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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國定)이라 쓰고 권정(權定)이라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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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정부의 역사교과서 국정화 추진에 대한 소고


1.

2013년 가을 전교조와 민족문제연구소를 비롯한 각종 사회단체의 노력과 시민들의 절대적인 여론에 힘입어 교학사 한국사 교과서는 전국 2500여개가 넘는 고등학교에서 외면을 받아 사실상 0% 채택률을 보이며 퇴출당했다. 당시 일선 고등학교에서 교학사 한국사 교과서를 채택하지 않은 이유는 너무도 명확했다. 한마디로 ‘불량품’이었기 때문이었다. 역사학계에서 제기된 이념적 편향과 친일 독재를 옹호한다는 문제 제기도 큰 이유가 되었었지만, 결정적인 건 교과서 질이 너무 떨어졌던 것이다. 입시에 대한 책무성을 요구받는 고등학교에서 오류가 많은 교과서를 선정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러나 뉴라이트를 비롯한 극우 세력은 ‘0% 채택률’에 대한 책임을 엉뚱한 곳으로 돌려 버렸다. 현재 역사학계가 모두 좌편향되어 있고 그로 인해서 학교 현장은 이들의 부당한 영향력에 의해 좌우되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리하여 자신들이 야심(!)차게 만든, ‘대한민국을 긍정적으로 해석한’ 교과서가 떨어졌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래도 이때만 해도 박근혜 정부가 설마 교과서 체제를 국정으로 되돌릴 거라는 상상은 하지 못했다. 뉴라이트 학자들도 처음에는 국정 체제 전환에 대해서 주춤하는 모습을 보였을 정도였다. 교학사 한국사 교과서 채택을 둘러싼 논쟁이 한창 일고 있었을 때 뉴라이트 학자들은 ‘0% 채택률’은 다양성과 자율성을 해치는 결과라고 비난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의 뻔뻔함은 오래가지 않았다. 그들은 ‘좌편향된 역사학계’를 제압하기 위해서는 국정 체제가 필요하다는 논리로 자신들의 주장을 뒤집어버렸다. 그들을 ‘학자’라고 부르기가 민망한 순간이었다.



2.


21세기 지구촌에서 교과서 발행 체제를 국정제를 유지하고 있는 나라는 북한 등 극소수의 나라에 불과하다. 대부분 민주주의가 발달하지 못한 국가에서 사용되고 있다. 입만 열면 ‘종북 빨갱이’라며 우격다짐으로 편협한 시각을 늘어놓는 이들이 ‘종북 빨갱이’의 원조인 북한을 따라 하며 국정 교과서를 발행한다고 하니 헛웃음이 나올 지경이다. 이래서 극과 극은 통한다고 하나보다. 국정화 논란이 시작되었던 2014년에만 하더라도 정부 관료들은 국정화 추진에 대해 미적지근한 모습을 보였었다. 그들이 보기에도 국정 교과서 체제는 후진국에서나 하는 제도이지 선진국 진입을 앞둔 나라에서 할 만한 제도는 아니었던 것이다.


하다못해 보수 언론의 중심인 조선, 동아, 중앙일보도 사설을 통해 ‘덜 떨어진 나라’에서나 시행하는 제도라며 반대했었다. 또한 현 교육부 차관은 교수 시절 자신의 논문에서 ‘국정제는 독재국가에서나 사용하는 체제’라고 주장했었다. 국사편찬위원장을 맡고 있는 원로 역사학자는 74년 국정제를 처음 실시했을 때 다양성을 해칠 수 있다는 의미로 반대를 주장했었고 김영삼 정부에서는 직접 대통령에게 국정제 폐지를 요청하기도 했었다. 그런데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고 한다. 지금은 민주주의가 발달했기 때문에 문제없다고 한다. 독재 시기에는 안되고 민주주의 시대에는 된다는 논리는 무슨 궤변인지. 곡학아세도 이런 곡학아세가 없다. 학자적 양심은 간 데 없고 현 정권의 들러리 역할을 자임하고 있다. 집권 세력이 얼마나 무서우면 그럴까 생각해보기도 한다.

3.


역사 교과서가 국정체제가 되면 여러 개의 교과서로 공부하지 않아서 시험 준비가 쉬울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나 보다. 하지만, 지나가던 사람들에게 그 옛날 국정 교과서 시대의 역사공부를 물어보면 무슨 얘길 할까? ‘태정태세문단세 예성연중…’하며 왕 이름이나 외운 기억을 떠올리지 않을까? 역사 과목이 외울게 많다고 투덜대던 그 옛날의 학창시절이 그리운 걸까? 우리 아이들이 이런 식으로 다시 교육을 받는다고 하면 우리 부모님들은 뭐라고 할까?


