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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식 칼럼] ‘친일’이 ‘애국’이라는 한국사교과서가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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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 교과서의 국정화는 박근혜정권의 역사 쿠데타 ①
이준식 민족문제연구소 연구위원/역사정의실천연대 정책위원장

설마 했다. 아무리 막나가는 박근혜정권이라도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를 국정교과서제도(국정제)로 발행하겠다는 시대착오적인 망동을 벌이지는 않을 것이라는 헛된 희망이 있었다. 그러나 최근 돌아가는 낌새를 보면 역시 박근혜정권이다. 유신체제의 적통답다. 기어이 박정희 정권이 그랬듯이 역사교육을 정권의 입맛대로 통제하기 위해 국정제를 밀어붙이겠단다.


최근 정부여당의 고위 책임자들이 국정제로의 회귀를 시사하는 발언을 연일 쏟아내고 있다. 급기야는 올 9월 안에 국정화를 강행하겠다는 방침이 이미 정부여당 안에서 결정되었다는 보도마저 나오고 있다.


정말 그렇다면 교과서 발행 제도와 같은 중대한 문제를 최소한의 여론 수렴 과정도 없이 비밀리에 그것도 졸속으로 강행하는 것 자체가 정부여당 스스로도 국정교과서로의 전환을 공개적으로 추진할 자신감을 갖지 못하고 있음을 반증하는 셈이다. 국정제로의 회귀는 명분도 실익도 없는, 그야말로 정권의 알량한 이익을 위해 역사를 뜯어고치려는 역사쿠데타일 뿐이다.


▲ 박근혜 대통령이 12일 오후 청와대에서 황우여 교육부장관 겸 부총리에게 임명장을 수여한 후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제공 : 뉴시스



한국사 교과서 국정제 논란 배후는…’청와대’


국정제가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조차 없다. 국정제는 시대에 뒤떨어지고 세계의 흐름에도 맞지 않는 교과서 발행제도이다. 그런데도 박근혜정권은 국정제를 강행하려고 한다. 일단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와 황우여 교육부장관이 악역을 자임하고 나섰다. 그러나 국정제 강행의 배후는 따로 있다. 2013년에 친일·독재 미화 교과서라는 비난을 받은 교학사 교과서가 검정을 통과하고 교육부와 새누리당의 비호를 받았을 때 이미 교학사 교과서를 준(準)국정 교과서로 밀어붙인 배후세력이 청와대라는 이야기가 파다했다. 결국 교학사 교과서가 교육현장에서 퇴출되자 아예 검정제를 국정제로 전환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는데 그 배경에 청와대가 있다는 것도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이야기이다.

박근혜정권은 국정제의 명분으로 대입 수능시험에 한국사가 필수 과목으로 지정되었으니 한 권의 교과서로 가르치는 게 좋겠다든지, 국가 정체성을 위해서는 역사교육은 한 가지로 가르쳐야만 한다는 이유를 내세우고 있다. 만약 전자의 논리대로 한다면 수능시험의 필수과목이 된 지 오래인 영어나 수학은 일찌감치 국정 교과서를 써야 했을 것이다. 그러나 영어 교과서와 수학 교과서는 과거에도 그랬고 현재에도 검정 교과서이다. 앞으로도 국정으로 바뀔 가능성은 전무하다.


결국 수능시험 때문에 한국사 국정 교과서가 필요하다는 것은 아무런 설득력도 없는 궤변일 뿐이다. 후자의 논리는 더 고약하다. 하나의 국가 정체성이라는 것 자체가 전체주의의 속성으로 다양성을 특징으로 하는 21세기 사회에 어울리지 않는다. 더 심각한 것은 국가 정체성 운운하는 이면에 친일과 독재를 미화하는 역사인식을 자라나는 젊은 세대에게 주입시킴으로써 박근혜정권 이후에도 보수세력의 집권을 가능하게 만들겠다는 정치적 흑심이 똬리를 틀고 있다는 사실이다.


친일파가 독립운동가로 둔갑…한국사 국정화의 미래?


박근혜정권이 출범한 뒤 정권 차원에서 한국 근·현대사의 인식을 뒤집어엎으려는 시도가 줄기차게 이루어지고 있는데 이는 국정제 강행과 결코 무관하지 않다. 박근혜정권에서 발행될 지도 모를 국정 교과서의 모습을 짐작하기에 충분한 몇 가지 대표적인 예만 들어보자.


