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비│2015년 7월 15일 발행│신국판 양장│384면│값 20,000원│ISBN 978-89-364-6343-4 03810
염무웅의 깊이 있는 비평이 통찰하는 한국문학의 역정과 사회현실
『살아 있는 과거―한국문학의 어떤 맥락』은 올해로 평론활동 51년째를 맞은 염무웅(廉武雄)의 여섯번째 문학평론집이다. 저자는 독문학자이면서도 우리 근대문학사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남다른 통찰력을 지닌 비평가로 문단에 정평이 나 있다. 이 점은 이번 평론집에서도 두드러진다. 이 책은 주로 일제 식민지와 6?25전쟁과 독재정권 시기를 겪었거나 그 시대에 활동한 작가들을 대상으로 ‘문학과 현실의 관계’에 대한 깊이 있는 분석과 사색을 담고 있다.
“문학은 더 나은 삶을 희구하는 인간들의 소망에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가. 문학이 문학다워짐을 통해서만 현실의 개선에도 기여할 수 있는 것이라면 그 문학다움의 실체는 무엇인가. 그런데 선의에서 출발한 작가들의 노력은 왜 때때로 뜻한 바와 달리 예술적 빈곤으로 귀결되고 마는가.”(7면) 머리말에 명확히 밝혔듯이 저자는 이러한 문제를 작가의 삶과 작품의 됨됨이를 연관지어 분석함으로써 “객관적 현실과 작가의 표현의지와 작품적 결과 사이의 복잡한 변증법을 역사적으로 해명하는 것”을 비평의 목표로 삼고 있다. 이 점은 저자가 1964년 평론활동을 시작한 때부터 지금까지 일관성 있게 추구해온 것이기도 하다.
책 제목에서도 저자의 일관된 의식과 비평 자세를 엿볼 수 있다. 과거에 대한 의식의 빈곤은 현재에 대한 감각의 둔화와 지적 작업의 부실을 초래할 우려가 있어 현재 안의 ‘살아 있는 과거’를 느끼고 또 현재를 발판으로 과거를 사유해야 역사의 연속성을 획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요즘 젊은 평론가들의 글에는 우리 문학사에 대한 지식과 의식이 매우 피상적이거나 편향되어 있다는 저자의 지적을 귀담아들어야 할 것이다.
1부는 정지용, 천상병, 신동문, 고은, 김남주 등의 시인을 다룬 글들이다. 「가혹한 시대 시인으로 사는 일」은 식민지 시대 일본 유학을 경험한 네명의 시인(김동환, 정지용, 이상화, 김소월)의 서로 다른 삶의 행로와 정신세계를 분석한다. 개성도 다르고 문학적 성향도 판이한 이들이 식민지 현실을 살아내는 방식을 역사적 지평에서 살펴본 글이다. 김동환의 경우는 젊은 날 자신이 추구했던 모든 것을 내려놓고 체제순응적 존재로 살았고, 정지용의 경우는 묵묵히 비협조적 자세로 하루하루를 견디는 ‘침묵 속으로의 도망자’ ‘내적 망명자’로 살아갔으며, 이상화의 경우는 시대의 암흑에 첨예하게 대항한 시 한편을 썼지만 내면적 혼돈과 이념적 방황을 극복하지 못했고, 김소월의 경우는 고달픈 식민지 현실을 감내하기에는 너무도 여리고 섬세했다는 것이다. 「순수, 참여, 그리고 가난」은 천상병의 삶과 문학을 살펴본 글이다. 시인으로 데뷔하여 한때는 평론가로도 두각을 나타낸 천상병의 시세계가 ‘동백림 사건’을 겪으며 어떻게 변모해갔는지를 예리하게 짚어가며 흥미로운 일화들도 들려준다. 「역사에 바쳐진 시혼」은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문단에 등장하여 ‘혁명시인’로 활동하다 생애도 문학도 미완으로 남긴 채 가버린 시인 김남주론이다. 그의 작품을 ‘남민전’ 가입 이전의 초기 시, 남민전 가입 이후의 시, 그리고 출옥 후의 시로 크게 나누어 각 시기의 작품들에는 무엇이 어떻게 형상화되어 있는지, 선배 시인들로부터는 어떤 영향을 받았는지 등을 분석한다. 김남주의 초기 시가 김수영 문학의 현대성을 계승하면서도 ‘소시민성’을 극복하는 방식에서는 상이하다는 지적이 흥미롭다.
