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탐구] 이인호 KBS 이사장, “공영방송이 이래선 안 된다” 시키지 않아도 정권 입맛 맞춰 보도 개입
이인호 KBS 이사가 이사 연임에 이어 이사장 연임에도 성공했다. 이인호 이사장에게 제기됐던 보도 개입 논란, 공금 유용 논란 등은 장벽이 되지 않았다. 당초 이인호 이사장은 이사 재선임 때부터 “청와대 낙점 인사”라는 말이 공공연히 흘러 나왔던 인물 중 한 명이었다.
이인호 이사장은 지난해 9월 이사장에 취임 후 한 모두 발언에서 역사관이 편향 됐다는 지적에 대해 “그 당시 운동권 교육을 받았던 일부 정치인들이나 국사학 교수·교사들, 그 영향을 받은 일부 언론인의 역사 인식이 제 인식과 다른 것”이라고 반박했다.
이 이사장은 이승만 전 대통령에 대해서는 “시대를 앞지르는 진보적 민주주의 사상을 가진 독립 운동가”로 높이 평가했고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해서는 “정치 제도적으로는 민주주의를 후퇴시킨 독재자였지만 경제 발전을 촉진시킴으로서 민생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고 민주주의가 꽃 필수 있는 사회경제적 토대를 마련한 인물”이라고 말했다.
▲ 이인호 KBS 이사장의 지난 7월 말 미국 출장이 공금 유용 논란을 받고 있다. KBS 이사회는 이 건에 대한 감사를 요청했다. KBS 뉴스에 보도된 해당 행사 참석 장면. |
KBS의 보도·편성에 대해 이 이사장은 “KBS 이사들이 프로그램에 대한 논평이나 비판을 해선 안 된다는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다”며 “이사회는 KBS의 공공성·공정성을 높이는 데 최종적인 책임을 져야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 이사장은 또 “모든 프로그램이 담당 부서에서 결정되고 나서 책임 PD, 회사 내 검증·검색 라인을 통해서 올라갔을 때 밖에 나가서 손색이 없고 훌륭한 프로그램이 될 것”이라고도 덧붙였다.
이인호, KBS의 문창극 보도에 “마녀사냥”
이 이사장은 KBS 보도에 대해 종종 반감을 드러냈다. KBS 내에서 ‘이승만 다큐’ 논란이 일었던 2008년 9월 동아일보 칼럼에서 이 이사장은 이승만 전 대통령에 비판적인 이유를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부정하고자 하는 친북좌파의 역사 왜곡 공작” 때문이라고 몰아붙였다. 이어 “방송국 자체가 검증 체계를 강화함으로써 역사 앞에 큰 죄를 짓는 일에 종지부를 찍어야 한다”며 내부 ‘검증’ 강화를 주장했다.
이 이사장은 민족문제연구소의 역사 다큐 ‘백년전쟁’에 대해서도 “역사 왜곡”이라고 비판했다. 이 이사장이 2013년 3월 청와대의 원로 초청 오찬에서 “국가 안보 차원에서 주의 깊게 살펴봐야 한다”고 발언했다. 나란히 앉았던 박근혜 대통령이 이를 ‘수첩’에 받아 적고 이후 ‘백년전쟁’에 대한 ‘역사 왜곡’ 논란이 불거졌다.
▲ 이인호(사진 맨 왼쪽) KBS 이사장이 지난 2013년 3월 13일 청와대에서 열린 원로 초청 오찬 간담회에서 박근혜 대통령 옆 자리에 앉아 있다. ⓒ청와대 |
지난해 6월 문창극 전 국무총리 후보의 친일 발언 보도를 한 KBS에 대해서도 이 이사장은 비판적이었다. 이사로 선임되기 전인 지난해 6월 이 이사장은 TV조선 ‘뉴스쇼 판’에 출연해 “문 전 총리 후보의 교회 강연 동영상을 보고 감동 받았다”, “인사청문회 전에 마녀사냥 식으로 사람을 반민족주의자로 몰아붙이는 경위 자체가 오싹하다”고 비판했었다.
이 이사장은 KBS 입성 후에도 ‘역사관’으로 논란을 일으켰다. 지난해 4월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서 법정제재인 ‘경고’ 처분을 받은 KBS 광복 70주년 특집 다큐멘터리 ‘뿌리깊은 미래’에 대해 이 이사장은 “외부의 부정적 평가가 많고 수신료 거부 운동까지 거론되고 있다”며 “우매하고 부족한 제작진에게 프로그램에 대한 걱정과 우려 여론을 전달해야 한다”는 취지의 발언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는 이사회 안건으로 다뤄지지 않았지만 ‘뿌리 깊은 미래’는 결국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서 법정 제재인 ‘경고’를 받았다.
이 이사장은 ‘보도 개입’을 멈추지 않았다. 지난해 7월 ‘이승만 일본 망명설’ 보도에 대해서는 결국 ‘외부 성토 대회’를 이유로 긴급 이사회를 소집하기에 이르렀다. 야당은 물론 여당 추천 이사도 “보도에 대해 이사 개인 의견을 개진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입장을 보여 이사회 안건 상정에는 실패했다.