며칠 전에 법무부에서 광복70주년을 기린다고 청소년용 동영상을 만들어 배포했다. 그런데 그 동영상에서 일본 제국의회 귀족원 의원을 지낸 거물급 친일파 윤치호를 안창호, 김구, 김좌진, 윤봉길 등과 함께 대표적인 독립운동가로 소개해 크게 논란이 일었다. 그러자 법무부는 부랴부랴 홈페이지의 동영상에서 윤치호 관련 부분을 삭제했다.


윤치호가 누구인가? 국가기구인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에서 중대한 친일반민족행위를 했다고 결정한 1,006명 가운데 한 사람이다. 일제강점 초기의 대표적인 친일파가 이완용이라면 윤치호는 거기에 비견할 만한 일제강점 말기의 대표적인 친일파였다. 이런 친일파를 대표적인 독립운동가의 반열에 올려놓은 것이 대한민국 ‘법질서 확립’의 주무 부서인 법무부의 역사인식 수준이다.


친일과 독립운동의 역사를 거꾸로 세우는 것은 단지 법무부에만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니다. 올 초에 교육부에서는 뜬금없이 교육자로서 시대를 초월해 온 국민의 존경을 받는 분을 대상으로 ‘이 달의 스승’이라는 것을 시행하기로 했는데 첫 번째 ‘이 달의 스승’으로 “헌신적인 교육자의 표상이자 민족운동가”인 최규동이 선정되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각급 학교를 통해 최규동을 기리는 대대적인 홍보 활동을 펼치려고 했다.


▲ 교육부가 ‘이달의 스승’으로 선정한 최규동은 일제강점 말기에 학생들에게 일본군이 되어 천황을 위해 기꺼이 목숨을 바치라고 선동하는 데 앞장선 친일 교육자였다.ⓒ출처 : 교육부



그런데 최규동은 민족교육자가 아니었고 민족운동가는 더더군다나 아니었다. 최규동은 일제강점 말기에 학생들에게 일본군이 되어 천황을 위해 기꺼이 목숨을 바치라고 선동하는 데 앞장선 친일 교육자였다. 오래 전 친일의 역사가 제대로 밝혀지지 않았을 때 정부에서 친일파인 최규동을 독립운동가라고 서훈을 한 적이 있다. 그렇지만 친일 관련 자료가 많이 발굴된 오늘날 조금만 관심을 갖고 자료를 찾아보면 최규동의 여러 친일 행적이 쉽게 확인된다. 그런데도 대한민국의 교육을 책임지고 있는 교육부는 독립유공자 서훈이 박탈되어 마땅할 최규동에게 첫 번째 ‘이 달의 스승’이라는 영예까지 안기려고 한 것이다.


여성가족부와 국방부도 한심하기로는 법무부나 교육부에 뒤지지 않는다. 여성가족부 홈페이지에는 한국을 빛낸 위인 가운데 한 사람으로 『친일인명사전』에도 등재된 친일 무용가 최승희가 버젓이 올라 있다. 국방부는 친일 군인 출신으로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결정한 친일반민족행위자 가운데 한 사람인 백선엽을 명예원수로 추대하려는 움직임을 보였는가 하면 2013년부터는 아예 그의 이름을 딴 한미동맹상이라는 것을 만들었다.


박근혜정권의 극우적 역사인식과 건국절


친일파를 대표적인 ‘위인’으로 만들려는 후안무치한 작태는 단지 일부 정부 부처의 무지와 몰상식의 탓만이 아니다. 거기에는 근본적으로 친일과 독립운동, 더 나아가서는 한국 근·현대사의 전반적인 흐름을 극우적 사시로 바라보는 박근혜정권의 인식이 그대로 반영되어 있다.


올해 광복 70주년 대통령 경축사에는 ‘광복 70주년, 건국 67주년’이라는 표현이 등장했다. ‘건국 67주년’은 지난 2013년, 2014년 광복절 경축사에는 한 번도 쓰이지 않은 생경한 단어이다. 일반적으로는 10년 단위로 특별한 해를 기념한다. 따라서 67주년이라는 숫자 자체에 특별한 의미가 없다.


