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기사

[현장] “근조 대한민국 역사교육” 성난 청소년들, 결국 거리로 나섰다

1068

[현장] 국정교과서 반대 거리행진… “어른들은 부끄럽지도 않나”


▲ 역사교과서 국정화반대 청소년 2차 거리행동이 17일 오후 종로구 인사동거리에서 초중고등학생들이 참석한 가운데 국정교과서반대청소년행동 주최로 열렸다. ‘대한민국 역사교육은 죽었습니다’는 현수막을 앞세운 청소년들이 인사동 거리행진을 하고 있다.ⓒ 권우성


▲ 다양한 내용의 피켓을 학생들이 준비해왔다.ⓒ 권우성

▲ 대한민국 역사교육은 죽었다는 의미로 학생들이 묵념을 하고 있다.ⓒ 권우성

“우리 역사를 보면 불의한 일이 생겼을 때 학생들이 가장 먼저 나서서 정의를 되찾았습니다. 지금은 학생들이 먼저 나서야 할 때입니다. 역사의 죄인이 되지 않기 위해 국정교과서 반대 운동을 끝까지 해야 합니다.”(김포 통진고등학교 3학년 심다희)

교복을 입고 마이크를 잡은 손이 덜덜 떨렸다. 목소리의 진폭은 더 컸다. 어떤 학생은 울먹이고, 어떤 학생은 너무 긴장한 나머지 청중들이 알아듣지 못할 정도로 빠르게 자기 주장을 펴기도 했다. 표현은 여러 가지였지만 내용은 하나였다.


‘청소년은 국정교과서 거부한다’.

전국 950명의 청소년들로 구성된 ‘국정교과서반대 청소년행동’은 17일 오후 2시부터 서울 종로구 인사동 인근에서 거리발언 및 행진에 나섰다. 이들은 “정부의 국정 교과서 도입은 독재로의 회귀이자 친일로의 회귀”라면서 시민들에게 이 문제에 관심을 가져줄 것을 호소했다.


“왜 청소년들 거리 나와서 이래야 하나, 기성세대들 안 부끄럽나요?”


▲ 자유발언에 나선 한 학생이 국정교과서 반대 이유를 설명하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권우성

국정교과서반대 청소년행동은 일선 중·고등학생들이 중심이 되어 만들어진 모임이다. 지난 12일 교육부가 역사 교과서 국정화 행정지침을 발표하자 그에 반대하는 학생들이 페이스북 등 온라인을 중심으로 자연스럽게 모였다.

이날 인사동에서 열린 행진에는 이들 중 70여 명의 청소년들이 참여했다. 초등학교 6학년 부터 고등학교 3학년까지 연령대도 다양했다. 서울과 김포 등 수도권은 물론 대구, 군산 등 지방에서 기차를 타고 상경한 이들도 있었다.

서울국제고 3학년에 재학중인 이아무개군은 “국정교과서를 도입하는 건 국가가 국민에게 한 가지 사고방식만 주입하겠다는 얘기”라면서 “지금이 유신(시대)도 아니고 5공도 아닌데 이런 이상한 교과서로 배워야 하느냐”고 울분을 쏟아냈다.

이군은 청소년들이 국정교과서 관련 논의에서 배제되어 있는 것에도 강한 불만을 토로했다. 그는 “교과서 국정화로 가장 큰 영향을 받는 것은 우리 청소년인데 ‘공부하기 싫으니까 반대한다’ 식으로 매도한다”면서 “(학생들이) 모두 힘내서 국정화를 꼭 하지 못하게 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실제로 이날 현장에는 청소년들의 발언과 행진에 비판적인 태도를 보이는 성인들도 있었다. 50대로 보이는 한 남성은 행진하는 청소년들이 들고 있는 현수막을 발로 걷어차며 “너희들이 역사교과서를 아느냐?”고 비아냥거리기도 했다.

학생들은 이런 상황에 답답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윤수진양은 “국정교과서는 독재로의 회귀이자 친일로의 회귀”라면서 “왜 청소년들이 거리로 나와서 이런 싸움을 해야 하느냐, 기성세대로서 청소년에게 부끄럽지 않느냐”고 일갈했다.


▲ 인사동 거리 행진 도중 50대로 보이는 한 남성이 학생들의 시위에 불만을 표시하며 현수막을 발로 차고 있다.ⓒ 권우성


▲ 현수막을 발로 차며 행패를 부린 한 남성을 학생이 놀란 표정으로 쳐다보고 있다.ⓒ 권우성

▲ 역사교과서 국정화 반대 구호를 외치는 청소년들.ⓒ 권우성

▲ 피켓을 들고 인사동 거리를 지나는 청소년들.ⓒ 권우성


“부조리할 때 용기내는 게 교육의 목적 아니냐?”

