ㆍ배재정 의원실 분석 ‘엉터리’ 민족문화사전
ㆍ43명 친일 행적 누락·미화 “오류 잡아야 진정한 광복”
“동경고등사범학교에 재학하면서 조선유학생학우회에 가입하여 신입생환영회·망년회·웅변대회 등의 회합을 통하여 유학생의 단결과 민족의식 고취에 노력하였다. (…)1932년 조선일보사로 옮겨 편집국장·주필 등을 역임하여 민족언론을 위해 활동하였으나 1940년 일제가 ‘동아일보’와 ‘조선일보’를 폐간한 이후에는 조선총독부의 기관지인 매일신보사에 들어갔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민족문화사전)(사진)에 실린 일제시대 언론인 서춘의 항목 내용이다. 민족문화사전은 서춘을 ‘독립운동가’로 분류하고 매일신보사 입사로 설명을 끝맺었다. 1930년대 들어 시작돼 1940년 매일신보 입사 후 활발하게 이어진 서춘의 친일 행적에 대한 서술은 찾아볼 수 없다. 민족문제연구소가 펴낸 <친일인명사전> 속의 서춘에 대한 설명이다. “(…)1940년 9월부터 1942년까지 매일신보사 주필을 지내면서 시국강연 강사로 활동했다. (…)1941년 매일신보사 주최 신춘 경제 대강연회에서 대동아건설과 국민의 각오라는 제목으로 강연했다. (…)1941년 7월 중일전쟁 4주년을 기념하기 위한 ‘성전 4주년’ 기념강연회에서 대동아건설과 총후 국민의 진로라는 제목으로 강연했다.” 대표적 친일부역자를 설명하면서 친일 행적은 쓰지 않고 독립운동가로 둔갑시킨 것이다.
민족문화사전은 친일 행적을 두고 독립운동을 위한 포석이었다는 식으로 미화한 사례도 보인다. 일본군 대좌 출신 이응준에 대해 “일본육군사관학교에 입학하여 1914년 5월 제26기생으로 졸업하였다. 군사력 양성으로 국권을 회복하여야 한다는 뜻의 결실이었다” “일본군에 배속되어 1941년 대좌로 진급하였으며 8·15 광복 직전 민족운동가들과 협력하기도 하였다”고 썼다.
<친일인명사전>은 이응준을 “일본군 장교로 재직하면서 일제의 침략전쟁을 정당화하는 한편 조선의 젊은이들에게 일본 군인이 되어 천황에게 충성을 다할 것을 선동했다”며 “조선 청년에게도 국가 방위의 숭고한 병역의무가 부여된 것은 말할 것도 없이 무상의 광영이며 명예”라고 한 이응준의 글을 근거로 제시했다. 민족문화사전에는 이런 내용이 전혀 없다.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배재정 의원실(새정치민주연합)은 민족문화사전 내용을 분석, 서춘·이응준을 포함해 43명의 서술이 부적절하다고 지적했다. 배재정 의원은 “정부는 광복 70년을 기념하는 정부차원의 요란한 행사보다 친일부역자 기록 오류를 바로잡아야 한다”며 “이 작업이야말로 진정한 광복일 것”이라고 밝혔다.
민족문화사전은 또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된 김성수·방응모·김활란 등을 설명하면서 친일 행적을 다루지 않았다. 박제순·권중현·이지용·이근택 등 ‘을사오적’에 속하는 이들을 서술하면서 인물 성격을 ‘관료’ ‘행정관료’ ‘문신’ 등으로만 분류했다. 을사오적 중 가장 잘 알려진 이완용에 대해서만 ‘친일파’로 분류했다.
민족문화사전을 편찬한 한국학중앙연구원 측은 “일부 항목에 부적절한 내용이 있다”며 “연구 여건이나 예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측면도 있다”고 해명했다. 연구원 관계자는 31일 “초판이 나온 1991년 당시까지만 해도 자료가 지금에 비해 많이 부족했다”며 “독립운동가로 알려졌다가 뒤늦게 친일 행적이 드러난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그는 “친일부역자들의 활동만 다루는 <친일인명사전>과 비교하는 것은 가혹한 측면도 있다”고 말했다.
민족문화사전은 한국학중앙연구원 주관으로 2007년부터 2차 개정증보에 들어갔다. 국가예산 56억원이 투입돼 2017년 마무리된다.
연구원 관계자는 “민족문화사전 내용을 손보기에 10년간 56억원은 지나치게 모자라는 액수이고, 사업 목표를 개정보다 신규항목 추가 중심으로 잡은 것도 문제”라며 “내년부터라도 지적 받은 내용을 바로잡으려 하겠지만 2017년까지 얼마나 바로잡을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다”고 말했다.
<2015-08-31> 경향신문
☞기사원문: 일본 장교 이응준을 ‘민족운동가와 협력’ 서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