그런데도 굳이 광복절에는 어울리지 않는 ‘건국 67주년’을 강조한 것은 뉴라이트의 숙원인 건국절 제정을 박근혜정권이 사실상 밀어붙이겠다는 신호로밖에 해석되지 않는다. 2007년 지금의 새누리당 전신인 한나라당 소속 국회의원 정갑윤은 광복절을 건국절로 바꾸자는 <국경일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가 논란이 일자 철회한 적이 있다.


이후 뉴라이트와 보수언론, 그리고 일부 보수정치인은 학계, 시민단체, 독립운동 관련 단체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일제의 식민통치로부터 해방된 8월 15일을 기리는 광복절을 대한민국이 ‘건국’된 8월 15일을 기리는 ‘건국절’로 대체해야 한다고 줄기차게 주장해 왔다.


‘건국절’로 상징되는 한국 근·현대사 왜곡작업에 나선 것은 보수정권뿐만이 아니다. 보수정권 뒤에는 미국과 일본에 맹종하고 모든 것을 ‘종북 빨갱이’ 탓으로 돌리는 일밖에 할 줄 아는 게 없는 보수신문, ‘공영’이라는 이름을 붙이기도 민망할 정도로 편향된 방송, 일제 식민통치와 친일파를 미화하고 독재자를 찬양하는 역사관의 원천이 된 뉴라이트, 그리고 온라인과 거리에서 극우의 행동대로 나선 일베, 가스통할배, 서북청년단 등이 자리를 잡고 있다. 보수라고 쓰고 ‘극우’라고 읽어야 할 이들의 공통점이 바로 독립운동과 민주화운동의 자리에 친일과 독재를 집어넣으려는 비뚤어진 역사인식이다.


친일과 독재의 상징, 이승만과 박정희


친일과 독재를 이야기할 때 빠뜨릴 수 없는 인물이 둘 있다. 이승만과 박정희이다. 둘 다 대한민국의 전직 대통령이지만 재임 기간 내내 독재권력을 행사하다가 권좌에서 쫓겨난 공통점도 갖고 있다.


이승만은 1948년 대한민국 정부가 출범할 때 국회에서 초대 대통령으로 선출되었지만 자신의 정치적 기반인 친일파를 보호하기 위해 당시 온 국민의 여망이던 친일청산에 반대했다. 제헌헌법을 바탕으로 출범한 반민특위를 강제로 해산시킨 주역도 이승만이었다. 이승만은 이후 한국전쟁의 민간인 학살, 1인독재를 위한 헌정 유린 등 이루 말할 수 없는 과오를 저지른 끝에 4월혁명에 의해 미국으로 쫓겨났다.


4월혁명으로 꽃피운 민주주의에의 열망을 짓밟은 것은 친일군인 출신의 박정희였다. 1961년 5월 16일 박정희는 군사쿠데타를 일으켜 대한민국의 헌정을 중단시켰다. 20년 가까운 박정희 독재체제를 뒷받침한 세력 역시 이승만정권에서 기사회생한 친일파였다. 박정희의 헌법 파괴는 대통령의 3선을 가능하게 한 1969년 개헌, 그리고 아예 영구집권을 목표로 한 1972년의 이른바 유신헌법 개헌으로 이어졌다. 박정희가 집권하고 있던 20여 년 동안 한국의 민주주의는 철저하게 압살되었다. 그 결과 박정희 정권 말기에는 부마항쟁 등 민중의 극렬한 반독재투투쟁이 일어났다. 그리고 유신체제는 측근에 의한 박정희 ‘암살’로 한순간에 무너지고 말았다.



[한국사 교과서의 국정화는 박근혜정권의 역사 쿠데타 ②]


지난 대통령선거의 절차적 정당성에 대한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박근혜정권으로서는 논란을 잠재울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헌법과 각종 법률에 정해진 대로 민주주의 원칙과 절차를 충실히 지키는 것이다.


그러나 박근혜정권은 그런 바람을 비웃기라도 하듯이 헌법을 농단하는 것이 마치 정권의 사명이라고 여기는 것같은 행태를 보여 왔다. 사법부와 헌법재판소를 통한 전교조와 통합진보당에 대한 탄압, 뉴라이트를 앞세운 공영방송 장악 등 박근혜정권의 헌정질서 파괴는 예를 들자면 끝이 없을 정도이다.


