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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으로 본 현대사](45) 노무현 대통령 탄핵심판 사건 (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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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정치적 헌재 ‘노, 위법 인정되지만 탄핵 불가’… 국회의 무리수 입증

■ 헌법재판의 정치성, 재판관의 보수성에 우려도

대통령 대리인단의 선임과 활동에는 문재인 변호사의 역할이 매우 컸다. 그는 그해 2월 말에 청와대 민정수석을 그만두고 히말라야 등반을 위해 네팔로 날아갔는데, 카트만두의 한 호텔에서 서울의 탄핵소추 뉴스를 접하고 급거 귀국했다. 노무현 대통령을 구해야겠다는 ‘의리의 사나이’다운 그의 일념은 많은 사람들을 감동시켰다. ‘노무현의 친구 문재인’이 아니라 ‘문재인의 친구 노무현’이라고 한 노 대통령의 말은 역시 그다운 명언이었다.

야당 측의 이런 저의와는 별개로, 노 대통령의 탄핵사태 대응에 아쉬움을 보이는 의견도 있었다. 즉 그의 실언이나 과오가 과연 탄핵을 받을 정도의 사안이었나 하는 것과는 별개로, 탄핵 시비가 벌어졌을 때 노 대통령이 이를 진화하려는 노력을 왜 적극적으로 기울이지 않았느냐 하는 것이다(홍서여, <미추의 말과 글로 본 대한민국 근현대사>, 팝샷, 2015). 국민 여론의 역풍에 놀란 야당에서는 탄핵안을 둘러싸고 사과, 철회 등 후퇴론이 나와 자중지란을 일으키기도 했으나 ‘두 번 죽는다’는 의견이 강세여서 기존의 밀어붙이기를 유지하기로 했다.

탄핵사건의 심리(공개변론)가 열리는 날엔 헌법재판소 건물 앞에 탄핵을 주장하는 시민과 반대하는 시민이 제각기 피켓을 들거나 구호를 외치며 시위를 하고, 더러는 양편이 말다툼을 벌이는 등 충돌을 빚기도 하였다. 헌재의 심리를 방청한 시민들의 반응 역시 편이 갈렸다. 탄핵을 추진했던 세 야당의 대표들은 총선정국에서 역풍에 몰리자 국민의 뜻에 반하여 탄핵소추를 강행한 데 대하여 거듭 사과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총선 결과는 앞서 본 대로 여당(열린우리당)의 압승과 야당(한나라당, 민주당, 자민련)의 참패로 끝났다. 하지만 선거는 선거고 헌재는 헌재여서 탄핵심판의 최종 결과는 예측하기가 어려웠다. 특히 헌법재판의 정치적 성격과 헌법재판관들의 보수 성향에 마음을 놓을 수 없다는 불안이 안개처럼 퍼져나갔다. 주심인 주선회 재판관과 노 대통령 사이의 악연(1987년 노무현 변호사가 박종철군 고문치사사건에 대한 항의 시위로 검거되었을 때 부산지검 공안부장이던 주 재판관이 노 변호사를 구속하려고 세 번이나 구속영장을 청구한 사실)을 떠올리는 사람도 있었다.

일러스트 | 박건웅

■ ‘위법 인정되나 탄핵(파면)할 정도 아니다’

2004년 5월14일, 헌정사상 첫 번째 대통령탄핵심판사건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선고되었다. 윤영철 재판장이 읽은 결정 주문은 “이 사건 심판청구를 기각한다”였다. 관례가 그러하듯이, 결정문의 기재 순서와는 정반대로 먼저 장시간에 걸쳐 결정 이유를 읽어내려 간 끝에 ‘기각’이란 말이 나왔다. 헌법과 법률을 일부 위반한 사실은 인정되지만, 대통령 직을 파면할 만큼 중대한 위반은 아니라는 것이었다.

장문의 헌재 결정문을 요약하면 이러하다.

[1] 탄핵 절차의 준수 여부에 대하여; 1) 국회가 탄핵 소추 전에 충분한 조사 및 심사를 하지 않았더라도 그것은 국회의 재량이므로 헌법과 법률 위반이 아니다. 2) 국회가 소추를 하면서 대통령에게 혐의사실을 알리지 않고 의견 제출의 기회를 주지 않았으나 국가기관이 국민과의 관계에서 지켜야 할 ‘적법절차의 원칙’은 대통령이라는 국가기관에 적용할 수 없다.

