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기사

[책소개] 해방 후 3년 | 건국을 향한 최후의 결전

1316

▲ 저자: 조한성ㅣ출판사:생각정원ㅣ신국판ㅣ16,000원ㅣ 360쪽ㅣISBN 979-11-85035-27-7 03910


<저자소개>

■ 조한성

성균관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 진학하여 사료 읽는 법과 연구사 정리하는법 등을 훈련하며 역사학의 정수를 배웠다. 2006년부터 3년 반 동안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조사관으로 일했는데, 이때 일제강점기 친일 반민족 행위자들의 역사를 추적하면서 자연스럽게 그들의 반대편에 섰던 지식인들의 활동과 고뇌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2014년부터 민족문제연구소 선임연구원으로 일하고 있다. 저서로는 일제강점기 민족 해방과 새 조국 건설이라는 대의를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기꺼이 던진 7개 비밀결사단과 대한민국임시정부의 항일 대서사, 《한국의 레지스탕스》가 있다.

<책소개>


■ 해방 후 3년은 어떤 시대였는가?


– 1945년 8월 15일~1948년 8월 15일, 건국을 향한 최후의 결전


대한민국 헌법 1조 1항,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그렇다면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은 어떻게 탄생했을까?

1945년 8월 15일, 민족은 해방되었다. 그러나 해방의 기쁨을 온전히 누릴 수는 없었다. 해방은 급작스럽게, 결코 원하지 않았던 것과 함께 찾아왔다. 한반도는 미국과 소련에 의해 분할 점령되었다. 국내외에서 최후의 결전을 준비했던 한국의 레지스탕스들은 세계대전에 기여할 어떤 기회도 갖지 못한 채 해방을 맞았다. 두 개의 핵폭탄으로 일제의 패망이 앞당겨진 탓이었다. 이로 인해 민족은 스스로 독립을 쟁취할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우리는 곧바로 새로운 싸움을 시작해야 했다. 그것은 분할 점령된 한반도에서 민족의 독립과 민족통일을 완성하고, 일본 제국주의 및 봉건제도의 잔재를 뿌리 뽑아 민주주의 국가를 수립하기 위한 싸움이었다.

해방 후 3년은 어느 때보다 많은 것을 꿈꿀 수 있었고, 어느 때보다 많은 것을 만들 수 있는 ‘가능성의 역사’였다. 그렇기에《해방 후 3년》은 1945년 8월 15일 광복을 맞이한 순간부터 1948년 8월 15일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이 수립되는 순간까지의 역사를 다루고, 한국의 대표적인 민족 지도자 7인이 민족의 완전한 독립과 신국가 수립을 둘러싸고 벌이는 최후의 결전을 담았다. 해방 후 3년의 역사에서 우리의 출발점과 도착점을 확인하고, 그 과정에서 우리가 선택한 것과 선택하지 않은 것을 찾아내고, 역사의 가능성을 돌이켜보기 위해서다. 


■ 민족 지도자 7인은 어떤 국가를 꿈꿨을까?


– 역사를 움직인 3가지 키워드: 민족, 혁명, 권력


여운형, 박헌영, 송진우, 김일성, 이승만, 김구, 김규식. 해방 후 3년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던 이 7인의 민족 지도자는 어떤 국가를 꿈꿨을까? 그들은 해방 후 대한민국 정부가 만들어지기까지 각자가 꿈꾸는 신국가를 만들기 위해 뜨겁게 뭉치고 격렬히 싸웠다. 그들은 모두 민중을 위한 민주주의, 민중을 위한 개혁을 주창했다. 그들이 만들고자 한 정치적·경제적·사회적 민주주의는 어떤 모습이었고, 그들 각자에게 ‘민족’은 어떤 의미였을까? 그들은 왜 정당통일운동, 좌우합작운동, 신탁통치반대운동 등을 펼치거나 반대했으며 그 결과는 민족통일운동과 대한민국 정부 수립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당시 조선신민당 지도자 백남운의 말을 빌리면 해방 후 우리 민족은 ‘민족국가 수립’과 ‘사회혁명 완수’라는 이중의 과제를 동시에 수행해야 했고, 이를 위해서는 좌우가 함께하는 좌우연립정부를 수립해야 했다. 하지만 미국과 소련으로 대표되는 세계자본주의와 세계공산주의의 대립이 시작되던 해방 후 3년의 역사에서 민족 지도자 7인은 서로 다른 길을 선택했다. 남북 좌우가 대동단결하는 민족통일국가, 임정법통론에 입각한 완전평등의 신민주국가, 혁명으로 만든 인민민주주의 국가, 서구 자유민주주의 국가……. 그들을 움직인 것은 ‘민족’, ‘혁명’, ‘권력’이었다.


