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의겸의 우충좌돌
김정배 애지중지 키운 ‘제자1호’ 최광식
MB정부들어 승승장구하며 사제지위 역전
국정교과서 찬성으로 돌변한 동기로 해석
▲ 김정배(왼쪽) 최광식(오른쪽). 한겨레 자료사진 |
국정교과서 강행의 ‘주연’이 박근혜 대통령이라면 가장 두드러진 ‘조연’은 김정배(75) 국사편찬위원장일 것이다. 교육부의 공식 발표를 다룬 14일치 <조선일보>를 보면 알 수 있다. 황우여 교육부 장관은 아예 제쳐놓고 김정배 위원장 인터뷰를 1면과 3면 머리기사로 다뤘다. 제목도 ‘국정화 지휘 김정배’다. 그러다보니 야당 의원들로부터는 국정화 ‘앞잡이’라는 소리까지 듣는 모양이다.
15일치 <한겨레>를 보니 ‘결국 이런 험한 꼴까지 당하시는 구나’ 싶다. 평생을 몸담았던 고려대 역사학과의 후배 교수들이 한명도 빠지지 않고 국정화 반대 성명서에 서명을 한 것이다. 특히 최광식(62) 교수가 눈에 띈다. 최 교수는 이명박 정부 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을 지냈다. 그러니 기사를 쓴 엄지원 기자는 “역사학계에서는 정치적 성향을 떠나 국정 교과서 체제에 대해 비판적으로 보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셈이다”라고 해석했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사실은 그 이상이다. 둘 사이가 워낙 각별하기 때문이다. 김정배 위원장으로서는 “최광식 너마저도…”이다.
교수 김정배에게 학생 최광식은 사실상 ‘1호 제자’다. 고문헌 읽는 법부터 시작해 고대사를 하나하나 가르쳐주며 석사도 주고 박사도 줬다. 최광식이 32살 젊은 나이에 고대 교수가 된 데는 은사 김정배의 지원이 결정적이었다. 김정배가 고대 총장이 되어서는 최 교수에게 대학 보직인 총무처 처장을 시켰다. 한국고대사학회 회장도 서로 이어 받았다. 우리나라 고대사의 학맥이 신석호(1904~1981)-김정배-최광식으로 이어진 배경이다.
그뿐인가. 최광식에 이어 차례차례 길러낸 고려대의 고대사 전공 교수들이 모두 성명에 동참했다. 이홍종, 박현숙, 박대재 교수 등이다. 특히 박대재 교수는 김정배 위원장이 총애하던 ‘막내’ 제자라고 한다. 그러니 자신이 키운 제자 그룹의 장남(최광식)부터 막내(박대재)까지가 모두 반기를 든 셈이다. 제자들이 스승을 가리켜 “역사교육을 퇴행시키고, 나아가 교육 및 민주헌정질서의 가치를 뒤흔드는” 사람이라고 손가락질한 것이다.
고대 사학과 출신의 어느 교수는 김정배 교수와 제자들의 관계를 이렇게 설명했다. “고대 사학과의 사제지간 학풍이 자유로운 분위기인데, 김정배 교수 방은 남달랐다. 교수와 제자들 사이의 위계질서가 강했다. 김정배 교수가 학군단(ROTC) 2기 출신이어서 그런지 장악력이 대단했고, 대신 제자들 취업에는 굉장히 적극적으로 나섰다. 당시 김정배 교수 제자들은 100% 취업이 됐다.”
그런 제자들이 자신을 향해 날선 성명서를 날렸으니 김정배 위원장은 아마도 충격이 컸을 거다. 하지만 뒤집어 생각해보면 교과서 국정화가 얼마나 얼토당토 않는 일이면 하늘 같은 스승에게 제자들이 대들었겠는가. 서명을 주도한 고대 한국사학과의 한 교수는 “직계 제자들이 왜 마음의 부담이 없었겠는가마는 서명에 동참해달라고 얘기를 꺼내자 모두들 순순히 받아들였다”고 말했다. 너무나도 명명백백한 사안이기 때문일 것이다.
