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 한국사, 임시정부 법통 삭제
이틀 전엔 박 대통령 “대한민국 법통 시작된 곳”이라더니 …
‘임시정부 법통’ 한국사 집필기준서 뺐다
ㆍ정부 ‘2015 교육과정’ 고교 시안
ㆍ‘식민지 근대화론’ 합리화 우려도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2015 교육과정’의 고교 한국사 집필기준 시안에서 헌법 전문에도 명시돼 있는 대한민국의 상하이 임시정부 법통 계승에 대한 부분이 빠지는 것으로 확인됐다. 또 조선후기 경제·사회상의 변화 부분이 생략돼 우리 사회 내부로부터 근대화의 움직임이 시작됐다는 내용도 축소될 것으로 보인다. 이는 결국 일제 식민지 시대부터 근대화가 시작됐다는 뉴라이트적 역사인식을 뒷받침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이 같은 집필기준을 두고 반헌법·친일 논란이 격화될 것으로 보인다.
6일 경향신문이 입수한 ‘2015 교육과정에 따른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 집필기준’을 보면 ‘1910년대 일제의 식민통치와 3·1운동’ 성취기준 부분에서 집필방향과 집필 유의점을 통틀어 ‘임시정부의 법통’이라는 말을 찾아볼 수가 없다.
▲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4일 중국 상하이에서 열린 임시정부 청사 재개관식에 참석해 백범 김구 선생 흉상 앞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
현재 교과서에 적용된 2009 집필기준에는 ‘대한민국은 3·1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하였음에 유의한다’고 되어 있다. 지난달 전문가들에게 자문을 받았던 ‘집필기준(안)’에는 ‘임시정부의 법통 계승’이라는 집필 유의점이 있었지만 검토 후 제외된 것으로 확인됐다.
임시정부 연구자인 한시준 단국대 역사학과 교수는 “1948년 제헌국회 개원식 당시 이승만 대통령은 상하이에서 수립됐던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재건하는 것이라고 했고, 1948년에 ‘대한민국 30년’이라는 대한민국 연호를 사용했다. 이는 1919년 임시정부 수립을 대한민국 원년으로 본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 교수는 “교과서에서 임시정부의 법통성을 제외하려는 움직임은 독립운동의 역사를 평가절하하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2015 집필기준에서는 조선후기 농민과 수공업자, 상인들의 노력에 의해 경제, 사회적인 면에서 근대사회를 향한 새로운 움직임이 나타났다는 부분도 빠졌다. 여러 차례 교과서 집필 경험이 있는 조왕호 교사(대일고)는 “국정교과서 때도 반영됐던 조선후기의 사회변화와 발전론이 빠졌다. 이는 조선후기의 근대적 움직임을 부정하는 뉴라이트 사관과 일맥상통하고, 일제강점기에 근대가 시작됐다는 식민지근대화론을 합리화할 가능성이 있어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교육부 관계자는 “전문가 간담회와 자문위원회 등을 거쳐 집필기준 초안을 마련했다. 11일 집필기준 공청회까지 계속 다듬고 있는 중”이라며 “이달 말쯤 최종 집필기준이 나올 때까지 학회나 전문가 의견을 반영할 것”이라고 밝혔다.
송현숙 기자 song@kyunghyang.com
<2015-09-07> 경향신문
☞기사원문: 이틀 전엔 박 대통령 “대한민국 법통 시작된 곳”이라더니 … ‘임시정부 법통’ 한국사 집필기준서 뺐다
이슈 한국사, 임시정부 법통 삭제
<임정: 臨政·상하이 임시정부>평가절하로 ‘건국절’에 당위성…뉴라이트 사관화 우려
ㆍ‘한국사 집필 기준’ 분석
독립운동사 부분 축소 뚜렷시대별 사회경제사도 삭제해지배층 중심으로 기술 우려유독 현대사만 경제 발전 강조일 시각서 강점기 시대 구분도
2015 한국사 교육과정 개정에서 가장 특징적인 부분은 근현대사 비중 축소다. 교육당국은 ‘시대별 적정화’라는 이유를 들고 있다. 아울러 ‘학습부담 감축’을 내세우며 성취기준도 줄였다. 그러나 이 두 가지가 맞물리며 “결국 강조하고 싶은 부분을 도드라져 보이게 하고, 감추고 싶은 것은 최소화하려는 의도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된다. 고교 한국사 교과서 집필기준안 시안을 보면 이런 우려들이 일정부분 현실화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 임시정부 법통성 제외
한국사 교과서에서 임시정부 법통성 문제는 뉴라이트 성향 학자들이 줄곧 이의를 제기해 온 문제이다. 집필기준에서 임시정부의 법통성 부분이 빠지면 의도했든, 하지 않았든 정부 여당이 군불을 지피고 있는 ‘건국절’의 당위성에 힘을 실어줄 수 있는 결과를 낳게 된다.
