을 사랑하는 사람들'(아래 효사모) 운영위원은 13일 “국무총리와 보훈처장과 광복회장이 묘역에 참배하는 것을 보지 못했다”면서 “독립선열 묘역이 먼 데도 아닌 기념관 바로 옆인데도 참배하지 않은 것은 선열에 대한 예우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보훈처 관계자는 같은 날 “보훈처장은 7위 선열의 위패를 모신 추념식에 참석하고 독립유공자와의 오찬 등 일정이 빠듯해 참배를 하지 않았다”면서 “대신에 보훈처장 명의의 화환을 묘역에 보냈다”고 참배 불참 배경을 설명했다.
버려진 무덤, 짓밟힌 법통의 현장으로
▲ 의열문은 열쇠로 잠겨 있고(위쪽 왼쪽), 의열문 왼쪽 문에는 의미심장한 낙서가 있고(위쪽 오른쪽) 의열문에는 ‘지옥’이라는 낙서(아래쪽 왼쪽) 그리고, 효창공원 관리사무실의 안내 팻말이 의열문 정문에 서 있다. | |
ⓒ 조호진 |
그렇다면 보훈처장도 찾지 않은 독립선열들의 묘역은 잘 보존되고 있을까.
지난달 1일과 지난 10일 두 차례에 걸쳐 효창공원 의열사와 김구 주석 묘역, 임정요인 묘역, 삼의사 묘역 등 독립선열 묘역을 심층취재했다. 짓밟힌 법통의 현장, 버려진 무덤 취급을 받는 독립선열 묘역현장으로 여러분을 안내한다.
▲ 의열사 사당의 문고리는 녹슬고, 창살은 먼지에 뒤덮였다. 관리 소홀의 심각함이 그대로 드러났다. | |
ⓒ 조호진 |
효창공원은 근린공원으로 지정돼 용산구청이 관리한다. 1989년에는 사적 제330호로 지정돼 문화재청이 관리감독 기관이다. 독립국가의 정체성과 법통이 제대로 이어졌다면 독립선열 묘역과 근린공원의 조합이 나쁘지 않을 수 있다. 역사의 추모공간이자 시민의 휴식공간으로 자리매김한다면 독립선열들도 흐뭇해 할 것이다.
▲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일인 지난 13일 효창공원 삼의사 묘역 앞에서 여성들이 음악을 틀어 놓고 춤을 추고 있었다. 국민건강보험 용산지사에서는 매주 월수금 3차례 여성들을 대상으로 에어로빅을 강습하고 있다. | |
ⓒ 김용삼 |
그런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 대다수 시민들은 효창공원 혹은 효창운동장은 알아도 독립선열 묘역은 알지 못한다. 독립선열 묘역이 잊힌 무덤, 버려진 무덤 취급을 받게된 것은 김구 주석을 반대한 정치 세력의 탄압 때문이다. 술꾼들은 술을 마시고, 지역 주민들은 에어로빅 댄스를 배우고, 목줄 풀린 개들이 돌아다니며 똥을 싸기도 한다. 임정 수반과 독립선열이 농락 당하는 현장이 효창공원이다.
▲ 지난 4월 10일 취재한 효창공원 화장실 인근에 적치된 마대자루에는 막걸리 빈병이 수북이 담겨 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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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배하려면 공원관리사무실로 오라고?
카메라를 들고 의열사(義烈祠)부터 가보자. 의열사는 백범김구기념관 바로 옆, 효창공원 후문 쪽에 위치해 있다.
의열사는 김구 주석을 비롯해 임정 의정원원장과 국무총리를 지낸 이동녕(1869~1940), 국무위원과 비서장을 지낸 차리석(1881~1945), 광복군을 창설하고 군무부장을 지낸 조성환(1875~1948), 일왕 히로히토에게 수류탄을 던진 의사 이봉창(1900~1932), 상해 의거의 주인공인 의사 윤봉길(1908~1932), 아나키스트 계열의 독립운동가인 백정기(1896~1934) 등 임정 수반과 독립운동가 7인의 영정이 모셔진 사당이다.