▲ 국정교과서 추진 발표 |
김정배 위원장이 모욕을 당한 건 교수들한테서만이 아니다. 고대 학생들도 “선배님, ‘민족 고대’ 이름에 먹칠하지 마세요”라고 입을 모았다. 학생들은 특히 김정배 위원장의 스승으로 고려대 총장까지 지낸 고 김준엽 교수의 이야기도 꺼냈다. 김준엽 전 총장은 일제강점기에 학병으로 끌려갔다가 탈출한 뒤 광복군이 된 독립운동가이자 역사학자로 존경받는 인물이다.
1970~80년대 김준엽, 김정배 교수와 함께 지냈던 교수들은 둘 사이가 아주 돈독했다고 한다. 김준엽 교수는 전공이 동양사지만 당시는 학문 분화가 덜 된 상태라 서양사 한국사 가리지 않고 강의를 해, 학생 김정배도 김준엽 교수에게 많은 가르침을 받았다. 김준엽 총장은 또 김정배 교수의 행정능력을 높이사 총장이 되자마자 핵심 보직인 교무처장을 맡겼다. 이후 김정배 교수가 학교의 각종 보직을 맡다 총장까지 된 시발점이기도 하다.
어느 교수는 둘 사이의 일화를 하나 들려주었다. “김준엽 총장이 1980년대 초반 전두환 대통령으로부터 직접 국무총리를 제안받았다. 김 총장이 여러 제자들에게 자문을 구했는데 사업하는 제자들은 ‘받으라’고 말하고, 공부하는 제자들은 ‘받지말라’고 요구했다. 김준엽 총장은 ‘어떻게 공부하는 녀석들은 하나 같이 거절하라고 하느냐’고 웃으셨는데 기분이 좋아 보이셨다. 결국 대통령의 제안을 거절하셨다. 그때 김정배 교수도 거절하라고 한 제자 가운데 하나였다.”
김준엽의 제자인 김정배가 왜 국정화에 앞장을 서는 것일까? 1970년대 국정교과서 폐지를 공개적으로 주장했던 사람이 왜 180도 태도를 바꿀까? 고대 사학과의 어느 원로 교수는 최광식 교수와의 관계로 설명을 했다. “걸음마부터 가르친 최광식 교수가 이명박 정부 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을 한 게 영향을 미친 게 아닐까?”라고 추측했다.
이명박 서울시장을 모셨던 어느 서울시 공무원은 “대통령과의 관계는 고대 총장을 지낸 김정배 위원장이 최광식 교수보다 훨씬 앞선다”고 설명했다. 이명박 서울시장이 자신의 호를 기존의 ‘일송(一松)’에서 ‘청계(淸溪)’로 바꾼 것도 김정배 위원장의 건의를 따랐다고 한다. 2005년 청계천복원시민위원회 회의 석상에서 김정배 위원장이 “앞으로는 호를 ‘청계’로 사용하라”는 말을 듣고 이명박 시장이 “시민위원회가 원하니 따를 수밖에 없다”고 답했다는 것이다. 최광식 교수는 김정배 위원장의 소개로 대표적 ‘고대 동문’인 이명박 시장과 교분을 튼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 인연 탓인지 이명박 정부 초기 김정배는 한국학중앙연구원장에, 최광식은 국립중앙박물관장에 동시에 앉게 된다. 하지만 그 뒤 최광식 교수는 문화재청 청장을 거쳐 문화체육부 장관까지 오른 반면 김정배는 특별히 눈에 띄는 직책이 없었다. 사제간의 지위가 역전이 된 것이다. 이런 ‘변동’이 김정배 위원장의 ‘무리수’를 불러온 것 아니냐는 해석을 낳고 있다.
사람 속마음은 알 길이 없다. 동기는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 문제는 김정배 위원장의 현재 행보가 자신의 기반을 뿌리째 흔든다는 것이다. 직계 제자들로부터 손가락질을 받으면서 어떻게 다른 영역에서 인정을 받을 수 있겠는가. 고대사 분야에서 쌓아온 학문적 업적마저 격하될 수 있다. 김정배 위원장이 이를 아는지 모르는지 의아할 뿐이다.
김의겸 선임기자 kyummy@hani.co.kr
<2015-10-16> 한겨레
☞기사원문: ‘국정화 지휘’ 김정배, 제자 시샘 때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