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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교수들도 “역사교과서 국정화는 헌법가치 파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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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 교수 160명이 16일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반대 성명을 냈다. 부산대와 덕성여대 교수들의 15일 선언, 서울대 교수들의 2일 선언에 이어 교수들의 ‘국정화 반대’ 목소리가 시국선언 형태로 확산되는 양상이다.


고대 교수 160명은 ‘대한민국의 오늘과 미래를 위해 정부의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시도에 반대하는 고려대 교수 성명’이라는 제목으로 “민주주의와 헌법 가치의 파괴, 국격 하락과 국론 분열을 야기하는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에 반대한다”고 밝혔다. 이하 전문.


▲ 16일 고려대 문과대학에서 고려대 교수들이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반대 성명”을 낭독하고 있다. 정원식 기자.




대한민국의 오늘과 미래를 위해
정부의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시도에 반대하는 고려대학교 교수 성명


1.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는 민주주의를 후퇴시키는 행위이다.


검인정으로 출발한 한국의 근대 교과서 발행 제도가 국정으로 바뀐 것은 유신 정권 하에서였다. 이후 독재 권력에 의한 획일적인 역사교육 방식은 우리 사회 민주주의의 성장과 함께 수명을 다하고 근래에 와서야 비로소 검정제를 회복하였다.


그러나 수년 전부터 일각에서 제도적으로 수정 보완이 가능한 검정 교과서를 일방적으로 매도하더니 결국 한국근현대사 교과서가 폐지되고 친일과 독재를 미화하는 교과서까지 버젓이 출현하기에 이르렀다. 대한민국과 헌법의 정체성을 부정한다는 평가까지 받은 이 교과서가 시민사회와 학계의 검증으로 학교 현장에서 채택되지 않자 정부는 아예 시대를 역행하여 이미 역사 속으로 사라진 국정화를 되살리려 하고 있다.


오늘날 교과서 발행의 세계적 추세는 보편화된 검인정제에서 자유발행제로 넘어가는 과정에 있다. 국정보다는 검인정, 검인정보다는 자유발행제가 민주적 사회발전에 부응한 역사교육에 적합하다는 것을 말한다. 즉 국정화는 이러한 세계적 추세를 거스르는 것일 뿐만 아니라 독재로의 회귀를 상징하는 반민주적 행위로서 역사교육 차원에서는 물론 정부에게도 득이 될 것이 없다.


2.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는 헌법 가치를 파괴하는 행위이다.


헌법은 우리 국가가 민주공화국임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이미 전문가 집단인 역사학계와 역사교육학계는 여러 차례 성명을 통해 한국사 교과서의 국정화 시도에 반대해 왔으며 현장의 교사들 대다수도 같은 의견을 표명하였다. 그런데도 국민의 의견을 경청해야 할 정부가 이러한 반대를 무시한 채 일부 세력만의 작은 정치를 위해 대한민국의 미래를 어둡게 하는 위험한 잣대를 교육 현장에까지 강요하려는 상황에 깊은 우려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


최근 들어 국정화에 반대하는 공감대는 시민사회와 정치권으로 확산되고 있다. 더구나 일찍이 헌법재판소도 국정보다는 검인정제가 교육의 자주성, 전문성, 정치적 중립성을 보장하는 헌법의 이념을 고양할 수 있다면서 국사의 경우 다양한 견해를 소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지적하였다. 즉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는 헌법적 가치를 수호하려는 시민사회와 전문가들의 염원을 저버리는 반헌법적 행위인 것이다.


3.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는 국격을 떨어트리는 행위이다.


근자 들어 정치·경제·사회·문화 모든 영역에서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는 성숙하기보다 후퇴하고 여러 대형 참사에서 드러나듯이 시민들의 안전과 생명은 일상에서 위협받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는 출범 초기에 약속했던 경제 민주화와 복지 공약을 이행하고 평화·민주·복지와 같은 보편적 가치의 구현에 매진함으로써 국격과 삶의 질을 높이는데 주력하기보다 국론의 분열과 대립을 불러올 백해무익한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에 매달리고 있다.


우리의 눈을 세계로 돌려보자. 국정 역사 교과서는 현재 극소수의 특수한 국가들에 의해 운영되고 있을 뿐이다. 과거사 청산 문제로 우리와 대립하고 있는 일본도 역사 교과서는 검정제로 발행하고 있다. 따라서 당면 과제를 방기한 채 추진되는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는 국격을 더욱 떨어트릴 것이며 정치적 갈등과 사회적 분열만 초래할 것이다. 결국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가 누구를 위한, 무엇을 위한 것인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4. 정부는 대한민국의 발전과 밝은 미래를 기획하는 큰 정치를 하라.