한시준 단국대 역사학과 교수는 “일제에 협력했던 사람들로선 독립운동의 역사가 높이 평가되는 것이 달갑지 않으니, 독립운동의 본산 역할을 했던 임시정부를 무시하고 임정과 대한민국의 관계를 단절시키려는 것”이라며 “임정의 법통성을 없애 결국 건국절을 띄우려는 의도”라고 평했다.
역사학계에서는 집필기준에 줄곧 있었던 임시정부의 법통성이 빠진 것에 정치적 의도가 다분히 깔려 있다고 보고 있다.
▲ 항일 독립운동가 후손들과 역사학계 원로들이 지난 4일 국회에서 “독립운동 정신을 훼손하는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를 중단하라”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권호욱 선임기자 |
이준식 민족문제연구소 연구위원은 “전문가 검토본까지도 있었던 것을 갑자기 제외한 것은 특정한 목표가 있다고밖에 생각할 수 없다”며 “대통령은 상하이에서 임정을 띄우는 퍼포먼스를 하고 집필기준에서는 임정을 폄하하는 모순되는 태도를 보여 본의가 어디 있는지 의심스럽다. 대통령의 ‘퍼포먼스’ 후 법통성이 빠진 것을 알게 되니 황당할 뿐”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역사학자는 “임정의 법통성 부분이 빠진 것은 역사교과서가 국정화됐을 때 어떤 교과서가 나올 것인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 식민지 근대화론 뒷받침
학습부담 감축이 강조되며 각 시대별 집필기준에서는 사회·경제사가 통째로 빠졌다. 역사가 지배층 중심으로 기술될 우려가 제기되는 대목이다.
조선 후기사에서는 민중(농민, 수공업자, 상인 등)들의 노력에 의해 경제, 사회면에서 새로운 움직임이 일어났다는 점을 서술할 공간이 없어졌다. 조선 후기에 이미 사회 내부에서 자본주의의 싹이 트고 있었다는 점을 시사하는 이 부분은 검정교과서는 물론이고 5, 6차 국정 교과서에서도 6~7쪽을 할애하고 수능에서도 자주 출제될 만큼 중요하게 다뤄졌던 부분이다.
조왕호 대일고 교사는 “학습부담 감축을 내세웠지만 근현대사 축소와 사회경제사 제외로 전근대의 정치사는 오히려 더 늘어나게 됐다”며 “다른 시기는 모두 사회경제사를 생략하면서 유독 해방 이후 현대사에서만은 경제, 사회 분야를 별도로 다루고 있는 점도 집필기준의 의도를 의심받게 한다”고 지적했다. 마지막 단원의 집필기준에는 “정부 주도의 경제개발계획을 기반으로 이룩한 경제 발전의 과정을 서술한다”는 기준이 남았다.
이준식 민족문제연구소 연구위원은 “전문가 검토본까지도 있었던 것을 갑자기 제외한 것은 특정한 목표가 있다고밖에 생각할 수 없다”며 “대통령은 상하이에서 임정을 띄우는 퍼포먼스를 하고 집필기준에서는 임정을 폄하하는 모순되는 태도를 보여 본의가 어디 있는지 의심스럽다. 대통령의 ‘퍼포먼스’ 후 법통성이 빠진 것을 알게 되니 황당할 뿐”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역사학자는 “임정의 법통성 부분이 빠진 것은 역사교과서가 국정화됐을 때 어떤 교과서가 나올 것인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 식민지 근대화론 뒷받침
학습부담 감축이 강조되며 각 시대별 집필기준에서는 사회·경제사가 통째로 빠졌다. 역사가 지배층 중심으로 기술될 우려가 제기되는 대목이다.