[2] 선거법 위반에 대하여; 1) 대통령도 선거에서 중립의무를 지는 공직자에 해당된다. 2) 대통령이 기자회견에서 ‘개헌저지선까지 무너지면 그 뒤에 어떤 일이 생길지는 나도 정말 말씀 드릴 수가 없다’고 한 발언, ‘국민들이 (열린우리당을) 압도적으로 지지해줄 것을 기대한다. 대통령이 뭘 잘해서 열린우리당에 표를 줄 수 있는 길이 있으면, 정말 합법적인 모든 일을 다하고 싶다’는 발언은 모두 대통령의 지위를 이용해 선거에 부당한 영향을 미치는 행위로서 선거법에 위반된다. 그러나 후보자가 결정되기 전의 수동적인 발언이므로 선거운동은 아니다. 3) 노사모 행사에서 ‘여러분의 혁명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다시 한번 나서달라’는 발언, 언론인 간담회에서 ‘국민참여 0415 같은 사람들의 정치 참여를 허용하고 장려해야 한다’는 발언은 허용되는 정치적 의견 표명으로 헌법과 법률 위반이 아니다. 4) 중앙선관위의 선거법 위반 결정에 대하여 홍보수석을 통해 ‘선관위의 결정은 납득하기 어려우며 과거의 선거 관련법은 합리적으로 개혁되어야 한다’고 입장을 밝힌 것은 헌법 수호 의무를 위반한 것이다. 5) 국회 시정연설에서 ‘저는 지난주에 국민의 재신임을 받겠다는 선언을 했다. 정치적 합의가 이루어진다면 현행법(국민투표법)으로도 국가안보사항을 폭넓게 해석함으로써 가능할 것으로 생각한다’는 발언은 헌법 수호 의무를 위반한 것이다.

[3] 측근 비리에 대하여; 대통령 취임 전에 발생한 측근들의 비리행위는 대통령의 개입 여부를 따질 것도 없이 탄핵사유에 해당되지 않으며, 취임 후 측근들의 비위에는 대통령이 관여한 사실이 없으므로 탄핵사유가 되지 않는다.

[4] 정국 혼란 및 경제 파탄에 대하여; 소추위원이 주장하는 정치적 무능력이나 정책 수행의 잘잘못 등은 탄핵소추 사유가 될 수 없다.

■ 선거법 위반 등 ‘논고조로 짚은 뒤’ 정상론을

이상과 같은 판시에 이어 헌재 결정문은 ‘대통령의 법 위반사실의 개요’라는 항목에서 ‘이 사건에서 문제되는 대통령의 법위반 사실은 기자회견에서 특정 정당을 지지하는 발언을 함으로써 선거에서의 공무원의 중립의무에 위반한 사실과, 중앙선관위의 선거법 위반 결정에 대하여 유감을 표명하고 재신임 국민투표를 제안함으로써 법치국가이념 및 헌법 제72조에 반하여 대통령의 헌법수호의무를 위반하였다’고 논고하듯이 준엄하게 나온다.

이렇게 듣는 이의 긴장감을 조성해 놓은 다음, ‘법 위반의 중대성에 관한 판단’ 항목에서 ‘정상론’으로 접어든다. 즉 위와 같은 위반행위가 기자들의 질문에 대한 답변의 형식으로 소극적 부수적으로 이루어진 점, 정치활동과 정당활동을 할 수 있는 대통령에게 허용되는 정치적 활동의 한계에 관한 명확한 해명이 이루어지지 않은 점 등을 감안하면, 대통령의 공직선거법 위반행위가 헌법질서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은 크다고 볼 수 없다.

또 대통령이 현행 선거법을 관권선거시대의 유물로 폄하하는 취지의 발언을 한 것은 법치국가원리를 근본적으로 문제 삼은 중대한 위반행위라고 볼 수는 없다. 대통령의 재신임 국민투표 제안도 이를 강행하려는 시도를 한 바 없고, 따라서 헌법질서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이 중대하다고 볼 수 없다. 결론적으로 대통령의 법 위반은 대통령에게 부여한 국민의 신임을 임기 중 박탈할 정도로 국민의 신임을 저버린 경우에 해당한다고 볼 수도 없으므로 대통령에 대한 파면결정을 정당화하는 사유가 존재하지 않는다. 이런 요지의 ‘집행유예론’ 비슷한 논법을 폈다.

