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적 지우기’ 서둘기보다 일제 잔재 철저한 조사가 우선… 현명한 처리 방법 찾기 병행을
#광복 50주년이던 1995년 8월 15일 서울 광화문 앞 세종로광장. 일제 강점기 한반도 수탈의 본거지인 옛 조선총독부 건물 철거가 이뤄졌다. 당시까지 ‘중앙청’으로 불리던 경복궁 앞 건물 꼭대기에서 무게 10.5t짜리 첨탑 상부가 크레인에 의해 땅으로 끌려내려왔다. 70년 동안 서울 한복판을 억누르던 식민정책의 상징물이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지금도 옛 조선총독부 건물이 남아 있다면 서울을 찾은 일본인들은 회심의 미소를 지을지 모른다.
#그로부터 20년이 흐른 2015년 8월 민주화의 도시 광주 사직동의 광주공원. 시민들의 쉼터인 이 공원 모퉁이에는 친일 인사들의 ‘선정비(善政碑)’ 5개가 1593년 임진왜란 당시 행주대첩에서 왜군을 격퇴한 권율(1537∼1599) 장군의 공적비를 포위하듯 에워싸고 있다. 의향 호남의 맥이 집결하는 장소에 을사오적 이근택의 형이자 일제 귀족 작위를 받은 이근호(1861∼1823) 등의 선정비가 굳건히 서 있는 것이다. 광주공원 친일 인사 선정비는 100년 가까이 흐른 뒤에야 최근 한 대학교수가 우연히 탁본을 뜨다 존재를 확인했다.
굴욕적으로 외교권을 빼앗긴 을사조약을 맺은 지 110년, 광복 70주년이 되는 올해 친일 청산 작업은 어디까지 진행됐을까. 20년 전 조선총독부 건물 철거와 2009년 11월 친일반민족행위자 704명 명단을 담은 친일인명사전 발간 등 적잖은 성과를 거뒀다.
친일인명사전은 2012년 8월 젊은이들을 위한 ‘모바일 앱’(스마트 친일인명사전)으로 시판되기도 했다. 2003년 말 국회에서 친일인명사전 편찬 예산이 삭감되자 이듬해 모금운동을 통해 11일 만에 3만여명이 5억원을 삽시간에 모아준 국민적 열망이 담겨 있다.
전국의 지자체들은 매년 3·1절과 8·15광복절 전후로 친일 흔적 지우기에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대구·경북에서는 각종 공공기관에 남아 있는 일본향나무(가이즈카) 교체 작업이 이뤄지고 있다. 충북 청주 향교에서는 일제 강점기 친일파 김동훈과 이해용을 찬양하는 존성비가 발견돼 철거 논의가 진행 중이다. 강원도에선 친일파인 이범익 전 강원도지사의 악행을 알리는 단죄문이 설치됐다.
그럼에도 한반도 곳곳에 일제 잔재가 버젓이 남아 있다. 국립현충원에 안장된 친일 혐의자만 무려 80명이 넘는다는 것도 엄연한 현실이다.
일제 강점기 신사(神社)로 쓰였던 크고 작은 건물과 친일 반민족 행위자들의 비뚤어진 행적을 치켜세운 비석 등도 상당수가 건재하다.
따라서 지금이라도 친일 사적과 시설물 전반을 면밀히 조사한 뒤 철거 여부를 종합적으로 판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무조건 철거만 할 게 아니라 서대문형무소처럼 부끄러운 역사를 일깨우는 교육 시설로 친일 사적을 활용하거나 철거한 시설물은 별도 친일공원이나 박물관 형식의 장소에 역사 자료로 보존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민족문제연구소 광주지부 이지훈 사무국장은 “일제 식민지 잔재 청산은 독립을 위해 목숨 바친 항일투사와 독립유공자들에 대한 최소한의 도리”라며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내일은 없다”고 말했다.
광주=장선욱 기자 swjang@kmib.co.kr
<2015-08-01> 국민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