다른 한편으로는 기성세대들을 어르는 학생도 있었다. 통진고등학교 3학년 전혜린양은 울먹이는 목소리로 준비해온 종이를 읽어가는 중간중간 지나가는 행인들에게 시선을 보내며 “시민 여러분 잠시만 주목해주십시오”라고 호소했다.

“원래 제가 뭘 보면서 말하는 습관이 없는데 오늘은 논리적 타당성을 입증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자료를 들고 나왔어요. 우리가 역사공부 왜 합니까. 세계를 보는 시각을 넓히고 생각의 질을 한층 높이기 위해서 아닙니까. 2013년에 유엔에서는 단일교과서를 쓰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밝혔습니다. 국가가 후원하는 교과서는 정치화되어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나와있습니다.”

전양은 이어 “우리가 공부하는 이유가 뭡니까. 입시 왜 하는 겁니까? 잘못된 것 알았을 때, 부조리할 때 용기를 낼 수 있는게 교육의 목적 아니냐?”고 발언해 청중의 박수를 받았다.

대구에서 올라온 김조아(19)군은 “인체 3대 영양소가 탄수화물, 지방, 단백질인데 이중 뭐 하나가 결핍되거나 지나치게 많거나 하면 이상 증세가 나타나게 된다”면서 국정화 교과서를 도입하는 정부를 비정상적인 영양 상태의 인체로 비유했다. 그는 “국정화 교과서는 나치 독일이나 군국주의 국가, 한국 유신정권 때나 있었던 일이라고 들었다”며 “평소에는 선진국 따라하기를 그렇게 좋아하는 나라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김군은 역사 국정교과서 문제에 침묵하는 이들에게도 일침을 가했다. 그는 “관심없는 국민 역시 잘못된 방향으로 방향을 잡은 정부와 마찬가지”라면서 “나 하나쯤은 괜찮겠지 하는 마음이 독재로 다가서는 초석이 될 것”이라고 꼬집었다.


▲ 집회를 주최한 국정교과서반대청소년행동 학생들이 ‘활동 계획과 제안’을 발표하고 있다.ⓒ 권우성


▲ 초등학교 6학년이라고 밝힌 학생이 자유발언을 하고 있다.ⓒ 권우성

▲ 집회 시작을 기다리는 학생들.ⓒ 권우성

▲ 길가던 시민과 관광객들이 청소년들의 행진 장면을 스마트폰으로 촬영하고 있다.ⓒ 권우성

▲ 한 학생이 ‘국정교과서는 ‘바른교과서’가 아니라 ‘병든교과서’에 불과할 뿐이다’는 피켓을 들고 있다.ⓒ 권우성


권우성(kws21), 김동환(heaneye) 기자

<2015-10-17> 오마이뉴스

☞기사원문: “근조 대한민국 역사교육” 성난 청소년들, 결국 거리로 나섰다


[현장] 국정교과서 반대 범국민대회 열려… “국정제는 반민주적이고 반헌법적”


▲ ‘저희도 옳고 그름을 구별할 수 있습니다’ 17일 오후 정부서울청사앞 세종로공원에서 한국사국정화저지네트워크(466개 시민단체 참여) 주최로 ‘한국사교과서 국정화저지 범국민대회’가 열린 가운데, 인덕원중학교 3학년 김은솔 학생이 ‘저희도 옳고 그름을 구별할 수 있습니다’는 글이 적힌 피켓을 들고 있다.ⓒ 권우성


▲ 17일 오후 정부서울청사앞 세종로공원에서 한국사국정화저지네트워크(466개 시민단체 참여) 주최로 ‘한국사교과서 국정화저지 범국민대회’가 열렸다.ⓒ 권우성

역사학계와 대학생, 청소년 단체 등이 나서 불을 붙인 국정화 반대 움직임이 사회 각계로 확산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466개 시민사회단체와 역사단체들이 모인 한국사교과서국정화저지네트워크는 17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세종로공원에서 ‘국정교과서 반대 범국민대회’를 열었다. 이날 범국민대회에는 전국교직원노동조합 등 노조 조합원들과 일반 시민, 청소년 등 1000여 명이 모여 ‘역사 교과서 국정화 반대’를 외쳤다.

“장준하, 전태일… 국정 교과서에서는 이름 다시 사라질 것”

이날 발언대에 오른 시민사회 인사들은 이번 역사 교과서 국정화 방침과 박근혜 대통령을 서로 밀접한 관계로 규정했다. 박 대통령이 부친인 박정희 전 대통령과 관련된 역사적 사실을 미화하기 위해 국정교과서를 도입하려 한다는 것이다.