그리고 박근혜정권은 그마저도 부족해 이제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의 국정제 발행을 강행하려고 한다. 이는 박정희의 군사쿠데타에 버금가는 역사쿠데타이다. 시대가 바뀐 만큼 박정희처럼 총칼을 앞세운 정변을 일으키는 것이 어려워졌기 때문에 대신 역사반란을 통해 역사를 박정희 1인 독재시대로 돌리려는 것이다.


박근혜정권의 역사교육에 대한 통제가 도를 넘어선 지는 이미 오래이다. 교학사 교과서 사태에서 이미 드러났듯이 국민은 정권의 역사교육 개입에 준엄한 심판을 내렸다. 박근혜정권은 참담한 실패를 반성하기는커녕 2014년 초에 이미 유신시대를 연상케 하는 교과서 편수제를 부활하겠다고 한 데 이어 올해 7월에는 ‘교과용도서 개발체제 개선방안’이라는 것을 통해 교과서를 검정할 때 ‘본 심사를 2단계’로 하고, 그 사이에 ‘전문기관에 감수를 위임·위탁’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교학사 교과서 사태에서 드러났듯이 교육부가 말하는 ‘전문기관’이 뉴라이트가 포진한 기관일 것임은 두 말할 필요가 없다. 한마디로 뉴라이트 입장에서 한국사 교과서를 주무를 수 있도록 정권의 통제를 강화하겠다는 것이 교육부가 내놓은 교과서 발행제도 개선의 핵심이다.


최근 발표된 2015 역사과 교육과정과 집필기준 시안에서 근·현대사의 축소, 독립운동사의 왜곡·폄하 등 뉴라이트의 요구를 대폭 수용한 데서도 알 수 있듯이 박근혜정권에 의한 역사교육의 퇴행은 현재진행형이다. 교육부로서는 역사교과서의 검정제를 유지한다 해도 이미 국정과 동일한 효과를 거둘 수 있는 교과서를 만들 준비를 마친 셈이다. 그런데 사실상 국정화에 준하는 이런 조치만 갖고도 부족했는지 정부여당은 아예 검정제를 폐지하고 국정제를 도입하겠다는 뜻을 노골화하고 있다.


황우여 교육부장관은 얼마 전 한 신문과의 면담에서 “한국사는 과거와 달리 수능 필수과목이다. 그런데 교과서를 보면 을사조약도 있고 을사늑약도 있고 안 가르치는 교과서도 있다. 이런 교과서를 가지고 어떻게 수능 시험을 보겠는가. 국민이 존경하고 신뢰할 수 있는 역사가가 제대로 만들면 된다. 그런 분이 심혈을 기울여서 『삼국사기』, 『삼국유사』를 쓰듯 하나 써줬으면 하는 걸 간절히 기다리고 있다”고 주장했다.

만약 을사조약과 을사늑약이라는 두 가지 용어가 교과서에 쓰이고 있다면 그것은 두 용어를 다 써도 된다고 결정한 교육부의 책임이다. 그런데도 엉뚱하게 마치 검정제 자체 때문에 두 용어가 혼용되는 것처럼 호도하는 것이야말로 무책임한 행태이다. 더욱이 을사조약이든 을사늑약이든 가르치지 않는 교과서가 있다는 이야기는 황당하기 짝이 없다. 모든 교과서에 1905년 일제의 강제에 의해 불법으로 조약이 체결되었다는 사실이 자세히 적혀 있다. 따라서 국정화의 명분을 위해 교육부장관이 엉터리 이야기를 지어낸 셈이다. 그야말로 역사왜곡에 몸이 단 박근혜정권의 고위 공직자답다. 『삼국사기』나 『삼국유사』를 마치 훌륭한 사서 내지는 역사교과서로 생각한다는 것 자체도 우스꽝스러운 일이다. 『삼국사기』는 철저하게 고려의 정당성을 입증하기 위해 쓰인 지배층의 사서일 뿐이다. 그래서 일찍부터 사대주의, 신라중심주의라는 논란의 대상이 되었고 발해사를 제외했다는 비판도 받았다. 무엇보다도 사서라고 하기에는 사료수집을 게을리 했고 그러다 보니 기초적인 사실에서 오류가 많다는 지적을 받아 왔다. 이에 반해 『삼국유사』는 서민생활을 많이 담았다는 장점이 있지만 거꾸로 불교신앙을 바탕으로 하다 보니 지나치게 설화적인 내용이 많다는 한계도 갖고 있다. 그런데도 마치 두 권의 책이 후대의 사람들이 모두 본받아야 할 모범적인 사서인 것처럼 이야기하는 것 자체가 문외한의 치기어린 발언이다.