국정화를 통한 단일한 역사인식이란 정부의 입김에 의해 좌우될 수밖에 없다. 학문과 교육의 영역을 정치의 논리로 환원시킨 정부의 태도는 보수니 진보니 하는 퇴행적 편 가르기를 동원해 학계에서 수십 년간 쌓아놓은 학문의 다양한 성과를 부정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21세기도 15년이 지난 오늘날, 일방적이고 획일화된 시각을 미래 세대에게 주입하겠다는 정부의 시도는 우리 사회의 미래를 어둡게 만들 위험천만한 일이다.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는 결코 역사학 분야만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 사회가 힘들게 쌓아온 민주주의와 헌법 가치의 근간을 위협하고 품격 있게 발전해야 할 대한민국의 미래를 심히 우려스럽게 하는 행위이다. 우리는 대한민국의 오늘과 미래를 위해 현 정부가 훌륭한 업적과 국민적 지지 속에서 임기를 마치기를 진심으로 고대한다.


이에 고려대학교 교수들은 뜻을 모아 정부가 국정화 시도를 중단하고 객관적이고 공정한 검정제 운영에 주력하여 발전적 미래를 열어가는 데 이바지할 것을 강력하게 요구한다. 우리는 보편적인 민주주의 가치가 존중받고 학문과 교육의 전문성, 자율성, 정치적 중립성이 지켜지는 대한민국, 그리고 이 길을 열어가는 큰 정치를 염원한다.


2015년 9월 16일


대한민국의 오늘과 미래를 위해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에 반대하는 고려대학교 교수 160명 일동


강규호, 강병근, 강상순, 강수돌, 강제훈, 강진웅, 강충룡, 고세훈, 고일, 구상회, 권내현,
권보드래, 권혁용, 권혁준, 김경현, 김균, 김기창, 김기형, 김남국, 김동욱, 김동철, 김매이,
김문용, 김병곤, 김선민, 김수미, 김수한, 김승현, 김언종, 김영근, 김우찬, 김원섭, 김윤태,
김은기, 김은성, 김재환, 김정석, 김제완, 김진규, 김진영, 김진일, 김철규, 김하열, 김현준,
김형찬, 김효민, 김희강, 나병수, 나현승, 남호성, 노애경, 류태호, 리안유, 명순구, 민경현,
박경남, 박경서, 박경신, 박대재, 박만섭, 박상수(사), 박상수(경제), 박성철, 박언호,
박유성, 박종천, 박진훈, 박철범, 박현숙, 박형서, 박홍규, 배종대, 배종석, 봉미미, 서두원,
석관호, 성영배, 손병석, 손영도, 손주경, 송규진, 송상기, 송양섭, 송완범, 송혁기, 신승준,
신재혁, 안호용, 양형진, 오광욱, 오영재, 오인규, 유경철, 유시진, 유영대, 유재진, 유희수,
윤경희, 윤영미, 윤인진, 윤재민, 윤재왕, 윤조원, 윤형진, 이동섭, 이동원, 이병련, 이삼호,
이상우, 이승호, 이승환, 이용숙, 이우진, 이윤정, 이장혁, 이재학, 이재훈, 이진한, 이창민,
이해원, 이헌창, 이형대, 이형식, 임인숙, 장경준, 장하성, 전경남, 전경욱, 정병욱, 정승환,
정우봉, 정운용, 정일준, 정재관, 정주연, 정지웅, 정태구, 정태헌, 조규형, 조대엽, 조명철,
조영헌, 조재룡, 지영래, 최귀묵, 최규발, 최덕수, 최석무, 최윤재, 최종택, 최형재, 최호철,
하종호, 하태훈, 한재민, 한정선, 허은, 홍세희, 홍영기, 홍종선 [가나다순]



<2015-09-16> 경향신문

☞기사원문: 고대 교수들도 “역사교과서 국정화는 헌법가치 파괴”


※관련기사

☞연합뉴스: ‘역사교과서 국정화 반대’ 대학별 교수성명 잇달아(종합)

☞한겨레: 지역·전공 넘어 교수들 ‘국정화 반대’ 확산

☞SBS: 부산대·덕성여대 교수들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중단해야”

☞한겨레: 서울대 역사 교수들, 이름 걸고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반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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