조선 후기사에서는 민중(농민, 수공업자, 상인 등)들의 노력에 의해 경제, 사회면에서 새로운 움직임이 일어났다는 점을 서술할 공간이 없어졌다. 조선 후기에 이미 사회 내부에서 자본주의의 싹이 트고 있었다는 점을 시사하는 이 부분은 검정교과서는 물론이고 5, 6차 국정 교과서에서도 6~7쪽을 할애하고 수능에서도 자주 출제될 만큼 중요하게 다뤄졌던 부분이다.
조왕호 대일고 교사는 “학습부담 감축을 내세웠지만 근현대사 축소와 사회경제사 제외로 전근대의 정치사는 오히려 더 늘어나게 됐다”며 “다른 시기는 모두 사회경제사를 생략하면서 유독 해방 이후 현대사에서만은 경제, 사회 분야를 별도로 다루고 있는 점도 집필기준의 의도를 의심받게 한다”고 지적했다. 마지막 단원의 집필기준에는 “정부 주도의 경제개발계획을 기반으로 이룩한 경제 발전의 과정을 서술한다”는 기준이 남았다.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2015 교육과정’의 고교 한국사 교과서 집필기준 시안.
한편 기존 교과서와 개정 교육과정의 수업 차시를 기준으로 시대별 비중을 비교한 결과, 새 교육과정에서 강조하고자 하는 부분이 어디인지가 명확하게 드러났다.
7개의 대주제로 나눴을 때 고조선 부분은 기존 3.3%에서 7.3%로, 고대국가의 발전은 9.9%에서 15.8%로 늘었다. 기존 교과서에서는 조선시대·근대국가수립운동·일제강점과 민족운동 전개가 모두 18.7%씩을 차지했지만 새로 바뀌는 교육과정에서는 조선시대는 20.7%로 증가한 반면, 근대 국가 수립운동은 14.6%, 일제강점기는 12.2%로 급감해 독립운동사 부분의 축소가 확연하게 나타났다.
■ 일본 입장의 일제강점기 구분
중단원의 수가 줄면서 일제강점기를 일제의 식민통치 방식에 따라 구분한 것도 뒷말을 낳고 있다.
지금까지의 교과서는 ‘일제의 침략과 수탈’ 단원에서 중단원 한 개는 일제의 지배체제와 수탈을 시대별로 개략적으로 다루고, 2단원부터는 독립운동을 기준으로 구분해 왔다. 그러나 2015 집필기준에서는 식민통치 방식의 변화에 따른 1910년대 무단통치, 1920년대 문화통치, 1930년대 이후 민족말살통치로 구분하고 독립운동사를 그에 맞춰 서술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조한경 전국역사교사모임 회장은 “이런 식의 시대 구분은 역대 국정 교과서에도 없었다”며 “이제까지는 대부분 식민통치에 대해 간략하게 쓰고 독립운동을 자세히 썼는데 집필기준 시안대로라면 일제의 식민통치 정책이 중심이 된다는 인식을 주게 된다”고 지적했다.
송현숙 기자 song@kyunghyang.com
<2015-09-07> 경향신문
☞기사원문: <임정: 臨政·상하이 임시정부>평가절하로 ‘건국절’에 당위성…뉴라이트 사관화 우려
이슈 한국사, 임시정부 법통 삭제
중·일 근현대사 비중 늘리는데 한국만 역행
ㆍ‘역사 교과서 국정제’ 국가도
ㆍ북한·베트남 등 소수 불과
‘2015 교육과정’ 개정을 추진 중인 한국은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에서 전근대사와 근현대사 비중을 56% 대 44%로 현재(5 대 5)보다 근현대사를 줄이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그러나 가까운 중국과 일본은 오히려 근현대사 교육을 강조하고 있다. 근현대사 비중 축소는 중·일은 물론 세계적 추세와 비교해도 역행하는 방향이다. 정부 여당이 군불을 지피고 있는 역사교과서 국정화도 세계적 추세와 어긋나는 후진적 선택이다.
