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화 논란 연쇄인터뷰 ③] 하일식 연세대 사학과 교수
▲ “교과서 국정화 강행은 박 대통령의 뜻” 10일 <오마이?뉴스>와 만난 하일식 연세대 사학과 교수(55)는 “단 하나의 책으로 단 하나의 해석을 가르치겠다는 건 독재적 발상”이라고 지적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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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부는 12일 중학교 <역사>,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를 국정으로 발행하겠다고 발표했다. 이승만·박정희 대통령 시대를 더욱 긍정적으로 서술하는 등 독재·친일 미화 국정교과서가 나올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오마이뉴스>는 연쇄 인터뷰를 통해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의 문제점을 살펴볼 예정이다. – 기자 말
정부가 12일 중·고교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전환을 강행키로 한 가운데, 과거 한국역사연구회 회장을 지낸 하일식 연세대 사학과 교수(55)가 “(교과서) 국정화 추진은 박근혜 대통령의 뜻”이라며 “단 하나의 책으로 단 하나의 해석을 가르치겠다는 건 독재적 발상”이라고 지적했다. 1988년 설립된 한국역사연구회는 국내 한국사 분야의 대표적 학회로 꼽힌다.
하 교수는 “박 대통령의 의지가 있는 한 국정 교과서는 자연스레 독재 정권 미화로 연결될 수 있다”고 말했다. 하 교수는 10일 연세대 연구실에서 <오마이뉴스>와 만나 “이번 시도가 과거 유신 시기 박정희 전 대통령이 국정화를 단행하던 것과 똑같다”며 “당시엔 ‘단일화’란 말로 포장했는데 이번엔 ‘통합’이란 단어를 사용하더라”고 덧붙였다.
하 교수는 교과서 국정화 시도 아래 이미 정치공학적 계산이 깔렸다고 봤다. “학계 다수 견해가 바탕이 된 현행 검정 교과서를 ‘좌편향’이라고 비난하는 것은 정치적 선동일 뿐”이라는 설명이다. 그는 “나도 일명 ‘유신 교과서(박정희 정권 시절 국정 교과서)’로 배웠는데, 사실과 다른 전혀 엉뚱한 내용이 적혀 있었다”며 “이 정권에서도 그런 게 가능하다고 본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과거 유신 정권이 국정화를 단행할 때는 별 저항이 없었지만, 지금은 절대다수 학자와 교육자, 시민사회 다수가 반대하고 있다”며 “시대가 달라졌다는 이야기다, 집권층만이 과거에 갇혀 변화를 읽지 못하고 있는 셈”이라고 비판했다.
한편 박근혜 대통령은 오는 13일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의 한미정상회담을 위해 미국을 방문한다. 이를 두고 정부·여당이 강행한 국정화 교과서로 인해 후폭풍이 이는 상황에서, 박 대통령이 현안을 외면한 채 출국한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다음은 하일식 연세대 교수와 나눈 인터뷰를 일문일답으로 정리한 것이다.
“‘하나의 교과서, 하나의 해석’은 독재적 발상”
– 정부·여당이 국정화 추진을 이렇게 서두른 이유가 뭐라고 보나.
“(정부가) 행정 예고하고, 집필자를 뽑고, 책을 만들어 보급하는 과정까지 생각하면 시간이 별로 없다. 2017년부터 국정 교과서 사용 계획이라면 더 그렇다. 몇몇 언론에선 이게 박정희 출생 100년에 맞추는 거라고도 하더라. ‘유치하다, 설마 그럴까’ 싶지만, 원래 2018년으로 논의되던 시기를 왜 1년이나 앞당기는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추진 강행은) 박 대통령 퇴임 전에 가시적 성과를 보이고 싶은 참모들의 의지일 수도 있다.