국정 역사교과서 내는 민주주의 국가 없다


이 지구상에 역사교과서를 국정으로 발행하는 자유민주주의 국가는 없다. 적어도 제대로 된 자유민주주의 국가라면 국가가 역사교육을 통제하겠다는 발상조차 할 수가 없다.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는 “교육의 자주성·전문성과 정치적 중립성을 보장”하는 헌법정신과 배치된다.


헌법재판소도 1992년 11월 12일 국정교과서 발행체제와 관련해 국정교과서가 “위헌은 아니나 바람직한 제도는 아니다”고 판결한 바 있다. “교과서의 국정제도는 국가가 교과서를 독점하는 체제이니만큼 검·인정제도보다도 훨씬 교과서 발행방법이 폐쇄적이라 할 수 있고, 그것이 개방되고 있는 자유발행제도와 비교할 때” 여러 가지 문제점이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국정제도보다는 검·인정제도를, 검·인정제도보다는 자유발행제를 채택하는 것이 교육의 자주성·전문성·정치적 중립성을 보장하고 있는 헌법의 이념을 고양하고 아울러 교육의 질을 제고할 수도 있을 것”이라는 점도 지적했다. 특히 헌법재판소가 “국사의 경우 어떤 학설이 옳다고 확정할 수 없고 다양한 견해가 나름대로 설득력을 지니고 있는 경우에는 다양한 견해를 소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한 데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이야말로 박근혜정권이 강행하려는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가 반헌법적이라는 사실을 단적으로 보여주기 때문이다.


교과서 국정화는 교과서 발행제도의 전통과 민주주의의 성장과도 배치된다. 1895년 학부에서 첫 근대교과서를 발행한 이래 박정희정권이 1974년에 국정제를 도입하기 이전까지의 교과서 발행제도는 줄곧 검인정제도였다. 지금보다 이념대립이 훨씬 심했던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25년 동안 검인정제를 채택했다는 사실은 한국이 세계유일의 분단국가이기 때문에 국론통일을 위해서도 국정제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설득력이 없다는 분명한 증거이다.


국정제는 국가의 공공성이 파괴된 유신체제에서 처음 도입되었다. 이후 국정교과서는 권리와 인격의 주체인 시민을 정권에 복종하는 신민으로 전락시키는 이념교육의 수단이 되었다. 유신의 산물인 국정교과서는 결국 실패했다. 박정희정권의 국정교과서가 전두환정권에 의해 부정되고 다시 전두환정권의 교과서는 김영삼정권에 의해 부정되었다. 말이 국정교과서이지 정권교과서라는 사실이 차례로 입증된 셈이다.


역사학계는 국정제가 도입되던 당초부터 그 부당성을 지적하면서 꾸준히 반대운동을 벌여 왔다. 이후 국정제는 역사학계의 노력과 민주주의의 진전으로 단계적으로 폐지되다가 2007년 개정 교육과정에 의해 완전히 폐지되었다. 따라서 국정화로의 회귀는 지난 30여 년에 걸친 역사학계 연구자들의 노력과 민주화운동의 성과를 정면으로 부정하는 처사이다.


국정 교과서에 대한 여론의 심판은 냉정하다. 교육부가 국정화의 명분을 얻기 위해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만 하더라도 교사의 대부분이 국정 교과서에 반대했다. 학부형 가운데서도 초등학교 학부형을 제외하면 중학교에서 고등학교로 올라갈수록 국정제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더 높았다. 이는 이미 교육현장에서 검정제 교과서의 장점이 입증되었음을 반증한다.


국정제가 강행될 경우 예상되는 국정교과서의 내용


박근혜정권의 추진하는 국정교과서에 담길 내용은 분명하다. 그것은 2013년 교학사 교과서의 재현이 될 것이다. 교학사 교과서는 일제의 식민통치와 친일을 미화하고 더 나아가서는 독재정권에 면죄부를 주려고 했다.


현행 헌법의 전문에도 명기되어 있듯이 대한민국이 독립운동과 민주화운동을 계승했다고 하는 것을 부정했다는 점에서 반국가적, 반헌법적 교과서라는 비판을 받았다. 작년에 논란이 된 초등학교용 국정 실험본 사회교과서, 교육부의 오늘의 교사 선정 사태, 법무부의 광복 70주년 기념 동영상 등에서도 거푸 확인되었듯이 박근혜정권의 역사인식 수준이란 친일파와 독재자를 부활시키는 것도 모자라 아예 독립운동과 민주화운동을 왜곡하고 폄하하는 데까지 이르렀다.