그런데, 의열사로 들어가는 대문 곧, 의열문(義烈門)은 상시적으로 잠겨 있다. 의열문 앞에는 “의열사는 훼손 우려가 있어 상시 개방하지 않습니다. 참배를 원하시는 분은 효창공원 관리사무실로 연락해 주기 바란다”는 안내 팻말이 서 있다. 효사모 회원들은 “참배를 확장해야 할 기관이 관리편의를 위해 참배객을 차단하고 있다”면서 “의열사를 창고로 만드는 관리 행태를 중단하고 상시 개방으로 국민들의 선열 추모를 함양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 의열문 안쪽을 보니 대못이 흉하게 드러났다.(위 왼쪽) 사적지 관리를 이렇게 해도 되나. 문화재청은 관리감독을 하고 있나. 의열사로 들어가는 쪽의 박석은 심하게 들쑥날쑥했다.(위 오른쪽) 의열사 사당 계단은 틈새가 벌어지고(아래 왼쪽), 문고리는 녹슬고, 창살은 먼지에 쌓였다.(아래 오른쪽)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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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서판 의열문… 도박, 지옥, 식칼, 남성 성기까지
의열문은 낙서판으로 둔갑해 있었다. 눈에 크게 띄는 것은 “할마시들 여기는 도박을 하는 곳이 아니니 삼가 주시기 바랍니다”라는 낙서와 ‘지옥’이라는 낙서다. ‘지옥’이란 낙서는 사당을 우상숭배 장소로 여기는 특정 종교인의 경도된 행동으로 추정된다. 심지어 남성 성기로 보이는 그림과 식칼처럼 보이는 그림도 그려져 있다. 낙서가 매우 심했던지 지운 흔적도 역력했다.
김용삼 효사모 운영위원은 “지금은 뜸해졌지만 예전에는 화투 치고, 술 먹고, 고기 구워 먹는 모습이 종종 목격됐다”고 말했다. 방학진 민족문제연구소 사무국장은 10일 “효창공원 쓰레기 분리수거함에선 소주병이 눈에 띄었고, 재활용품 마대자루에선 막걸리 빈병들이 가득했다”고 말했다. 독립선열을 추모해야 할 묘역이 유원지로 전락했다는 지적이다.
▲ 의열사 담장에는 검정 플라스틱 호수가 버려졌고(왼쪽), 의열사 뒤편에는 차양막 등이 방치됐고(오른쪽 위쪽) 의열사 담장 위에는 깨진 기와들이 아무렇게나 얹혀 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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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열사 뒤쪽이다. 여름에 사용하는 차양막과 나무들이 방치돼 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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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이 독립선열을 모신 곳인가?
지난 3월 1일, 잠가 놓았던 의열사가 모처럼 개방됐다. 반가운 마음으로 의열사 안으로 들어갔다. 의열사는 후손들의 발길이 끊긴 흉가를 연상케했다. 문은 심하게 녹슬었고, 창살에는 먼지가 켜켜이 쌓였다. 낡은 창호지는 구멍이 숭숭 뚫렸고, 의열사 담장 밖에는 플라스틱 파이프가 한다발이나 버려져 있었다.
의열문 안쪽에는 대못이 흉하게 드러나 있었다. 사적지인데 못질을 이렇게 해도 되나. 또 의열사로 들어가는 입구의 박석은 심하게 울퉁불퉁했다. 의열사 계단은 틈새가 벌어지고, 의열사 뒤쪽의 담장 위에는 깨진 기와들이 아무렇게나 얹혀 있었다. 관리소홀의 범위를 한참 벗어난 상황이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14일 “지난해 1월 특별점검을 통해 문제점을 확인했다. 의열사 담장과 박석 등을 보수하기 위해 용산구청에 3억 원을 지원했다”면서 “소화기 관리부실 등의 문제를 빨리 해결하도록 용산구청에 촉구하고 독촉하겠다”고 말했다.
