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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환의 흔적의 역사] 이승만 저격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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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인은 62살 유시태, 선동은 69살 국회의원 김시현….’

최근 1952년 6월25일 일어난 이승만 대통령 암살시도 사건의 장면을 포착한 사진이 공개됐다. 6·25 2주년을 맞아 부산 충무로 광장에서 연설 중이던 대통령의 뒤에서 유시태가 총을 겨누기 직전의 사진이었다. 사건은 권총 불발로 미수에 그쳤다. 의열단 출신의 독립투사 두 사람이 벌인 저격사건은 엄청난 파장을 일으켰다. 호호백발의 두 노인은 왜 이 대통령을 향해 방아쇠를 당긴 것일까.

“괴뢰의 도발이 예상됐는데도 전혀 준비하지 않았고, 전쟁이 발발하자 혼자 살자고 도망갔으며, 끝내 사과 한마디 하지 않았다. 또한 국민방위군 같은 사건으로 수많은 젊은이들이 죽고….”  

김시현(사진)은 8월22일 열린 공판에서 “이 대통령은 할복자살하기 전에는 대중의 원한을 풀지 못할 것”이라고 극언했다. 김시현·유시태 두 사람은 불의를 보면 먼저 권총을 빼드는 ‘뼛속까지 의열단원들’이었다. 의열단은 일제관공서 파괴와 요인 암살과 같은 폭력투쟁을 독립운동의 노선으로 삼은 무장독립단체였다. 김시현은 폭탄제조와 밀정처단 등으로 6차례에 걸쳐 15년간 옥고를 치렀다. 유시태 역시 의열단 군자금을 모으려다가 7년형을 선고받았다. 두 사람은 광복·전쟁을 거치면서 백발로 변했지만 의열단 기질은 여전했다. 김시현은 1951년 10월부터 “그 자(대통령)는 해외에 있을 때부터 파벌을 조성하고 사욕에 치우쳤다”면서 “죽이겠다”고 공언했다. 유시태는 그런 김시현의 제안에 “내가 하겠다”고 자처했다. 설상가상으로 부산의 피란정국은 큰 혼란으로 빠져들었다. 이 대통령은 간선제로는 임기를 연장할 수 없다고 보고 대통령 직선제를 골자로 한 개헌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땃벌대와 백골단 같은 깡패조직을 동원한 대통령은 급기야 국회의원 50여명을 태운 통근버스를 끌고가 구속시켰다. 이것이 부산정치파동이다(1952년 5월26일). 피끓는 의열단 출신 노혁명가들은 전쟁통인데도 정권연장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이 대통령을 그냥 둘 수 없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유시태가 대통령 3m 뒤에서 당긴 총탄은 모두 불발로 끝났다. 유시태는 “불발인 줄 알았다면 거사에 나서지 않았을 것”이라고 분통을 터뜨렸다. 두 사람은 사형을 선고받았지만 무기징역으로 감형된 뒤 4·19혁명 이후 석방됐다. 이것이 한 장의 사진에 담긴 곡절 많은 현대사의 사연이다.

<2015-05-05> 경향신문

☞기사원문: [이기환의 흔적의 역사]이승만 저격사건  

※관련팟캐스트

http://www.podbbang.com/ch/8383?e=217072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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