중국은 지역별로 ‘역사교학대강’과 ‘역사과정표준’ 등 각기 다른 교육과정을 사용하고 있지만 근현대사의 우위는 확연하다. 역사교학대강을 적용하는 고등학교에서는 ‘중국근대현대사’가 필수이고, ‘중국전근대사’와 ‘세계근현대사’가 선택이다. 역사과정표준을 적용하는 고등학교에서는 중국사와 세계사를 주제별로 통합한 ‘역사I’(정치사), ‘역사Ⅱ’(사회경제사), ‘역사Ⅲ’(문화사)를 배운다. 채택률이 가장 높은 인민교육출판사 발행 ‘역사I’(전체 대단원 8개)의 경우 세계사 단원을 제외한 4개 대단원 가운데 중국 고대사를 다루는 것은 1단원 ‘고대 중국의 정치제도’ 하나로, 전근대사 대 근현대사 비중이 1 대 3이다. 중단원을 기준으로 하면 근현대사 비중이 전근대사의 3배를 넘는다. 전근대사와 근현대사 비중이 1 대 3이다.
▲ 각국 교과서 발행 현황 | 자료 : ‘역사교과서 발행 제도의 세계적 추이에 비추어 본 최근 한국사 교과서 국정제 전환 시도의 부당성’(방지원, 2014)
일본은 고등학교에서 ‘일본사 A’와 ‘일본사 B’를 배운다. 선사시대부터 현대까지를 통사로 배우는 ‘일본사 B’의 경우 올해 학습지도요령을 기준으로 전근대사와 근현대사는 각기 대단원 3개로 구성돼 비율이 1 대 1이다. 그러나 ‘일본사 A’가 근현대사 과목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근현대사 비중이 전근대사보다 훨씬 높다. 일본은 지난달 5일 고교 세계사와 일본사를 통합해 근현대사를 중심으로 배우는 ‘역사종합’ 과목을 신설한다는 방침을 발표해 앞으로 근현대사 교육이 더욱 강화될 방침이다. 현재 일본 고등학교에서 ‘세계사’는 필수과목이고, ‘일본사’는 선택과목이지만 신설되는 ‘역사종합’ 과목은 필수과목으로 지정된다.
일본·중국 교과서를 분석해온 전국역사교사모임 윤세병 교사는 “근현대사 비중을 줄이는 것은 역사를 단순암기 과목으로 만들어 ‘역사를 배워서 어디에 쓸 거냐’는 비판을 받기에 딱 좋다”고 말했다. 구난희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는 “역사를 통해 단순한 사실이 아닌 현대 사회에서 필요한 문제해결 능력을 키우려면 사료가 풍부한 근현대사를 가르쳐야 한다”고 말했다.
근현대사 비중 축소만이 아니라 정부·여당이 추진하고 있는 역사교과서 국정화도 세계적 추세와 역행한다. 현재 교과서를 국정제로 발행하는 국가는 북한, 베트남, 방글라데시 정도다. 이외에 종교적 특수성이 강한 이란, 이라크, 시리아, 수단 등 일부 이슬람 국가에서 국정제를 시행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베트남은 몇 년 전부터 검정제로 전환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방지원 신라대 역사교육과 교수가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4개국 가운데 국정제를 시행하는 국가는 한 곳도 없다. 17개국은 자유발행제, 4개국은 인정제(민간이 자유롭게 출판·공적기관이 사용 인정)를 시행하고 있고, 13개국은 검정제다. 인도·아르헨티나는 연방정부가 설립한 학교와 초등학교에서만, 인도네시아는 초등학교만 국정제다.
중국은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 수립 후 오랜 기간 국정제를 유지했지만 1987년 “교재의 다양화를 실행하고 여러 지역의 수요에 적응하기 위해” 검정제로 전환한다는 방침을 발표해 지역별로 다른 교과서를 발행하고 있다. 한국 정부가 교과서에서 한·일 과거사를 왜곡한다고 비판해온 일본 역시 검정제다.
정원식 기자 bachwsik@kyunghyang.com
<2015-09-06> 경향신문
☞기사원문: 중·일 근현대사 비중 늘리는데 한국만 역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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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오늘: 상해 임시정부 찾은 박근혜, 또 유체이탈 화법
▲ 7일 낮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독립운동가 지청천 장군의 외손인 이준식(민족문제연구소 연구위원. 59)씨가 한국사교과서의 국정화 시도 중단을 요구하는 1인시위를 벌이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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