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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대 교수 132명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반대” 성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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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임기창 기자 =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에 반대하는 각계 성명이 잇따르는 가운데 연세대 교수들도 국정화 추진 중단을 촉구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하일식 연세대 사학과 교수 등 이 학교 인문·사회분야 교수 132명은 22일 ‘민주적 가치 함양과 창의적 교육을 거스르는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를 반대한다’라는 제목의 성명을 내 역사 교과서 국정화가 “유신독재 권력이 역사 해석마저 오로지한 과거로 회귀를 시도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들 교수는 “현행 검정교과서는 학계 다수 통설에 입각한 것이며 교육부 지침을 거쳐 검정을 통과한 책들”이라며 “여기에 불만을 품고 국정화를 추진하는 것은 학계의 다수 해석을 부정하고 권력의 해석을 강요하려는 시도”라고 지적했다.


이어 “정치권력과 역사는 거리를 유지해야 한다”면서 “정상적 민주사회의 집권자라면 과거 역사를 해석하는 데 관여하기보다 국민 다수의 행복을 위해 현실과 미래를 내다보는 바른 정책에 매진함이 마땅하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미래 세대 청소년에게 획일적 역사관을 강요하는 것은 헌법에 명기된 교육의 중립성과 자율성을 침해하는 것”이라며 “우리는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가 지난 수십년간 우리 사회가 쌓아 온 정치·사회·문화적 성과를 퇴행시킬 것을 깊이 걱정한다”고 밝혔다.


이들은 “반대 목소리가 높음에도 정부와 집권세력이 국정화를 단행한다면 이후 우리 사회가 짊어질 부담과 폐해에 대한 책임도 고스란히 져야 할 것”이라며 “국정화는 학계와 교육계 어디에서도 원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임기창 기자
pulse@yna.co.kr

<2015-09-22> 연합뉴스

☞기사원문: 연대 교수 132명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반대” 성명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에 반대하는 연세대 교수 성명]


민주적 가치 함양과 창의적 교육을 거스르는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를 반대한다

역사 교과서는 대한민국정부 수립 이후 줄곧 검정제였고, 유신체제 성립과 함께 국정제로 바뀌었다가 2000년대 들어서 검정제로 되돌아왔다. 한국의 민주주의가 진전되고 사회?문화 수준이 높아진 결과였다. 다양성이 존중되는 민주사회에서 획일적 해석을 강요하는 역사 교과서 국정화는 어울리지 않는다.


그러나 지금 한국 집권층은 국정화를 추진하는 퇴행적 행태를 보이고 있다. 헌정을 유린하고 인권을 짓밟은 유신독재 권력이 역사 해석마저 오로지했던 과거로의 회귀를 시도하는 것이다. 이런 움직임이 미치는 영향이 역사학과 역사교육 분야에만 그치는 문제가 아니라 생각하여 연세대학교 인문 사회 분야의 교수들은 반대하는 뜻을 분명히 밝히고자 한다.

한국사 교과서를 국정화하려는 시도는 정치 권력과 일부 보수 세력이 검정 교과서를 못마땅히 여기면서 불거졌다. 그러나 현행 검정 교과서는 학계 다수의 통설에 입각한 것이며, 교육부의 지침을 지켜 검정을 통과한 책들이다. 여기에 불만을 품고 국정화를 추진하는 것은 학계의 다수 해석을 부정하고 권력의 해석을 강요하려는 시도이다. 우리는 정치적 목적을 위해 권력이 개입하여 학문의 자유를 부정하고 민주사회의 공공 가치를 훼손하는 상황을 걱정한다.


정치 권력과 역사는 거리를 유지해야 한다. 왕조시대 권력자조차 사관(史官)의 기록에 관여하는 것은 금기(禁忌)였다. 역사는 길고 권력은 짧다는 것, 권력이 개입하면 올바른 역사 서술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자신의 정치적 견해와 다르다는 이유로 학계 다수의 역사 해석을 적대시하고 권력에 기대어 개입하려 해서는 안된다. 또한 정상적 민주사회의 집권자라면 과거 역사를 해석하는데 관여하기보다는 국민 다수의 행복을 위해 현실과 미래를 내다보는 바른 정책에 매진함이 마땅하다.


지금 정부 여당이 추진하는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는 “긴 머리, 짧은 치마를 국가가 통제하던” 야만의 시대로 시간을 되돌리려는 시도이다. 그러나 한국 사회의 발전 수준은 이미 그 단계를 훨씬 넘어섰다. 긴 역사를 보더라도 퇴행적 시도는 성공할 수 없으며 갈등을 빚고 사회 문화적 역량을 소모할 뿐이었다. 자라나는 미래 세대 학생들이 다양하고 역동적인 사고를 기를 수 있는 바탕, 창의적이고 합리적인 판단력을 기르는 교육을 국정 교과서가 뒷받침할 수는 없다는 것이 우리의 판단이다.


국정 교과서는 권력의 입김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 유신체제가 강요한 국정 교과서의 내용은 이를 매우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좁은 틀 속에서 해석한 하나의 생각이 강요된 교실에서 바람직한 미래에 대한 자유롭고 창의적인 발상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갇힌 사고로 이루어지는 일방적 교육은 미래 세대의 가능성을 제약한다. 대학에서 학문을 연구하고 가르치는 우리들이 인문?사회과학 분야를 망라하여 뜻을 모아 반대 목소리를 내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미래 세대 청소년에게 획일적 역사관을 강요하는 것은 헌법에 명기된 교육의 중립성과 자율성을 침해하는 것이다. 우리는 한국사 교과서의 국정화가 지난 수십년간 우리 사회가 쌓아온 정치?사회?문화적 성과들을 퇴행시킬 것을 깊이 걱정한다. 국정화는 학계와 교육계 어디서도 원하지 않는 것이다.


남북 분단을 내세우며 국정화가 필요하다는 주장도 있지만, 과거 서독은 검정제였고 동독은 국정제였음을 떠올려야 한다. 서독과 동독 중 어느 쪽이 통일의 주인공이 되었는지 모르는 사람은 없다. 어느 선진국에서도 역사 교과서를 국정으로 유지하는 경우는 없다. 권력이 역사 해석에 개입할 수 없으며 강요해서도 안 된다는 공감대가 확고하기 때문이다.


반대하는 목소리가 높음에도 불구하고 정부와 집권세력이 국정화를 단행한다면, 이후 우리 사회가 짊어질 부담과 폐해(弊害)에 대한 책임도 고스란히 져야 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책임 여부를 떠나서 우리 사회가 떠안을 손실을 먼저 걱정하며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시도를 중단할 것을 요구한다.

2015년 9월 21일

연세대학교 교수 132명 일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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