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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적없이 사라진 반민특위, 의미부각 노력도 ‘물거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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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도 권력 곳곳을 장악한 친일파 후손 때문”

▲ 1948년 5월 31일 열린 제헌의회 개원식. 우여곡절 끝에 친일파 처단을 위한 반민법을 제정했다.

역사적 인물들의 친일행위가 또다시 논란의 대상으로 떠오른 가운데, 과거 반민특위 활동은 흔적도 없이 사라진 채 그 뜻을 되살리려는 노력 역시 번번이 물거품이 된 것으로 나타났다.


꼭 67년 전인 오늘 국회는 반민족행위처벌법을 제정해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반민특위) 활동의 근거를 마련했다.


그러나 반민특위는 친일파의 반민족 행위 청산이라는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고 약 1년 후 이승만 정부에 의해 강제 해산됐으며, 현재에 이르기까지 지워진 역사가 된 실정이다.


◇ ‘일본 관광객 못 보도록’…표석조차 구석으로


반민특위를 기념하는 표석이라도 세우자는 노력은 반민특위 해체 50년을 맞은 지난 1999년 있었다.


우여곡절 끝에 민족문제연구소 주도로 서울 명동 국민은행 사옥 인근에 반민특위 본부가 있었다는 표석이 마련됐다.


하지만 표석은 큰길가 반민특위 본부 정문 위치가 아닌, 체포된 반민족행위자를 가두던 유치장 자리에 세워졌다.


관계 기관에서 ‘일본인 관광객이 많이 지나다니는 곳인 만큼 표석을 눈에 잘 띄는 큰 길에 세우지 않았으면 한다’며 난색을 표했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반민특위 총무과장 겸 조사관을 지낸 이원용 선생(2002년 별세)은 당시 “표석조차 제자리를 찾지 못해 안타깝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더구나 표석은 해당 건물이 리모델링을 하는 과정에서 두 차례나 자리를 옮겨 현재는 지하주차장 입구 한쪽 구석에 위치해 있다.


◇ 명예회복·기념사업조차 실패…”친일청산 좌절에 허무주의 팽배”


민족문제연구소는 지난 2005년 3월, 17대 국회 제정 특별법에 따른 ‘친일반민족 행위 진상규명위원회’ 출범을 앞두고 반민특위에 대한 정부차원의 명예회복을 요청하기도 했다.


반민특위에 대한 정부 표창 등을 통해 반민족행위자 청산에 대한 뜻이나마 기리고자 했지만, 당시 국회의장과 행정자치부 장관, 경찰청장으로부터 뚜렷한 답변을 듣지 못했다.


또 2008년 3월에는 반민특위 출범 6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우정사업본부에 기념우표 발행을 제안했으나 이 역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당시 우정사업본부가 선정한 기념우표 대상은 ▲세계 아마추어 전파탐지(ARDF) 선수권대회 ▲베이징 올림픽 ▲람사협약당사국 총회 ▲상수도 사업 100주년 ▲한글학회 100돌 ▲한국구세군 사역 100주년 ▲윤봉길 의사 탄생 100주년 ▲이명박 대통령 취임 등으로, 반민특위의 의미가 이들에 밀린 것.


이처럼 반민특위의 의미를 늦게나마 부각시키려는 노력마저 번번히 실패하는 것은, 현재도 권력 곳곳을 장악한 친일파 후손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위원회’ 기획총괄과장이던 김민철 민족문제연구소 책임연구원은 “반민특위의 해체로 반공을 앞세운 독재가 시작됐고, 국가 권력은 친일파와 연대한 세력에 장악됐다”면서 “민주화 이후에도 그들에 뿌리를 둔 이들이 지배세력으로 남아 청산이 쉽지 않다”고 말했다.


김 책임연구원은 이어 “4·19혁명 등 역사적으로 친일파 청산의 시도가 몇차례 있었지만 모두 좌절했기 때문에 우리사회에 ‘정의란 없다’는 허무주의가 팽배하다”며 “역사적 진실을 밝히기 위한 자유로운 사회 분위기와 올바른 역사교육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CBS노컷뉴스 장성주 기자

<2015-09-22> 노컷뉴스

☞기사원문: 흔적없이 사라진 반민특위, 의미부각 노력도 ‘물거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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