■ 헌재의 인적 구성이 빚은 정치적 산물

전체적으로 보면, 헌재는 대통령의 발언들을 무리하게 위법으로 평가하여 마치 논고를 하듯 지적한 다음, 정상을 참작하여 탄핵은 하지 않는다는 식의 논법을 되풀이했다. 어쩌면 ‘무죄사건에 집행유예’처럼 들리기도 했다. 이런 결정을 놓고 언론과 세론은 ‘절충론’이라고 보는 의견이 대세였다. ‘파면은 피하고 위법 의견도 수용’ ‘여(與)엔 기각 실리, 야(野)엔 체면 유지 명분’ – 이런 기사 제목이 나올 수밖에 없는 양비양시론이었다. 헌재의 재판관 구성 자체가 정치적 타협의 산물이기 때문에 결론도 그럴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 나왔다. 여기서 ‘대통령은 개운치 못한 승리를, 야당은 체면만 유지한 패배’라는 촌평도 나왔다. 한 일간지는 ‘이번 헌재의 결정은 애초부터 국회의 탄핵소추 결의 자체가 무리한 행위였음을 입증한 셈이다’라고 썼다.

어쨌든 헌재의 결정으로 노 대통령은 직무정지 63일 만에 그 직무에 복귀했다. 헌재 결정과 관련하여 두어 가지 문제가 회자되었다. 탄핵 결정에 필요한 재판관 수(6명)의 찬성(헌법재판소법 제23조 제2항)을 얻지 못한 것은 분명한데, 그렇다면 탄핵결정 즉 심판청구의 인용(認容)에 찬성한 재판관은 몇 명이고 또 누구누구였는가? 한 방송은 인용 3명, 기각 5명, 각하 1명이라고 했고, 나아가서 대검찰청 정보통으로부터 얻은 내용이라며 김영일, 권성, 이상경 세 재판관이 청구 인용을 주장한 것으로 보도했다. (서울경제 2014년 5월15일자) 또 하나는 소수의견을 공개하지 않은 데 대한 논란이었는데, 이는 헌법재판소법 제34조 제1항에 의하여 소수의견은 결정문에 기재할 수 없게 되어 있어서 공개해서는 안된다는 것이 다수의견이었다. 그러나 공개해야 한다는 소수의견도 있었기 때문에, 두 입장을 절충하는 과정에서 결정문 자체에 소수의견을 반영하다보니 강경한 어조가 끼어들게 되었다는 말도 있었다.

■ 권력의 정점에 섰던 ‘비주류, 아웃사이더’의 길

대통령 대리인단에 참여한 변호사들이 사건 당사자인 대통령과의 협의를 위해 청와대로 간 적이 있다. 직무정지를 당한 터여서 청와대 본관이 아닌 관저 식당에서 저녁 식사를 했다. 대통령은 자기가 헌재에 못 나갈 이유가 뭐 있느냐며 나가서 할 말을 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변호사들은 그를 만류했다. 탄핵 심판이 아닌 정치적 공방의 무대가 될까 염려스러웠기 때문이다. 회동이 끝날 무렵 문재인 전 수석이 대통령에게 끝으로 당부하실 말씀이 있으면 한 말씀 하시라고 권했다. 그러자 그는 의자에서 일어나 “저를 대통령 다시 하게 좀 해주십시오”라며 꾸벅했다. (문재인, <운명>, 가교출판, 2011) 그 소탈한 언어엔 대통령이란 격에 어울리지 않을 수도 있는 한 인간의 순박함이 담겨 있었다.

그런 그가 2009년 5월23일 새벽, ‘고통이 너무 크다’ ‘누구도 원망하지 말라’는 유서를 남기고 봉하마을 자택 뒷산에 올라 스스로 삶을 접었다. 그를 죽음으로 몰아넣은 원인은 무엇이었을까? 이런 글이 생각난다. “그는 세속적인 성공과 권력을 얻었음에도 주류가 되지 못한 영원한 아웃사이더였다. (…) 한국사회의 주류들에게 끊임없이 조롱당했다. 역설적이게도 그런 점 때문에 많은 지지자가 그를 따랐다.” (임영태, <두 개의 한국 현대사>, 생각의 길, 2014)

밀짚모자를 쓴 전임 대통령이 손녀를 자전거에 태우고 시골길을 달리는 그 풍경이 다시금 떠오른다. ‘비주류’의 민낯과 소망의 아름다움이 수채화에서 유화로 바뀌는, 그런 역사를 생각해본다.

<시리즈 끝>

<2015-08-16> 경향신문

☞기사원문: [의혹과 진실 – 한승헌의 재판으로 본 현대사](45) 노무현 대통령 탄핵심판 사건 (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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