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당은 김무성 대표가 지난 5일 “이념논쟁·편향성 논란에서 벗어나 객관적 사실에 기반한, 균형 잡힌 역사인식을 위한 한국사 교과서를 준비해야 한다”고 발언하고 앞서 당 역사교과서개선특별위원회를 구성하는 등 10월 들어 국정화 강행에 힘을 싣고 있다. 이에 맞서 9월 한 달 동안 쏟아져나왔던 교수들의 대학별 국정화 반대 선언 또한 지난 5일 경희대(116명), 목포대(48명), 인하대(90명) 교수들이 반대 성명을 내놓는 등 끊임 없이 이어지고 있다.
6일에는 춘천교육대학교 교수협의회가 성명을 냈다. 교수들은 “심지어 역사 왜곡 문제로 비판받는 일본도 제2차 세계 대전 종전 전까지는 국정제였다가 군국주의나 아시아에 대한 침략 전쟁을 반성한다는 의미에서 1948년부터 검정제를 도입해서 현재에 이르고 있다”며 “교육부가 미래 세대의 청소년에게 획일적인 역사관을 강요하는 국정제를 채택한다면 대한민국이 학교 교육 내용을 획일적으로 통제했던 과거 권위주의 정권의 집권 시기로 회귀함으로써 역사적 퇴행을 자초하고 있음을 국제 사회에 널리 자인하는 공표 행위가 될 수 있다”고 비판했다. 아래는 춘천교대 성명서 전문.
「한국사 교과서 국정제」 반대 성명서
박근혜 정부가 집권한 이후 교육부는 역사 교육에 대한 국가적 통제를 지속적으로 강화해 오고 있다. 2014년 초에 교과서 편수제를 부활하겠다고 공언한 데 이어 올해 7월에는 ‘교과용 도서 개발 체제 개선 방안’을 통해 본심사를 2단계로 하고 그 사이에 내용 검토가 필요한 도서에 대해서 전문기관에 감수를 위탁하겠다는 방침까지 제시하였다. 역사 교과서의 경우 검정기관 이외에 별도(예: 국사편찬위원회)의 감수를 거쳐 최종 판정을 내리겠다는 것으로, 그러한 방침은 ‘전문기관’이란 이름을 빌려 교육 내용에 대해 통제권을 행사하겠다는 의도로 해석된다. 그런데 최근에는 그와 같은 감수 체제의 도입만으로 부족하다고 판단했는지, 일관되고 통일된 역사 교육의 필요성을 제기하며 국정제로 회귀하겠다는 의도를 표명하였다.
한국사 교과서는 해방 이후 1973년까지 ‘검정제’로 발행하다가 1974년 유신 정권이 들어서면서 “한국사 교과서의 단일화로 주관적 학설을 지양하고 민족사관의 통일과 객관화를 기한다.”는 논리를 내세워 ‘국정제’로 전환하였다. 이후 국정 교과서의 역사적 편향과 왜곡이 문제화되면서 역사학계 및 일반 국민의 비판에 직면하여 1982년에 세계사 교과서를, 2003년부터 한국 근현대사 교과서를 검정제로 전환하였으며, 2007 개정 교육과정에 따른 중학교 역사와 고교 한국사 교과서를 각각 2010년과 2011년에 검정제로 전환함으로써 역사 교과서 국정제는 완전히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그런데 교육부는 역사 교과서 검정제를 전면 도입한 지 7년 만에 국정제로 회귀시키려 하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교육부의 국정제 회귀 시도는 교과서 편찬 및 발행 작업에 국가 개입을 최소화하는 국제 사회의 흐름에 정면으로 역행한다. 지구상 대부분의 국가가 자유 발행제나 검정제를 채택하고 있으며, 국정제를 채택하는 경우는 일부 독재국가나 개발도상국뿐이다. 심지어 역사 왜곡 문제로 비판받는 일본도 제2차 세계 대전 종전 전까지는 국정제였다가 군국주의나 아시아에 대한 침략 전쟁을 반성한다는 의미에서 1948년부터 검정제를 도입해서 현재에 이르고 있다. 교육부가 미래 세대의 청소년에게 획일적인 역사관을 강요하는 국정제를 채택한다면 대한민국이 학교 교육 내용을 획일적으로 통제했던 과거 권위주의 정권의 집권 시기로 회귀함으로써 역사적 퇴행을 자초하고 있음을 국제 사회에 널리 자인하는 공표 행위가 될 수 있다.
