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정교과서거부청소년 모임 소속 학생들이 11일 오후 서울 세종로 서울정부청사앞에서 정부의 한국사 국정교과서 추진을 반대하는 입장을 밝힌 뒤 한국사 국정교과서를 반대하는 행위극을 하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
교학사 제외한 7종 교과서 집필진 성명 발표
“집필 과정 조금만 이해해도 이런 매도 못해”
“역사교육 40년 전으로 돌리려는 저의 뭐냐”
한국사 교과서 필자들이 정부·여당과 보수 진영에서 제기하고 있는 ‘한국사 교과서 좌편향’ 논란에 대해 조목조목 반박하고 나섰다. ‘북한 교과서’ ‘반 대한민국 사관’ 운운하며 연일 집중 포화를 퍼붓자, 전면 대응에 나선 것이다.
고교 한국사 교과서 집필진 가운데 교학사를 뺀 나머지 7종의 교과서 필자들이 모인 ‘고교 한국사 교과서 집필자 협의회’는 11일 성명서를 내어 “더 이상 한국사 교과서와 집필진을 왜곡하고 매도하지 말라”고 촉구했다.
협의회는 성명서에서 “2008년 금성출판사의 한국근현대사 교과서 파동 이후 교과서에 대한 비판은 계속돼 왔지만, 최근 정부 여당이 앞장서서 쏟아내고 있는 교과서에 대한 비난은 도를 넘는 것이다. 자기 멋대로 사실을 왜곡하고 매도하는 수준을 넘어 집필자들이 ‘반 대한민국 사관’으로 교과서를 만들었다고 하기에 이르렀다”고 밝혔다.
필자들은 우선 교과서는 일반 서적처럼 저자가 마음대로 쓸 수 있는 책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했다. 교과서는 국가가 정한 교육과정과 집필기준이라는 틀 안에서 검정에 통과해야 하는 책이라는 것이다. 협의회는 “교과서 집필자들과 출판사가 가장 신경 쓰는 부분은 검정에 통과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집필자들은 교육과정과 상세한 집필기준을 지키면서 철저하게 객관적인 사실을 기초로 하고 현재 역사학계의 주요 견해를 중심으로 여러 논쟁점들을 수렴하면서 공정하게 교과서를 집필하려고 노력했다”고 주장했다.
“학생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문장 하나를 가지고 격론을 벌이기도 하고, 사진 한 장도 소홀히 하지 않고 조금이라도 더 좋은 것을 구하기 위해 수많은 사진집을 뒤지기도 했다”며 “만약 이런 과정을 거쳐 교과서가 만들어졌다는 것을 안다면, 정부 여당은 결코 지금처럼 검정 교과서를 매도할 수 없을 것”이라고도 했다.
이런 점에서 “북한 교과서의 일부를 보는 것 같다”, “우리의 역사를 부정하는 반 대한민국 사관으로 쓰여 있다”는 비난은 검정제도를 전혀 모르고 하는 이야기라고 협의회는 지적했다. 불합격을 각오하지 않는다면 그렇게 쓸 수 없다는 것이다.
역사교과서 국정화에 대해서도 우려를 표명했다. 역사교육에 심각한 위기를 불러올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협의회는 “우리는 기존 교육과정의 문제점이나 성과를 검토하지도 않은 채, 동일한 정부 하에서 엄격한 검정 절차를 거쳐 합격한 역사 및 한국사 교과서를 잘못되었다고 개정을 추진할 수 있는지, 더구나 기존 검정 교과서를 폐기하고 역사교과서를 국정화하여 역사교육을 40년 전으로 되돌리려는 저의가 무엇인지 다시 묻지 않을 수 없다”고 밝혔다.
이어 “현 정부가 학교현장에 국정 역사교과서를 일방적으로 강요하는 것은 다양한 역사적 사고와 건전한 시민의식을 마비시키고 합리적인 역사교육에 심각한 장애를 불러일으키고, 헌법상 보장된 학문과 표현의 자유, 보편적 시민적 권리 등을 제한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종규 기자 jklee@hani.co.kr
아래 고등학교 한국사교과서 집필자 협의회 성명서 전문.
