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는 아들이 군인이 되길 바랐다. “네 할아버지는 ‘만주에서 말 타고 일본군과 싸울 때가 가장 행복했다’고 하셨다. 손주들 중 한 사람은 할아버지처럼 군인이 되어야 하지 않겠나”라고 했다. 아들은 군인이 아니라 독립운동사를 전공한 학자가 됐다. 어머니는 역사학자가 된 아들에게 한 번 더 부탁했다. “네 할아버지의 평전을 남기고 싶은데 공부 많이 한 네가 쓰는 게 좋지 않겠느냐”고 했다.
이번에도 아들은 말을 듣지 않았다. “손자가 할아버지의 평전을 쓰면 객관성이 흔들린다”고 했다. 결국 할아버지의 평전은 1995년 당시 나이 일흔이 훨씬 넘은 어머니의 손을 거쳐 세상에 나왔다.
광복군 총사령관 지청천 장군의 딸로 태어나 본인도 독립운동에 투신했던 고 지복영 여사와 아들인 민족문제연구소 이준식 박사(59·사진)의 이야기다.
지 여사의 회고록 <민들레의 비상> (민족문제연구소)이 출간됐다. 지 여사가 남긴 대학노트 3권 분량의 글을 이 박사가 정리해 펴냈다. 16일 경기 안산에 있는 한 커피숍에서 만난 이 박사는 “어머니의 생전 부탁을 두 차례나 저버려 늘 죄송했는데 이제야 마음의 짐을 하나 던 것 같다”고 했다.
회고록에는 일제강점기 만주에서 타향살이를 해야 했던 지 여사의 유년 시절의 고단한 삶이 녹아 있다. 아버지 지청천 장군에 대한 솔직한 마음도 담겼다. 10대 시절 지 여사는 어렵게 이어가던 학업이 중단될 위기에 처하자 아버지에게 “내가 글자나마 깨우친 것은 순전히 어머니의 덕일 뿐, 연필 하나, 공책 하나, 아버지께 신세진 것 없습니다”라고 편지를 쓰기도 했다. 이 박사는 “어머니는 늘 ‘할아버지 이름에 누가 되는 일이 없도록 하라’며 광복군 총사령관 지청천을 존경하셨다”면서도 “가족보다 독립을 먼저 생각한 아버지 지청천에 대한 원망도 없지 않으셨을 것”이라고 말했다.
회고록은 지 여사 본인의 이야기인 동시에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에 대한 헌사이기도 하다. 지 여사는 1983년 2월에 남긴 한 짤막한 글에서 “나는 그들(독립운동가)이 짓밟혀도 다시 살아나고, 꺾여도 다시 피어나는 그런 민들레와 같이 생각된다”고 썼다. 회고록 제목도 이 글에서 나왔다. 지 여사는 현충원을 참배할 때마다 “이름 없이 사라져간 분들의 아우성이 들리는 것 같다”고 말했다고 한다. 이 박사는 “어머니는 ‘나야 독립운동가로 이름 석 자나마 남겼고 훈장도 받았다지만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분들이 너무 많다’며 늘 죄스러워 하셨다”고 했다.
죄스러움을 느끼는 것은 이 박사도 마찬가지다. 그는 “박사 학위까지 딴 나는 정말 운이 좋은 경우다. 어디 가서 ‘누구 후손입니다’라고 말할 수도 있다. 그러나 다른 독립운동가 후손들은 그렇지 못한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했다. 그는 “제대로 된 나라라면 독립운동에 투신한 마지막 한 사람까지 찾아내 합당한 대우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2015-08-16> 경향신문
☞기사원문: 독립운동가 고 지복영 여사 회고록 펴낸 아들 이준식 박사 “아버지 그리던 딸의 고단한 삶 담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