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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국정 역사 교과서, ‘5·16-전두환-5·18’ 뭐라 적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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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표주연 기자 = 한국사 교과서의 국정 발행이 확정됐다.


교육부는 12일 2017학년도에 사용되는 중학교 역사교과서와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를 국정으로 발행한다고 확정했다.


국정으로 편찬된 역사교과서는 2017학년도부터 나온다. 2017학년도부터 중학생은 역사, 고등학생은 한국사 교과서를 단일 교과서로 배우게 된다.


역사 교과서 국정 제도는 1974년 시작돼 시행되다 2007년 폐지됐다. 역사 교과서를 민간이 만들고, 나라가 검증하는 ‘검인정 제도’로 바뀐 것이다. 역사 문제에 대해 보다 다양한 의견을 접할 수 있어야 한다는 판단이 반영됐다.


그렇다면 1974년부터 2007년까지 편찬됐던 국정교과서에서 주요 역사적 사건들은 어떻게 다뤄졌을까. 뉴시스가 2차 교육과정부터 7차 교육과정까지 국정교과서에 기술된 내용을 살펴봤다.


◇ 5.16, 혁명→군사혁명→군사정변


5.16은 혁명에서 군사혁명으로, 다시 군사정변으로 명칭이 변경됐다. 1968년 고등학교 2차 교육과정에서 국사 교과서는 5.16군사정변에 대해 ‘파쟁과 혼란을 일소하고 공산 침략에서 국가와 민족을 건지기 위하여 일어난 것이 5.16혁명이었다’고 기술했다. 이 교과서는 ‘1961년 5월 16일 새벽, 박정희 장군을 중심으로 한 청년 장교들은 혁명을 단행하였다. 이것이 5.16혁명으로, 이 혁명은 4.19의거의 계승이었으며 발전이었다’고 설명했다.


중학교 역사교과서에서도 ‘ 5월16일 군인들이 혁명을 일으켰는데, 이것이 5.16혁명이다. 혁명정부는 여러 가지 과감한 시책을 추진하다가 직접 선거에 의하여 박정희를 대통령으로 선출하고 민간 정부로 이양하였다’고 썼다.


1979년 발행된 3차 교육과정의 역사교과서는 ‘오랜 독재에 시달리던 민중 중에는 자유를 그릇되게 이해하여 시위를 일삼는 등 사회를 더욱 혼란시키는 자들이 있었다. 더구나, 이러한 혼란과 불안의 틈을 타서 북한 공산 집단의 적화 야욕마저 보이게 되었다. 그리하여, 국가와 민족을 수호하기 위하여 뜻있는 군인들이 5월 혁명을 일으켰다’고 적었다.


1982년의 4차 교육과정의 경우 ‘박정희 등 군인들이, 사태의 심각성에 비추어 국가를 위기로부터 구하고 국민을 부정부패와 불안으로부터 해방시켜 민주 국가를 건설하자는 기치 아래 5월 혁명을 일으켰다(1961)’고 설명했다.


이어 1990년 5차 교육과정에서는 ‘박정희를 중심으로 한 군부가 5?16 군사 혁명을 일으킴으로써 제2공화국은 단명으로 끝나고 말았다(1961)’고 언급했다.


마지막 국정교과서였던 2002년 7차 교육과정에서는 ‘민주 정치의 실현을 위해 노력하던 장면 내각은 1961년 5월16일, 박정희를 중심으로 한 일부 군인들이 군사 정변을 일으켜 정권을 장악함으로써 집권 9개월 만에 무너지고 말았다’고 비교적 객관적인 설명을 달았다.


◇ 제5공화국, ‘국민의 절대적 지지’→’시민들의 격렬한 비판받아’


전두환이 쿠데타를 통해 수립한 제5공화국은 1982년 발행된 4차 국정교과서에 처음 등장했다. 이후 2002년 마지막 국정교과서가 나올 때까지 제5공화국에 대한 논조는 정반대로 변경됐다


전두환이 집권하고 있던 시기에 발행된 4차 교육과정의 중학교 교과서는 5공화국에 대해 ‘국민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게 되었고, 정치, 사회 질서가 바로잡혀 갔다’고 설명했다.


또 고등학교 교과서에서는 ‘제5공화국은 정의로운 사회의 구현과 민주 복지 국가로의 발전을 지향하고, 민족의 분단을 종식시키며, 조국의 평화적인 통일을 이룩할 수 있도록 계속 노력하고 있다’고 썼다.


1990년 5차 국정교과서의 경우 ‘제5공화국은 정의 사회의 구현과 복지 사회 건설을 이념으로 내세웠으나, 여러 가지의 부정과 비리로 말미암아 국민들의 비난을 받았다’고 적었다.


6차 교육과정에서는 ‘신군부 세력은 강압적인 분위기를 조성하고, 자신들의 정권 장악에 유리하도록 헌법을 개정했다’고 기술됐고, 7차 교육과정에서는 ‘여러 가지 부정과 비리로 말미암아 시민들의 격렬한 비판과 저항을 받게 되었다’고 비판적인 논조가 나왔다.


◇ 5·18, 1990년 교과서 첫 등장…유관순은 2002년까지 한 줄 ‘홀대’


1980년 일어난 5·18광주민주화운동은 1990년에 교과서에 처음으로 등장했다. 1990년 5차 교육과정 고등학교 교과서에서 ‘민주화를 요구하는 학생들의 시위가 계속되었고, 그 과정에서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이 일어났다’고 언급된 것이 처음이다.


이때도 5.18광주민주화운동은 제5공화국이라는 단락에 포함돼 간략히 언급된 것이 전부였다. 중학교 교과서에서는 5.18광주민주화운동이 한 줄도 나오지 않았다.


이어 6차와 7차 교육과정에서 교과서는 ‘민주화를 열망하는 국민의 요구는 5?18 광주 민주화 운동으로 이어졌다’는 식으로 기술했다. 단락도 ‘민주주의의 시련’ 등으로 변경됐다.


특히 7차 교육과정은 ‘신군부 세력은 계엄령 철폐와 김대중 석방을 요구하며 시작된 5?18 민주화 운동도 무장 군인을 동원하여 무자비하게 탄압하였다. 5?18 민주화 운동은 비록 실패하였지만, 1980년대 이후 한국 민주화 운동의 밑거름이 되었다’고 나름대로의 해석을 달았다.


대표적인 항일투사인 유관순 열사는 교과서에서 ‘홀대’받았다. 유관순은 1979년 국정 중학교 교과서에 처음으로 등장했다.


1982년 4차 국정 고등학교 교과서에서 ‘유관순의 순국 사실은 이를 잘 말해 주고 있다’식의 간단한 언급뿐이었다. 이러한 표현은 2001년까지 계속됐으며, 중학교도 마찬가지로 ‘유관순의 순국 외에는 어떤 설명도 없었다.


2002년 발행된 7차 국정교과서에서 유관순은 더욱 깊이 있게 다뤄졌다. 이 교과서는 유관순의 사진(영정과 생가)과 함께 ‘유관순의 항일 투쟁’ 단락으로 소개했다.


pyo000@newsis.com

<2015-10-12> 뉴시스

☞기사원문: 역대 국정 역사 교과서, ‘5·16-전두환-5·18’ 뭐라 적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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