“더 이상 한국사 교과서와 집필진을 왜곡하고 매도하지 마라!!”
최근 정부와 여당은 일제히 현행 고등학교 한국사 검정교과서 7종에 대해 왜곡 매도하고 있다. “북한교과서의 일부를 보는 것 같다.” “집필자의 성향에 비추어 서술 내용에 편향성이 있다.” 심지어 중·고교 역사교과서에 대해 “출판사별로 일관되게 우리의 역사를 부정하는 반(反) 대한민국 사관으로 쓰여 있다.”고 비난했다.
교과서에 대한 비판은 새삼스러운 것은 아니다. 2008년 금성 한국근현대사 교과서 파동 이후 교과서에 대한 비판은 계속되어 왔다. 현행 한국사 교과서도 검정에 합격하자마자 여러 비판을 받아왔고 심지어 교육부의 수정 명령을 받기도 하였다. 우리 교과서 집필자들은 그동안 이런 저런 비판에 대해 더 좋은 교과서를 만들기 위한 충정으로 이해하고, 합리적인 비판은 받아들여 더 좋은 교과서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여 왔다.
하지만 최근 정부 여당이 앞장서서 쏟아내고 있는 교과서에 대한 비난은 도를 넘는 것이다. 자기 멋대로 사실을 왜곡하고 매도하는 수준을 넘어 집필자들이 반대한민국사관으로 교과서를 만들었다고 하기에 이르렀다. 이에 우리 집필자들은 더 이상 비상식적인 왜곡·매도·망언을 보고 있을 수만 없어 다음과 같이 의견을 밝힌다.
1. 우리는 교과서를 이렇게 만들었다.
교과서는 일반 서적처럼 저자가 마음대로 쓸 수 있는 책이 아니다. 국가가 정한 교육과정과 집필기준이라는 틀 안에서 검정에 통과해야 하는 책이다. 현행 한국사 교과서는 2011년 8월 교육과학기술부가 고시한 개정 사회과 교육과정에 입각해서 만들어졌다. 이 교과서는 2013년 1월부터 교육부의 엄격한 검정절차를 거쳐 그해 8월 30일 최종 합격 판정을 받고 2014년 3월부터 전국 고등학교에서 쓰이고 있다.
교과서 집필자들과 출판사가 가장 신경 쓰는 부분은 검정에 통과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집필자들은 교육과정과 상세한 집필기준을 지키면서 철저하게 객관적인 사실을 기초로 하고 현재 역사학계의 주요 견해를 중심으로 여러 논쟁점들을 수렴하면서 공정하게 교과서를 집필하려고 노력하였다. 학생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문장 하나를 가지고 격론을 벌이기도 하고, 사진 한 장도 소홀히 하지 않고 조금이라도 더 좋은 것을 구하기 위해 수많은 사진집을 뒤지기도 하였다. 또한 학교 현장에서 가르치는 역사교사들의 수업내용과 학생들의 이해수준 및 학습권 등을 고려하였다. 우리 집필자들은 누구보다 교과서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다고 자부한다. 이 때문에 최상의 교과서를 만들기 위해 수십 차례 원고 작성과 검토 과정을 감내하였다.
만약 이런 과정을 거쳐 교과서가 만들어졌다는 것을 안다면, 정부 여당은 결코 지금처럼 검정 교과서를 매도할 수 없을 것이다. “북한교과서의 일부를 보는 것 같다.”, “우리의 역사를 부정하는 반(反) 대한민국 사관으로 쓰여 있다.”고 하는 비난은 검정제도를 전혀 모르고 하는 이야기이다. 불합격을 각오하지 않는다면 그렇게 쓸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한 내용 서술은 교육과정과 집필기준에 어긋나는 것이어서 집필자들 간의 내부 검토 과정에서부터 걸러지게 마련이다.
만약 그렇게 하지 못한다면 이 교과서는 검정을 통과할 수 없다. 검정 합격 여부를 가르는 공통검정기준 첫 번째 조항이 “대한민국 임시 정부의 법통을 계승한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부정하거나 왜곡·비방하는 내용이 있는가?”(교육부의 『초·중등학교 교과용도서 편찬상의 유의점 및 검정기준』(2011.9), 9쪽)이기 때문이다.