하지만 이번 9기 이사진 중에는 이 이사장 뿐 아니라 여당 추천 일부 이사들 사이에서는 ‘이승만 일본 망명설’ 보도에 대해 이사회 안건으로 다뤄야 한다는 입장을 피력한 것으로 알려져 KBS의 보도 개입 논란을 계속 될 것으로 보인다.
막강 ‘이인호 파워’, 사장이 재선임 원할수록 강해져
이 이사장은 이번 새 이사진 구성에서 유일하게 연임된 인사다. 복수의 전 이사는 “보궐 이사장으로 들어왔으니 연임은 당연한 것 아니겠느냐”며 “다른 이사의 경우 이명박 전 대통령 때 들어왔지만 이 이사장은 박근혜 정부 사람이다. 정권과 코드가 맞는 사람은 이 이사장 뿐”이라고 말했다.
▲ 이인호(사진 왼쪽) KBS 이사장이 2014년 국정감사장에서 조대현 사장과 나란히 앉아 있다. ⓒ 노컷뉴스 |
이 이사장 전임인 이길영 전 이사장은 임기 만료 1년을 앞두고 돌연 사퇴했다. 당시 KBS 안팎에서는 “길환영 전 사장 해임과 조대현 사장 선임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사퇴했다”는 관측이 무성했다. 청와대가 낙점한 홍성규 전 방송통신위원이 사장에서 낙마한 후 이사회를 장악할 수 있는 이사장으로 이 이사장을 낙점했다는 것이 당시의 관측이었다.
이와 함께 이 이사장의 영향력은 사장 선임 국면과 관련 깊다는 것이 KBS 안팎의 관측이다. 한 KBS 관계자는 “사장 선임권을 쥔 이사회가 현재 국면에서는 가장 큰 힘을 갖는 것 아니겠느냐”며 “조대현 사장이 재선임을 강하게 원할수록 이사회 눈치를 보게 되고 이 이사장은 막강 ‘파워’를 휘두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길환영 전 사장 선임이 결정된 후 힘을 잃은 이길영 전 이사장과 마찰을 빚었다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라며 “사장이 선임되기 전까지는 집행부나 회사 간부 모두가 이 이사장을 바라보는 현 상황이 이어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최민희 새정치민주연합 의원도 기본적으로는 “사장 선임 국면”이 이 이사장의 영향력을 뒷받침 한다고 봤다. 최 의원은 “여당 추천 이사의 ‘배신’으로 선임된 조대현 사장이 현재 재선임 의사를 강하게 피력하는 상황에서 이사회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며 “이런 분위기가 상층 간부는 물론 구성원에게 전달되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최 의원은 여기에 덧붙여 “일상적인 저항 문화가 퇴색한 KBS의 문화가 이사장의 보도·제작 프로그램 개입 같은 큰 틀의 방송 장악을 허용하고 있는 것”이라며 “방송이 독립성을 가지려면 일상적으로 저항해야하는 데 KBS 내에서 그런 분위기가 많이 사라졌다”고 안타까워 했다.
또 언론과 방송 시스템에 문외한인 이 이사장의 ‘저돌적인 성격’도 한몫했다는 분석도 있다. 또 다른 전 KBS 이사는 “이 이사장에게는 ‘공영방송이 이래서는 안 된다’는 소신이 강하다”며 “자기가 생각하는 ‘올바른 역사관’에 입각한 방송을 할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 이사장 취임 후 “어떻게든 방송에 본인의 생각을 반영하려고 하는 게 눈에 보였다. 그 일을 하기 위해 KBS에 왔나 싶을 정도였다”며 “지난 1년 동안 이사회는 이사장의 보도 개입을 막기 위해 싸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고 강조했다.
최 의원은 “방송 개입이 잘못인지 모르는 이 이사장이 적극적으로 편성과 프로그램 등에 개입하면서 잘못인줄 모르고 있고 정권 차원에선 시키지 않아도 입맛에 맞게 움직여 주고 있으니 ‘너무 예쁜 이사장’일 수밖에 없다”며 “평생 교육자로 살아온 이 이사장이 자신의 가치관을 옳은 것으로 두고 KBS 구성원을 가르치려고 하는 것 같다”고 평가했다.
이인호 이사장의 말말말
“호남 문제는 계급과 민족 문제가 다 포함되어있어 특별히 주목해야한다. 핵심적인 것은 광주사태 해결이다.”
크리스찬 아카데미가 주최한 ‘88년 후반기 한국 정치의 중요과제’ 대화 모임에서. (한겨레, 1988.5.24.)
“오랜 세월에 걸쳐 강행됐던 몽매적 반공 교육은 정확한 지식과 정보의 전달을 차단함으로써 공산권 사회들에 대한 현실적인 이해를 불가능하게 한 한편 금지된 것에 대한 반발적 호기심과 동경만을 축적시켰던 것이다.… 여전히 고질적 병폐로 남아있는 고압적·관주도적 사회운영 양식 및 정치적 채산에 다른 모든 고려를 종속시키는 습성을 어떻게 극복해 나아가는가 하는 데 있다.”