▲ 의열사에 설치된 분말소화기의 제조일자는 2005년 11월로 표기됐다. 거의 10년이 된 소화기인 셈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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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재위험에 노출된 의열사… 10년된 소화기, 점검표엔 곰팡이만
문화재청에 따르면 2005년 낙산사 화재 이후 지난해까지 9년간 38건의 국가지정 목조문화재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이 가운데 국가지정 사적지에서 발생한 화재가 15건으로 가장 많았고 그 다음이 중요민속문화재 10건, 국보와 등록문화재는 각각 2건이었다. 발화 원인으로는 실화에 의한 화재가 15건으로 가장 많았고, 2006년 창경궁 문정전과 2008년 서울 숭례문 화재처럼 방화에 의한 화재도 6건 발생했다.
의열사는 화재에 취약한 목조문화재 사적지다. 의열문 좌우에 분말소화기 2개, 의열사 좌우에 분말소화기 4개, 의열사 뒤쪽에 이산화탄소 소화기 2개가 배치돼 있다. 그런데 소화기 제조일자가 2005년, 2007년 등 10년과 8년이 된 소화기가 배치됐다. 점검표에는 점검을 확인한 흔적은 없었고, 곰팡이가 얼룩져 있었다. 어떤 소화기는 제조일자도 표기돼 있지 않았다.
용산구청 관계자는 13일 “소화기 관리를 수시로 하고 있다, 소화기를 수시로 교체도 하고 있다”고 답변했다. 이에 기자가 “제조일자가 10년 된 소화기도 있고, 점검 흔적도 없다”고 지적하자 “소화기가 사용 가능한지 점검하겠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또한 “문화재청의 3억 원 예산지원으로 의열사 박석과 단청 등을 정비하는 설계가 발주됐다”면서 “국가 예산을 받아서 관리하다 보니 예산과 인원부족 등의 어려움이 많다, 묘역들이 오래되다 보니 (묘역 축대가 가라 않는 등) 등 문제점이 있다”고 애로사항을 밝혔다.
김용삼 효사모 운영위원은 또한 문화재청과 용산구청의 정비계획에 대해 “김구 주석이 서거한 당시에는 참배객이 끊이지 않던 민족의 정신적인 지주, 역사의 국립묘지가 효창공원이었다”면서 “(3억 예산으로 하는 자치단체의 정비계획에 대해) 조령모개 식의 정비가 될 것 같아 우려된다”고 말했다.
▲ 방학진 민족문제연구소 사무국장이 김구 주석 묘역의 움푹 패인 박석을 지적하고 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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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범 김구 주석이 안장된 묘역 계단의 맨 위의 왼쪽과 오른쪽 경계석이 삐뚤어졌고(위 왼쪽), 김구 주석 묘역 입구 왼쪽 경계석이 깨졌는데도 방치한 기간이 오래됐는지 흔적이 역력하고(위 오른쪽), 묘역을 오르는 계단의 틈새가 눈에 띄게 벌어졌고(아래 왼쪽) 박석은 심하게 들쑥날쑥 튀어나오고 움푹 꺼졌다.(아래 오른쪽)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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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범 묘소가 불에 탔던 사실을 아십니까?
다음은 백범 김구 주석의 묘역으로 가보자. 1949년 6월 26일 흉한 안두희의 총탄에 쓰러진 김구 주석은 민족의 존경과 애도의 국민장을 통해 같은 해 7월 5일 현재 묘역에 모셔졌다. 그런데 66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김구 주석 묘역은 버려진 무덤 취급을 당하고 있다.