2부는 홍명희, 염상섭, 박완서, 한남규, 이문구 등 소설가를 다룬 글이다. 「소설 『임꺽정』과 벽초의 민족주의」는 사회운동가의 삶을 살던 홍명희가 뜻밖에 소설가로 변신하면서 무엇을 새롭게 성취했는지, 사회운동과 소설 창작이라는 전혀 다른 활동 방식을 관통하는 어떤 일관된 요소가 있다면 그것이 무엇인지를 면밀히 살펴본 글이다. 「염상섭의 중도적 민족노선」은 식민지 현실과 세계사적인 변혁의 소용돌이 속에서 그의 문학적 사유가 어떤 변천 경로를 밟는지를 검토하면서 민족주의와 계급주의가 치열하게 경합하는 ‘근대사의 이념적 교차로’에서 중도적 민족노선을 선택하는 험난한 과정을 고증해 보인다. 「소설의 법정에 소환된 전쟁체험」은 박완서론이다. 이른바 ‘국민작가’의 반열에 오른 그의 문학을 전체적으로 개괄하면서 연작장편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를 박완서 문학의 절정을 보여주는 작품이자 6·25 전쟁체험을 형상화한 우리 시대 최고의 걸작이라고 평가한다.
3부에는 비평, 서평 등 여러 성격의 글들을 실었다. 「임화 문학사의 내재적 기원」은 임화의 근대문학사 형성과정을 검토한 글이다. 1933년경 임화의 근대문학사 연구는 일제 파시즘 체제로 인해 총체적 난국을 맞고 있던 지식인 사회의 위기에 대한 이론적 대응의 일환이었고, 아직도 오해가 가시지 않은 그의 ‘이식문화론’은 조선 근대문학사의 실체적 진실에 접근하기 위한 논리적 출발점이었음을 역설한다. 「문학의 현실 참여」는 한국 근대문학이 출발한 1900년대부터 오늘날까지 문학이 어떻게 현실에 관여하는가, 현실로부터 문학이 어떤 제약을 받고 있는가를 살피면서 문학의 문학다움이 무엇인지를 은연중에 일깨워주는 글이다. 우리 근현대문학은 어느 한 시기도 정치사회적 현실문제와의 연관으로부터 떠난 적이 없었음을 구체적인 사례들을 통해 보여준다. 「인쇄된 것 바깥에 있는 진실들」은 1960년대 신구문화사에서 편집자로 일했던 저자의 경험을 담은 글로, 신구문화사에서 간행된 『현대한국문학전집』과 관련하여 후배 연구자들에게 중요한 서지 정보를 소상히 알려준다.
“현재 안에 살아 있는 과거를 느끼고 또 현재를 발판으로 과거를 사유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역사의 연속성을 획득할 수 있겠는가.”(8면) 저자는 반세기가 넘는 기간 동안 여전히 현장비평가로서 활발하게 활동하며 “우리 문학의 지나온 역정에 대한 지식과 의식”을 ‘살아 있는 과거’로 생생하게 체현하고 있다. 문학에 대한 저자의 올곧고 애정 어린 열정과 경륜이 한국문학의 귀한 본보기이자 참조점이 될 것이다.
│지은이 소개│
염무웅(廉武雄)
1941년 강원도 속초에서 출생하여 서울대 독문과 및 동대학원을 졸업했다. 1964년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문학평론으로 등단했다. 창작과비평사 대표, 민족예술인총연합 이사장, 민족문학작가회의 이사장을 역임했고 현재 영남대 명예교수로 있다.
평론집 『민중시대의 문학』(1979) 『혼돈의 시대에 구상하는 문학의 논리』(1995) 『모래 위의 시간』(2001) 『문학과 시대현실』(2010), 산문집 『자유의 역설』(2012) 『반걸음을 위한 생존의 요구』(2015), 번역서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공역)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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