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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대사관 홈페이지 친일 표현 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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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근 의사, 이토 ‘암살’ 여기가 일본 극우 사이트?

대일본 외교정책의 중심이 돼야 할 주일 한국대사관이 인터넷 홈페이지에 자신들의 과거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일본이 사용하는 용어들을 8년 이상 기재한 사실이 알려져 파문이 일었다. 더욱 충격적인 사실은 이는 과거 전두환 정권이 일본에 역사적 사실 관계를 왜곡했다며 시정을 요구한 용어들이었다는 것. 현 정권이 일본에 대해 강경한 입장을 보이는 것과도 상충될뿐더러 자국의 이익을 위해 외교 최일선에 선 이들의 심각한 역사의식 부재를 드러낸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크다.<편집자주>


주일 대사관 홈피, 이토히로부미 암살·한일합방 등 사용

일본이 일제 치하 만행을 은폐·미화 위해 사용한 표현들

사과 없이 삭제만 한 대사관…‘역사 인식 부재’ 비난 커


[주간현대=조미진 기자] 주일 한국대사관 인터넷 홈페이지에 자신들의 책임을 회피하려는 일본 입장이 담긴 용어들이 버젓이 개재돼 국민과 전문가들을 경악케 했다.

▲ JTBC 뉴스 보도화면 캡처. ? 주간현대

외교 최전선의 대사관이…

지난 6월15일 <세계일보>는 주일 대한민국 대사관이 홈페이지에 일본식 역사왜곡 표현들을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도 했다. 

실제로 이날 오전까지 주일 대사관 홈페이지에 게재된 ‘한일관계 연표’에서 ▲을사보호조약(제2차 한일협약) ▲1909 안중근의사, 伊藤博文(이토 히로부미) 암살 ▲한일합방 등 우리 정부가 대표적인 역사왜곡 표현으로 규정하고 있는 문구들이 사용됐다.


이러한 문구들은 지난 1982년 제1차 일본교과서 파동 당시 전두환 정권 시절 우리 정부가 일본 정부에 시정을 요구한 것들이었으며 무려 8년 6개월 동안 홈페이지에 버젓이 게재된 것으로 밝혀져 더욱 충격을 주고 있다.

을사보호조약은 1905년 일제가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박탈하기 위해 강제로 체결한 조약으로 우리는 ‘을사늑약’ 등으로 표현한다. 

또한 1909년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한 하얼빈 의거도 ‘몰래 사람을 죽인다’는 뜻의 ‘암살’이 아닌 ‘사살’, ‘처단’, ‘격살’ 등의 표현을 사용한다. 심지어 일본 도쿄의 이토 히로부미 묘역 안내판에도 ‘암살’이라는 왜곡된 표현은 쓰지 않고 있다. 이토의 일생을 소개하는 묘역 안내판에서 ‘조선의 독립운동가에게 저격당해 69세로 숨졌다’고 표현하고 있는 것. 

한일 양국의 합의에 따라 합병이 이뤄졌다는 의미의 ‘한일합방’이라는 용어도 ‘국권침탈’, ‘강제병합’, ‘경술국치’ 등의 용어를 사용한다. 안중근의사기념사업회 신운용 책임연구원은 “일본은 조선이 스스로 들어왔다는 의미로 병합이란 용어를 사용한다. ‘병합’ 앞에 ‘강제’를 붙여도 그 뜻은 달라지지 않아 사용해서는 안 된다”고 설명했다.

이외에도 통용되는 ‘독립운동’ 등의 용어에 대한 지적도 나왔다. 일제와 실제 싸움이 있었기 때문에 운동이 아닌 ‘전쟁’, ‘항쟁’이라는 용어를 넣어야 한다는 것.


일본정부는 지속적으로 일제 치하 자신들의 만행을 숨기거나 부정하기 위해 이러한 역사적 용어들을 미화해 사용해 온 예가 많았으며, 주일 한국대사관 홈페이지에 게재된 해당 표현들도 그러한 맥락이었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때문에 대한민국 정부 소속인 주일 한국대사관이 그러한 기조를 보다 강화하고 있는 아베 일본정부의 외무성 홈페이지와 다를 바 없다는 비난이 쏟아졌다.