국정화 추진은 결국 ‘박 대통령의 뜻’이라고 보인다. 앞서도 박근혜 정권의 정책 결정 과정에서 합리성이 결여된 경우를 종종 봐왔다. 교과서 문제와 관련해 박 대통령이 선친을 선양(宣揚)하려는 의지가 있는 한, 교과서는 자연스레 독재 정권 미화로 연결되지 않겠나. (*박 대통령은 지난 2월 교육문화분야 업무보고 당시 “검정 통과 교과서에 많은 오류와 이념적 편향 논란이 있는데, 그래선 안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기자 말)
– 과거 박정희 정권 때 국정 교과서를 썼다는 점에서, 시대적 역행이라는 지적도 많다.
“이게 과거 유신 때 박정희 전 대통령이 교과서 국정화 단행하던 것과 똑같은 모습이다. 당시에도 ‘국정’이라는 단어를 쓰는 게 뭐했던지 ‘단일화’ 교과서라고 불렀는데, 요즘 여당에서는 ‘통합’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더라(관련 기사: [과거 국정교과서 분석] “박정희 장군의 혁명군, 대한민국 구출했다” ).
저도 일명 유신 교과서로 배웠는데, 그때 5·16 쿠데타를 ‘사회 혼란을 막기 위한 구국의 결단’이라고 배웠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쿠데타 후 내세운 6개 혁명 공약도 거기엔 전혀 엉뚱하게 쓰여있었다. “과업이 성취되면 언제든 정권을 이양한다”는 공약을 했지만, 실제로는 안 지켰거든. 국정 교과서는 그런 식으로 사실을 바꾼다. 나는 이 정권에서도 그런 일이 가능하다고 본다.
▲ 하 교수는 과거 국사 국정교과서를 보여주며, “나도 일명 ‘유신 교과서’로 배웠는데, 사실과 다른 전혀 엉뚱한 내용이 적혀 있었다”며 “이 정권에서도 그런 게 가능하다고 본다”고 지적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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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시련과 극복’ 보조교재도 있었다(1972년 문교부가 펴낸 독본용 교과서). 전형적인 유신 교육책이었는데, 거기 강조하는 게 바로 ‘국론 통일’이다. 현 집권층도 똑같이 국론 통일을 얘기하는데, 대체 그 국론이라는 게 뭔가. 이건 ‘내 뜻에 따르라’는 말의 다른 표현이다.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국론 통일이 될 필요도 없다. 민주주의는 원래 더러는 시끄럽고, 다른 의견을 토론하는 게 당연한 거다.”
“학계 보편적인 통설로 집필된 교과서가 좌편향?”
– 여당은 국정화 추진 이유로 ‘현행 교과서가 좌편향됐다’고 말한다. 박 대통령도 지난해 2월 교육부에 “사실에 근거한 균형 잡힌 역사교과서”를 주문했는데.
“교과서는 가장 보편적인 학설, 학계가 동의하는 통설(다수설)을 바탕으로 서술된다. 학계 다수 견해를 바탕으로 집필됐으며 교육부를 통과한 현행 검정 교과서를 좌편향이라고 비난하는 것은 정치적 선동일 뿐이다. 아베 정권도 이와 비슷하게, 일본 전쟁범죄를 직시하는 쪽을 ‘자학사관’이라고 비난하곤 한다. 그러나 집권층이 선호하는 극소수 역사 해석을 국민에게 강요하는 건 폭력이다. 학문과 교육을 황폐화하는 야만적인 행위라고 본다.”(관련 기사: [한국사 교과서 집필진 반대성명] “교육부가 합격시켜놓고 반 대한민국 교과서?”)
– 정부·여당 여론조사를 근거로 ‘학생·학부모가 국정화를 선호한다’고 말한다.
“정말 터무니없는 억지다. 교육과정평가원을 통해 이루어진 그 조사가 객관적이라 믿는 사람은 거의 없다. 국정 교과서가 뭔지 잘 모르는 학부모도 많을 것이다. 다른 여론조사에서는 반대 의견이 압도적이지 않은가? 게다가 당시 교육부는 문항 공개 요구가 빗발쳤음에도 결국 비공개했다. 문항 설정에 따라서 의도대로 끌고 갈 수도 있는 게 여론 조사다.