이에 춘천교육대학교 교수협의회는 다음과 같은 논리로 교육부의 국정제 도입에 반대한다.
첫째, 국정제에 따라 한국사 교과서가 발행될 경우, 역사를 다양한 관점에서 바라보고 해석할 기회를 제공받지 못하고, 특정 관점에서 진술된 내용만을 학습하게 될 우려가 있다. 다시 말하면, 역사적 사실의 축소, 생략, 왜곡 등으로 미래 세대인 청소년들에게 편향된 역사관을 주입할 위험성이 크다. 나아가 교육부가 9월 23일 고시한 사회과 교육과정에 제시된 “학습자 스스로 역사적 자료를 활용하며 비교, 분석, 종합하는 능력을 향상시키고 과거에 대한 다양한 해석과 시각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인식한다.”라는 역사 과목의 목표와도 배치된다.
둘째, 국정제에 따라 한국사 교과서가 발행될 경우, 국가주의적 요소가 강조되어 교육될 위험성이 크다. 즉, 현재의 국가 권력이 역사 교과서 편찬 작업에 직접 개입함으로써 인류 보편의 관점에서 역사를 통찰할 수 있는 기회를 제한하고, 국수주의나 편협한 애국주의와 연관된 내용들이 소개될 위험성이 크다. 그리고 이러한 내용들이 소개된 교과서로 역사 교육이 이루어진다면 우리나라와 세계의 역사를 연관시켜 파악하는 역사적 통찰력이나 현대 사회가 직면한 문제의 역사적 배경을 민주주의, 인권, 자유, 평등, 정의, 평화 등의 인류 보편적 가치의 관점에서 비판적으로 성찰하는 능력 등, 민주 사회의 시민이 갖추어야 할 핵심적인 자질의 발달이 크게 위축될 수 있다.
셋째, 한국사 교과서의 국정제는 대한민국 헌법에서 기본적 인권으로 규정한 ‘교육의 자주성·전문성·정치적 중립성’ 및 ‘언론·출판·학문의 자유’ 등의 보장 조항을 위배하는 반헌법적 성격을 띠고 있다. 다시 말하면, 대한민국의 정치 및 경제 체제의 역사적 기원과 형성 과정, 과거 정권의 업적과 과실 등, 과거 역사 해석에 현재의 정치권력이 직접적으로 관여하게 되어 헌법에서 보장한 ‘교육의 자주성·전문성·정치적 중립성’을 저해할 뿐만 아니라, 단일한 관점에서 해석된 교과서만을 발행·출판하게 함으로써 ‘언론·출판·학문의 자유’도 침해하게 된다.
이에 춘천교육대학교 교수협의회는 다음과 같은 결단을 촉구한다.
1. 교육부는 역사를 획일적으로 교육하는 것이 청소년의 역사적 사고력과 비판적 성찰 능력의 발달을 저해하는 행위임을 직시하여 한국사 교과서의 국정제 회귀 시도를 즉각 철회하라.
2. 교육부는 국가 권력이 역사 해석을 독점하여 학생들에게 주입하는 것은 반교육적 행위임을 직시하고 민주 시민 교육의 관점에서 헌법적 가치에 부합하는 역사 교육의 정상화 방안을 강구하라.
3. 교육부는 국가 권력이 역사에 직접 개입하여 통제하는 것이 민주 시민 사회의 건강한 발전을 저해하는 행위임을 직시하고 대한민국 헌법에 명기된 교육의 자주성·전문성·정치적 중립성 및 언론·출판·학문의 자유를 실질적으로 보장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라.
4. 교육부는 소모적인 사회적 논쟁과 갈등만 증폭시키는 역사 교육 정책 추진을 중단하고 역사 관련 학계 및 교육계의 전문가들이 역사 교육 정책에 대한 의견을 개진할 수 있는 민주적인 참여 공간을 마련하라.
2015. 10. 6.
춘천교육대학교 교수협의회
정원식 기자 bachwsik@kyunghyang.com
<2015-10-05> 경향신문
☞기사원문: 춘천교대 교수들 국정화 반대 성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