변성호 전교조 위원장은 “박근혜 대통령의 삐뚤어진 효심이 이런 결과를 불렀다”면서 “군사 쿠데타를 한 박정희 전 대통령의 딸이 ‘역사 쿠데타’를 하는 것을 좌시하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역사교육과 관련이 있는 이들은 한층 더 격앙된 모습이었다. 원로사학자인 이이화씨는 “한국사 국정 교과서야말로 반민주적이고 반헌법적”이라면서 “분노를 참을 수 없고 눈물이 쏟아진다”고 토로했다.

“(국정화 교과서의) 앞날이 뻔히 보입니다. 가장 첫째는 5.16 쿠데타를 ‘사회 혼란을 가라앉히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조치였다’라고 얘기하겠죠. 유신은 ‘우리 경제 발전에 중요한 토대를 만들었다’라고 표현할 겁니다. 친일파를 근대화의 주력, 산업화의 주력으로 갖다놓고 독립운동 세력들은 곁다리로 만들어 놓을 겁니다.” – 원로 사학자 이이화씨

이씨는 “이 시대에 이걸(역사 교과서 국정화) 막아내지 못하면 우리 후대들이 ‘조상들은 용기도 없고 정신도 못 차리고 해서 슬그머니 주저앉았다’고 할 것”이라면서 “끝까지 투쟁해서 막아내자”고 말했다.

현직 역사교사인 조한경 전국역사교사모임 회장은 정부가 지난 16일 외신기자들을 대상으로 연 기자회견을 거론하며 정부를 질타했다. 진재관 국사편찬위원회 편사부장은 이 기자회견에서 한국 중·고교생의 지적 수준이 역사 교과서에 실린 비판적인 내용을 이해하지 못할 정도로 미성숙하다고 폄하해 논란을 빚었다.

조 회장은 “다른 건 모르지만 우리 아이들을 모독하는 것은 참을 수 없다”면서 “당신들이 하는 짓이 성숙한 짓이라면 아이들에게 미성숙한 채로 남아 있으라고 권해주고 싶을 정도”라고 꼬집었다. 그는 “검정 교과서를 쓰면서 비로소 역사책에 박정희와 함께 장준하, 전태일이 등장했는데 국정교과서로 다시 돌아가면 그들이 나올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고 덧붙였다.


▲ 17일 오후 정부서울청사앞 세종로공원에서 한국사국정화저지네트워크(466개 시민단체 참여) 주최로 ‘한국사교과서 국정화저지 범국민대회’가 열렸다.ⓒ 권우성


▲17일 오후 정부서울청사앞 세종로공원에서 한국사국정화저지네트워크(466개 시민단체 참여) 주최로 ‘한국사교과서 국정화저지 범국민대회’가 열렸다.ⓒ 권우성


“어이가 없어서 분노하다 보니 여기까지 왔어요”


학생들 역시 발언대에 올랐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도모하는 대학생 네트워크인 ‘평화나비’의 정수연씨는 “지금 대학가는 중간고사 기간임에도 학내 곳곳에 ‘역사를 후퇴 시키지 말라’는 내용의 대자보들이 붙고 있다”고 전했다.

실제로 대학생들은 이번 국정교과서와 관련해 가장 빠르고 즉각적인 반응을 보인 주체들이다. 정씨는 “(대학생들이)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저지하기 위한 네트워크를 꾸렸고 광화문 파이낸스빌딩 앞에서 자유롭게 발언할 수 있는 발언대도 준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국정교과서는 박근혜 정부가 한 행동 중에 가장 큰 실수였구나 하고 깨닫는 날까지 행동하겠다”고 덧붙였다.

이날 행사에 앞서 인사동 부근에서 역사 교과서 국정화에 반대하는 행진을 벌인 청소년들도 범국민대회에 참석했다. 청운중 2학년 권혁주군은 “광주 학생운동과 4.19 혁명의 공통점은 학생들이 먼저 나섰다는 것”이라면서 “저희는 더 많은 청소년들이 자발적으로 함께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저희도 옳고 그름을 구별할 수 있습니다’, ‘저희는 좌편향된 역사를 배운 적 없습니다’라고 적힌 스케치북을 들고 나온 인덕원중 3학년 김은솔양은 “방송에 내가 배워온 교과서가 ‘주체사상 가르치는 역사책’으로 나오는 게 어이가 없어서 분노하다 보니 여기까지 나오게 됐다”고 설명했다. 김양은 “우리가 바보도 아니고 왜들 그러는지 모르겠다”면서 “태어나서 이런 곳(집회)에 온 것도, 정치 기사를 이렇게 열심히 찾아본 것도 이번주가 처음”이라고 말했다.

권우성(kws21), 김동환(heaneye) 기자

<2015-10-17> 오마이뉴스

☞기사원문:“‘주체사상 교과서’에 분노… 우린 바보가 아니다”


NO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