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 음성군이 관리하고 있는 음성읍 석인리 1급 친일작가 이무영(1908년~1960년) 생가터 및 작품비, 유품 등을 철거해야 한다는 여론이 지역사회에서 확산되고 있다.
이 생가터는 지난 2006년 음성군이 매입해 문화관광시설로 관리했다.
군은 다양하게 이무영 기념사업(무영제)을 지원하다 2009년 11월 민족문제연구소가 발간한 친일인명사전에 1급 친일 작가로 그의 적나라한 친일행적이 공개된 이후 2012년부터 예산지원을 중단하고 그의 이름을 붙였던 도로(무영로) 이름을 바꿨다.
이무영은 대표적 농민문학가로만 널리 알려져 음성지역 문학인들의 지지를 받아 1985년 이무영 작품비가 건립되기도 했다.
또 1994년부터 2012년까지 군의 예산 지원을 받아 충북의 일간지 A사와 음성예총이 해마다 무영제를 개최하고 있다.
지난 2006년 생가터에 이무영 흉상이 세웠졌고 2007년엔 이무영 작품비가 건립됐으며 2010년에는 음성읍의 지원으로 음성읍 석인2리 생가마을(오리골) 입구에 ‘농민문학가 이무영선생 생가마을’ 표지석이 들어섰다.
지난 2012년 이후 군에서 예산 지원을 받지 못한 무영제는 이무영의 유족들이 수년째 자비를 들여 해마다 A언론사와 농민 문학인들이 생가터에서 개최하고 있고 무영문학상도 16회 동안 시상하고 있다.
당시 이광수나 최남선처럼 민족진영 작가였지만 일제의 협박과 회유에 굴복해서 친일로 변절한 것이 아니라 이무영은 성장과정부터 ‘철저한 친일’이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는 일제강점기에 꾸준한 문학 활동을 통해 일본의 식민정책을 선전하면서 일제에 적극 협조.가담했다.
특히 이무영은 조선에서 최초로 일본어로 쓴 소설 ‘청기와집’을 발표해 조선예술상 총독상을 수상했다.
이무영은 ‘친일인명사전’에 수록되기 전까지 추앙받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음성군 출신 농민문학가였다.
이상정 음성군의원은 “대표적인 친일 작가 이무영을 기리는 작품비가 음성군에 있고 그의 생가터를 군민의 소중한 세금으로 관리.운영한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라며 “하루속히 작품비 등을 철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조완주 음성읍 지역개발회 회장은 “이무영의 친일 행적이 낱낱이 밝혀졌는데도 군이 이를 방치하고 있는 것은 문제가 있다”라며 “올바른 역사의식을 정립하기 위해서라도 지역민의 뜻을 모아 작품비 등을 철거하고 그 부지를 주민의 쉼터로 재정비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한편 군은 지난 2013년까지 문화공보과에서 관리하던 이무영 생가터와 음성군 향토민속자료전시관에 전시된 이무영의 작품을 비롯한 친필·유품 들을 지난해 군 시설사업소가 생기며 업무를 이관했다하고 있지만 시설사업소는 인계 받은 적이 없다고 주장하고 있어 군 시설물 관리 운영에 허점을 드러내 빈축을 사고 있다.
<2015-08-07> 아시아뉴스통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