우리 한국사 교과서 집필자들은 집필과정에서 역사교육의 전문성과 자주성, 정치적 중립성을 유지하려고 하였으며, 검정 합격 이후에도 끊임없이 검토하면서 오류를 수정하였다. 교육부를 비롯해 여러 통로를 통한 오류 지적도 타당한 것이라면 수용하여 바로잡았다. 다만 현재 우리 집필자들이 교육부의 수정 명령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소송을 진행하고 있는 이유는 그 명령이 ‘적법하고 유효한 과정’에 의한 것이 아니라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이럼에도 불구하고 고의적으로 검정 결과를 무시하고 편파적인 시각으로 사실을 왜곡하고 집필자를 폄하하는 처사가 계속된다면, 우리가 원하는 바는 아니지만 법적으로 책임을 물을 수밖에 없음을 엄중히 경고한다.
2. 역사교과서의 국정화는 역사교육에 심각한 위기를 불러올 것이다.
최근 정부에서는 2015년 개정 교육과정으로 중학교 역사 교과서 및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의 개정을 예고하고 있다. 2007년과 2009년 부분 개정 교육과정에 의해 2011년 3월부터 사용한 교과서를 3년 만에 폐기하고, 2014년 3월부터 새로운 중학교 역사와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를 사용해왔다. 그런데 2017년부터 새로운 교과서를 사용하게 된다면, 또다시 3년 만에 교과서를 폐기처분하게 된다. 이렇게 10년도 안 되는 기간 동안 역사교과서를 3차례나 개편한다는 것은 세계 각국의 교육현장에서도 유례없는 것이며, 그만큼 교육과정 개편이 졸속으로 이루어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우리는 기존 교육과정의 문제점이나 성과를 검토하지도 않은 채, 동일한 정부 하에서 엄격한 검정 절차를 거쳐 합격한 역사 및 한국사 교과서를 잘못되었다고 개정을 추진할 수 있는지, 더구나 기존 검정 교과서를 폐기하고 역사교과서를 국정화하여 역사교육을 40년 전으로 되돌리려는 저의가 무엇인지 다시 묻지 않을 수 없다.
지난 2013년 8월 유엔 경제적·사회적·문화적 권리위원회 특별보고서에서는 “역사교육은 비판적 사고, 분석적 학습과 토론을 길러주어야 하고, 역사교육은 역사의 복잡성을 강조함으로써 비교와 다양한 관점에서 접근을 가능하게 해야 한다. 그것은 애국주의를 강화하고 국가적 정체성을 강화하거나 공식적인 이념이나 지배적인 종교적 지침에 따라 젊은이들을 주조하는 데 복무해서는 안된다.”(『유엔총회 문화적 권리분야 특별조사관의 보고서』(2013.8) 88조 a항, 23쪽)고 적고 있다.
현 정부가 학교현장에 국정 역사교과서를 일방적으로 강요하는 것은 다양한 역사적 사고와 건전한 시민의식을 마비시키고 합리적인 역사교육에 심각한 장애를 불러일으킬 것이다. 뿐만 아니라 헌법상 보장된 학문과 표현의 자유, 보편적 시민적 권리 등을 제한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3. 우리는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첫째, 현행 한국사 교과서 집필자 및 역사 교육자들에게 행해지는 한국사 교과서에 관한 사실 왜곡과 편파적인 폄하행위를 일체 중단하라.
둘째, 역사교육에 심각한 위기를 초래한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정책과 미래 세대의 창의력 신장을 가로막는 반교육적, 근시안적 역사 교육 정책을 폐기하라.
셋째, 한국사 검정교과서의 다양성과 적합성을 인정하고, 학문의 자유와 보편적인 인권, 한반도 평화를 지향하는 역사교육을 확대하라.
2015년 10월 11일
고등학교 한국사교과서 집필자 협의회(한필협)
이종규 기자 jklee@hani.co.kr
<2015-10-11>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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