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살의 진실 10년 동안 파헤치며 영화 제작… “진실을 알려야 잘못된 역사가 반복되지 않는다”
장편 다큐멘터리 영화 ‘레드툼’을 만든 구자환 감독ⓒ양지웅 기자
“골로 간다. 물 먹었다.” 우리가 흔히 쓰는 말이다. 둘 다 죽음이나 실패를 의미하는 말이다. 그런데 이 말 속에는 잔인했던 우리의 현대사가 숨어있다. 1950년 한국전쟁이 일어나자 이승만 정부는 국민보도연맹원을 집단학살했다. 희생자 대다수는 이승만 정권이 좌익세력을 관리한다는 명분으로 만든 반공단체인 ‘국민보도연맹’에 영문도 모른 채 가입했고, 한국전쟁이 일어나면서 전투와는 상관없는 지역에서모른 채 가입했고, 한국전쟁이 일어나면서 전투와는 상관없는 지역에서 학살됐다.이승만 정권은 일제강점기에 일본이 전향한 사회주의자들 관리하기 위해 만든 ‘시국대응전선 사상보국연맹’이란 단체를 모방해서 ‘국민보도연맹’을 만들었다. 그리고 이들을 각 지역별로 모아 자유주의자로 사상교육을 시키다 한국전쟁이 일어나자 인민군에 부역하거나 동조할 수 있다면서 학살했다. 당시 내륙에 살던 이들은 산으로 끌려가 ‘골로 가야’했고, 바닷가에 살던 이들은 바다에 수장돼 ‘물을 먹어야’했다. 학살당한 이들의 대부분은 순박한 농민들이었다. 이들 가운데는 항일독립운동가도 상당수 포함돼 있었다. 그렇게 억울한 죽음을 보며 만들어진 표현이 바로 ‘골로 간다’와 ‘물 먹었다’는 말이다.
이렇게 학살당한 이들은 수십만 명에 이른다. 하지만 이들의 억울한 죽음은 진실이 밝혀지지 못한 채 숨겨진 과거가 되고 말았다. 65년이 지난 지금 억울하게 죽어간 이들의 진실을 밝히기 위한 노력이 영화로 나왔다. 바로 다큐영화 ‘레드 툼(Red Tomb. 부제 빨갱이 무덤)’이다. ‘레드 툼’은 오는 7월9일 전국 15개 극장에서 개봉한다. <민중의소리> 기자인 구자환 감독이 만든 이 영화는 골로 가고, 물을 먹어야 했던 학살당한 이들의 진실을 담고 있다.
진실 밝히려다 박정희 정권에 의해 빨갱이로 몰린 유족들
구 감독이 국민보도연맹 학살사건을 알게 된 건 지난 2004년이다. 당시 마산 진전면 여양리에선 대대적인 유골 발굴이 진행됐다. 2002년 9월 태풍 루사로 인해 흙이 무너지며 50여 년 동안 땅 속에 묻혀있던 진실이 드러났다. 2년 뒤 발굴을 통해 수습된 유골은 125구에 이르렀다. 구 감독은 “취재를 하면서 죽임을 당한 사람들을 땅에 묻는 부역을 했던 마을 주민들이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이 참혹한 사실을 마을 밖에서는 한 번도 하지 않았다는 소리를 들었다. 유족들의 한 맺힌 이야기를 들으면서 참 부끄러웠다. 당시 서른여섯 살이었다. 대학을 나왔고, 역사도 배웠는데 학살의 진실은 처음 들었다. 그래서 많이 부끄러웠고 이 사건을 국민들이 모르고 있어서 영화를 만들어 알려야겠다고 생각했다. 유족들도 어떻게든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서 억울함을 풀어달라고 부탁하기도 했다”고 촬영을 하게 된 계기를 설명했다.
구 감독은 이때부터 <민중의소리> 기자로 활동하면서 틈틈이 학살 현장을 카메라에 담아왔다. 그동안 가려졌던 우리의 현대사는 참혹했다. 구 감독은 “영화에 박상연 할머니가 나오는데 할머니는 23살 때 배속에 아기를 가진 채 남편을 잃었다. 그리고 남편이 죽었는지 살았는지를 몰라서 평생을 남편을 기다리면서 살아왔는데, 이사도 가지 않고 대문도 잠근 적이 없다고 하더라. 당시 남편이 입었던 옷도 그대로 보관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매장지 발굴 작업을 할 때는 학살당한 이들이 느꼈을 공포가 느껴지기도 했다. 구 감독은 “자신이 왜 죽는 줄도 모르고 끌려가서 죽음을 기다리는 사람의 심정이 어떠했겠나”라고 말했다. 그렇게 수십만 명에 대한 학살은 수백만 명에 이르는 가족들의 눈물과 한숨이 됐다. 그들은 모두 누군가의 아들과 딸이었고, 누군가의 아버지이자 어머니였다.
그들의 죽음은 억울했지만 그동안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 피해를 당한 유족들은 이 사실을 외부로 알리지 못하고 숨죽여 살아야했다. 하소연조차 할 수 없었던 이유는 또다시 ‘빨갱이’로 몰릴까 하는 걱정 때문이었다. 1960년 4.19혁명 직후 진상규명을 요구하고 유해를 발굴하려는 유족들의 시도가 있었다. 그러나 1961년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박정희 정권은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당시 전국유족회 회장과 간부들을 군사법정에 세우고, 용공분자로 몰아 사형을 언도했다. 그 뒤 유족들은 오랜 기간 또 다시 침묵을 강요당했다. 때문에 유족들의 증언들 듣는 건 쉽지 않았다. 구 감독은 “아무래도 유해매장지를 찾고 목격자나 유족들의 인터뷰를 받는 것이 어려웠다. 2004년에는 유족이나 목격자들이 겁이 나서 이 사실을 쉽게 이야기 하려고 하지 않았다. 추정되는 매장지를 찾기 위해 인근 시골마을을 돌면서 나이가 든 분들을 찾아 다녔다. 그 중 몇 분이 평생 동안 외부인에게 하지 않았던 목격담을 들려주었다”고 말했다.