아니 둘은 동전의 양면이다. 친일과 독재를 미화하기 위해서는 결국 독립운동과 민주화운동을 폄하할 수밖에 없다.


최근 언론보도에서 확인되었듯이 국정제가 아직 확정되지도 않은 상태에서 교육부는 한국 근현대사를 크게 왜곡하는 교육과정안과 집필기준안을 마련했다. 두 안에는 3·1운동과 좌우합작단체가 아닌 우파만의 단체로서의 대한민국임시정부 외에는 학생들이 굳이 독립운동사를 이해할 필요가 없다는 몰상식한 생각이 담겨 있다.


두 안의 핵심은 독립운동사 특히 좌파의 독립운동사는 고등학교에서 아예 가르치지 말라는 것이다. 문제는 좌파가 아닌데도 뉴라이트와 극우세력에 의해 좌파로 몰리는 사람조차 역사교육에서 배제하려는 움직임이 감지된다는 데 있다. 최근 <암살>이라는 영화를 통해 재조명되기 시작한 김원봉이 대표적인 경우이다. 김원봉이 좌파라면 임시정부에서 김원봉과 손을 잡은 김구가 좌파로 몰리는 것도 시간문제이다.


결국 독립운동사를 ‘반공’이 국시인 대한민국의 역사에서 아예 몰아내겠다는 것이 국정제가 노리는 최종 목표라고 여길 수밖에 없다. 독립운동사가 빠진 자리를 친일파, 그리고 친일파와 불가분의 관계인 독재권력이 차지하리라고 예상하는 것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결국 이승만과 박정희로 상징되는 독재정권의 역사적 부활은 다시 민주화운동의 부정으로 이어질 것이다. 한국 근·현대사의 주된 흐름을 일제 식민통치와 친일, 그리고 독재의 역사로 전환시키려는 거대한 역사쿠데타의 음모가 국정제 강행의 이면에 깔려 있다.


▲ 지난해 3·1절에 서울 광화문 동화면세점 앞에서보수단체가 친일미화 역사 왜곡 지적을 받은 교학사 역사교과서를 판매하고 있다.ⓒ민중의소리


국정제야말로 ‘종북’이다


다양성과 창의성을 특징으로 하는 21세기 지식정보사회에 국가가 인정한 하나의 관점과 해석에 따라 서술될 수밖에 없는 국정 교과서로 회귀하겠다는 것은 시대착오적인 발상이다.


지금 지구상에 중고등학교 역사교과서를 국정으로 내는 나라는 극소수이다. 얼마 되지 않는 나라도 후진국이거나 독재국이다. 대표적인 데가 북한이다. OECD 국가는 대부분 자유발행제나 검정제를 실시하고 있다. 보수정권과 극우세력이 맹종하는 미국도 국정제가 아니다. 우리가 역사교육이 잘못 되었다고 늘 비판하는 일본도 검정제를 고수한다. 입만 열면 자유시장경제를 뇌까리는 사람들이 자유시장경제 원리에 반하는 국정교과서가 아니면 역사교육이 이루어질 수 없는 것처럼 광분하는 것을 보면 헛웃음만 나온다.


검정제에서 자유발행제로 가는 것이 세계적인 추세이다. 거기에는 될 수 있으면 국가가 교육에 개입하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이 깔려 있다. 그런데 OECD의 일원이라는 것을 자랑하는 대한민국이 국정제로의 회귀를 추구한다는 것 자체가 세계적인 망신거리이다. 싸우면서 닮아간다더니 북한을 비판하다가 북한을 따라가려는 꼴은 아닌지 걱정된다. 만약 박근혜정권이 끝까지 국정제를 밀어붙인다면 대한민국의 보수정권이야말로 ‘종북’이라는 비난을 받아도 할 말이 없을 것이다.


<2015-08-26> 민중의소리

☞기사원문 ①: [이준식 칼럼] ‘친일’이 ‘애국’이라는 한국사교과서가 온다

☞기사원문 ②: [이준식 칼럼] 한국사 국정 교과서는 박정희식 ‘정권 교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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