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인 17일 서울 도심에서 역사교과서 국정화에 반대하는 국민대회가 열렸다. 청소년들도 “대한민국의 역사교육은 죽었다”며 거리로 나와 목소리를 높였다.
■국정 교과서 반대 국민대회
이날 오후 4시 서울 종로구 세종로공원에서는 시민사회·역사단체들이 연대해 여는 ‘국정교과서 반대 범국민대회’가 열렸다. 시민 2000여명(주최측 추산·경찰 추산 700명)이 나와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반대’, ‘역사 쿠데타를 멈춰라’는 피켓을 들었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 변성호 위원장은 “현재를 지배하는 자가 과거를 지배한다”며 “자본가의 역사가 아닌 이땅의 진실된 역사 생산의 주인인 수많은 전태일 열사의 역사를 기억해야 하지 않겠나”고 말했다. 함세웅 신부(안중근의사기념사업회 이사장)는 “대화도 과거, 현재, 미래 이야기를 한다”며 “다양성이 있어야 아름답고 완전하다. 역사에 다양성이 있어야 하고 이것을 종합하는게 아름다운 완성”이라고 말했다. 이어 함 신부는 “그런데 바보같은 사람들이 한 음식, 한 시각, 한 주제만 이야기하겠다고 한다”며 “우리는 진실을 가지고 선열의 얼과 정신을 지키는 당대의 훌륭한 시민 증언자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 17일 서울 세종로공원에서 열린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저지 범국민대회’에서 시민들이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반대’ 손피켓으 들고 있다. 강윤중 기자 |
이이화 역사학자는 “반민족·반헌법적 폭거로 우리가 모이게 됐다”며 “주체사상으로 교육을 시킨다 같은 별별 소리가 다 들리는데 이 중상모략에 나같은 할아버지도 분노를 참을 수가 없고 눈물이 쏟아진다”고 말했다. 그는 “역사 교과서 국정화의 목적은 5·16 군사쿠데타를 혼란을 틈탄 어쩔 수 없는 조치라고 말하려는 것이고 1948년을 8월 15일 건국절로 바꿔 친일파들이 근대화의 주역이었다고 말하려는 것”이라며 “이 시대에 이걸 막아내지 못하면 우리 후대들이 뭐라고 하겠는가”라고 말했다.
이날 ‘역사 교육 국정화 반대’ 피켓을 들고 1인시위를 벌인 김건군(15·을지중3)은 “피켓은 부모님과 함께 만들었고 집회도 부모님과 같이 왔다”며 “객관적인 역사가 있을까 라는 의문이 들었고 제가 역사를 배울 때는 그럴 수 없다고 했다. 국정 교과서가 되면 어느 한 입장에서만 배우게 되는 게 문제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 역사학자 이이화 선생이 17일 서울 세종로공원에서 열린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저지 범국민대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강윤중 기자 |
■청소년들도 거리로
역사 교과서 국정화에 반대하는 초·중·고등학생들도 ‘그릇된 역사 교과서를 거부할 권리’를 외치며 거리로 나왔다. 17일 오후 2시 서울 종로구 안국동 사거리에서 국정교과서반대청소년행동(청소년행동)이 주관한 ‘국정 교과서 반대 청소년 거리행동’에 60여명의 초·중·고등학생들이 참석했다. 학생들은 자못 숙연한 모습으로 양손에는 하얀 면장갑을 낀 교복 차림에 손에는 영정사진처럼 꾸민 피켓을 하나씩 들었다. 피켓에는 ‘청소년은 국정 교과서로 배우는 것을 거부합니다’ ‘우리에게 왜곡된 역사가 담긴 국정교과서를 강요하지 마세요’ 등의 문구가 적혔다.
이날 사회를 맡은 최서현 학생은 “우리는 친일, 독재 미화 교과서 배울 수 없다”며 “역사교육이 죽었다는 취지로 검은 넥타이를 매고, 이 자리에 (국정 교과서에 반대하기 위해) 나왔다”고 말했다.
서울 화곡고 2학년 오병주군(17)은 자유발언에서 “어른들은 공부나 하지 왜 데모를 하냐고들 하시지만 저희가 바로 이순간 하고 있는 활동조차 공부에 관련된 것”이라며 “민주화 운동도 학생들이 먼저 시작했다. 이번에도 우리가 먼저 나설 때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서울 국제고 3학년 이은영군(18)은 “올바름과 그름은 대통령 한명이 결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라며 “청소년들이 참정권에도 제한을 받고 있지만 국정화에 관련해서만큼은 가장 큰 영향을 받고 있는 것이 청소년들이다. 그런만큼 우리 스스로 국정화 반대 목소리를 낼 권리가 있다”고 주장했다.
▲ 국정 교과서 반대 청소년 행동 소속 학생들이 17일 서울 인사동에서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반대를 외치며 행진하고 있다. 강윤중 기자 |
경기 통진고 3학년 신다희양(18)은 “(국정화 찬성하는 이들은) 다양한 교과서로 배우면 수능에서 오류가 생길 수 있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왜 지금까지 검정교과서 체제 하에선 오류가 나오지 않았는지 의문”이라며 “설사 오류가 나왔다 해도 그건 시험출제 상의 오류이지 그렇다고 교과서를 바꾸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말했다.
모인 학생들은 이날 오후 3시쯤 “역사 교육이 죽었다”는 메시지를 담은 묵념 퍼포먼스를 진행한 후 피켓을 들고 인사동 거리를 지나 정부종합청사까지 행진했다. 청소년모임은 거리행동을 지속해가는 동시에 오는 11월 1일 학생의 날을 맞아 국정 교과서에 반대하는 대규모 청소년 행동을 계획할 것이라고 밝혔다. 청소년모임이 현재 온·오프라인으로 수합 중인 한국사 국정교과서 반대 청소년 선언에는 10월 16일 밤 12시 기준 950명이 서명에 동참했다.
■대학가 국정 교과서 반대 목소리 확산
대학가의 역사교과서 국정화에 반대 목소리도 거세다. 연세대학교 학생들은 17일 ‘교과서 국정화에 반대하는 연세인 결의대회’를 열었다.
16일 전국 24개 사범대 학생회와 전국교육대 학생회, 전국교육대학생연합, 서울대 사회대, 연세대 사회과학대, 고려대 정경대의 국정 교과서 반대 기자회견, 시국선언에 이은 움직임이다. 대학 교정에도 국정화에 반대하는 대자보가 계속 나붙고 있다.
▲ 17일 연세대 학생들이 역사교과서 국정화에 반대하는 피켓을 들고 있다. 백철 기자 |
이날 연세대 학생 30여명은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 학관 앞에서 “국정 체제 폐지 위해 학생이여 함께하자”는 구호를 외쳤다. 신학과 2학년 전윤씨는 “역사를 누구의 권한으로 하나의 관점으로 통일하려 하나”며 “그들이 내세우는 통합의 원리는 역사를 이념논쟁으로 비화시키고 기득권을 위해 사실과 상식을 왜곡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화학과 황성주씨는 “학생들을 자신들이 올바르다고 생각하는 교육관을 주입하려는 방식을 어떻게 옳다고 하겠느냐”며 “그런 발상 자체에 분노를 느꼈다. 그들이 말하는 ‘올바른’은 학생들을 위한 게 아니라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올바른’이라고 말했다.
백철·김지원 기자 pudmaker@kyunghyang.com
<2015-10-21> 경향신문
☞기사원문: 국정교과서 반대 국민대회 열려…청소년들도 거리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