민족_ 우리 민족의 자치 능력을 증명하는 조선건국준비위원회, 조선인민공화국 등을 조직하고 4당회담과 좌우합작위원회 등을 통해 좌우의 역량을 모으고자 했던 중도좌파의 여운형. 그리고 그와 손잡고 미·소 좌우의 대립 정국에서도 끝까지 남북합작·좌우합작에 입각한 민족통일국가를 수립하고자 했던 중도우파의 김규식. 중경임시정부(중경임정)의 법통으로 일체의 강권이 없는 신민주국가를 수립하고자 노력했지만 우익 중심의 노선을 걸었던, 하지만 결국에는 한반도의 분단을 막고 민족통일정부의 수립을 위해 애쓴 김구. 그들에게 ‘민족’은 어둡고 거친 이데올로기의 바다 위 등대와 같았다. 그러나 좌익의 박헌영, 김일성과 우익의 송진우, 이승만은 다른 생각에 빠져들었다.


혁명_ 해방 후 부르주아민주주의혁명을 통해 반제국주의, 반봉건주의를 성취하고자 했던 박헌영과 김일성. 그들은 친일 잔재 및 식민주의를 청산하고 노동자와 농민 등 근로인민의 권익을 보장하는 인민민주주의 정권을 수립하고자 했다. 그러나 그들은 소련에 의존한 좌익 헤게모니에서 신국가를 건립하겠다는 원칙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민족통일국가 수립을 위한 좌우합작운동을 방해하거나 우익을 반동으로 몰아붙이면서 ‘민족통일’보다 ‘혁명’을 완수하고자 한 것이다.


권력_ 그렇다면 우익의 대표적인 지도자 송진우와 이승만의 신국가 수립안은 무엇이었을까? 송진우는 우익 최대 정당인 한민당의 지도자로, 중경임정을 추대하여 신국가를 건설함으로써 정당성을 획득하고자 했다. 그가 이끄는 한민당은 민중을 위한 자유민주주의, 근로대중을 위한 사회주의적 경제 민주주의를 주창하기도 했으나, 결국 ‘미군정의 여당’이 되어 남한 단독정부 수립, 즉 분단도 불사하게 된다. 그리고 스스로 ‘자유와 통일의 앞잡이’가 되겠다고 천명했지만, 실상은 중경임정과의 통합마저 피하며 호시탐탐 남한 단독정부의 수반이 되고자 한 이승만. 처음부터 좌익과의 대결을 기정사실화하며 반공·반소주의로 우익 헤게모니를 고수했던 그들이 꿈꾸던 것은 ‘신국가’일까, ‘권력’일까?


■ 역사의 가능성을 확인하라, 미래의 가능성을 꿈꾸라

– 우리의 ‘신국가’는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가?


미·소 냉전의 세계 질서와 끊임없이 충돌하며 완전독립, 민족통일, 민주주의의 신한국을 건설하고자 했던 해방 후 3년. 해방은 우리에게 많은 꿈과 가능성을 가져다줬고, 비로소 우리 민족은 민주주의의 역사, 자유와 평등의 역사를 시작할 수 있었다. 《해방 후 3년》은 그 ‘가능성의 역사’에서 우리가 무엇을 얻고 무엇을 잃었는지, 해방 후 3년 동안 민족 지도자 7인이 꾸었던 꿈에서 오늘날 이어받아야 할 정신은 무엇인지 들려준다.

안타깝지만 우리는 지금도 세계 강대국의 정책에 흔들리고, 민족통일을 이루지 못했으며, 좌우는 자신의 정책으로 대중을 설득하기보다 자파의 이념을 앞세운 자리싸움에 한창이다. 이런 와중에 독단적 정치와 신자유주의의 폐해, 아직도 버리지 못한 친일 잔재와 식민사관으로 정치적·경제적·사회적 민주주의는 시간이 갈수록 급속히 추락하고 있다. 그런데 만약 해방 후 3년 동안 우리 민족이 하나로 뭉쳐 미·소의 합의를 종용했다면 미국과 소련은 자신들의 의견을 그토록 고집할 수만 있었을까? 이런 의미에서 오늘날의 지도자나 대중은 다시 한 번 ‘우리가 바꿀 수 있는 역사’를 꿈꾸고 실행해야 한다. “완전독립, 민족통일, 민주주의 신한국을 건설하라!” 지금도 우리에겐 ‘모두를 위한 신한국’이 필요하다.


우리의 큰길은 민주주의겠고 우리의 최고 이념은 우리 민족의 완전한 해방에 있다. 우리는 자본 제국주의에서 해방되었으나 사람이 사람을 부리고 사람이 사람을 속이며 착취하는 비인도적인 모든 기구가 없어져야 하겠다.

-여운형

※ 책소개기사


☞경향신문 : 해방 후, 7인의 민족 지도자들이 꿈꿨던 대한민국과 ‘역사의 가능성’

☞한겨레 : 분단으로 귀결된 ‘가능성의 역사’

☞연합뉴스: 해방 후 치열했고 뜨거웠던 3년을 돌아보다


NO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