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수 일대 일제 군사기지 현장조사
연구서 낸 여순연구센터장 주철희씨
“여수는 일제가 호남의 양곡을 수탈하고, 징병·징용 등으로 조선인을 강제로 동원하는 전진기지였어요. 주민들을 강제로 끌어내 참호 구축에 내몰았던 아픈 역사의 현장입니다.”
순천대 지리산권문화연구원의 주철희(50) 여순연구센터장이 17일 광복 70돌을 맞아 <일제 강점기, 여수를 말한다>라는 지역사 연구서를 펴냈다.
주씨는 전남 여수에 남아 있는 일제 군사기지 40여 곳을 답사해 침략과 동원의 진상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288쪽 분량에 당시 군사적 요충지인 신월동 일대를 비롯해 돌산도와 거문도에 흩어져 있는 요새·공항·진지·동굴 등을 정리했다. “일제는 여수를 전진기지로 삼기 위해 시모노세키 연락선을 부산에 이어 두번째로 운항했어요. 태평양전쟁 발발 이후에는 요새사령부와 항공기지, 지하참호를 구축하는 등 전략 요충으로 삼았죠.”
그는 일제가 당시 순천중이나 광주고보 학생들을 동원했다는 근거도 제시한다. 그는 2013년부터 3년 동안 여수 일대의 군사기지 흔적을 찾아다녔다. 기지 40여곳을 답사해 한 곳에 2~3명씩 모두 100여명의 진술을 들었고, 각종 문헌을 뒤져 사진·그림 등 자료 500여점을 모았다.
이런 과정을 통해 그는 여수 신월동 해안선을 따라 길이 200m, 너비 900m 규모의 해군 활주로가 만들어졌고, 남쪽으로 4㎞ 떨어진 주삼동에 해군 지하요새가 구축됐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여수의 관문인 돌산도에는 계동(두릉개)과 임포(향일암) 2곳에 고사포를 설치했고, 평사리 대미산에는 관측소를 운영했다는 흔적도 발견했다. 여수의 전초인 거문도에는 서도 덕촌마을에 통신기지, 동도 죽촌마을에 해안동굴 9곳을 만들었다는 보고도 담았다. 후속 연구를 위해 사진·그림 등의 출처를 밝히고 참고문헌과 찾아보기를 친절하게 실었다.
여수 출신인 그는 1990년부터 시민운동에 몸담아 여수지역사회연구소, 민족문제연구소 전남동부지부 등에서 활동했다. 이런 인연으로 48년 일어난 여순사건의 피해 사례를 세차례 조사했고, 여수의 역사가 심각하게 왜곡된 사실을 확인했다. 그는 역사에 대한 편견을 깨기 위해 2013년 <불량 국민들: 여순사건 왜곡된 19가지 시선>을 펴내기도 했다.
그는 “해방 70돌을 맞아 일제의 간악한 흔적이 청산되고, 역사는 바로 세워졌는가 묻지 않을 수 없다. 지역의 근현대사부터 올곧게 세우기 위해 중앙보다 지역에 천착하는 연구, 자료보다 주민의 숨결을 담아내는 연구를 계속하겠다”고 다짐했다.
광주/안관옥 기자 okahn@hani.co.kr
<2015-08-17> 한겨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