검정 체제 하에서 수능 시험은 여러 교과서의 내용 중 교집합적인 내용만이 시험 문제로 나온다. A교과서에는 언급이 되지만 B교과서에서 언급이 되지 않는 내용은 수능 시험의 예시나 문제로 나올 수가 없다. 만약 그랬다가는 문제가 편파적이다는 지적을 받기 때문이다.


하지만 국정 교과서는 첫 페이지부터 마지막 페이지까지 있는 모든 내용이 시험에 출제될 수 있다. 그래서 오히려 고득점을 노리는 학생들은 교과서의 자잘한 내용까지 공부해한다. 역사적 사고력과 역사의식의 성장을 목표로 하는 역사교육의 목적은 어느덧 사라지고 암기 과목 중의 최고라는 영광(!)을 다시 한 번 누리게 생겼다. 개탄스러운 일이다.



4.


74년 국정을 처음 시작할 때나 지금이나 국정 교과서 제도를 반대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정권의 입맛에 맞는 내용을 실어 권력의 정당성을 홍보하는 수단으로 전락되기 때문이다. 새누리당 대표와 교육부 장관은 절대 그런 일은 없을 거라며 기우라고 말한다. 과연 그럴까?


1979년판 고등학교 ‘국사’의 경우, 박정희 정부와 관련하여 민주화에 대한 내용은 생략한 채 산업화를 부각시켜 체제 우월 의식에 기반한 통일과 세계화를 강조하는 서술이 중심 내용으로 하고 있었다. 특히 박정희 정부의 자랑인 새마을 운동에 대한 내용이 다른 내용에 비해 2∼3배 이상 많은 것도 눈에 띄었다. 그런데 하이라이트는 따로 있다. 이 교과서의 현대사 부분에서는 단 하나의 사료가 직접 제시되어 있는데, 바로 5.16 군사정변 당시 혁명 공약이었다. 혁명 공약은 모두 6가지 조항으로 되어 있다. 그런데, 마지막 조항인 6항은 원래 군사정변 세력이 제시한 원문과 다르게 교과서에 실려 있는 것이다. 원문의 6항은,


‘이와 같은 우리의 과업이 성취되면 참신하고도 양심적인 정치인들에게 언제든지 정권을 이양하고 우리들은 본연의 임무에 복귀할 준비를 갖춘다.’


라고 되어 있지만, 당시 교과서에 서술된 내용은


‘이와 같은 우리의 과업을 조속히 성취하고 새로운 민주 공화국의 굳건한 토대를 이룩하기 위하여, 우리는 몸과 마음을 바쳐 최선의 노력을 경주한다.’


고 적혀있다.


국정 교과서가 설마 역사를 왜곡할까 싶기도 하지만, 이렇듯 국정 교과서는 오히려 권력의 충실한 이념 교육 도구로 이용되었던 것이다. 전두환 정권 역시 마찬가지였다. 전두환 정권은 1980년 봄 국민들의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을 저버리고 군화발로 계엄을 선포한 뒤 광주를 피로 물들였다. 하지만 교과서에는 이런 내용은 언급되지 않았다. 국정 교과서는 역사를 객관적으로 서술하기 보다는 집권 세력의 정당성을 일방적으로 강조하고 그것을 홍보하는 수단으로 이용되었다. 이렇게 정권이 바뀔 때마다 내용이 달라지는 국정 교과서를 누가 신뢰할 것인가?

5.


현 정부가 들어선 이후 사회 전반에 걸쳐서 후퇴하는 모습들이 많이 보이고 있다. 통진당 해산, 전교조 법외노조화 등등 대한민국 헌법에서 보장하는 국민의 기본권이 점점 움츠러들고 있다. MB정부 이후부터 이어져오고 있는 언론 장악은 현 정부 들어 한술 더 뜨는 형국이다. 언론자유의 척도마저 후진국 수준으로 떨어지는 마당에 국정 교과서가 정권의 압력에 굴복하지 않으리라 누가 장담할 수 있겠는가? 정치권력에 의해 다시 교육이 무너지고 있다.


김태우(경기 삼숭중 역사교사, 전국역사교사모임 부회장)


<2015-09-14>위클리서울

☞기사원문: 국정(國定)이라 쓰고 권정(權定)이라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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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사설] 역사교과서 국정화, 대통령이 철회 결단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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