그러나 주일 한국대사관 측은 해당 내용이 보도된 당일 문제의 표현들이 나온 연표만 삭제하고 공식 입장은 밝히지 않았다. 유흥수 주일 한국대사 등 주일 한국대사관 측의 공식 해명 없이 외교부 당국자가 “주일 한국대사관에 게재된 한일관계 주요 일지(연표)는 오류 확인 즉시 삭제했다”며 “향후 홈페이지 관리에 있어서 용어 사용에 각별한 주의를 기울여 나가겠다”고 전하는 데 그쳤다.

또 외교부는 주일 한국대사관이 문제의 연표가 최초로 작성된 2007년 1월25일 이후 8년 6개월간 역사왜곡 표현을 확인하지 못한 것에 대해 ‘새로운 자료가 누적됨에 따라 이를 확인할 기회가 없었다’고 파악한 것으로 알려졌다. 

런데 주일 한국대사관이 사용한 문제되는 표현은 더 있다. 지난 1919년 일제가 ‘문화정치’를 시작했다고 표현하며 보충설명 없이 ▲총독 임명 제한(군출신 임명 폐지) ▲보통경찰제도(헌병경찰 폐지) ▲제한된 정치참여 허용이라고 기술한 것도 잘못된 표현.

3·1운동 이후 일제가 표면적으론 무단(武斷)통치에서 문화정치로 바꿨지만 ‘식민지 강압 통치’라는 내용의 변화는 없었기 때문이다. 일제강점기 총독 6명 중 문관 출신은 단 한 명도 없었으며, 조선 주둔 일본군·경의 병력은 증가한 것이 일례로 제시되고 있다.


이런점들은 박근혜 정부가 과거 자신들의 만행과 역사적 사실을 은폐하기에 급급한 아베 일본 정부에 대해 강경한 입장을 보여 온 것과도 상충되는 처사라는 지적이 많다.


박근혜 정부는 일본의 역사 왜곡에 반발하는 뜻에서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정상회담을 거부해왔다. 또 지난 4월 아베 신조 총리가 미·일 정상회담 후 일본군 위안부 피해 문제를 인신매매(human trafficking)라고 표현하자 우리 정부는 강제 동원을 부인하는 용어라며 강하게 반발한 바 있다.

동북아역사재단 남상구 연구위원은 “적어도 한국에서 이토 암살이라고 표현한 서적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안중근의사기념사업회 신운용 책임연구원도 “일본이 사용하고 있는 암살은 몰래 죽였다는 것으로 굉장히 부정적 용어”라고 지적했다.


정치권에서도 친일적 표현으로 비판대에 오른 사례는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었다.

친일 잔재 심각해

지난 2012년 2월, 정옥임 당시 새누리당 의원은 MBC <손석희의 시선집중>을 통해 ‘한일합방 100주년’ 이라는 표현을 썼다. 이에 당시 상대 토론자 박선원 민주통합당 예비후보가 잘못된 표현이라고 지적하자, 정 의원은 “100년이 지났다고 했다”고 반박했다.

이어 당시 진행자였던 손석희 현 JTBC 보도부문 사장이 “명확한 용어는 한일강제병합”이라고 정정해주자, 정 의원은 결국 “네 강제병합 100년”라고 답했다. 이 표현은 지난 2009년 6월 이명박 정부의 이동관 청와대 대변인이 당시 이명박 대통령 발언을 전달하는 과정에서 사용해 비판을 받기도 했다.

이와 관련해 전문가나 국민들은 ‘우리나라를 이끄는 정치인, 지식인 중에서 일제 치하 역사에 대해 무지하거나 역사의식이 부재하거나 심지어 친일적 역사의식을 가진 이들이 적지 않다’고 우려한다. 


happiness@hyundaenews.com

<2015-06-22> 주간현대

기사원문: 주일대사관 홈페이지 친일 표현 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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