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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나라 위해 만주군관학교 입학” 미화 위인전, 알고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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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주군관학교에 입학한 박정희 전 대통령을 미화한 내용을 담고 있는 위인전. 사진 커뮤니티 클리앙

온라인에서 초등학교 교과서로 알려지면서 논란 일어
사실은 1990년대 출판된 동화책…13년 전에 절판돼

박정희 전 대통령의 일본 육군사관학교 입학 이유 등을 미화한 한 위인전이 ‘초등학교 교과서’로 오해 받아 누리꾼 사이에서 논란을 일으켰으나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

발단은 지난 7월께부터 ‘오늘의 유머’와 ‘MLB파크’ 등 여러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온 ‘박정희 창조 미화’라는 제목의 사진에서 비롯됐다.(▶관련 게시물 링크)

사진으로 촬영된 책 내용을 살펴보면 “박정희는 나라를 위해 더 큰일을 하기 위해 교사 생활을 그만두고 만주로 갔어요. 만주 군관학교에 입학하여 힘든 훈련을 마친 박정희는 또다시 일본 육군사관학교에 진학하였어요”라고 적혀 있다. 이어지는 글에는 “‘일본은 곧 망할 것이다’ 박정희는 마음속으로 이런 믿음을 가졌어요. 일본의 항복으로 우리나라는 광복이 되었어요. 박정희는 광복군에 들어가 조국으로 돌아갈 날만을 기다리며 열심히 훈련을 쌓았어요. 하지만 나라에서 광복군을 인정해 주지 않았어요. 박정희는 초라한 모습으로 고향에 돌아왔어요”라는 내용이 적혀있다.

<한겨레> 취재 결과, 해당 내용이 담긴 책은 1990년대 ‘학원출판공사’라는 출판사에서 나온 ‘판타피아 위인전기 한국편’ 32권 중 한권인 박정희 전 대통령 위인전인 것으로 확인됐다. 학원출판공사는 현재 스마일북스 출판사로 이름을 바꿨고, 이 책은 절판돼 더 이상 구매할 수 없다. 스마일북스 출판사 관계자는 8일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전집 초판은 당시 전진프로덕션이라는 기획사에서 제작했고 학원출판공사가 인쇄를 맡아 판매했다”며 “해당 전집은 13년 전인 2002년 절판됐고, 현재 시중에서 구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전집을 쓴 작가와도 연락을 시도했지만 출판사 관계자는 “워낙 오래된 일이라 당시 자료들이 남아 있지 않고 기획사나 담당자도 알 수 없는 상태라 연락처도 모르겠다”고 말했다.

민족문제연구소가 공개한 1939년 3월31일자 <만주신문> 기사를 보면, 청년 박정희는 경북 문경에서 교사로 재직하던 중 일제 강점기 만주국 군관으로 지원했다가 나이 초과로 탈락했다. 박정희는 ‘한 번 죽음으로써 충성함 박정희(一死以テ御奉公 朴正熙)’라고 쓴 혈서와 지원 서류 등을 넣어 다시 군관 모집에 응시한 것으로 전해진다.

만주신문 기사에는 박정희가 지원 서류에 “일본인으로서 수치스럽지 않을 만큼의 정신과 기백으로써 일사봉공(一死奉公)의 굳건한 결심입니다. 확실히 하겠습니다. 목숨을 다해 충성을 다할 각오입니다”라며 “한 명의 만주국군으로서 만주국을 위해, 나아가 조국을 위해 어떠한 일신의 영달을 바라지 않겠습니다. 멸사봉공(滅私奉公), 견마(犬馬)의 충성을 다할 결심입니다”라는 내용이 포함됐다고 전하고 있다.

광복군 편입과 관련해서도 오해의 소지가 다분하다. 박한용 민족문제연구소 교육홍보실장은 “해방이라는 급격한 상황 변화 중에 중국에 흩어진 광복군이 인원을 늘리려는 차원에서 박정희를 편입한 것”이라며 “광복군을 추가 모집하는 곳에 가서 과거 경력을 인정받아 중대장이 됐다”고 설명했다. 또 “당시 연고가 없던 박정희가 중국에서 귀국해야 되는 상황에서 미군 배를 타고 부산으로 귀향하게 됐다”고 말했다.

만주군에서 박정희와 같이 근무했던 중국인 동기생 고경인씨는 해방 직후 박정희의 모습에 대해 “그날(1945년 8월15일) 오후 박정희를 만났는데 ‘이제 어떻하면 좋겠느냐’며 낙담한 모양이더군요. 그래서 내가 ‘우리 하고 같이 가면 되지 뭐가 걱정이냐’고 위로해줬습니다. 박정희는 북경으로 떠나면서 ‘고국에 돌아가면 건국에 참여하고 싶다’는 의지를 내비쳤습니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관련 게시물 링크)

박수진 기자 jjinpd@hani.co.kr

<2015-09-08> 한겨레

기사원문: “박정희, 나라 위해 만주군관학교 입학” 미화 위인전, 알고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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