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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목! 이 사람] 한국사 국정화 교과서 반대 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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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광복군 총사령관 지청천 외손자 이준식 박사


솔직히 그를 거리에서 보게 될 줄은 몰랐다. 이준식 박사. 10월 14일 민족문제연구소에서 만나 건네받은 명함에는 ‘민족문제연구소 연구위원’, ‘역사정의실천연대 정책위원장’이라는 직함이 적혀 있었다. 기자가 이 연구위원을 알게 된 것은 1990년대 초반이다. 천성이 공부하는 사람이었다. 일제 강점하의 함경남도 농민운동을 다룬 그의 박사논문은 두꺼웠다. 공부하는 후배에게 그의 ‘연구자로서의 삶’은 따라 배우고 싶은 사표였다.


지난 9월 7일, 트위터·SNS에서 리트윗 되는 사진기사의 주인공으로 그를 다시 만났다. 포털 검색어에 ‘지청천 후손 광화문 1인시위’가 핫 키워드로 떠올랐다. 그의 손에 들려 있는 피켓에는 ‘획일적 역사관 강요하는 한국사 국정교과서를 반대한다!’는 구호가 적혀 있었다. “이야기를 듣고 생각해 보니 그게 제 인생에서 첫 1인시위였네요.” 이 연구위원의 말이다.


사실, 학교 다닐 당시에 그가 독립운동가 후손이라는 것을 주위에서는 몰랐다. 영화 <암살>이 개봉되면서 그는 언론매체의 호출을 많이 받았다. 영화배우 전지현씨가 연기한 여성독립군 안윤옥의 소속이 ‘한국독립군 지청천 부대 제3지대 저격수’로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 집안 내력에 대해서는 주위에 밝히지 않았어요. 2006년 친일반민족행위자재산조사위원회 위원으로 들어가기 전까지는. 두 가지 욕구가 다 있었습니다. 한편으로는 공부를 계속하는 학자로 남고도 싶었고, 또 한편으로는 내가 공부한 것을 사회로 돌려주는 제일 좋은 길은 실천하는 길이라는 생각도 했습니다.”


▲ 이준식 민족문제연구소 연구위원(59)이 지난 9월 7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시도 중단을 요구하는 1인시위를 하고 있다. / 서성일 기자



‘광복군 총사령관 지청천’은 그의 외조부다. 1957년에 돌아가셨으니 1956년생인 이 연구위원이 두 살 때 돌아가신 셈이다. 영화 <암살> 이전에 지청천이라는 이름은 그리 알려지지 않았다. 왜일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작용했을 겁니다. 1919년 외조부님이 망명한 뒤, 해방될 때까지 26년 동안 무장투쟁 한 길만을 걸었어요. 분명히 역사적으로 평가받아야 할 부분입니다. 후손을 떠나 연구자 입장에서도요. 중요한 이유는 해방 후 환국한 뒤 우파 정치활동을 했다는 것입니다. 임시정부의 요인이었는데 임시정부와 결별하고 이승만의 단독정부에서 무임소 장관을 하셨고, 자유당에도 참여합니다. 1952년에 정계은퇴 선언을 하고 정치를 떠납니다. 그 당시 심경을 일기로 남겨놓으셨어요. ‘현재 한국 상황에서 할 일이 없다, 내가 꿈꾸던 일과 한국 정치현실이 너무 동떨어진다’는 내용입니다. 정치에 참여하신 것을 후회하셨어요.”


여러 이야기를 나눴지만 오늘의 주제는 국정교과서다. “모든 역사관을 통합하는 교과서를 만든다고 하는데, 그게 앞으로 남은 1년 안에 가능할까요. 결국 정신문화연구원이나 동북아역사재단에서 차출해서 집필진을 구성하겠죠. 집필진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어요. 정권의 입맛에 따라 내용이 채워질 것입니다.” 이 연구위원은 쓴 웃음을 지었다. 기자 역시 이런 계기로 그를 찾아가야 했다는 게 씁쓸한 여운으로 남는 인터뷰였다.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


<2015-10-27> 주간경향


☞기사원문: [주목! 이 사람]한국사 국정화 교과서 반대 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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