“외형과 내실의 불균형” 기고 글에서. (경향신문, 1988.10.7.)
“언론의 자유를 제약할 필요성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그들 나름으로의 논리를 가지고 있으며 사실상 언론의 자유가 무제한으로 보장돼있는 시민사회란 세상에 별로 없다.… 언론 탄압의 저의가 정통성이 결여된 권력의 유지에 있었음은 이제 새삼스레 따질 필요도 없는 일이다.… 알 것을 알고 말할 것을 말할 권리는 그것 자체로서 인간의 기본적 권리에 속하며 누구도 그것을 영구히 박탈할 수 없다.”
“국민을 담보 삼은 언론 탄압” 기고 글 중. (경향신문, 1988.12.2.)
“길게 보면 두 입장(학자와 운동가)이 인간이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사회가 돼야 한다는 목표에서는 결국 같다고 봅니다. 또한 학자건 운동가건 모두에게 현실 파악은 매우 중요합니다.”
‘러시아혁명’ 번역 출판 후 언론 대담에서. (경향신문, 1990.8.4.)
“오늘의 타락과 부패는 도덕성 확립 운동과 함께 경제체제 개혁 움직임이 함께 이뤄져야 해결될 수 있다.”
-경실련의 ‘부패 추장’ 세미나 토론 요지. (동아일보, 1991.4.8.)
“소련·동유럽의 사회주의 실험이 실패로 끝났지만 사회주의자들이 꿈꾸었던 이상 그 자체가 잘못된 것인가 또는 영원히 실현 불가능한 것인가 하는 의문은 계속 남는다.”
-한국서양사학회의 ‘사회주의 운동의 역사적 변천’ 주제의 학술회의 개최 의의를 설명하며. (한겨레, 1991.10.12.)
“80년대 초 학생 데모가 가장 치열했던 시기에도 학생들의 관심이 길거리가 아니라 강의실을 통해 충족될 수 있도록 돕기 위해 저명한 영국의 마르크스주의 계열 역사학자 에릭 홉스봄 교수와 미국의 비판적 지성의 대표 스튜어트 휴즈 교수를 초청해 강연회를 연 적이 있었어요. 그런 기회를 더 만들어 주지 못하는데 대해 안타깝게 느꼈던 기억이 납니다.… 지금 과거 청산을 외치는 사람들 대다수는 일제 시대에 살던 사람들이 마치 도덕적 고민이 없이 이기심 때문에 애국자였던 사람들도 친일 구호를 외친 듯 단순논리를 펴는 경향을 보이는데 그것이야말로 역사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생기는 부작용이지요.… 역사학자들이 친일청산 문제를 연구해 오고 있는데, 학자들에게 맡겨둬야 합니다. 가장 시급한 것은 우리만 아니라 남이 보아도 수긍할 만한 현대사 쓰기 작업을 거국적으로 추진하는 것입니다.”
‘제자, 스승에게 길을 묻다’ 제자 최영미 시인과 대담 중. (조선일보, 2004.11.29.)
“우리에게 희망을 준 손기정 선수도 일제와 전혀 타협하지 않았다고 말할 수 없다. 그렇다고 손기정 선수가 친일파냐.”
북한인권국제대회 공동대회장 인터뷰. (주간한국, 2005.12.14.)
“긍정적인 측면은 묵살하고 부정적인 면만 부각시키는 KBS의 특집은 개별적 사실에 충실한 척하면서 거대한 역사왜곡을 감행하는 전형적 수법을 보여준다.”
KBS의 이승만 다큐 2부작에 대한 칼럼에서. (동아일보, 2008.9.8.)
“역사 왜곡이다. 국가 안보차원에서 주의 깊게 살펴봐야 한다.”
청와대의 원로 초청 오찬에서. (2013.3.)
“고시만 통과하면 고위 공무원이 될 수 있을 만큼 자유로운 것이 우리나라 현실이어서 소위 김일성 장학생이 국내 각 분야에서, 심지어 세력 핵심부까지 파고들어 활개치고 있다.”
21세기경영인클럽의 10월 조찬회 강연 내용. (월간 뉴미디어, 2013.11월호)
“(문창극 전 국무총리 후보) 교회 강연 동영상을 보고 감동을 받았다.”
(TV조선 뉴스쇼 판, 2014년6.19.)
“이승만 대통령을 높이 평가하는 것은 시대를 앞지르는 진보적 민주주의 사상을 가진 독립 운동가였고 박정희 대통령은 민생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고 민주주의가 꽃 필수 있는 사회경제적 토대를 마련한 인물입니다.… KBS 구성원 모두가 KBS가 생산하는 방송 모두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고 늘 살펴보는 것이 바람직하며 잘잘못에 대해서 이사들이 최종적으로 책임을 져야 된다.”
제9기 KBS 이사회 모두 발언 중. (KBS 사내 게시판 공개, 2014.09.17)
김유리 기자 | yu100@mediatoday.co.kr
<2015-09-22> 미디어오늘
☞기사원문: “방송 모르지만, 정권엔 ‘너무 예쁜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