ㆍ정도전 문집이 “조선 후기”, 부여 역사는 ‘건너뛰기’
ㆍ초등 5학년 역사책 틀린 곳 ‘다수’
ㆍ역사연대 “폐쇄적 국정화의 폐해”
박근혜 정부가 첫 국정교과서로 만든 초등학교 5학년 2학기 ‘사회’(역사)교과서에 조선 초 간행된 삼봉 정도전의 문집 <삼봉집>(왼쪽 사진)의 간행 시기가 조선 후기로 명시돼 있고, 고구려·백제 건국세력의 뿌리인 부여의 역사는 빠져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기초적 사실관계가 틀리고 학계의 통설과 어긋난 해석이나 표현들이 국정교과서에서 대거 지적된 것이다.
역사 관련 7개 단체로 구성된 역사교육연대는 7일 서울 종로구 흥사단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중·고등학교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추진하는 현 정부가 만든 국정교과서의 모습을 알아보기 위해 초등학교 교과서를 분석한 결과 많은 문제들이 발견됐다”며 이같이 밝혔다.
초등 사회교과서는 “정도전은 조선 후기에 이르러 누명을 벗게 되었고, 그의 저술을 모은 <삼봉집>도 간행될 수 있었다”고 기술하고 있다. 이익주 서울시립대 국사학과 교수는 “<삼봉집>은 조선 후기인 정조 때 다시 간행된 것은 맞지만 이미 태조 6년에 처음으로 간행됐고, 세조 11년, 성종 17년에도 간행됐다”고 지적했다.
고구려·백제의 기원이고 ‘백의민족’의 연원이 된 고대국가 부여에 대한 서술은 누락돼 있었다. 교과서는 2단원에서 고조선에 대한 설명 후 부여·삼한을 건너뛰고 곧바로 고구려·백제·신라의 삼국시대로 넘어가고 있다.
교과서에서는 종이 설치된 누각인 보신각을 ‘종’이라고 표현하는 등 기초적인 실수(오른쪽)도 여럿 발견됐다. 지난 8월 발행된 이 교과서는 2학기 초등학교 5학년 교실에서 사용 중이다. 조한경 전국역사교사모임 회장은 “정부가 오류 없는 교과서를 만들겠다고 하며 국정화 드라이브를 걸고 있지만 국정교과서는 오류투성이였다”면서 “국정제의 폐쇄적인 집필 과정이 이 같은 문제를 낳은 것”이라고 말했다.
정원식 기자 bachwsik@kyunghyang.com
<2015-09-07> 경향신문
☞기사원문: 박근혜 정부 첫 국정교과서 ‘오류투성이’
ㆍ역사학자들 “국가가 만들었는 데 이렇게 허술할 수가”
ㆍ독립운동가 후손 1인시위 “한국사 국정화 시도 중단을”
“국정교과서가 이렇게 허술할 수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교육부가 책임을 지고 당장 수정사항을 정오표로 만들어 학교 현장에 배포해야 한다.”
박근혜 정부의 첫 국정교과서인 초등학교 5학년 2학기 교과서를 분석한 학자들과 교사들은 “이런 교과서로 공부하면 학생들이 잘못된 역사인식을 갖게 된다”고 우려했다. 기초적 사실관계에서부터 서술상의 표현·해석까지 국가가 책임지고 만들었다고 보기 어려운 ‘오류투성이 교과서’라는 것이다.
교과서는 “(신라에서는) 국학에서 공부한 학생들 중에서 시험을 치러 관리를 뽑으려고 하였지만, 귀족들의 반대로 시험을 치를 수 없었다”(89쪽)고 기술돼 있다. 하일식 연세대 사학과 교수는 “귀족들이 반대해서 시험을 치르지 못했다는 건 금시초문”이라고 말했다. 국학에서 수학한 학생을 중하위직에 등용하는 독서삼품과를 시행했지만 높은 벼슬은 진골이 독차지했고, 귀족들이 관리시험을 반대했다는 것은 신라사 전공자들도 처음 듣는 얘기라는 것이다.
▲ 독립운동가 지청천 장군의 외손인 이준식 민족문제연구소 연구위원(59)이 7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시도 중단을 요구하는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서성일 기자 |
교과서는 고려시대의 과거제를 언급하며 “고려에서는 가문이 좋지 않더라도 출세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89쪽)고 기술하고 있다. 그러나 음서제 후에 과거제가 생긴 게 아니라 과거제 이후 실시된 음서제 때문에 귀족들이 관직을 독점했다고 보는 것이 학계의 상식이다.
교과서 181쪽 ‘문화재 지도’에는 고구려 비사성이 중국 다롄시 진저우구가 아닌 멀리 떨어진 진저우시에 표시돼 있다. 한자까지 다른 ‘진저우구’를 ‘진저우시’로 오인해 엉뚱한 위치에 표시한 것으로 해석된다. 한반도에 고추가 들어오기 전인 고려시대 청자에 붉은 김치가 담긴 그림도 역사적 오류다. 조선시대 주요 궁궐을 소개하는 대목(133쪽)에서 창경궁이 누락돼 있고, 교과서 125쪽 연표에는 ‘경국대전’이 반포된 해(1485년)를 완성된 해로 표기하기도 했다.
고대국가(18~29쪽) 기술도 도마에 올라 있다. 고조선이 한 단원을 차지하고 있음에도 고조선의 멸망은 언급돼 있지 않고 곧바로 삼국시대로 건너가 5세기 초반까지 존속한 부여에 대한 서술은 보이지 않았다. 고구려·백제 건국세력의 기원이 되는 주요 국가 부여를 누락한 것이다. 본문 내용에는 나오지 않는 ‘위만조선’이 해설박스에는 등장해 혼란을 초래하는 대목도 발견됐다.
방지원 신라대 역사교육과 교수는 “연구진·집필진·심의진에 유수한 학자들이 포함돼 있는데도 이런 오류가 나오는 것은 제작 과정이 비밀스럽고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국정제의 한계 때문”이라며 “정부가 국정제에 대한 미련을 버리고 검·인정제를 보완하고 유지하는 쪽으로 정책방향을 고쳐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정원식 기자 bachwsik@kyunghyang.com
< 2015-09-07> 경향신문
☞기사원문: 보신각 ‘종’으로 표현…고구려 비사성은 엉뚱한 곳 표시, 오류투성이 국정교과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