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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교과서 국정화는 친일파·뉴라이트 음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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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짬] 한국사 이야기 11년만에 개정판 이이화 역사학자




한국사 서술에 한 획을 그었다는 22권짜리 방대한 한국통사 <이이화 한국사 이야기>(한길사 펴냄)가 완간된 지 10여년 만에 개정판으로 다시 선을 보였다.


“1994년에 기획하고, 1995년부터 본격적인 집필을 시작해 10년 만인 2004년에 완간했고, 완간 10여년 만에 다시 개정판을 냈다. 애초 집필 과정에서는 대처할 수 없었던 중국의 동북공정 문제를 새로 다뤘고,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비롯한 일제의 인력수탈·인권유린 국가범죄 참상 등을 더 자세하게 다뤘다.”


책 제목에 저자의 이름을 박아넣어 단독 집필자임을 부각시킨 이 책은 힘 가진 지배세력의 정치사 중심이 아니라 일반민중의 생활사 중심으로 쓴 ‘이야기체’ 한국사 서술의 선두주자로, 초판 출간 당시부터 큰 관심을 모았다. “58살에 쓰기 시작해 78살인 지금 다시 개정판을 낸” 역사학자 이이화(사진)의 20년 노작이자 그의 대표작이며, 앞으로도 계속 붙들고 갈 필생의 작업(라이프 워크)이 된 이 책은 지금까지 총 300쇄를 거듭하며 낱권으로 50만권 이상 팔렸다.


이승만·박정희 치세 합리화하고

민주화운동을 불만세력으로 폄하

절대로 안될 일…강행땐 ‘큰 난리’

회사취직 미끼 위안부로 데려가다

나중엔 면단위 할당 납치하다시피

일본당국 무관하다는 건 거짓말

28일 찾아간 경기 파주시 탄현면 법흥리(헤이리) 자택 서재 들머리엔 ‘교유명야당’(蛟猶明也堂)이라 쓴 편액이 걸려 있었다. “교는 교산(蛟山) 허균의 호에서, 유는 다산 정약용의 호인 여유당(與猶堂)에서, 명은 녹두장군 전봉준의 자 명숙(明淑)에서 따왔다.” 그리고 야는 주역의 대가였던 야산(也山) 이달에서 땄다. 이이화는 이달의 넷째 아들이다. “오늘의 관점에서 역사적 사실과 인물들을 재평가해 우리 역사를 민족사·생활사·민중사 중심으로 다시 쓰겠다”는 그의 의지를 서재 작명에서도 읽을 수 있다.


이이화는 한사군의 중심을 대동강·평양에 둔 일제 관변사학을 계승한 ‘이병도와 그 아류’와, 처음엔 만주지역 중심을 주장하다 북의 민족사적 정통성 확보를 노려 단군릉 발굴 등을 앞세우면서 역시 한국 고대사의 평양 중심설을 고집하는 북 모두 비판한다. 그리고 동북공정 뒤 요하문명설로 중국 문명의 동진을 강조하면서 북방 도래의 한민족 독자적인 문화 건설(발해 포함)을 사실상 부정하는 중국의 새로운 공세에도 그는 비판적이다. 그렇지만 한민족이 고대에 중국 요동·화북 일대와 한강 이남까지를 포괄하는 대제국을 건설했다거나, 백제 영역이 중국 동부지역까지 아울렀다는 일부 재야 사학자들의 ‘대백제설’ 주장에도 동의하지 않는다. “역사해석은 상식에서 벗어나선 안 된다.”
그가 개정판에서 신경을 쓴 또 다른 분야는 근현대사. 정조 이후 ‘문벌정치가 나라를 흔든다’(제16권)부터 어림잡아도 근현대사 비중은 책 전체의 3분의 1이나 된다.


“일본군 위안부 모집에 일본 당국이 직접 관여하지도, 강제연행하지도 않았다는 아베 정부 주장은 거짓말이다. 일제가 군 위안부를 모집할 때, 처음에는 정부나 군이 직접 전면에 나서지 않고 미쓰비시 등 일본 기업들을 앞세워 이를 대행하도록 한 건 사실이다. 그러나 그건 회사에 취직시켜 주겠다며 지원자들을 꼬드겨서 데려간 사기극이었다. 그런 사기극으로도 필요한 숫자를 채우지 못하게 되자 일제는 제일 만만한 어린 조선인 여성들을 강제로 데려갔다. 나중엔 동원을 면 단위로 할당해 심지어 우물에서 물을 긷거나 길을 가던 어린 조선 여자들을 납치하다시피 해서 끌고 갔다.”


동원된 성노예들은 일본군의 밥과 세탁을 해주는 잡일까지 강요당했다. “일제는 그들에게 군표라는 걸 줬는데, 패전 뒤 그 군표와 몇푼 안 되는 강제노역 저금도 다 날려버렸다. 그리고는 나중에 한일협정 뒤 ‘청구권 자금’으로 그 문제는 다 처리됐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는 “중국에선 동원당한 위안부 수가 조선인 20만, 중국인 25만이라고 주장하나, 조선인이 중국인보다 더 많았고 그 수는 10만이 넘었을 것으로 본다”고 했다. 학병 동원 등 징병과 징용, 여자근로정신대 등의 인력수탈사도 대폭 보완했다.


그는 식민사관에 대한 반발 때문에 제 역할을 못한 구한말 고종과 민비를 미화하는 것은 무능과 척족들의 부패 등으로 그 결정적인 시기의 역사를 실패로 몰아간 그들에게 면죄부를 주는 것이라는 얘기도 했다. 그는 또 봉건적·신분적 존왕양이의 한계를 벗어던지지 못한 항일의병운동도 평가절하하면서 동학혁명과 3·1운동을 높이 평가했다.


그는 “철저한 현장조사와 문헌고증, 각 분야 전문연구자 조언”을 강조하면서 “나는 원전에 충실한 사람”이라고 했다. 이는 최근 인터넷상의 자료들을 활용해 쉽게 역사서를 쓰는 풍조에 대한 비판이기도 하다.


역사교과서 국정화 움직임과 관련해 그는 “오산이다. 그건 시대 조류에 맞지 않는 것으로 절대 그리돼선 안 될 것”이라고 했다. “그리될 가능성도 없지만, 그럼에도 만일 그것을 강행한다면, 교학사 교과서 논란 때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큰 난리가 벌어질 것이다.”


“북 정도가 채택하고 있는 역사교과서 국정화는 친일·뉴라이트들이 식민지근대화론·산업화세력론을 독립운동세력·민주화운동세력에 대립시키면서 이승만과 박정희 치세를 정당화·합리화하기 위한 장치다. 그것은 또한 민주화운동세력을 불평불만세력, 쓸모없는 무능세력으로 깎아내림으로써 민주화운동을 방관하거나 거부한 자신들의 죄책감, 콤플렉스를 감추고 자신들을 정당화하기 위한 것이기도 하다.”


그는 또 우리에겐 저항적·방어적·생존적 민족주의는 여전히 유효하다며, “민중사관과 민족사관은 양립 불가능하다고 주장하면서 진보세력을 비판하는 세력은 진보사관을 마르크스주의 사관과 동일시하는 것”이라고 했다. “내 사관은 마르크스주의 사관이 아니라 이이화 사관이다.”
민족문제연구소가 추진중인 시민역사관 건립 추진위원장도 맡고 있는 그는 “모금 목표 50억원 중 20억원 정도를 모았다”고 했다.


파주/글·사진 한승동 선임기자
sdhan@hani.co.kr

<2015-08-28> 한겨레

기사원문: “역사교과서 국정화는 친일파·뉴라이트 음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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