지금껏 검정 교과서 탓에 학생·교사들이 혼란을 겪었다는 얘기는 없었다. 수능에 지장이 생긴 적도 없다. 결국 ‘하나의 교과서’란 것은 독재적 발상이다. 2013년 역사교육과 문화적 권리에 관한 유엔 보고서는 ‘하나의 역사 교과서는 퇴행적이며 특히 국가가 후원하는 교과서는 정치적으로 이용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이게 국제적 기준이다. 실제 선진국에서도 자유, 검정 교과서를 쓴다.”
– 새누리당은 현행 교과서가 ‘국민 분열’을 조장하며, 국정화를 통해 ‘국민 통합’으로 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현 집권층이 사용하는 낱말은 사전이나 상식과 다르다. 그들은 통합을 얘기하면서도 다른 생각은 배제하고 공격해 말살하는 데 몰두해왔다. 같은 맥락에서 국정을 통해 ‘국민 통합’하자는 건 유신 시절로 복귀하자는 것이다. 일체의 다양성을 말살하자는 전체주의적 발상이다. 앞서 말했듯 민주주의 사회에선 다양한 의견이 존재하는 게 정상이다.
또 (현 교과서가 패배주의적 역사를 가르친다는)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의 주장은, 일본 아베 정권이 주장하는 ‘자학 사관’과 같은 맥락이다. 그러나 역사는 과거를 성찰하기 위한 것이지 찬양하기 위한 게 아니지 않나. 게다가 현 교과서에도 각 정권 공과가 다 서술돼있다. 이런 걸 시대를 아울러 전체적인 맥락 속에서 성찰해야지, 자라나는 청소년들에게 ‘독재가 불가피했다’는 식으로 가르치는 건 말이 안 된다.”
▲ 하일식 교수는 “현 국정화 강행 모습이, 과거 유신 때 박정희 전 대통령이 교과서 국정화 단행하던 것과 똑같은 모습”이라고 비판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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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학계는 향후 어떻게 대응할 생각인지.
“역사학자들은 ‘선량한 권력’이라는 게 역사적으로도, 현재도 존재하지 않음을 알고 있다. 권력은 항상 자신을 합리화하기 위해 역사를 이용하려고 한다. 그러므로 올바른 연구태도를 지닌 분이라면 국정 교과서 제작에 참여하지 않거나 머뭇거릴 것이라 예상한다. 물론 언제나 그렇듯이 협조하는 분들이 전혀 없지는 않을 것이다. 그건 개인의 선택이다.
그러나 역사연구자들이, 국가가 일방적으로 교과서를 국정화하는 사태를 보고만 있지는 않을 것이다. 한국역사연구회 등 다수 역사학자도 대응책을 구상하고 있다. 학계 대표 통설을 기반으로 최대한 객관적으로 서술된 책, 대한민국 시민의 표준 교과서 출간이 바로 그것이다. 현재는 출판사와 얘기가 오가는 단계로, 국정 교과서와 비슷한 시기 출간을 생각하고 있다.”
– 마지막으로 한마디 한다면.
“결국 지금 추진되는 국정화는 현 집권층의 정치적 입장에 부합하는 뉴라이트식의 역사해석을 확산시키려는 것으로 보인다. 이승만 전 대통령을 떠받들고 박정희 전 대통령을 선양하려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과거 유신 정권이 국정화를 단행할 때는 별 저항이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절대다수의 학자와 교육자, 시민사회 다수가 반대 목소리를 내고 있다. 시대가 달라졌다는 이야기이며, 국정화가 시대 역행이자 시대착오라고 지적하는 이유이다. 국정화를 추진하는 집권층만이 과거에 갇혀 변화를 읽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 편집ㅣ홍현진 기자
<2015-10-13> 오마이뉴스
☞기사원문: “올바른 연구자라면 국정교과서 참여하지 않을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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