영화 레드툼의 한 장면ⓒ민중의소리
영화 레드툼의 한 장면ⓒ민중의소리
“SNS를 통해 이 영화 좀 알려주세요”
두려움 속에서도 민간인 학살의 진실을 전한 유족들과 주민들의 도움으로 지난 2004년 4월부터 촬영에 들어간 이 영화는 10년여 만에 마무리됐다. 2013년 서울독립영화제에서 우수작품상을 수상하면서 대중에게 처음 선보인 후 보강 작업을 거쳐 2014년 최종 상영본이 완성됐다. 구 감독은 “이렇게 만든 영화를 주민과 유족들에게 선보였을 때 보는 내내 탄식과 눈물을 멈추지 못했다. 많은 이들이 영화를 보고 진실을 알았으면 한다는 바람도 전했다”고 말했다.
수십 년간 숨겨뒀던 진실을 용기를 내 고백했지만 이들의 고백이 사람들에게 알려지기까지는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개봉관을 구하는 것조차 어려웠기 때문이다 구 감독은 영화를 개봉하기 위해 지난 3월16일에서 4월30일까지 극장 개봉을 위한 시민후원 모금을 SNS를 통해 진행했다. 이 모금에 120여명의 시민과 10개 단체가 참여했고, 약 1천 만 원의 후원금이 모였다. 시민의 참여로 학살의 진실을 다룬 이 영화가 세상의 빛을 보게 된 것이다. 구 감독은 “그 동안 너무 외롭고 힘들었는데 이렇게 관심을 가져주시는 분들이 많아서 정말 고마웠다. 덕분에 영화를 개봉할 수 있게 되어 다행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영화가 어렵사리 극장에 걸리긴 했지만 아직은 개봉관 숫자도 15개에 불과해 많은 이들이 보기엔 어려운 여건이다. 영화개봉 초기 많은 이들이 이 영화를 봐야 개봉관이 더욱 늘어날 수 있다. 구 감독은 “독립영화는 홍보마케팅비가 없어서 입소문을 타지 않으면 홍보가 어렵다. 페이스 북을 활용해서 영화를 알리고 있다. 관련 내용들을 공유하고, 트위터에서 재전송하는 방법으로 도와주시면 고맙겠다. 그리고 영화를 보실 분들은 사전 예약 통해 관람을 해주면 많은 도움이 된다”며 관심을 부탁했다.
“옛날 세상 돌아올까 싶어서 겁이 나는 기라”
구 감독은 이어 자신의 영화가 이 사건의 진실을 밝히는 데 조금이라고 기여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을 전했다. 정부는 억울하게 목숨을 잃어야했던 희생자들에 대해 여전히 무관심으로 일관하고 있다. 유해 발굴 작업은 노무현 정부 당시 진실화해위원회가 발족하면서 일부 진행되기는 했다. 진실화해위원회는 2006년부터 2010년에 걸쳐 전국 168개소를 매장 추정지로 파악하고 이 가운데 13개소에 대해 유해 발굴 작업을 벌인 바 있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를 거치면서 발굴은 중단됐고, 지금은 정부가 손을 뗀 상태다. 민간단체로 구성된 ‘한국전쟁기 민간인 학살 유해 공동조사단’에서 유해발굴을 하고 있지만 갈 길은 멀기만 하다. 구 감독은 “국민보도연맹 사건은 과거에만 머물러 있는 사건이 아니라 지금도 그 형태와 유형만 달리한 채 진행되고 있다. 과거에는 반공논리로 사람의 목숨을 빼앗았지만 지금은 사회적 생명을 빼앗고 있다. 과거의 불편한 사실을 안다는 것 그 자체가 다시 이런 아픔을 반복되지 않게 방지할 수 있다고 믿는다. 무엇보다 지금도 억울하게 가족을 잃은 유족들에게 씌워진 빨갱이라는 멍에가 씌여져 있다”며 “영화를 통해 많은 사람들이 이 처참한 사건을 알게 된다면 진실규명과 유족들의 한도 풀어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세상은 좋은 세상이 돌아왔는가…싶다가도 나는 자꾸 겁이 나서. 혹시나 또 그런 세상 돌아올까 싶어서 겁이나요. 옛날 세상 돌아올까 싶어서 겁이 나는 기라. 아직까지 남북이 갈려서 안 있는교. 갈려서 있는데 겁이 안날 턱이 있는가. 겁이 나는데…….”
영화 ‘레드툼’에서 한 할머니는 떨리는 목소리로 “겁이 난다”는 말을 자꾸만 되풀이했다. 세상은 과연 달라진 것일까? 학살이 난무하던 야만의 시대는 끝난 것일까? 아직도 종북몰이가 계속되는 현실은 모두를 두렵게 만든다. 수십 년을 이어온 할머니의 공포를 이제는 끝내야 하지 않을까?
다큐 ‘레드 툼’ⓒ기타
<2015-07-04> 민중의소리
☞기사원문: [인터뷰] 보도연맹원 집단학살 고발한 다큐 ‘레드툼’ 만든 구자환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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