기자가 확인한 결과, 김구 주석 묘역으로 올라가는 계단 상단의 왼쪽과 오른쪽 경계석이 삐뚤어져 있었다. 묘역 입구 왼쪽 경계석이 깨졌는데도 방치한 기간이 오래된 흔적이 역력했다. 묘역을 오르는 계단의 틈새가 눈에 띄게 벌어졌고, 주석 묘역 앞의 박석은 심하게 울퉁불퉁하다. 참배객이 푹 꺼진 박석에 걸려 넘어질 수도 있어 보였다.
김용삼 효사모 운영위원은 백범 주석 묘역 화재와 관련된 일화를 들려주었다. 1970년 말경 혹은 1980년 초 무렵 백범 선생 묘역에 방화로 추정되는 화재가 발생했다. 이 사실을 한 언론에 알렸지만, 끝내 보도하지 않았다고 한다. 결국 김구 주석 묘역 화재 사건은 다른 신문에 짧게 단신으로 보도됐다고 한다.
▲ 김구 주석의 묘역 뒷동산 소나무는 와이어에 심하게 상한 상태였다. 용산구청은 기울어진 소나무를 붙잡기 위해 와이어로 감아서 지탱하려고 하면서 나무가 심하게 상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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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음하는 소나무… “백범 추모 동산, 나무도 건강해야”
김구 주석 묘역 뒷동산에 가보았다. 용산구청은 묘역 뒷동산의 기울어진 소나무를 로프와 와이어를 이용해 옆의 소나무에 묶었다. 기울어진 소나무와 붙잡는 와이어가 반작용하면서 소나무가 심하게 패이고, 수액이 흘러나왔다.
사단법인 생명의숲(이사장 이돈구) 유영민 사무처장은 14일 “전문적인 조경기술을 적용하지 않고 임기웅변식의 대응으로 인해 수목의 수피가 상처가 났다”면서 “이대로 방치하면 철선에 묶인 부위 상단부가 고사할 수 있고, 거센 태풍에 부러질 우려도 있다”고 진단했다.
유 사무처장은 또한 “(상한 소나무에 대해) 수목치료 전문가에게 정확한 진단을 의뢰하는 등의 응급조치가 취해져야 한다”면서 “묶인 철선과 로프를 제거하고 제대로 된 고정 장치가 설치되어야 한다”고 소나무 살리기 조치를 용산구청에 촉구했다.
유 사무처장은 특히 “백범 묘역 동산은 김구 주석을 참배하고 추모하는 공간이기 때문에 주변의 나무들도 아름답고 건강해야 한다”면서 “건강한 숲이 되기 위해서는 정기적인 모니터링과 전문적인 진단과 처방 그리고 시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 방학진 민족문제연구소 사무국장이 ‘삼의사’ 묘역의 훼손된 박석을 들어보이고 있다. 관리부실로 훼손, 방치된 박석들이 참배객들의 안전까지 위협할 지경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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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의사 철대문의 태극 문양은 심하게 녹슬어 참배객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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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봉창, 윤봉길, 백정기 ‘삼의사’ 묘역… 눈살 찌푸리게 하는 관리 부실
안중근 의사의 가묘(假墓)와 이봉창, 윤봉길, 백정기 의사가 안장된 ‘삼의사’ 묘역은 1946년 김구 주석의 봉환에 의해 조성된 묘역이다. 묘역 맨 왼쪽에는 안중근 의사의 가묘가 있다. 중국 뤼순 감옥에서 순국한 안 의사의 유해를 찾으면 안장하려고 마련한 빈 무덤이다.
삼의사 묘역 정문 오른쪽 ‘삼의사묘 정문’이라는 글씨가 새겨진 돌은 녹물이 심하게 번졌고, 묘역 입구 왼쪽 경계석은 심하게 파손됐다. 철대문 경첩과 태극 문양은 페인트 칠이 벗겨지고 녹이 슬어서 참배객의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 방학진 민족문제연구소 사무국장이 삼의사 묘역의 벌어진 축대에 손을 넣어 보이고 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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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년 세월이 흐르면서 버려진 독립선열 묘역
효창공원 독립선열 묘역은 66년의 세월이 흐르면서 버려진 무덤이 됐다. 방학진 민족문제연구소 사무국장은 ‘국립효창원 승격’으로 민족정기 선양과 시민휴식 공간을 만들자고 제안했다.
