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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전쟁 – 독일의 교훈] 분단 독일, 논쟁·다양성 추구한 역사교육이 ‘통일의 힘’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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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와 새누리당이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밀어붙이면서 ‘분단 상황’을 앞세우고 있다. 교육부는 12일 국정 전환의 이유에 “남북 분단 등 특수한 상황과 이념 간 견해 차이로 인한 교과서의 잦은 오류와 편향성 문제”를 넣었다. 김영우 새누리당 수석대변인은 지난 9일 “유일한 분단국가에서 북한의 도발 위협이 계속되는데 국가관과 정체성이 흔들려서는 안된다”며 “국가와 국민의 안위를 위한 일”이라고 논평했다. 역사교과서를 국정화해야 갈등을 막고 국론을 모을 수 있다는 논리다. 그러나 우리와 비슷한 시기에 분단을 겪고, 현재는 통일을 이뤄 발전하고 있는 독일은 역사교육에서 모든 갈등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고, 과거의 잘못을 미화하지 않으며, 논쟁을 통해 다양성을 추구하는 정반대의 길을 택했다.


이런 역사교육은 통일을 앞당기는 정신적·사회적 자산이 됐고, 통일 후에도 과거사에 솔직하면서 난민이나 국제사회 갈등을 포용하는 성숙한 시민의식의 바탕이 됐다는 평가를 받는다.


▲ 2004년 11월5일 독일 시민들이 15년 전에 붕괴된 베를린 장벽 위에 올라 통일 독일이 출범할 때 불침번을 서던 상황을 기쁘게 추억하고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동독을 품은 서독 교과서


2차 세계대전 후 1990년 통일이 될 때까지 분단시기 서독은 국정교과서를 채택한 적이 없다.

주별로 검정이나 인가제를 거친 2~5개 역사교과서 중 하나를 학교가 선택했다.

분단 직후 1950~1960년대엔 냉전·대결 분위기 속에서 동독을 비판하는 반공주의적 내용과 민족정체성을 강조한 역사기술이 교과서에 담겼다. 위로부터의 압박이나 강제는 아니었고, 독일 역사학계에서는 학문적 성과가 충분히 쌓이지 않고 집필자들의 한계가 표출된 시기였다는 평가를 내놓고 있다.

1969년 빌리 브란트가 서독 총리가 되고 냉전을 극복하려는 정치가 시작되면서 독일의 역사교육은 1970년대 초반부터 성찰적인 역사인식과 다양성, 민주주의 존중, 평화와 화해, 민주적 시민교육이 역사교육의 주요 요소가 돼야 한다는 생각으로 변화했다. 이 흐름은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통일 전에도 서독 역사교과서들은 현대사 비중이 39% 정도, 근현대사를 합치면 60%가 넘을 정도로 근현대사 비중이 높았다. 이 안엔 동독체제에 대한 설명도 서독과 거의 같은 비중으로 실려 있었다. 교과서 내용도 1960년대까지 동독의 이데올로기와 소련을 비판적으로 서술했던 ‘동독 부분’에는 양 진영이 모두 오류나 실수를 저질렀다는 점을 인정하고, 대결·적대의 근원에는 오해가 있었다는 점도 중요하게 짚었다.

오히려 한국 정부와 같이 분단이라는 이름으로 단일한 국가정체성을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은 동독에서 강했다. 동독의 국정교과서는 나치 시기에 희생당한 인종집단에서 유대인을 언급하지 않았다. 교과서 자체에 유대인이 없었고, 나치즘에 대항했던 집단으로 공산주의자들을 강조했다. 통일을 준비하는 정신적 높이와 교육적 가치관은 서독 교과서에서 키우고 있었던 셈이다.




■논쟁과 다양성 존중한 대협약


독일 역사교육의 또 다른 축은 보이텔스바흐협약을 들 수 있다. 이 협약은 현재 유럽과 전 세계 ‘민주시민교육의 헌법’이라고 불릴 정도로 모범적인 독일 교육의 원칙이다. 독일 연방정부는 정치·국가관·역사 등을 가르칠 때 모두 이 원칙을 따른다.

이 협약은 독일 내에서도 이념 대립이 심해지며, 좌우 진영이 모두 이념 대립을 교육 속에서 유리하게 이용하려는 시기를 거쳐 만들어졌다. 1976년 당시 서독 보수정당인 기민련 소속 정치교육원장이 좌우의 정치그룹 3000개를 모아 일주일간 보이텔스바흐라는 소도시에서 치열한 회의 끝에 과연 민주시민교육이 어떠해야 하는지 타협을 이끌어낸 것이다.

협약의 세 원칙은 교화와 주입을 금지하고, 논쟁이 있는 사안은 그대로 전달하며, 자신의 입장에서 상황을 분석해 자신의 이익을 관철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이 자리에 모인 그룹 모두 교육의 수혜자가 국민이 돼야 한다는 데 반대가 없었다. 협약을 요약하면, 특정 정파의 조작에 흔들리지 않고 고급 정보를 시민들이 받아 각 정파가 아닌 시민 스스로 자신에게 유리한 판단을 하게끔 하는 것이다.


■자학사관 인정이 독일의 힘

독일 통일 당시 베를린자유대에서 유학한 홍윤기 동국대 철학과 교수는 “독일에선 국가가 한 모든 것을 정당화, 미화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국가가 민주주의에 반하는 역할을 했을 때 후세에 어떤 피해를 끼치는지 잊어버리지 않도록 가르치는 것이 역사교육의 가장 큰 목표”라고 밝혔다. 홍 교수는 “현재의 우리 역사교과서가 자학사관을 가르친다며 국정화해야 한다고 하는데, 이 기준에 따르면 독일 역사교육이 철저한 자학사관인 셈”이라면서 “유럽에선 이를 절대 자학사관이라 부르지 않는다. 일본 극우세력, 국내 일부에서만 자학사관이라고 부른다”고 비판했다. 그는 “민주시민교육의 결과가 (통일 당시) 총알 하나 없이,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서독이 동독을 포용할 수 있다는 신뢰감을 동독인들에게 줬다”며 “현재 독일의 시민운동 중심부에서 활동했던 요하임 가우크 독일 대통령과 앙겔라 메르켈 총리가 정치적 통합의 증거”라고 말했다.

이동기 강릉원주대 사학과 교수(독일통일·냉전사 전공)는 “독일은 오랜 기간 시행착오와 논란을 겪으며 역사교육의 국제적 스탠더드를 마련해 칭찬받고 있다”면서 “우리도 이를 배우고 창의적으로 한국적 현실에 맞게 수용해야 하는데 오히려 유엔 권고와 반대로 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나치와 공산국가에서만 실행됐던 역사교육으로 돌아가려는 국정화 시도는 유신 교과서로 퇴행하는 정도가 아니라 보수·진보를 떠나 생산적인 논의의 장을 완전 봉쇄하는 결과를 낳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송현숙 기자 song@kyunghyang.com

<2015-10-12> 경향신문

☞기사원문: [역사전쟁 – 독일의 교훈] 분단 독일, 논쟁·다양성 추구한 역사교육이 ‘통일의 힘’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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