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역사교과서를 국정화하는 과정에서 중학교 세계사도 국정 발행체제로 전환된다. 중학교 ‘역사’ 과목에 국사와 함께 묶여 있는 세계사도 국가 정체성 교육을 강화하려는 국정교과서로 바뀌게 된 셈이다. 세계사도 국가가 통제하는 역사교과서를 지양하고 시민교육을 늘려가는 국제적 추세와 거꾸로 갈 것이라는 우려가 학계에서 커지고 있다.
양정현 부산대 역사교육과 교수는 “앞으로 나올 중학교 ‘역사’ 교과서는 한 단원 안에 국사와 세계사 내용이 같이 들어 있다. 국정화를 추진하는 사람들도 이런 교육과정 구성에 대한 이해가 없는 상태에서 세계사가 얼떨결에 국정화가 된 것 같다”며 “역사교수들도 잘 모르는 경우가 많아 큰 혼란이 예상된다”고 말했다.
▲ 정의당 ‘인간띠 시위’ 정의당 심상정 대표(맨 앞)와 의원, 당직자들이 15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역사교과서 국정화 저지 인간띠 잇기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이석우 기자 foto0307@kyunghyang.com |
이동기 강릉원주대 사학과 교수는 “유엔은 세계평화와 인권, 상호이해 등 보편적 인류가치를 배워야 한다는 취지에서 세계사도 지역사·자국사·지방사와 같이 균형 있게 다룰 것을 권고하고 있다”며 “현재도 중학 ‘역사’에서 세계사 부분이 자국사 중심의 병풍 역할만 하고 있는 상황에서, 앞으로 부국담론의 틀로 묶이면 더욱 선별적인 서술이 이뤄져 세계사가 엉망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앞서 중학교 세계사는 지난달 발표된 ‘2015 개정 교육과정’에서도 개악됐다는 논란에 휩싸여 있다. 김육훈 역사교육연구소장(독산고 교사)은 “개정 교육과정에서 중학교 역사에 포함돼 있는 세계사 교육은 심각하게 축소·왜곡됐다”며 “중학교 역사는 고교에서 세계사를 택하지 않는 대부분의 학생들이 세계사를 배우는 마지막 기회인데, 중국사와 서양사만 다루고 서아시아·인도·동남아시아·아프리카 역사 부분을 빼 버려 다문화사회로 가는 추세와 어긋난다”고 지적했다. 매 단원을 중국사에 이어 한국사를 기술하는 형식으로 구성해 한국사 인식을 왜곡할 우려가 크다는 것이다.
한국사 전문 연구자 단체인 저희 연구회는 그동안 다른 역사 연구 및 교육 전문가들과 힘을 합쳐 정부와 여당의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기도를 저지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연구회가 역사교과서 국정화에 반대한 것은 그것이 헌법이 보장한 교육의 자주성, 전문성, 정치적 중립성을 침해할 뿐만 아니라 역사 교육의 목적, 그리고 UN 인권이사회 보고서가 명시한 역사교육의 세계 보편적 기준에 어긋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한 저희의 노력에 대해 역사학계, 역사교육계는 물론 시민사회도 지지와 성원으로 화답해주었습니다.
김경현 고려대 사학과 교수는 “그동안 우리나라 세계사 교육은 서양중심주의, 중화주의 극복의 문제를 안고 있었다”며 “지금도 갈팡질팡인 세계사에 한국사를 앉힌다면 얼마나 우스워질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세계사 속 한국사를 연계해서 배우자고 말하지만 교과서 개정 때마다 한국사만 초점이었고, 연구자와 교육부 모두 준비가 안되어 있다”며 “연구자 간 합의나, 세계사·동아시아사를 한국사와 어떻게 결합시켜 쓸지 고심해서 만든 틀도 없는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송현숙·임아영 기자 song@kyunghyang.com
<2015-10-16> 경향신문
☞기사원문: 중학교 ‘세계사’도 얼떨결에 국정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