방 국장은 “용산 지역 일부 정치인들이 ‘국립효창원이 되면 땅값이 떨어진다’, ‘국립묘지는 혐오시설’이라는 등의 마타도어 식의 선동을 하면서 국립효창원을 왜곡했다”고 무산 배경을 설명하면서 “국민과 지역민의 힘을 모아 성숙한 시민의 휴식공간이자 역사의 추모공간인 국립효창원을 만들자”고 호소했다.
방 국장은 또한 “일제가 민족정기를 훼손하기 위해 효창원을 효창공원으로 격하 시켰으니 이제라도 효창공원을 국립효창원으로 승격해야 한다”면서 “국가가 마땅히 선양하고 관리해야 할 독립선열 묘역을 구청이 관리하는 게 말이 되는가, 정부가 효창원을 운영 관리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방 국장은 지역주민에게 “효창공원은 지역주민의 휴식공간이기 때문에 휴식을 취하고 에어로빅을 즐길 권리가 있다”면서 “다만, 이곳이 역사적인 공간 임을 감안해서 추모와 경건함을 해치지 않도록 묘역과 떨어진 원효대사 광장으로 옮겨 에어로빅을 즐기면 좋겠다”고 대안을 제시했다.
▲ 임정요인 묘역 철문 경첩이 심하게 녹슬었다. 개인주택이라면 이렇게 방치했을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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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동녕 주석과 차리석 비서장, 조성환 군무부장 등 임시정부 요인이 잠든 임정요인의 묘역도 철대문은 녹슬고, 계단은 틈새가 벌어졌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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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창공원은 독립선열이 안장된 성지다. 김구 주석이 서거한 직후에는 추모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지만 이승만, 박정희 대통령 등 정치권력의 탄압에 의해 수난의 세월을 견뎌야만 했다. 문제는, 국민 대다수가 이런 사실과 독립선열 묘역의 존재도 모른 채 효창공원과 효창운동장으로만 알고 있다는 것이다.
▲ 효창공원 맞은편에 위치한 효창운동장. 효창운동장은 독립선열들의 수난 현장이기도 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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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창공원운동장 설치 지시자 조사처단하라”
<동아일보> 기사로 이 기사를 마무리해야 겠다. 다음은 1956년 6월 10일자 <동아일보> 기사 전문이다.
국회 본회의에서는 “선열의 묘지가 있는 효창공원의 운동장 설치공사는 국회의 조사가 끝날 때까지 중지하자”는 김두한 의원의 대정부건의안을 이이없이 채택하였다.
김구씨의 묘지를 위시하여 삼열사 등 선열의 묘지가 있는 효창공원의 운동장 설치공사는 그간 전국민의 이목을 집중시켜왔던 것으로 특히 이날 국회에서는 동공사는 ‘민족혼’의 마비를 초래한다는 주론이 대두되었으며 공사 지시자를 처단할 것을 요구하는 발언도 있었다.
조병옥, 양일동 등의 의원은 김두한 의원의 제안에 전적으로 찬성하고 특히 양일동 의원은 “과거 그들 선열들은 누구에게 학대를 당하였으며 지금은 또 누구에게 학대를 당하고 있느냐” 추궁하면서 “정부에 친일분자가 충만하고 있기 때문에 효창공원운동장 설치 지시자를 조사처단할 것”을 강조하였다.
○ 편집ㅣ최유진 기자
<2015-04-19> 오마이뉴스
☞기사원문: 화투 치고, 술 먹고… 몸살 앓는 독립선열 묘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