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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포시 이무영작품비 건립, 철거도 일방통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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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포장 깎뚜기’ 등 작품활동 기념, 99년 유가족도 모르게 능내공원에 건립


군포시가 1939년부터 1950년까지 군포에 거주하면서 농민소설을 집필해온 이무영 작가(충북 음성 출생, 1900~1900)를 기념하기 위해 1999년 건립했던 ‘이무영작품비’를 16년만인 7월 22일 전격 철거했다.


이는 1999년 건립 당시만 해도 친일 논란이 없었던 이무영에 대해 10년 뒤 민족문제연구소가 2009년 발간한 친일인물사전에 친일성향 작품활동 내역의 수록 사실이 최근 알려지고 ‘친일작가 이무영단죄비 설치 시민추진위원회(대표 정인환)’가 7월 16일 기자회견을 통해 기존 작품비 옆에 친일활동비 설치를 요구한 것에 대해 군포시가 6일 만에 단행한 조치이다.


군포시는 이날 새벽 이무영작품비를 철거한 후 발표한 보도자료에서 “최근 전후 관계를 정확히 파악하지 않은 채 ‘시가 친일작가를 위한 문학비를 세웠다’, ‘이무영 작가가 친일인사임을 알고도 작품비를 건립했다’는 등의 근거 없는 소문이 나돌아 철거를 단행했다”고 밝혔다.

또 군포시는 “일부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움직임도 보여 철거에 나섰다. 이무영 작가의 친일행적 논란 이후 ‘관리되지 않은 작품비로 인해 공원 미관이 저해된다’고 제기됐던 민원까지 함께 해결하게 됐다”고 덧붙였다.그러나 이러한 군포시의 조치는 16년 전 건립 당시에도 유가족이나 제자 등 이무영 작가 관계자들조차 모르는 상태에서 졸속으로 건립한데 이어 철거 또한 일방적으로 이뤄져 논란의 소지를 없애는 데에만 급급한 것 아닌가 하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이무영작품비는 당초 군포신문(구.군포문화신문)이 1997년 3월 27일 ‘군포장깎뚜기’를 비롯해 ‘농민’, ‘제1과제1장’ 등 농민소설의 대가인 이무영 소설가가 1939년부터 1950년까지 군포에 거주하면서 대표작품을 집필했고 그의 자녀 육남매도 군포초등학교를 졸업했다는 사실을 단독보도하면서 문인협회 등을 중심으로 작품비 건립논의가 촉발됐었다. (사진1)

이무영 작가 장녀 이자림(29회)의 군포초등학교 5년 선배이기도 한 당시 조원극 시장도 이러한 제안에 흔쾌히 동의해 담당부서에 이를 지시했고 1998년 6월 선거로 김윤주 시장이 취임한 이후인 1999년 본예산에 5백만 원의 작품비 건립비가 편성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당시 본지의 제안은 단순히 문학비만 건립하고 말 것이 아니라 이무영 작가의 후손과 제자들을 비롯 군포문인협회, 군포초등학교 총동문회 등 관계자들이 모여 기념사업회를 구성하고 매년 충북 음성군 행사에 맞춰 이무영백일장 등을 개최함으로써 군포와의 인연을 기념하자는 것이었다.

특히 이무영 소설가가 군포에 거주하던 집터 주변에 ‘군포장깎뚜기’ 수필 전문을 게재한 작품비를 세워 시민들의 정주의식을 제고하자는 제안이었다.


당시만 해도 이무영 선생의 군포에서의 문학적 업적은 그를 대표적인 농민소설가로 평가하는 기반이 되었고 친일논란은 없었기에 기념사업회 구성도 시민의 애향심을 고취하는 계기로 충분히 가치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군포시는 1998년 시장이 바뀐 탓인지 1999년 예산만 편성해놓은 채 작품비 건립이나 기념사업회 구성 등에 나서지 않고 있다가 그해 12월 시의회에서 지적이 일자 급히 능내공원에 작품비를 건립하고 연말에 유가족이나 제자 등 이무영 작가와 인연 있는 이들이 아무도 모르는 제막식을 거행하는 웃지 못 할 촌극을 벌였다. 그것도 당초 작품비 건립장소로 제안된 아구랑(군포1동 당말터널 인근)도 아닌 산본2동 능내공원에 세워져 의미를 퇴색시켰다.


이에 당초 작품비 건립과 기념사업회 구성을 제안한 군포신문이 오히려 졸속적인 군포시의 작품비 건립을 비판하는 아이러니한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군포신문 제728호 2015년 8월 10일 발행~2015년 8월 16일>


<2015-8-13> 군포신문

기사원문: 군포시 이무영작품비 건립, 철거도 일방통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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